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3화 침공 (2)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해준 사실은 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에센시아 제국 북부를 마계와 같은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베르탈륨이 필요하다는 것.
당연히 그 수요가 늘어날수록 우린 가격을 올려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계라…… 꽤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네.”
이전에 마왕성을 차지할 때 드나들던 곳이지만 아직 성마대전에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가봤기에.
마계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유저들은 마계의 암흑 지대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체력이 빠져나가고 온갖 디버프가 걸린다.
물약이 지속적으로 체력을 회복해주지 못하면 가만히 있다가도 죽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이랄까.
특히 반대 속성에 대해서는 큰 제약까지 걸리게 된다.
이러면 암흑 지대 내에서 제대로 된 전투조차 힘들 수 있다.
그런 마계의 환경을 만들어 낸다라…….
다른 말로 마왕들이 작정하고 베링턴 산맥 앞에서 눌러앉겠다고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이런 마계의 환경은.
마왕들이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마계화가 된 북부로 들어오는 상대들은 리스크를 등에 업고 싸워야 할 테고.
특히나 천사들.
이들은 마계의 성질과 최악의 상성을 지니고 있다.
암흑 지대에서 싸운다는 것 자체가.
천사들에게는 곤욕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다른 사실 하나도 더 알려주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암흑 지대를 해제하려면 반대로 헤르마늄이 필요해.”
다들 처음 듣는 말이라 그런지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경청했다.
거기다 어쩐지 그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도와주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어서.
“헤르마늄이라…… 만약 헤르마늄이 없다면?”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바로 고개를 저어버렸다.
“그럼 대천사가 와도 암흑 지대를 해제하지 못해. 자신 주변으로 천사들을 위한 임시 결계 정도는 펼칠 수 있겠지만. 그게 다야.”
“흠. 그럼 암흑 지대에서는 리스크를 앉고 마왕들과 싸워야 한다는 거네?”
“맞아. 그래서 대천사들이 마계까지는 안 넘어가잖아. 괜히 넘어갔다가 마왕들에게 뒤질 테니까.”
“마왕들도 마찬가지고?”
“응. 천계에 가면 마왕들도 제 힘을 못 써.”
“그럼 대천사들에게 사냥당하겠군.”
“그러니까 뒤지기 싫으면 서로의 영역으로는 안 들어가는 게 국룰이야. 자살하려면 무슨 짓이야 못 하겠냐만은.”
잠시 생각해본 뒤 다시 물어보았다.
“베르탈륨, 헤르마늄 광산을 차지하려고 저렇게 치고받는 게…….”
“대륙에서 자기들 영역 늘리려고. 대륙에서 마계화나 천계화를 만들려면 그것밖에 방법이 없으니까.”
“겸사겸사 자신들을 위한 무구도 만들고 말이지?”
“맞아.”
결국은 영역 싸움인가.
어쨌든 에센시아 제국 북부에 마왕들이 마계화를 시도하는 건 결코 나쁜 상황이 아니다.
뭐 마왕들이 애초 계획대로 에센시아 제국 수도를 침공했다면 꽤 상황이 재밌었겠지만.
지금의 상황도 결코 나쁘다고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아예 암흑 지대를 만들어 그 자리에 눌러 앉아버리면…….
제 2의 성마대전 라인이 형성되는 거니까.
거기다 전선이 고착화될수록.
서로의 전력을 더욱 깎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마왕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베르탈륨이지.
그것도 적당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암흑 지대를 보다 크게 넓힐 수 있게.
방대한 양을 들이부어야 한다.
바로 전사 형에게 물어보았다.
“베르탈륨 광석들은 어디쯤 도착했어요?”
그러자 몇 가지 화면을 띄워서 살펴보더니 흡족한 듯 말했다.
“좀 전에 에센시아 제국 국경을 넘었어. 조만간 마왕군에게 전달할 수 있을 거다.”
“다행이네요.”
마왕군 자체적으로 마계화를 위한 베르탈륨을 준비해서 왔겠지만.
어쨌든 마계 영역을 더 넓히려면 추가적으로 더 필요한 건 사실일 테니까.
아마도 마왕들이 쌍수 들고 환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에센시아 제국 상황은 어때요?”
