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67화 (1,367/1,404)

#1367화 밀수 (10)

마왕군의 마왕을 상대할 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전면에 나서면 협상의 난도가 확 내려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베르탈륨 광석의 출처를 숨길 수 있다는 점.

타란 제국에서 베르탈륨 광석이 나왔다는 걸 협상할 마왕이 알게 되면.

우리에게는 약점이 되니까.

혹시라도 그걸 빌미로 마왕이 우리 발목을 잡게 되면 여러 곳에서 잡음이 나오게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라도 그건 피해야 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

마왕 헤르게니아는 딱 좋은 협상자였다.

그렇게 마왕 헤르게니아와 대화를 마치자, 우리 팀이 속속 접속해 들어왔다.

곧 모두를 모아놓고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어느 정도는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있기에 다들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베인이 섭외한 마왕을 만나볼 생각이에요.”

그러자 재중이 형이 알겠다는 듯 말했다.

“마왕 헤르게니아를 데리고?”

“네. 역시 전면에 나서는 건 그녀가 해줘야죠. 협상을 하려면 여기도 마왕급은 나가 줘야 되니까요.”

“그래. 그럼 어디서 볼 생각이냐?”

“지금 고려하고 있는 왕국이 몇 곳 있긴 한데. 화련하고 따로 이야기 해봐야 해요.”

“유령 국가 말이지?”

“네. 일단 타란 제국은 안 되잖아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란 제국이 드러나는 건 절대 안 돼. 타란 제국이 마왕군과 손을 잡았다는 건 큰 약점이 될 테니까.”

“네. 무조건 그건 피해야죠.”

어디로 갈지는 화련이 준비해준 왕국 중에 선택해야 했다.

“잠시 이야기 좀 해볼게요.”

그리고는 바로 화련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전에 말한 페이퍼 국가는 어떻게 됐어요?

<화련> 몇 군데 후보지를 만들어두긴 했는데. 아직 준비 중이야.

<주호> 그럼 지금 바로 쓸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화련> 갑자기?

<주호> 아, 생각보다 마왕군과 접선이 빨리 됐거든요.

<화련> 흐응. 그러니까 마왕과 만날 장소가 필요하다?

<주호> 뭐 그런 셈이죠. 가급적이면 타란 제국과 얽히지 않은 왕국이면 좋을 것 같아요.

<화련> 당연히 천사군과도 얽히지 않는 곳이면 좋겠지?

<주호> 네. 마왕이 미쳤다고 그런 곳으로 오진 않겠죠.

천사들이 주둔하는 왕국이나 그들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국가인 경우.

마왕이 들어오는데 많은 제약이 생길 것이다.

여차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전쟁이니.

그리고 기껏 협상한다고 불러놓고 천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가는.

다음 번에 다른 마왕과는 협상조차 해보지 못한다.

그러니까 아예 천사들의 입김이 없는 국가가 좋았다.

<화련> 잠시만.

화련이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은 후보 국가를 하나 들고 왔다.

<화련> 르바탄 공국 어때?

<주호> 거긴 괜찮은가요?

<화련> 응. 이번에 타란 제국에 지원 왔던 국가이기는 한데. 지리상 나쁘지 않아. 천사들의 입김이 적은 공국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화련> 어차피 대륙 내에서 천사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국가는 없을 거야.

<주호> 적냐 많냐의 차이네요.

<화련> 응. 그리고 르바탄 공국은 대륙 중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을 끼고 있는 공동 무역 지대라 꽤 많은 배들이 오가거든.

일종의 무역 국가 같은 거려나.

타 국가에서 오가는 배가 많다는 건.

그만큼 정체를 감추기에 용이하다는 뜻일 터.

<주호> 흐음. 외부에서 정체를 숨기고 들어가기엔 나쁘지 않겠네요.

<화련> 맞아. 돈만 쥐어 준다면. 대륙 내 어떤 국가들보다 안전할 거야. 거기다 르바탄 공국은 왕도 없거든.

<주호> 그래요?

<화련> 응. 대표로 공왕이 있긴 한데. 그 역시도 르바탄 공국의 상인들을 대표하는 장일 뿐이야.

<주호>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드네요.

왕이 없다는 건.

르바탄 공국 내에서 압도적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말이다.

만약 천사군의 입김이 강한 다른 왕국이었다면.

