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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69화 (1,369/1,404)

#1369화 밀수 (12)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던가.

아마 그 말은 이 세계의 마왕에게도 통용되는 말인 것 같았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새로운 제안을 판 위에 올려놓자 마왕 리센츠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완성된 형태의 베르탈륨 무구.

꼭 마왕 리센츠가 성마대전에 직접 쓰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이미 돈다발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베르탈륨 원석과 달리.

온전한 베르탈륨 무구는 따로 제작의 공정이 필요치 않으니까.

당연히 구입 즉시 전장에 투입할 수 있게 되고.

그 값어치는 원석보다는 몇 배로 뛰어오르게 될 것이다.

그냥 받는 즉시.

값이 뛰는 물건.

처음의 베르탈륨 원석의 밀수보다.

이쪽의 파이가 월등히 크다.

마왕 리센츠 입장에서는 이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겠지.

베르탈륨 원석만을 생각하고 왔던 마왕 리센츠에게는 상당히 이례적인 거래라 다소 당황한 것 같지만 빠르게 평정을 찾으면서 말했다.

“어째 판이 굉장히 커졌군요. 솔직히 완성된 무구의 거래까지 고려하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만…….”

“그래서 싫어? 거래 엎을까?”

내 쪽에서 나서서 거래를 했다면 슬쩍 간을 보면서 진행했겠지만.

마왕 헤르게니아는 나와는 다르다.

그냥 대놓고 마왕 리센츠에게 싫다면 엎어버린다고 말해버리자 이번엔 마왕 리센츠가 크게 당황했다.

곧바로 두 손을 흔들면서 아니라는 제스쳐를 보였다.

“아닙니다. 이 좋은 거래를 거절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마왕 리센츠를 본 마왕 헤르게니아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꺼냈다.

“혹시 감당이 안 될 것 같으면 미리 말해. 다른 마왕 찾아봐야 하니까. 물건 처분도 못할 녀석에게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

“하하. 이거 제게 부담을 팍팍 주시는군요. 하지만 확실히 완제품 상태인 베르탈륨 무구를 마왕군에 공급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기긴 할 겁니다.”

“왜? 다른 마왕들이 뺏으러 들까봐?”

“좋은 건 나눠 먹을 녀석들이 아니죠.”

“흐응. 너 그만큼도 지킬 힘이 없어?”

“그보다는 출처를 캐기 시작할 겁니다.”

얼핏 들어보면 마왕 리센츠의 자존심을 팍팍 긁어버리는 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왕 리센츠는 딱히 그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제 갓 마왕이 된 신생 마왕이 갑자기 어마어마한 양의 베르탈륨 무구를 마왕군에 공급한다?

확실히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하긴 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물건.

만약 마왕 리센츠의 마왕성에서 자체적으로 베르탈륨이라도 캘 수 있었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라도 되겠지만.

아니 그렇다고 해도 베르탈륨 생산 기반도 없는 다 쓰러져 가는 마왕성에서 생산되는 것도 웃긴 일이지.

당연히 베르탈륨 무구의 생산 출처를 캐기 시작할 터.

그때 내 쪽에서 나섰다.

일단은 내가 이 거래의 대표라고 해놨으니 마왕 리센츠도 딱히 거부감 없이 날 쳐다봤다.

“그들이 베르탈륨 무구의 출처를 캐는 일은 없을 겁니다.”

“흠. 그건 무슨 뜻이지?”

“우리가 이 무구들을 공급할 곳은 따로 있으니까요.”

의뭉스럽게 말하자 좀 더 설명이 필요한지 마왕 리센츠가 다시 물어보았다.

“마왕군에 공급하는 게 아니었나?”

“아, 마왕군은 맞습니다. 다만…….”

“다만?”

“모든 마왕군에 베르탈륨 무구를 공급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어째서? 그쪽이 훨씬 돈이 될 텐데…….”

“흠. 방금 본인이 말해놓고도 잊으셨나 봅니다. 다른 마왕들이 견제하거나 뺏으려 들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내 말에 마왕 리센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대놓고 베르탈륨 무구를 마왕군에 풀면 경쟁이 붙어서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긴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면서까지 팔 이유는 없겠죠.”

“흐음. 그럼 마왕군에 숨겨가면서 팔아야 한다는 건데…… 과연 제대로 거래가 될까?”

말하다 보니 마왕 리센츠도 답답한지 내게 물어보는 식이었다.

물론 이미 난 답을 알고 있었다.

마왕 리센츠는 그 답을 모르기 때문에 헤매는 중이고.

뭐 떠보는 건 이쯤 하면 된 것 같으니까.

