#1391화 마계 장인 (7)
헤르마늄 광산은 화약고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마왕군과 에센시아 제국군이 붙어도 화약고지만.
꼭 제국군의 적이 마왕군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또 아니니까.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헤르마늄 광산으로 무리하게 병력을 파견하려 했던 건.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기 포함되는 녀석들 중.
가장 까다롭고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상대는 바로 천사군들이지.
자신만큼이나 헤르마늄 광산을 간절히 원하는.
그러니까 다르게 생각하면 이들은 아군이 아니라.
오히려 적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자기들끼리 싸울 거라는 내 언급에 마왕 하킨이 곰곰이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아마도 마왕군을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쉬이 떠올리긴 어려울 것이다.
이건 공동의 적이 버젓이 진을 치고 있는데 오히려 자기들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뜻과 다름없으니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곧 눈빛을 번뜩이며 마왕 하킨이 내게 물었다.
“설마 천사군과 제국군이 싸울 수도 있다는 뜻인가?”
조금 힌트를 주니 따라오긴 하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시죠?”
“흠. 헤르마늄 광산. 이건 천사들에게 필수적인 광산이니까. 광산 하나 차지하겠다고 최전선에서도 얼마나 눈을 벌겋게 뜨고 덤비던지. 악마가 따로 없었다.”
음.
마왕이 천사들에게 악마라고 부르다니.
이걸 웃어야 하나 싶어 애써 표정을 숨기며 고개를 돌리고 있으니 내 표정을 오해한 듯 마왕 하킨이 내게 물었다.
“자넨 반드시 싸울 거라고 확신하는군?”
“아. 뭐 그런 셈이죠.”
“확률은?”
“음…… 구 할은 넘을 겁니다.”
내가 본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욕심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런 성향은 자신의 것을 쉽게 내어줄 리가 없다.
무리를 해서라도 어떻게든 지키려 할 터.
반대로 천사군.
그러니까 대천사 녀석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헤르마늄 광산을 나눠 먹을 생각 따윈 결코 없을 터.
엄연히 따지자면 헤르마늄 광산의 주인은 분명 에센시아 제국인 건 맞겠지만.
천사 녀석들이 그걸 인정할 리도 없을 테고.
그럼 그들에게 남은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전쟁.
혹은 타협.
그런데 막상 전쟁을 하려고 해도.
천사군들에게 명분이 없었다.
일단 천사군은 인간군 연맹의 조력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으니까.
연맹군 중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에센시아 제국 소유의 땅을 제멋대로 차지하기란.
아무리 천사군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은.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럴싸한 명분.
에센시아 제국에서 손을 들 수밖에 없는 딱 그 정도의 명분이라면 적당하려나.
마왕 하킨이 살짝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들이 적당히 협상을 해버리는 경우라면?”
“아.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겉으로만 말이죠.”
“겉으로?”
“네. 어차피 서로 협상할 마음 따윈 없을 테니. 뭔가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일을 질질 끌겠죠.”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헤르마늄 광산 일에 갑자기 끼어든 천사군이 못마땅할 테고.
반대로 천사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헤르마늄 광산을 통째로 꿀꺽 삼키고 싶은데 이놈의 황제가 문제다.
그렇다고 냅다 치워버리기에는 너무 거물이고.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다가는 다른 제국과 왕국들에 소문이 퍼져 앞으로 협조를 얻지 못하게 될 테니까.
천사군은 결국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뭔가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그 특별한 뭔가를 던져줘야 한다.
그게 천사군이 되었든.
제국군이 되었든 말이지.
거기까지 말이 이어지자 마왕 하킨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케만 녀석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이젠 천사군 녀석들까지 신경 써야 하는군.”
“이해합니다.”
원래라면 마왕 하킨은 당장 에센시아 제국과 치고받을 생각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목적은 오직 마왕 헤르게니아를 빼돌리는 것이었으니.
그리고 이젠 그 목적을 달성했지만.