중간에 왕의 권력을 통해 어떤 식으로는 방해가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르바탄 공국은 그런 면에서는 자유롭다고 해야 하나.

화련이 수많은 국가들 중 이곳을 고른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련이 이곳을 고른 이유는.

바로 무역.

<주호> 돈이 된다면. 다른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이죠?

<화련> 맞아. 베르탈륨과 헤르마늄을 중간에 유통하기에 딱 적당한 국가야. 르바탄 공국은 대륙 각지로 이어지는 큰 강을 끼고 있으니까.

<주호> 다른 국가에서 들어오는 물건에 우리 물건을 숨기기도 좋겠네요.

<화련> 아마 아예 대놓고 옮겨도 될걸? 이건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굳이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려나.

돈만 쥐어주면 중간에 어떤 식으로 무역을 하든 상관없다는 말인 것 같았다.

그때 화련이 한 가지 사실을 더 올렸다.

<화련> 웃기는 게. 우리 쪽 루트를 만들다 보니까 이미 르바탄 공국에서 몰래 마왕군과 무역을 하고 있더라고.

<주호> 정말요?

<화련> 응. 나도 보고 웃겨서 다시 살펴볼 정도였다니까?

<주호> 밀수겠죠?

<화련> 맞아. 밀수는 돈이 되니까.

누가 봐도 정상적으로 무역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성마대전이 한참인데 적대 세력인 마왕군에 물자를 대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다른 말로.

할 수만 있다면.

단번에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주호> 그쪽과 같이 할 건가요?

<화련> 흐응. 그건 모르겠네. 잘못하면 같이 드러날 위험이 있으니까.

<주호> 굳이 우리가 들키지 않더라도. 그쪽에서 밀수를 하다 걸리면……

<화련> 우리까지 같이 덤탱이 쓰는 거지. 그리고 밀수하다가 걸리면 르바탄 공왕은 아예 발뺌할 거야. 자신들은 관련 없다고.

<주호> 르바탄 공국은 철저하게 한 발 떨어져서 지켜만 본다는 거네요.

뭐 이쪽이 훨씬 부담이 적긴 하다.

괜히 르바탄 공왕이 끼어들면 오히려 불편한 건 우리니까.

<주호> 그럼 그들과는 따로 움직이는 걸로 하죠. 괜히 위험부담을 더 올리고 싶진 않아요.

안 그래도 밀수는 위험한 일이다.

거기다 추가로 위험을 더 올리는 건 그만한 값어치가 있을 때나 가능하겠지.

조금 밀수 루트를 편하게 가져가려고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화련도 같은 생각인지 바로 답해주었다.

<화련> 굳이 그들을 끼고 갈 필요는 없어. 어차피 우리와 그들의 거래 품목도 많이 다르고.

<주호> 우린 군수 물자죠.

위험도로 치면 우리 쪽이 압도적으로 위험하다.

그러니까 굳이 우리와 함께 하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주호> 아, 그리고 앞으로 무구를 제작해서 밀수할 생각인데 화련 생각은 어때요?

<화련> 베르탈륨 원석이 아니라?

<주호> 네.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화련이 덩달아 환영하는 뉘앙스로 말했다.

<화련> 어차피 할 거면. 제작된 무구가 훨씬 비쌀 거야. 원석보다 부피가 확 줄어들기도 하고. 적재할 수 있는 양도 월등히 많아지니까, 다시 계산해봐야겠지만 아마 한 번 오갈 때마다 이익이 몇 배는 차이 날걸?

역시 화련은 돈이 되는 일은 바로 캐치할 수 있었다.

<화련> 그런데 마왕군의 무구를 어떻게 제작하려고? 마왕군 쪽 무구 레시피 같은 아이템 가지고 있어? 없으면 제작 불가능이야.

<주호> 아. 그건 우리 쪽에서 알아서 할게요.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마왕군에서 쓰는 어지간한 무구는 다 만들 수 있을 거예요.

<화련> 흐응. 그렇단 말이지?

<주호> 네. 그리고 대공령에 관련 시설도 만들 거예요.

<화련> 당연히 카샤스 황제도 묵인하고?

<주호> 그렇죠.

<화련> 확실히 황제가 대놓고 밀어주면 할 만해.

어차피 카샤스 황제도 다 한통속이다.

