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8화 밀수 (11)
솔직히 마왕을 만나는 자리는 사람들의 눈에 절대 띄지 않는 장소가 될 것이고 예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마왕군의 수장들 중 하나가.
성마대전 중에.
그것도 상대 진영의 한복판에 위치한 공국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니까.
당연히 자신들의 위치를 숨길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우리 앞에 있는 건물을 본 재중이 형이 어이가 없다는 피식 웃어버렸다.
“하, 이것들 봐라? 대놓고 플렉슨데?”
“으음. 정말 그렇네요.”
번화가에서 그렇게 떨어져 있지 않은.
아니.
그냥 르바탄 공국의 중심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으리으리한 저택 입구 앞에 도착해버렸다.
누가 봐도 나 돈이 넘친다고 자랑이라도 하는 것 같은 위치와 저택 크기라……
대체 이놈의 마왕은 정체를 숨길 생각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이 저택 앞에 있는 대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다면 순식간에 들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우리 앞에서 쭉 길을 안내하던 마족 녀석도 그런 우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말을 꺼냈다.
“예상과 많이 다릅니까?”
“좀 놀란 정도? 르바탄 공국 한복판에 있는 거대 저택에 있는 마왕이라. 누가 봐도 이상하긴 하죠.”
“음. 저희 마왕님이 좀 쇼핑을 좋아하셔서…….”
“네?”
“아닙니다. 방금 건 못 들으신 걸로…….”
못 들었지 않다.
살짝 어이가 없어져서 재중이 형을 쳐다보자 재중이 형도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어버렸다.
옆에 있던 우리 팀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그건 마왕 헤르게니아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네가 아는 마왕이 아니라고 했지?”
“응. 나도 몰라. 그리고 봉인이 얼마나 길었는데. 그 사이에 나온 마왕이겠지.”
그녀가 봉인되어 있는 동안 바뀐 마왕이라.
신규 마왕.
그렇다면 적어도 마왕군에서 전통적인 강자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우리와의 자리를 선뜻 만들 정도로.
상황이 급해 보이기도 했고.
그때 옆에서 전사 형이 농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설마 이 마왕 녀석. 쇼핑할 돈 떨어져서 우리와 거래 하자는 건 아니겠지?”
“하하…… 설마요.”
완전 말도 안 되는 농담이긴 한데.
지금 눈앞에 있는 저택을 쳐다보고 있자니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방금 전사 형의 그 말에 앞에 걸어가던 마족 녀석의 몸이 움찔했으니까.
하아.
잘못 봤겠지.
그렇게 시내의 인파를 제치고 마족의 안내를 받아 대저택에 들어서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마왕의 저택에 입장하셨습니다. 》
다들 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서 그런지 표정엔 다시 긴장감이 맴돌았다.
아무리 이곳이 르바탄 공국의 한복판이라고는 하나.
적어도 이 저택 안에서 만큼은 마왕의 힘이 가장 크게 작용할 테니까.
혹여 이곳에서 전투라도 일어나면.
그 파급력은 타란 제국에서 키메라를 상대할 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면 마왕 헤르게니아는 옆에서 하품을 하고 있는 게 딱히 긴장한 느낌은 아니었다.
하긴.
어차피 같은 마왕 계열이라 그럴 이유가 없긴 했다.
거기다 신생 마왕이라면.
마왕이 된 햇수에서부터 마왕 헤르게니아의 그것이 훨씬 앞선다.
어떻게 보면 마왕군에서 대선배 격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쭉 정원을 따라 걸어가자 중앙의 저택에 도착했다.
“안에서 기다리십니다.”
설마 함정 같은 것이 있을까 싶어서 조심스러웠는데 마왕 헤르게니아가 쭉 주변을 살펴보고는 먼저 앞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저택이야.”
“그래?”
“응. 그 흔한 방어 마법도 없어. 그냥 여긴 휴양지 느낌인데?”
그녀는 던전에 수많은 마법 함정을 만들어낼 정도의 실력자니까.
이런 함정과 기관 장치에 능한 마왕 헤르게니아가 없다고 하면 정말 없는 거다.
