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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79화 (1,379/1,404)

#1379화 침공 (8)

토끼굴은 하나만 파는 게 아니라 하던가.

그런 의미에서 드워프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광산 입구 외에도 그들이 미리 파놓은 출구는 따로 존재했다.

그것도 광산 입구에서 멀찍이 떨어진 장소에.

원래라면 다른 출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꽤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드워프들의 준비성 덕분에 그런 수고를 할 필요는 없어졌다.

시간 역시 대폭 줄어들게 되었고.

“잘 도착했군.”

“네. 덕분에요. 아, 그리고 앞서 넘겨주신 물건은 잘 썼습니다.”

“비공정에 설치한 폭탄 말인가.”

혹시나 싶어서 맥크라이 장로에게 미리 부탁했었다.

에센시아 기사단이 타고 도망갈 비공정에 폭탄을 설치해달라고.

만약 그들이 다른 경로로 도망갔다면 쓸데가 없었겠지만.

딱 예상한 대로 그들이 움직여줬기에 이 폭탄도 적절히 쓸 수 있게 되었다.

곧 맥크라이 장로가 다소 걱정 어린 눈빛으로 저 산맥 너머를 쳐다보았다.

정확하게는 우리가 왔던 바로 그 헤르마늄 광산 방향을 향해.

그리고는 맥크라이 장로가 내게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정말 마왕군이 왔군.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여기서부터는 대답을 잘해야 한다.

드워프들에게 우리가 마왕군과 내통했다는 사실을 알려줄 순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마왕군이 순수히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서 헤르마늄 광산을 공격한 일이 되어야 한다.

“뭐 마왕군도 정보망이 좋은가 보죠. 그리고 헤르마늄 광산을 노려야 그들 역시 이길 수 있을 테니까요.”

“흠. 그렇다며야.”

맥크라이 장로는 이젠 딱히 상관없다는 듯 우리에 대한 의심을 접는 듯 했다.

어차피 맥크라이 장로에게 있어서 과정은 그렇게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

이젠 산맥 너머의 일은 관심을 끄고 바로 내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어떻게 헤르마늄 광석들을 운반할 생각이지? 이곳이 입구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나 꼬리가 길면 걸릴 텐데.”

맥크라이 장로가 우려하는 건.

헤르마늄 광산 자체가 아니었다.

오히려 헤르마늄 광석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들키거나 문제가 생길 것을 걱정했다.

“아. 그쪽은 걱정하지 마세요.”

NPC인 드워프들과 달리 유저들은 그런 점에서 매우 자유로우니까.

인벤에 담아서 이동시키면 얼마든지 들키지 않고 이동시킬 수 있다.

“적당한 양으로 나눠서 아공간으로 담아 이동시킬 겁니다. 물론 여기서 먼 장소에 운송용 비공정을 대기시켜놨고요.”

챠밍이나 내가 마왕의 스태프를 써서 이동시킨다면 훨씬 많은 양을 한 번에 옮길 수 있겠지만.

우리 둘 다 여기에 계속 메여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해야 했다.

적어도 이 근처가 잠잠해지는 당분간은 말이지.

그리고 이건 이미 사장님과 이야기가 끝나 있었다.

“아. 이곳보다 더 먼 곳으로 출구를 하나 더 만들어주시는 것도 부탁드립니다.”

“흠. 일이 커지는군.”

“계속 인력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처음에야 들키지 않게 이동시킨다고 해도 맥크라이 장로의 말대로 꼬리가 길면 걸리게 될 터.

무엇보다 곧 마왕군과 에센시아 제국군 사이에 헤르마늄 광산 쟁탈전이 일어나게 되면 여기도 절대 안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곳곳에 양쪽의 군대가 돌아다닐 테니까.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있는 장소로 사장님과 우리 쪽 연합 사람들이 몇 명 도착했다.

“어이구. 우리 주호. 오랜만이구나.”

“하하. 잘 지내셨어요.”

에센시아 제국에 머물고 있다가 우리의 부탁을 받아서 일을 처리해주러 온 거라 더 반갑다고 해야 하려나.

