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8화 침공 (7)
공중에서 굉음을 일으키고 폭발한 비공정은 완전히 절반으로 끊어져 각각 지상으로 추락했다.
비공정에 타고 있던 에센시아 기사단 녀석들은 혼비백산하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불타오르는 비공정을 버리고 뛰어내렸다.
그대로 같이 추락했다가는 죽을 게 뻔하니까.
하지만 그런 그들의 노력을 비웃듯.
마왕군의 병력들은 에센시아 기사단이 추락할 지점에 이미 잔뜩 대기 중이었다.
내려오기만 하면 바로 죽일 수 있게.
그리고 그 광경을 내려다 본 모든 에센시아 기사단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젠장!!”
“안 돼!!”
기껏 병사들을 방패 삼아 비공정으로 이곳을 탈출하나 싶었는데 돌아오는 건 죽음뿐이라.
애초에 사방을 포위당한 시점에서 저들이 살아남은 확률은 제로에 수렴한다.
처음부터 비공정을 타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다면 그나마 살 확률이라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지상으로 추락한 에센시아 기사단이 마왕군들을 상대로 힘든 전투를 벌였지만.
곧 하나둘씩 목과 몸이 분리되며 대지의 거름이 되어갔다.
오랜 전투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에센시아 기사단장이 피투성이가 되어 허망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사방에서 마왕군의 몬스터들이 자신을 찢어발기기 위해 눈빛을 부라리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살아남는 건 이젠 불가능했다.
“하…… 여길 맡는 게 아니었는데.”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기사단장의 목이 날아가며 마지막 혈흔을 바닥에 흩뿌려졌다.
에센시아의 기사단장쯤 되면 어지간한 최상위 마족과도 견줄 실력이 있었겠지만.
비공정의 폭발과 추락으로 피해를 본 상황에서 끝없이 밀려 들어오는 마왕군을 막아내는 건 그로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퇴로가 막혔다는 사실에 사기를 꺾은 점도 무시할 수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단장이 마지막까지 죽음으로 잡아끌고 간 마왕군 병사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았다.
거의 삼 백에 가까운 몬스터들이 기사단장의 시체 주변을 장식이라도 하듯 육편을 흩뿌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약간의 감탄사와 함께 그를 평했다.
“곧 죽어도 제국의 기사단장이라 이거지?”
“네. 확실히 저력이 있네요. 솔직히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다 죽어가는 제국의 기사단장도 완전히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저만한 병력은 투입해야 가능하다니.
그뿐만 아니라 다른 에센시아 기사들도 마지막까지 적지 않은 마왕군의 몬스터들을 쓰러뜨렸다.
마왕군 입장에서는 기가 질릴 만한 일이었다.
완전히 포위해놓은 녀석들을 잡는데도 이만한 피해라면.
온전한 상태의 기사단과 맞부딪혔을 때는 훨씬 피해가 클 것이다.
그리고 에센시아에는 이런 기사단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
물론 마왕군 측에서도 마왕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을 감안 해야겠지.
최상급 마족들 역시도 나서지 않았고.
진짜 전력을 아끼고 얼마든지 수급 가능한 하위 병력들만 갈아 넣어서 에센시아 기사단 하나를 몰살시킨 건 나중을 위해서 일 것일까?
모든 에센시아 기사단들이 쓰러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아 있던 마왕군이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를 위해 길을 열어주는 것 마냥.
그리고 그 사이로 아까 봤던 마왕으로 추정되는 녀석이 걸어왔다.
그렇게 마왕군 넝마가 된 에센시아 기사단장의 앞에 선 마왕이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이내 검은 그림자와 같은 한쪽 팔을 앞으로 뻗으며 혀를 찼다.
“많이 상했군.”
응?
많이 상했다고?
이제와서 마왕이 에센시아 기사단의 상태를 걱정할 리는 없다.
그렇다는 건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데.
그때 옆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알겠다는 듯 내게 말해주었다.