확실히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여느 다른 귀족들의 저택과 다름없는 딱 그런 모습이었다.
누가 보면 이곳에 마왕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귀족이 있다고 느낄 정도라.
솔직히 여기가 아닌 어디의 지하 같은 곳으로 이어진 비밀 통로로 이동하나 싶었는데.
그런 예상도 완전히 빗나갔다.
집무실로 보이는 장소로 안내한 마족이 허리를 숙이면서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너무 평범해서 더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말끔하게 잘생겨 보이는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쳐다보며 웃어 보였다.
“먼 길 오신다고 고생하셨습니다.”
마왕 특유의 거친 느낌은 진짜 1도 느껴지지 않는다.
누가 길 가다 지나치면 그냥 귀족이라고 느껴질 정도랄까.
아마 바깥에서 마주친다고 해도 전혀 마왕이라고 눈치채지 못하지 않을까.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자 그녀 역시 입가에 웃음을 보이며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는 그 마왕 녀석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더미네.”
“역시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곧 그 마왕 녀석이 너스레를 떨면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감탄스러운 말을 꺼냈다.
“전 헤르게니아 님만큼 마기를 감출 수 없으니 임시방편으로 사용했습니다만. 마음에 드십니까?”
“흐응. 날 알아?”
마왕 헤르게니아가 봉인당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안다?
신규 마왕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정보력이 좋은데…….
무엇보다 우린 마왕 헤르게니아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다고 미리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저 마왕이 처음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의심스러운 듯 쳐다보자 마왕 녀석이 두 손을 들면서 먼저 말을 꺼냈다.
“마왕의 본체 상태로 이만큼이나 확실하게 마기를 숨길 수 있는 분은 마왕군에서도 없으니까요.”
“눈썰미가 꽤 좋네.”
“그렇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그게 저 살벌한 마왕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순간 바로 목이 날아가니까요.”
저런 식으로 생각하는 마왕이 있다니.
그동안 우리가 본 마왕들은 죄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다소 정보력에 취약한 녀석들이 많았다.
아예 그런 쪽으로 관심이 없는 녀석들까지 있었고.
반면 이 마왕 녀석은 완전히 다르다.
본신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진 모르겠지만…….
아니.
오히려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더 몸을 사리는 건가?
판단이 안 서는데.
재중이 형이 두 마왕을 쳐다보더니 슬쩍 내게 말했다.
<불멸> 벌써 서열 정리가 끝나 보이는데?
<주호> 그러게요. 만나자마자 기 싸움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네요.
마왕 급 정도 되면.
서로 마주치는 순간 바로 상대를 누르기 위한 제스쳐를 취할 것이라 예상한 것과 달리.
지금은 저 마왕 녀석이 너무 저자세로 임했다.
마치 마왕 헤르게니아를 치켜세워주기라도 하는 듯 마냥.
이건 보통의 마왕들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느낌이 틀리지 않았는지 마왕 녀석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전 마왕 리센츠라고 합니다.”
“신생 마왕이지?”
“네. 얼마 전 성마대전에서 한 하위 마왕이 삽질해서 전진하더니 대천사에게 둘러싸여 그대로 목이 날아갔거든요. 전 그 자리를 대신 하기 위해 이번에 뽑힌 마왕입니다.”
“흐응? 그래?”
이건 신규 마왕 중에서도 완전히 새 거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말단 중에 말단이라고 봐야 한다.
예전에 마왕 서열 끝자락에 있던 그 마왕 녀석이 문득 떠오르네.
아마 지금쯤 죽었으려나……?
꽤 욕망이 큰 녀석이었는데.
뭐 그 녀석 덕분에 마왕 올펠을 잡기도 했으니.
서로 이해가 맞아 떨어져서 손을 잡았었는데.
지금 눈앞의 마왕 녀석도 어떻게 보면 그런 이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저 리센츠라는 마왕이 원하는 건.
아무래도 그거겠지.
마왕 헤르게니아 역시도 알겠다는 듯 마왕 리센츠를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새로 마왕이 됐으니 부족한 게 많겠네?”
“하하. 이미 눈치채셨습니까.”
“나도 한때는 마왕군에 있었으니까.”