“흠. 미리 말은 들었고. 그래. 우리가 헤르마늄 광석을 운반해주면 된다는 거냐?”

“네. 오래는 아닐 거예요. 당장은 운반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 길드에서 입이 무거운 사람들로만 데리고 왔다.”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말이 새어나가면 정말 일이 귀찮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사장님이 믿을만한 사람들이라면 일을 맡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터.

뭐 혹시라도 그들이 누군가에게 알린다 하더라도 헤르마늄을 외부로 빼돌린 정도의 문제라.

이건 귀찮음의 문제지 일이 망하는 수준은 아닐 테니까.

그리고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판이라.

어느 정도 작은 위험은 감수해야 했다.

“그럼 이쪽은 부탁드릴게요.”

“알았다. 나중에 한 번 보자꾸나.”

“네. 연락할게요.”

그렇게 사장님과 길드 사람들을 놔두고는 우리는 에센시아 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참 전쟁 중인데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는 건 문제가 될 테니까.

그것도 타란 제국의 대표로 온 상황이라.

그리고 에센시아 제국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려면 자리를 지키는 편이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웅성웅성.

비공정을 타고 에센시아 제국에서 내리자마자 분위기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다소 당황한 것 같은.

NPC들의 분주함이랄까.

병사들이 전과 달리 바쁘게 뛰어다니는 걸 보면.

아무래도 벌써 헤르마늄 광산에서의 일이 알려진 듯 했다.

이 일이 아니라면 저렇게 반응할 일이 없을 테니까.

만약 마왕군이 에센시아 제국 수도로 진격했다면 지금과는 좀 다른 반응이었을 터다.

그 모습을 보고는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소식이 들어온 것 같죠?”

“아아. 생각보다 더 빠르네. 다 죽인다고 죽였는데 말이지.”

솔직히 우리가 오고 한참 뒤에나 알려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거 너무 무시했나?”

“그러게요.”

그렇게 우리 팀을 데리고 수도의 본성으로 들어가자 우리를 발견한 병사들이 바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바로 앞에서 무릎 꿇고는 말을 전했다.

“주호 대공 님. 황제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슬쩍 시선을 돌려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확실하네.

<주호> 네. 아니면 급하게 절 찾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알았다. 대전으로 가면 되나?”

“네. 지금 황녀님도 함께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이건 가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레오나 에센시아가 있어야 좀 더 우릴 부리기 편하겠다고 판단한 거려나?

곧 병사의 안내를 받아 대전으로 가자 나를 제외한 우리 팀의 입장을 막아섰다.

“대공 님만 입장하시랍니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가봐. 보아하니 황제가 타란 제국의 대공에게 이상한 부탁이나 하려는 모양인데.”

재중이 형 말대로.

꼭 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외부에 알려진 로가슈 왕국 사람들인데 그런 이들의 접근까지 막는다는 건 황제가 순전히 날 로가슈 왕국의 왕자가 아닌 타란 제국의 대공으로 여긴다는 뜻이었다.

“한 번 가 보죠.”

그렇게 우리 팀을 밖에 두고 입장하자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대전에서 빤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에는 레오나 에센시아가 표정 없이 서 있었고.

“흠. 카샤스가 아닌 다른 대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운이 좋았습니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 입장에서는 뜬금없이 내가 대공 자리를 꿰찼다고 여길 수도 있었다.

뭐 타란 제국에 있는 밀정들에게 대략적인 정보는 전달받았을 테니 사정을 아주 모르는 건 아닐 테지만.

“카샤스가 황제가 되었는데 한 번 가 보지도 못하다니. 언제 한 번 들리겠다고 꼭 전해주게나. 축하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나.”

웃으면서 칼침을 놓는 솜씨가 제법이네.

마치 자신이 대범하다는 듯 웃으면서 말하는 모양새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원래라면 지금쯤 타란 제국을 칠 계획을 잡고 있던 황제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만약 우리가 중간에 수를 쓰지 않았다면.