“저 녀석…… 언데드 계열 마왕이야.”
언데드 계열이라는 말에 다들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시선을 집중했다가 다시 마왕과 넝마가 되어 쓰러져 있는 기사단장에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이제 이해가 되었다.
왜 마왕이 자신들의 주력 병력을 내보내지 않았는지.
재중이 형도 알겠다는 듯 말했다.
“여기서 자신의 전력이 소모되는 걸 꺼렸군.”
그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무리 언데드가 효율이 좋아도 부서지면 무한히 살려낼 수 있는 건 아니거든. 하급 개체야 적은 마력으로 살려낼 수 있겠지만. 저만한 최상위 개체들은 유지하는 것만으로 다 돈이야.”
돈이라는 말에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소유자의 마력만 소모되는 것 아니었어?”
“아니. 상급 개체는 타르석이나 베르탈륨 광석이 소모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계속.”
“으음. 그것도 쉽지 않네.”
그리고 예전 생각이 잠시 났다.
마왕 벨라가 언데드 드래곤을 가지고 있던 것 역시도 다 돈이었다는 걸.
그만한 상위 개체를 계속 유지하려면 아마 마왕성을 다 팔아도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마왕 헤르게니아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마왕 녀석이 자신의 키 만한 거대한 스태프를 아공간에서 꺼내 들었다.
흑색과 보라색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재질의 금속이 꽈리를 틀고 올라가듯 장식된 스태프에 다들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상단에는 달이라 생각되는 장식이 크게 붙어 있었다.
“저건……?”
“저 마왕의 고유 무구.”
어떻게 보면 챠밍의 스태프와 꽤 유사하면서도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쭉 지켜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런 마왕의 스태프를 품평했다.
“헤에. 저 녀석. 스태프에다가 최상급 베르탈륨을 많이도 구겨 넣었네.”
“그걸 알 수 있어?”
“응. 더 자세한 건 직접 봐야 알겠지만. 형태와 색만 보면 대략 맞을 거야.”
그리고 마왕 헤르게니아가 슬쩍 챠밍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네 스태프는 저것보다 순도가 월등히 높아. 통짜 최상급 베르탈륨으로 만든 거니까.”
그 말에 챠밍의 얼굴에 살짝 기쁜 표정이 드러났다.
아까 내가 느낀 게 아주 틀린 건 아닌 모양이었다.
챠밍의 스태프와 유사하다는 그 느낌이.
그때 전사 형이 말했다.
“쟤. 먼가 하는데?”
그러자 다시 모두의 시선이 마왕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마왕이 자신의 스태프를 중심으로 뭔가의 검은 마법진을 펼쳐냈고.
곧 넓게 펼쳐진 마법진에서 검은 손들이 뻗어 나와 시체로 변한 에센시아 기사단들을 시커먼 땅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모든 에센시아 기사단의 시체가 땅으로 사라지자 마왕의 주변으로 강렬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일어나라! 타락한 기사들이여!”
곧 마력이 폭사하며 땅속으로 함께 흘러 들어갔고 그곳에서 검은 그림자가 된 개체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특히 가운데 나타난 개체는 다른 개체보다 월등히 강력한 검은 그림자를 흩뿌리며 위압을 드러냈다.
아마도 저게 에센시아 기사단장이겠지.
다른 개체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강력한 기운이었다.
거기다 그가 들고 있는 검 역시도 그림자와 같은 형태로 변해 검은 오러를 사방으로 줄기차게 뿜어내고 있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걸 보더니 살짝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저거…… 거의 마왕급 바로 아래야.”
“뭐?”
“소환한 마왕이 생각보다 꽤 실력이 있나 봐. 일반적인 언데드보다 훨씬 상위의 그림자를 만들어냈어. 상대하려면 골치 아플 걸?”
음.
이곳에 온 건 다른 마왕들에게 밀려난 하위 마왕들이라고 알고 있는데 잘못된 거려나?
그런데 마왕 헤르게니아가 조금은 다른 말을 했다.