만약 마왕 리센츠가 보다 높은 순위의 마왕들과 끈이 있다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좀 덜 남겨 먹더라도 그 마왕들을 통해서 거래를 하면 되는 일이라.

하지만 지금 마왕 리센츠의 반응을 봐서는.

아직 그런 마왕들의 라인에 들어가지 못한 듯 싶었다.

나쁘게 말하면 줄을 잡지도 못할 정도의 마왕이라는 거고.

좋게 말하면.

그만큼 관련된 마왕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쥐고 흔들 수 있다 정도이려나.

<주호> 베인 녀석이 미리 알려준 것처럼 다른 마왕과 끈이 전혀 없네요.

<불멸> 처음부터 그런 녀석으로 구해달라고 했으니. 잘 골랐네.

<주호> 이 정도면 합격이죠?

<불멸> 나쁘지 않네. 써먹어 보자.

마왕 리센츠는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개중 몇 가지는 걸리긴 한데.

그건 차차 채워 넣으면 될 것 같고.

재중이 형도 괜찮다고 하자 다시 말을 꺼냈다.

“어차피 팔 곳은 정해져 있습니다.”

“정해져 있다고?”

“그렇죠. 아직 소식을 모르겠지만. 곧 에센시아 제국으로 일부 마왕군이 침공할 예정입니다.”

내 말에 마왕 리센츠의 몸이 움찔했다.

이건 그에게도 처음 듣는 이야기일 테니까.

“뭐? 그런 일정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니 그보다 에센시아 제국을 치려면 베르마 제국을 뚫어야 한다.”

마왕 리센츠도 갓 마왕을 달았지만 대략적인 지형 정도는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음. 한 배를 타기로 했으니 말해주죠. 곧 급하게 베르탈륨 원석과 장비를 구하는 마왕들이 나올 겁니다. 그것도 아주 높은 가격에요.”

베인이 입김을 불어 넣은 마왕들이 에센시아 제국을 치려면.

그만큼 많은 전쟁 물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품목 중에 가장 비중이 높은 건 역시 베르탈륨 원석과 무구들이지.

다른 것들이야 어떻게든 급하게 구한다고 쳐도.

이 베르탈륨이라는 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물건이 아니다 보니 쉽게 추가 물량을 구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와중에 베르탈륨을 공급한다?

높은 가격을 받는 건 물론이고.

그만큼 마왕 리센츠의 입지는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있었다.

“혹시 그들이 연합해서 내 마왕성을 칠 가능성은?”

그 물음에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들은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당장 가진 전력을 이끌고 자신들의 마왕성까지 비워야 할 판이니까요.”

당장 전쟁하러 가는 판에 베르탈륨 보급지를 털만큼의 여유가 있을까.

“혹시라도 그들 중 누군가 욕심을 부리면 그냥 앞으로 거래는 없다고 해버리세요.”

“정말 그걸로 된다고?”

“네. 됩니다.”

에센시아 제국을 쳐서 입지를 올려야 하는 판국에 베르탈륨 부족으로 발목이 잡히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딱히 마왕성이 위험해지지도 않을 겁니다. 이 베르탈륨들이 당신의 마왕성까지 가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 어떻게 거래를 한다는 거지?”

“우리가 지정한 다른 포인트에서 거래를 할 겁니다.”

이건 중간에 쓰고 버릴 페이퍼 국가 혹은 영지였다.

뭐 마왕 리센츠의 마왕성에서 거래를 하면 베스트겠지만.

성마대전이 한참인데 그곳까지 베르탈륨을 운반할 수 있는가 하면…….

이건 불가능.

서로의 영역이 맞닿는 부근에는 마족들과 천사들, 인간 군대들이 득실대고 있는데 그곳을 넘어 베르탈륨을 운반한다?

미친 짓도 이런 미친 짓이 없었다.

그러니까.

마왕군이 이쪽 영역으로 넘어와 주거나.

우리가 저쪽 영역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건데.

이번에는 친절하게 마왕군이 넘어와 줄 것이다.

바로 에센시아 제국 쪽 협곡을 통해서.

그럼 우리는 그곳에다가 물건을 가져다 팔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것도 마왕 리센츠의 손을 빌려.

“혹시 지도 좀 볼 수 있습니까?”

내 말에 마왕 리센츠가 바로 대륙 지도를 가져와 앞에 펼쳤다.

잠시 살펴본 다음.

에센시아 제국의 한 지점을 손으로 찍었다.

“리센츠 마왕께서 할 일은. 이 장소까지 베르탈륨을 안전하게 운반해주는 일입니다.”

“여긴…… 에센시아 제국 협곡의 초입 부근이군.”

마왕에게 적대 세력.