지금쯤 카샤스 황제와 축하 인사가 아니라 두 눈을 벌겋게 뜨고 서로 칼부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네. 꼭 그 말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좋군.”

그 말을 끝으로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빤히 나를 내려다보며 침묵에 잠겼다.

헤르마늄 광산의 소식을 들었다면.

슬슬 말을 꺼낼 때가 됐을 텐데?

뭐 아직도 모르고 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웃긴 일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본 제국이 현재 전쟁 중이라는 사실은 잘 알 테지.”

여기서는 그냥 긍정 정도만.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황제가 말을 이었다.

“마왕군이 북부에 자리를 잡고 전혀 움직이지 않아 그동안은 우리 역시 대처를 하지 않았지만. 좀 전에 문제가 생겼다네.”

그런 황제의 말에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마왕군이 수도로 진격하기라도 했습니까?”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내 대답에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가 이내 표정을 감추었다.

혹시라도 날 의심하는 건가 싶어서 모르는 척했는데.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더니 곧 짧게 한숨을 쉬고는 말을 접었다.

“흠. 아직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응?

뭐지?

솔직히 여기 들어올 때만 해도 당장 헤르마늄 광산의 탈환을 위해 출전하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헤르마늄 광산에 대한 말을 아꼈다.

혹시나 싶어서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았다.

<주호> 형. 황제가 헤르마늄 광산에 대해 아무 말도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이죠?

<불멸> 그래? 흐음…….

잠시 생각을 하던 재중이 형이 곧 답을 내놓았다.

<불멸> 어쩌면 타란 제국의 대공이 너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주호> 그게 무슨?

<불멸> 로가슈 왕자 신분과 타란 제국의 대공은 입장이 다르다는 거지. 로가슈 왕자로서 네가 헤르마늄 광산의 지분을 절반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타란 제국으로 보면 적국의 대공일 테니까.

<주호> 타란 제국에 헤르마늄 광산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없다 이건가요?

<불멸> 아마도. 만약 네가 헤르마늄 광산에 대해 정보를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줄 수밖에 없겠지만…… 굳이 직접 나서서 주진 않을 생각이겠지.

<주호> 음. 미묘하네요.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내가 헤르마늄 광산에 대해서 아는가 싶어서 떠본 거려나?

그렇다면 지금은 그냥 처음의 대처가 맞는 셈이었다.

아예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정답이라는 거지.

그리고 반대로 말하면.

적어도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헤르마늄 광산의 일로 타란 제국에 병력을 요구하진 않을 것이다.

자국 최대의 헤르마늄 광산이 마왕군에 넘어갔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을 테니.

뭐 어차피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텐데.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덕분에 우리 쪽에서는 신경 쓸 일이 하나 줄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우리를 가만히 놀릴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에센시아 황제가 드디어 말을 꺼냈다.

“타란 제국의 용기병은 빠르지.”

뜬금없이 꺼내는 말은 아닐 터.

우선 우리를 띄워준다는 건.

어떻게든 그 쪽 방향으로 써먹겠다는 뜻을 내비치는 거다.

별다른 대답 없이 일단 고개만 끄덕였다.

좋다고 대답이나 하고 있으면 나만 웃긴 꼴이라.

내 쪽에서 반응이 없자 황제가 살짝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현재 북부 지역으로 나간 정찰병들이 마왕군의 수색 부대에게 전부 죽어 나가는 중이더군. 그래서 너무 피해가 커. 하여 타란 제국의 용기병들이 마왕군의 동태를 살펴주었으면 하는데. 어떤가?”

단순히 마왕군 주변만 돌고 오는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이건 대놓고 앞장서서 마왕군에게 가 죽어달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정찰 임무라는 것 자체가 최전선에서.

그것도 가장 위험한 곳까지 들어가 활동하는 거니까.

하.

이게 누굴 호구로 아나.

잠시 대답하지 않다가 이내 웃음과 함께 황제에게 답을 주었다.

내게 마왕군의 정찰 임무를 맡긴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황제는 전혀 모르려나?

“맡겨주시면. 한 번 해보도록 하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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