불법이지만 불법이 아니지.

오히려 외부의 시선조차 카샤스 황제가 막아줄 터.

제국의 황제가 빽이라…….

장사하기 이만큼 좋은 조건이 어디 있을까.

이러니 유저들이 보다 상위의 직위를 가지려고 하는 거다.

<화련> 그럼 내가 알려주는 르바탄 공국의 좌표로 가 봐. 미리 돈을 먹여서 루트는 다 뚫어놨으니까.

<주호> 고마워요. 덕분에 일이 쉬워지겠네요.

<화련> 새삼스럽게 감사는.

화련 역시도 큰 돈을 버니까 성심성의껏 하는 걸 잘 안다.

이런 게 이해관계가 딱 맞아 떨어지는 거겠지.

<주호> 나중에 마왕과 협상 결과 알려줄게요.

<화련> 그래.

그렇게 화련과의 대화를 끊자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 팀들의 시선이 내게 몰렸다.

바로 일어나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다들 짐 싸세요. 우린 르바탄 공국으로 갑니다.”

***

대공령에 한번 들려보고 싶긴 했는데.

지금은 르바탄 공국으로 가는 일이 먼저라 일단 뒤로 미뤘다.

거리상 꽤 멀기 때문에 지금 출발해야 하니까.

카샤스 황제가 쓰라고 넘겨준 실피드는 너무 눈에 띄어서 차마 타고 갈 수 없었다.

밀수하러 가는 사람들이 타란 제국 대공의 전용 탈것을 타고 가는 건 미친 짓이지.

재중이 형도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밀수하러 간다고 광고할 게 아니라면야.”

“그렇죠?”

그리고 지금은.

우리의 행적을 알지 못하게.

제국이나 다른 왕국의 흔적을 지운 상태의 비공정을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화련 말대로 이동 행적을 알리지 않기 위해 몇 곳의 다른 국가를 거친다고 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마왕군의 마왕이 대륙으로 몰래 들어와서 이동하는 시간까지 고려해본다면.

우리가 그렇게 늦게 도착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이미 몇 곳의 국가를 거친 뒤 비공정을 이동시키던 전사 형이 말했다.

“이제 르바탄 공국 국경이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막내별 모두 대륙을 가로지르며 길게 뻗어진 바다와 같은 규모의 강을 보더니 탄성을 내질렀다.

그것도 르바탄 공국 전역을 강이 이어주는 형태다 보니 대륙의 그 어떤 국가보다 풍경이 좋아 보였다.

특히 그 거대한 강줄기를 따라 수도 없이 많은 배와 비공정들이 오가는 걸 보니 왜 르바탄 공국이 대륙 최대의 무역 지대라고 하는지 잘 알 것 같았다.

“가지고 싶을 정도네요.”

내 지나가는 말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여기도 한 번 접수해볼까?”

“흠. 돈이 많이 들겠죠?”

다른 유저들이 보면 진짜 어이없겠지만.

둘 다 르바탄 공국을 접수한다는 말을 농담처럼 받지 않았다.

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만 있을 뿐.

전사 형이 옆에서 질린다는 듯 웃어버렸다.

“이젠 공국까지 먹으려고?”

“음. 한 번 생각해보고요.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진작 작업 좀 해놓을 걸 그랬어요.”

대륙 각지로 뻗어 나가는 무역 루트를 지니고 있는 르바탄 공국이다.

가지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타란 제국에 르바탄 공국의 병력이 왔을 때는 너무 규모가 적어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적어도 무역에서만큼은 그런 병력 규모 따위는 무시할 만했다.

쓰기에 따라.

이 르바탄 공국은.

최고의 무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곧 전사 형이 비공정을 르바탄 공국의 외곽에 내리자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하고는 수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건 미리 화련이 준비해둔 통과증이면 충분했다.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었다.

“역시 돈이 좋다니까.”

“그러게요.”

온통 황금칠이 되어 있는 통과증은.

우리가 얼마만큼 이곳에 와서 돈을 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화련이 알려준 한 장소에 도착하자 미리 기다리고 있었는지 회색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다가왔다.

흐음.

마기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역시 이 녀석도 마기를 감추는 중이려나?

그에게 통과증을 슬쩍 보여주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와 옆에 있는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왕께서 기다리십니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181-251-9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