그것도 제국의 국경 영지까지 들어가라고 하는 요구는 꽤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지금 마왕 리센츠의 모습을 보니 딱히 우려는 하지 않았다.

이미 르바탄 공국의 한복판에 들어와서 잘살고 있지 않나.

뭐 운반을 하다 보면 문제도 있긴 하겠지만.

거기서부터는 마왕 리센츠의 일이다.

베르탈륨을 원하는 지점까지 제대로 운반하고 못 하고는 말이지.

우리야 중간에 팔고 넘겨주면 그만이고.

그리고 이편이 마왕 리센츠에게는 훨씬 부담이 적을 것이다.

적어도 베르탈륨 광석들을 들고 성마대전이 한참인 영역을 넘어가라고 하진 않으니까.

“흠. 여기까지만 가져가면 된다라…… 에센시아 제국군이 좀 걸리긴 해도. 돈만 쥐어 주면 구멍은 넘치니까.”

“그 정도로 쉽습니까?”

“아니라면 내가 여기 어떻게 와 있겠나.”

“아. 대충 납득 했습니다.”

더미라고는 하나 마왕이 대륙 한가운데 와 있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든 일이다.

마왕 헤르게니아야 원래 봉인된 장소가 이쪽이니 예외로 치고.

“에센시아 제국 국경은 어차피 마왕군이 들락날락할 일이 없으니 오히려 더 쉽지. 대량으로 베르탈륨을 운반한다고 해도 문제없을 거다. 그리고 이곳 르바탄 공국에는 우리가 관리하는 운반선들도 꽤 있으니.”

“듣던 중 반가운 말이네요.”

마족이 직접 관리하는 운반선이라…….

대체 얼마나 경비가 허술하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긴 한데.

이곳 르바탄 공국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화련이 말해주지 않았던가.

마족들과 밀수를 이미 하고 있다고.

<주호>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네요.

<불멸> 어. 리센츠 마왕이 밀수가 가능한 루트까지 가지고 있다니 문제없겠지.

곧 마왕 리센츠가 르바탄 공국에서 에센시아 제국으로 이어지는 지점들을 손가락으로 쭉 그리면서 말했다.

“일단 물건만 르바탄 공국으로 무사히 들어오면. 물건을 다시 우리 운반선에 옮겨 이쪽으로 이어지는 강을 따라서 쭉 이동하고. 다음엔 로엔 왕국 국경 부근을 타고 넘어갈 거다. 그렇게 헤멘 왕국 국경까지 가면 내려서 비공정으로 이동하면 돼. 그럼 에센시아 제국 국경까지는 금방이지.”

우리에게 상세하게 루트까지 알려주는 걸 보면.

이미 마왕 리센츠는 이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듯 했다.

“그런데 베르탈륨 물량은 어느 정도지?”

그 물음에 오히려 우리가 되물었다.

“그보다는 한 번에 얼마만큼 옮길 수 있습니까?”

“최대치로?”

“네. 아뇨. 들키지 않고 옮길 수 있는 양으로.”

“그렇다면 이송 화물 비공정으로 다섯 대 분량. 딱 이 정도가 좋겠군. 그 이상 넘어가면 아무리 에센시아 국경 병사들이 병신이라도 눈치챈다고.”

생각보다 너무 적네…….

“비공정 밖에 안 됩니까?”

“에센시아 협곡은 화물 마차가 지나가기에는 너무 험로라. 비공정 밖에 없다.”

“뭐 그건 어쩔 수 없겠네요.”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양이 적다고 하나.

그건 어차피 여러 번에 걸쳐 옮기면 그만이니까.

“베르탈륨 광석의 가격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아무래도 마왕 리센츠의 관심은 이쪽이 더 큰 듯 했다.

“일단 최하급은 현재 시장 단가의 세 배만 받기로 하죠.”

“밀수까지 해서 세 배면 너무 적은데?”

그런 마왕 리센츠의 물음에 그저 웃기만 했다.

우리의 주목적은 밀수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목적은 마왕군이 강해지는 거다.

괜히 여기서 욕심 더 부려봐야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많을 터.

그리고 어차피 크게 남겨 먹는 건.

완성된 베르탈륨 무구로 남겨 먹어도 충분하다.

싸구려 최하급 베르탈륨이 아니라.

“앞으로의 원활한 거래를 위한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좋겠군요. 그래야 마왕께서도 좀 남겨 먹을 것 아닙니까.”

“하하. 이 친구 꽤 마음에 드는군.”

마왕 리센츠와 악수를 하고 거래가 성사되자 바로 화련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베르탈륨 전량. 르바탄 공국으로 넘겨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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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18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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