“아. 저만한 녀석 유지하려면 베르탈륨 엄청 든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알 것 같았으니까.
“다 돈이다 이거지?”
“응.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바닥에 베르탈륨을 줄줄 흘리는 거야.”
“그러니까. 저 마왕 녀석이. 내 고객이라 이거네?”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맞다는 듯 웃음 지었다.
현재 에센시아 제국에 온 마왕군에 베르탈륨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보급 길이 길기 때문에 쉽게 채우긴 힘들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암흑 지대를 만든다고 베르탈륨이 상당량 소모되고 있을 테고.
거기서 추가로 베르탈륨이 소모된다면 결국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만한 개체 말고도 줄줄이 다른 개체들을 이끌고 다닌다면.
마왕이 소모하는 베르탈륨은 상상을 초월할 터.
“최대의 고객이라…… 나쁘지 않네.”
당연히 중간에 베르탈륨을 보급해주는 우리가 갑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터.
소모하는 양만큼 그만큼 베르탈륨의 공급에 목을 맬 수밖에 없을 테니.
다른 마왕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마왕을 상대로는 그렇다.
처음에는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저 마왕이 내게 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순간 드는 생각.
“흐음. 그럼 저 마왕에게 부지런히 제물을 가져다 바쳐야 하려나?”
저 마왕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만큼 베르탈륨 소모가 많아질 테니까.
그러려면 저 마왕이 거느리는 군단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좋다.
무엇보다 이곳 에센시아 제국에는 그런 제물로 쓸 만한 녀석들이 상당히 많이 있으니까.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설마 에센시아 제국을 통째로 가져다 줄 생각이냐?”
“아…… 그건 좀 안 되겠죠.”
재중이 형의 말에 어느새 정신을 번쩍 차렸다.
정말 마음먹고 하면 가능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에센시아 제국을 무너뜨리면 안 된다.
적어도 마왕군과 에센시아 제국은 한참을 싸워줘야 하니까.
타란 제국이 준비될 때까지 말이지.
뭐 그렇다고 에센시아 제국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제국이었다면 이미 한참 전에 무너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기는 이쯤 하면 된 것 같아요. 이제 빠지죠.”
“그래. 어차피 우리 목적은 헤르마늄 광산을 마왕군이 점령했다는 정도면 되니까.”
이건 순전히 남들에게 보여주기식이었다.
헤르마늄 광산이 무너진 게.
마왕군의 소행이라는 증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였으니까.
이제 에센시아 제국은 그 어떤 의심도 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다 헤르마늄 광산을 다시 되찾으려면.
여기 주둔하고 있을 저 마왕과 마왕군을 잡아야 한다.
심지어 다시 광산에서 헤르마늄을 캐려면 이곳을 완전히 에센시아 제국이 점령하고 난 뒤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지만.
과연 마왕군이 그걸 그냥 두고 볼까?
에센시아 제국에서 최대의 헤르마늄 채굴량을 가진 광산을 무난히 돌리도록?
이건 절대 불가능이다.
마왕군은 무슨 수를 써서든 이곳을 사수하려 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입구가 복구되는 순간 다시 폭파시키려고 할 수도 있고.
한 마디로 이젠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는.
에센시아 제국 역시도 어마어마한 군대를 파병해야 한다.
그것도 수도와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이곳에 말이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얼마 뒤 헤르마늄 광산의 소식을 들은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머리가 상당히 아플 거라는 건 확실했다.
“이동하죠.”
***
마왕군이 득실거리는 헤르마늄 광산 입구를 멀리하고 우리가 간 곳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산맥의 골짜기였다.
헤르마늄 광산과 거리 역시 상당히 떨어져 있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만한.
누가 봐도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 도착하자 숲속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리고 상대가 우리인 것을 확인한 순간.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맥크라이 장로였다.
그런 맥크라이 장로를 보면서 반갑게 말을 꺼냈다.
“자, 그럼 빠르게 빼돌려 보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181-251-9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