막상 마왕 케만 때문에 문제가 생겨버렸다.
마왕 케만의 목적 중 하나가 마왕 헤르게니아였으니까.
까딱 잘못하다가는 다른 마왕들에게 그녀가 넘어가 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고.
거기다 이젠 천사군들까지 에센시아 제국으로 우르르 몰려와서 대기 중이었다.
둘 다 마왕 하킨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녀석들이라고 해야 하나.
이러니 골치가 아플 수밖에.
짧게 한숨을 쉬던 마왕 하킨이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내게 물어보았다.
“자네가 괜히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닐 테고. 그래서 방법이 있다는 건가?”
마왕 헤르게니아를 구해주었다는 타이틀이 꽤 크긴 큰가 보다.
대놓고 내게 조언을 구하다니.
“아, 방법이 아주 없진 않습니다만…….”
“호오? 무슨 방법인가? 한 번 말해 보게.”
기대하는 표정의 마왕 하킨과 마주하다가 슬쩍 재중이 형을 쳐다보자 재중이 형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슬슬 떡밥을 풀려고?
<주호> 네. 천사군에게 적당한 명분을 쥐어 주면 되잖아요.
지금 에센시아 제국 수도에 머무르고 있는 천사군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명분.
대놓고 자신들이 헤르마늄 광산을 차지할 수 있는 명분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절대 그런 명분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럼 결국 무력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데.
이건 최악의 수가 될 건 뻔하니 어지간해서는 실행하지 못할 테고.
뭐 미친 척하고 대천사 중에 하나가 일을 벌일 수도 있겠지만.
머리가 돌로 되어 있지 않은 이상 무리지.
지금쯤 서로 머리를 싸매고 돌파구를 찾고 있을 텐데.
여기다가 떡밥을 하나 투척해줄 생각이었다.
그것도 천사군이 헤르마늄 광산을 무단으로 점거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떡밥을.
마왕 하킨을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음. 헤르마늄 광산 안에는 뭐가 있을까요?”
뜬금없이 헤르마늄 광산에 대한 질문을 하자 마왕 하킨이 이상한 놈 본다는 식으로 날 쳐다봤다.
답이 너무 쉬운 것도 있고.
“당연히 헤르마늄 광산에 헤르마늄 광석이 있…….”
그런데 그 말을 하다가 마왕 하킨이 덜컥 멈춰버렸다.
“음…… 아니지. 그것만 있는 건 아니군.”
“정확하게는 아니었다가 맞겠죠.”
과거형으로 정정해주자 마왕 하킨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 헤르게니아. 그리고 대천사의 봉인 결계.”
“네. 정확합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이 결계에 손을 댔다고 하면 어떨까요? 아니다. 아예 대천사의 결계가 문제가 생겼다면? 그러면 대천사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거기까지 말을 꺼내자 이젠 마왕 하킨도 모를 수가 없었는지 내게 물었다.
“설마 마왕 헤르게니아가 대천사의 결계를 빠져나왔다는 걸 알리자는 건가? 그것도 대천사들에게?”
생각보다 두뇌 회전이 좋은 편이네.
막 굴리다 버릴 정도의 패는 아니려나?
바로 마왕 하킨에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바로 그겁니다.”
“하! 설마 이걸 미끼로…….”
“나쁘지 않은 떡밥이죠?”
“나쁘지 않다 정도가 아니지. 이 한 방이면 천사군과 대천사들은 반드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대천사들을 잘 아는 마왕 하킨이 장담하는 걸 보면 확실하네.
이 패는 무조건 대천사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말이지.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에센시아 제국 황제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겠군. 자신들의 결계를 손댈 수 있는 건 헤르마늄 광산을 보유하고 있던 자일 확률이 높을 테니까.”
“확실히 좀 더 나간다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니.
이건 무조건이다.
대천사들이 이 좋은 기회를 물고 늘어지지 않을 이유는 찾을 수가 없지.