“음. 사장님한테 연락받긴 했는데. 방어전 퀘스트 내용이 난해하다던데?”
현재 에센시아 제국에는 사장님을 비롯한 우리 쪽 연합 사람들이 활동 중이었다.
여차하면 발을 빼라고 했으니 아마 이번 방어전 퀘스트에 동참하진 않을 것이다.
괜히 중간에 끼어서 총알받이가 될 필요는 없으니까.
“난해하다고요?”
“어. 처음에는 수도 방어로 퀘스트가 떴다가 이젠 또 북부 원정으로 또 떴다는데?”
“중복인가요?”
“그래. 둘 중에 하나만 해도 되고. 둘 다 해도 되는데…… 내용이 이상해.”
“어떻게요?”
우리는 타란 제국의 대공령에 있으니까 퀘스트가 어떤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에센시아 제국의 정보를 받아야 했다.
왜 퀘스트가 난해하다는 건지도.
“그게. 퀘스트 완료 조건이 너무 좋거든. 그래서 유저들이 놀라는 중이다.”
그러자 다들 전사 형의 말에 집중했다.
“얼마나 좋길래 그래요?”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할 만큼. 정확히 비교해봐야 알겠지만. 타란 제국 내전보다 최소 몇 배는 좋을 거다.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다 듣고 나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상이 그렇게 좋다고?
물론 좋을 수도 있긴 하다.
당장 에센시아 제국에 마왕군이 쳐들어오거나.
혹은 북부로 마왕군 원정을 가야 하는 판이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만 치면 베르마 제국 쪽은 항상 전쟁 중이니까 그쪽이 보상이 월등히 좋아야 정상 아닌가?
무엇보다 에센시아 제국에…….
그럴만한 자원이 남아있긴 하나?
“으음. 에센시아 제국에서 그만큼 유저들에게 보상을 지급할 여력이 되나 모르겠네요.”
“확실히 의심스럽긴 해.”
전사 형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듯 했다.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아크 드래곤을 잡을 당시 에센시아 제국에 있는 각종 자원들.
특히 정령석이라던가 성유 같은 돈이 되는 특수한 아이템을 죄다 써버리고 왔다.
비공정들을 전부 터트려버린 것도 있고.
아무리 에센시아 제국이 부강하다고 해도.
그만한 손해를 그 짧은 사이에 복구했다고는 보긴 어려울 터.
거기다 에센시아 제국 수도도 아크 드래곤에 반파되다시피 날아간 상황이라.
같은 환경인 타란 제국도 당장 휘청거리는 판에.
딱히 에센시아 제국이 특출나게 복구가 빠를 거라는 예상은 하기 힘들었다.
잘해봐야 겨우 지금쯤 복구가 되었을 텐데.
그와중에 타란 제국을 먹어보겠다고 전쟁 물자를 웃돈 들여서 사들인 것도 있을 테고.
에센시아 제국의 재정 상황이 엉망이라는 건 누가 봐도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저들에게 통상적인 보상보다 몇 배에 달하는 보상을 지급한다고?
아무리 봐도 이건 말이 안 된다.
“만약 조건이 너무 좋아서 유저들이 대거 참가했다가 정말 마왕군을 이기기라도 하면 에센시아 제국은 바로 파산일 텐데요.”
막상 전쟁에서 이겨놓고도 파산이라면.
이것만큼 웃긴 일도 없지 않을까.
어쩌면 마왕군이 아닌 스스로 자멸하는 경우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옆에서 재중이 형이 입가에 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에센시아 제국에서 정말 보상을 지급할 생각이 있다면 그렇겠지.”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퀘스트가 완료됐음에도 보상을 주지 못하는 건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다.
무슨 상황이 되었든.
에센시아 제국은 유저들에게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나라를 팔아서라도.
하지만 딱 하나.
그게 아닌 경우가 있다.
바로 퀘스트 보상을 받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설마…… 유저들을 써먹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아니. 그랬다가는 앞으로 어떤 유저들도 에센시아 제국을 위해 싸우지 않을 거니까. 다른 왕국들의 욕도 들어먹어야 하니 불가능하겠지.”