그러자 곧 마왕 리센츠가 앓는 소리부터 했다.
“밑으로는 최상급 마족들이 치고 올라오지…… 위에서는 터줏대감 마왕들이 힘으로 누르지. 아주 죽겠습니다. 여기서 부족한 신생 마왕이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응. 제일 먼저 갈려나가는 게 딱 그 위치니까.”
마치 인생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마냥 마왕 리센츠가 구구절절 힘든 점을 읊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버렸다.
<불멸> 이놈 봐라? 저건 대놓고 도와달라고 하는 거잖아?
<주호> 그렇게 보이긴 하네요.
<불멸> 좀 색다른 놈이긴 한데. 괜히 휘말리지는 말고. 방심시키려는 수작일 수도 있어.
<주호> 네. 거래는 거래죠.
마왕이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도 참 웃기긴 한데.
그렇다고 거래에 영향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마왕 리센츠가 더 우리를 필요하다고 외치는 꼴이라.
그런데 이렇게 쉽게 속을 내준다라.
녀석이 마왕이라는 위치를 고려해보면.
재중이 형 말대로 많이 수상해보이기는 했다.
그때 마왕 리센츠가 시선을 돌려 우리를 쳐다보았다.
“흠. 이쪽은?”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왕 리센츠에게 우리를 설명해주었다.
물론 정체를 알려주진 않았다.
“내가 가진 상단의 대표. 그들이 실질적으로 베르탈륨을 마왕군에 공급할 거야.
미리 말을 맞춘 대로 마왕 헤르게니아가 설명해주자 마왕 리센츠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우리가 타란 제국의 사람들이라는 걸 밝힐 이유가 없다.
특히 내 쪽은 더 문제고.
베르탈륨이 타란 제국에서 나온다는 걸 이 마왕 리센츠가 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약점이 될 테니.
거래가 끝날 때까지는 계속 정체를 숨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전면에 마왕 헤르게니아를 내세운 것이었다.
그녀가 있다면.
마왕 리센츠도 충분히 이 거래를 납득할 테니까.
슬쩍 우리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이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흠. 헤르게니아 님이 운영하신다면…… 알겠습니다. 거래를 한 번 진행해보죠.”
아무래도 마왕 헤르게니아를 데리고 온 건 잘한 듯 싶었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마왕 리센츠가 저 자세로 나올 이유가 없으니까.
온갖 트집을 잡으면서 가격을 깎거나 혹은 문제가 될만한 조건들을 추가하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딱 하나.
그녀의 존재가 영향력을 미쳐서 쉽게 일을 해결해버렸다.
“처음엔 우리가 베르탈륨을 직접 공급할 거야.”
“흠. 무슨 뜻인지…….”
“어차피 너네. 제대로 무구를 생산할 기반도 없지?”
마왕 헤르게니아가 빤히 쳐다보자 아픈 곳을 찔렸다는 듯 마왕 리센츠가 곧 쓴웃음을 지으면서 답했다.
“하하 이거 참. 아픈 이야기지만. 사실 새로 받은 마왕성이 좀 문제가 많은 편이죠.”
이건 나 역시 알 것 같았다.
예전에 마왕 벨라의 마왕성이 떠올랐으니까.
정말 자원이 아무것도 없는 다 쓰러져 가는 마왕성을 한 번 살려보겠다고 그때 한 일들이 새록새록 기억에 떠오르네.
아마도 딱 지금의 저 마왕 리센츠의 마왕성이 그런 상태일 것이다.
상태가 괜찮은.
그러니까 인프라가 좋은 마왕성은 이미 다른 마왕들이 채가고는 먹고 남은 다 썩어 쓰러져가는 마왕성을 넘겨주었을 테니.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절대 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게 바로 마왕 리센츠가 우리와의 베르탈륨 밀수에 손을 대려는 결정적인 이유일 테고.
잠시 생각을 하던 마왕 리센츠가 곧 눈치를 챘는지 욕심을 감추지 못하고 눈빛을 번뜩였다.
“그러니까 베르탈륨을…… 앞으로 무구 형태로 공급해주시겠다는 겁니까?”
“머리가 나쁘진 않네? 거래. 할 거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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