모처럼 생긴 명분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헤르마늄 광산을 조사한다는 명분도 있을 테지. 자신들의 결계에 봉인되어 있던 마왕이 누군가의 개입으로 풀려났으니까.”
“하지만 황제는 철저히 반대할 겁니다.”
“반대로 대천사들은 무력으로 점거하고 버티겠군.”
헤르마늄 광산에 대천사와 천사군의 군대가 들어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정말 애매한 상황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한 번 주둔한 천사들이 모두 빠져나가지 않는 이상은.
잠시 생각을 하던 마왕 하킨이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웃었다.
“그럼 서로 싸울 수밖에 없겠지.”
“네. 차지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둘의 입장이 맞부딪히면. 어떤 식으로든 무조건 문제가 생기겠죠.”
원래 헤르마늄 광산을 소유하고 있던 제국 황제 입장에서는 열불이 터질 노릇일 거다.
당연히 양보 따윈 개나 줘버릴 테지.
대천사들은 이 기회다 싶어서 냅다 헤르마늄 광산을 점거하고 놓아주지 않을 테고.
그렇게 점점 시간을 끌다가 필요한 만큼 헤르마늄 광석을 빼돌리고 나면 선심 쓰듯 에센시아 제국에 헤르마늄 광산을 돌려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헤르마늄 광산의 입구는 우리가 폐쇄해놓은 상태라는 거다.
둘 중 누구도 헤르마늄 광석은 구경도 하지 못할 터.
가질 수 없는 물건을 앞에 두고 싸워야 하는 녀석들이라…….
거기까지 말하자 마왕 하킨이 만족스럽다는 듯 내게 말했다.
“하하. 마왕 헤르게니아가 괜히 널 붙여준 게 아니었나 보군.”
《 마왕 하킨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하킨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하킨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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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방금의 해답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바로 시스템 메시지로 화답하는 걸 보면.
곧 마왕 하킨이 내게 다시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마왕군 말이죠?”
마왕 하킨이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고민하는 척하고는 말을 꺼냈다.
“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겠네요.”
“뭐?”
“지금까지 잘 해오던 것들요. 그대로 하면 된다고요.”
“흠.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되겠나?”
“네. 괜히 에센시아 제국 수도나 헤르마늄 광산 쪽을 마왕군이 밀고 들어가면 저들의 경계는 한층 올라갈 겁니다.”
지금이야 마왕군이 가만히 있으니까 위협이 덜하다고 느끼겠지만.
만약 반대로 마왕군이 어디 한 곳을 들쑤시고 다니면 싸우려던 녀석들도 다시 손을 잡게 될 것이다.
공동의 적은 그럴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실컷 분열시켜놓고 다시 단결시켜 주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죠.”
“확실히 일리가 있군.”
마왕 하킨도 내 말을 수긍하는 모양새라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들과 천사군이 당장 부딪힐 일은 없을 것이다.
뭐 이것도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겠지만.
“곧 제국군과 천사군이 헤르마늄 광산에서 한 판 붙을 겁니다.”
예언과도 같은 내 말에 마왕 하킨이 귀를 기울였다.
“흠…… 그렇겠지.”
“그러니까 그때쯤. 마왕군을 진격시켜 주시죠.”
“설마 헤르마늄 광산에서 삼파전이라도 하자는 건가?”
그 물음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에센시아 제국 수도요.”
“수도로?”
“네. 마왕군은 수도로 진격합니다. 그럼 헤르마늄 광산에 있던 에센시아 제국군은 부랴부랴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흠. 천사들에게 헤르마늄 광산을 쥐어 주자는 말이군.”
이해가 빠르네.
자리다툼을 하다가 한쪽이 빠지면 자연스럽게 다른 한쪽이 차지하게 된다.
“혹시 천사군이 제국군을 따라 복귀하진 않겠지?”
“당연하죠. 천사군은 수도로 절대 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그래야 마왕군에 침략당해 위기에 빠진 제국군을 수렁에서 건져주면서 당당하게 헤르마늄 광산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