“그럼 역시…… 총알받이인가요?”
“어. 유저들을 소모품처럼 써먹을 생각이야. 그 에센시아 제국 황제 녀석이. 죽은 녀석들은 보상을 줄 필요가 없으니까.”
“이번 북부 원정에 유저들을 죄다 들이밀겠다는 거네요.”
“그렇지.”
대부분의 유저들은 에센시아 제국 황제를 만나본 적이 없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야지.
그러니까 그 황제의 성향이 어떤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반면 우리는 꽤 자주 마주쳤으니.
레오나 에센시아를 통해서 들은 것도 많고.
이건 충분히 그 황제가 할 법한 생각이다.
“죽을만한 곳에 유저들을 집어넣어서 시선을 끌고. 자신들의 영웅들로 적의 중심을 치려는 거겠죠?”
“맞아. 그럼 손도 대지 않고 아주 값싸게 치를 수 있는 전쟁이 되겠지. 황제 입장에선.”
만약 한 번 죽더라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유저들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퀘스트를 진행했을 것이다.
어차피 죽고 다시 하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바로 전사 형을 보면서 말했다.
“형, 게시판에 작업 좀 해줄 수 있어요?”
“흐음? 어떤?”
“이번 방어전 퀘스트. 자살 퀘스트라고 운 좀 띄워주세요.”
내 말에 전사 형의 눈빛이 흥미롭다는 듯 반짝였다.
“아예 다 까발리고 시작하자?”
“네. 이번 전쟁의 목적은 에센시아 제국의 전력을 깎아내리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유저들이 중간에서 갈려 나가면 결국 에센시아 제국만 좋은 일을 하는 거니까요.”
“하긴 무보수로 일하다가 뒤지는 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지.”
내가 딱히 유저들을 편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경쟁 상대들을 이 시점에서 한 번 갈려 나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목적이 아예 다르다.
방어전 퀘스트로 유저들이 죽지 않는 만큼.
반대로 에센시아 제국은 그만큼 더 피를 흘려야 한다.
“인력을 공짜로 가져다 쓰려는 심보는 막아야죠.”
“크큭. 그러네. 한 번 작업 좀 해볼게. 혹시나 보상에 혹해서 도와주는 놈들 없도록.”
“네. 아예 유저들이 한 명도 도와주지 않으면 좋겠지만요.”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도 분명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녀석들이 있을 것이다.
뭐 거기까지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그냥 일단 분위기 정도만 형성해주면 된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유저들을 총알받이로 쓴다는 걸.
“아, 그리고 하는 김에 에센시아 제국의 주변 왕국들에도 좀 흘려주면 안 될까요?”
내 말에 전사 형이 졌다는 듯 두 손을 들며 결국 웃어버렸다.
“너, 아예 이번에 작정했구나?”
“네. 흔들 수 있을 때. 최대한 흔들어 놔야죠.”
마왕군이 에센시아 제국 북부에 자리를 잡은 이상.
주변 왕국에서 병력을 파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에센시아 제국이 뚫리게 되면.
그 다음은 바로 자신들의 왕국이 될 테니까.
어떻게 보면 베르마 제국이 최전선에서 버텨주니까 주변 왕국에서 병력을 파견해주는 것과 같은 일이다.
다만.
에센시아 제국은 성격이 많이 다르지.
자신들의 전력을 최대한 아끼면서 왕국의 전력부터 소모하려고 들 테니까.
“쯧쯧. 에센시아 황제는 어쩌다 널 건드려서는…….”
“하하…….”
옆에서 마왕 헤르게니아도 만족한다는 듯 날 보며 웃어 보였다.
“역시 마왕답네.”
“음…… 칭찬 고맙다고 해야 하나.”
유저들과 주변 왕국들의 도움을 한 번 정도 스킵하면.
에센시아 제국의 발을 최대한 묶어둘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마왕군이 자리 잡기 수월해질 테고.
여기서 아까 마왕 헤르게니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에센시아 제국이 암흑 지대를 해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지금 상황에서 가장 걸리는 일이지.
“전에 계획했던 일을 지금 해야겠어요.”
그러자 다들 궁금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런 그들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헤르마늄 광산. 당장 무너뜨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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