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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59화 (1,359/1,404)

#1359화 밀수 (2)

현시점에 마왕군에게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꼽으면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 그건 헤르마늄으로 만들어진 무기들일 것이다.

속성상 정 반대에 있는.

역상성으로 마왕군의 병력들을 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

만약 마왕군이 에센시아 제국의 협곡을 돌파한 뒤.

외곽의 방어를 무력화시켜 수도로 진격하게 되면.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반드시 헤르마늄으로 된 무기들로 무장된 병력들을 내보낼 테지.

원래도 강력한 기사단에 헤르마늄으로 무장 된 병력은 그 자체로 마왕군에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면 최악의 경우 마왕군이 제대로 에센시아 제국에서 난동을 부려보기도 전에 제압당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전쟁터 자체가 에센시아 제국의 본진이다.

코앞에 위치한 최대 규모의 헤르마늄 광산에서 줄기차게 보급되는 헤르마늄 무기들은 점점 마왕군의 피를 말리게 할 터.

반면 마왕군은 에센시아 제국을 침공하는 상황이지.

다른 말로 그들의 보급로가 미친 듯이 길다는 뜻이기도 했다.

혹여나 마왕군이 들어왔던 협곡의 비밀 통로마저 막혀서 뒤가 없게 되면.

말라 죽는 건 당연한 수순이겠지.

고작 그런 꼴만 보고 끝내자고 마왕군을 에센시아 제국으로 불러들이는 게 아니었다.

최소한 몇 주 이상.

혹은 그 이상으로 마왕군이 에센시아 제국의 다수 지역을 먹어치우면서 계속 점거를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에센시아 제국뿐만 아니라 천사들과 인간들의 왕국들이 시선을 돌리지 못할 테니까.

한 마디로.

마왕군이 침공하는 시점에 헤르마늄 광산이 제대로 돌아가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헤르마늄 광산을 무너뜨린다고 하자 화련이 마치 미친놈 보듯이 내게 말했다.

<화련> 멀쩡한 헤르마늄 광산을 왜 무너뜨려? 거기서 밀수할 생각 아니었어?

<주호> 맞아요. 하지만 헤르마늄 광산이 있으면 마왕군은 절대 에센시아 제국을 흔들지 못하니까요.

내 말이 끝나자 화련도 바로 이해를 했는지 혀를 찼다.

<화련> 마왕군하고 에센시아 제국의 전쟁을 오래 끌고 갈 생각이야?

<주호> 네. 가급적이면 아주 오래 끌어주면 좋죠. 서로 피 터지게 싸우면서 전력이 깎이면 더 좋고요.

<화련> 흐응. 그렇다면 생각만큼 나쁘지 않겠네. 헤르마늄 광산이 그대로 있으면 에센시아 제국이 아무리 뒤를 잡힌다고 해도 금방 전선을 복구할 테니까.

화련 역시 내가 무슨 뜻으로 말한 지 잘 이해했다.

물론 그렇다고 헤르마늄 광산을 무너뜨리는데 찬성한 건 아니지만.

<화련> 그런데 헤르마늄 광산을 무너뜨리고 나면 어떻게 밀수할 생각이야? 쉽지 않을 텐데.

<주호> 아. 그것도 드워프들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이에요.

드워프들의 실력이라면 꼭 광산 입구가 아니더라도 다른 식으로 얼마든지 헤르마늄 광석들을 빼돌릴 수가 있을 터.

꼭 그게 아니더라도 사장님을 비롯해 우리 쪽 사람들을 쓰면 어떻게든 운반은 할 수 있다.

<화련> 광산이 바깥에서는 무너진 것처럼 보이게 하고 외부로 빼돌리겠다?

<주호> 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쉽게 빼돌릴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에센시아 제국에 헤르마늄이 흘러 들어가지 않게 하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에요.

<화련> 하아. 미친놈. 밀수에다가 광산 폐쇄까지 아주 막 나가잖아?

<주호> 뭐 어차피 반은 제 거니까요. 미리 좀 땡겨 쓴다고 생각해야죠.

잠시 말을 끊었다가 화련에게 물어보았다.

<주호> 마왕군이 침공하면 에센시아 황제가 헤르마늄 광산의 지분을 제대로 인정해줄 것 같아요?

<화련> 지분만큼 안 내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주호> 네. 타란 제국에서 이미 당해봐서요. 화련도 잘 알잖아요. 황제라는 것들이 얼마나 말을 제멋대로 뒤집을 수 있는지.

내 말에 화련이 바로 이를 가는 듯 했다.

화련 역시도 타란 제국 황제에게 당한 게 많으니까.

아니.

이쪽은 안 주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다 뺏어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과연 에센시아 황제도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을까?

<화련> 마왕군이 에센시아 제국에 들어오면 전략 물자라는 핑계로 광산에서 나는 헤르마늄 전량을 제국 수도로 보내버리겠네.

<주호> 거봐요. 화련도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거기다 아예 광산에 대한 우리의 접근 자체를 막아버릴 확률도 있었다.

만약 황제가 에센시아 기사단을 보내 광산 출입을 통제해버리면.

그때부터는 헤르마늄 유통에 손조차 대지 못한다.

물론 아예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지는 못한다.

시스템상으로 헤르마늄 광산의 지분 반은 내 것이니까.

<화련> 처음에야 헤르마늄 광석 물량을 전량 에센시아 제국에 쓰기로 하고 네게는 시세보다 못한 푼돈 좀 던져주겠지. 그러다가 전세가 더 불리해지면 그것마저 끊어버릴 거야. 나 같으면 전쟁 후에 지급한다고 하든지 해서 최대한 미루겠지.

화련 말대로 평상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전시에는 전략 물자에 대한 권한이 죄다 황제에게 몰리게 된다.

그럼 시스템으로 보장이 되든 안 되든.

당장 의미가 없다.

물론 내가 그런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명령을 막을 정도의 힘을 갖추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게 되지만.

아무리 타란 제국 대공이라 해도 에센시아 제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건 역시 무리다.

특히 전략 물자는 그 특성상 더욱 손대기 힘들어진다.

거기다 타란 제국은 에센시아 제국과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니까.

<화련> 하지만 헤르마늄 광석 생산 자체가 멈춰버린다면…….

<주호> 다 의미가 없죠.

에센시아 제국의 헤르마늄 보유량은 점점 바닥을 칠 테고.

제국 내에 마왕군은 계속 활개 칠 것이다.

이 와중에 헤르마늄을 빼돌려 타란 제국에서 생산하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화련도 나와 같은 생각에 도달했는지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화련> 너…… 밀수한 헤르마늄 광석들. 다시 에센시아 제국에 팔 생각이지?

<주호> 거기까지 아셨으면 뭐…….

역시 돈 냄새를 맡는 건 기가 막히다.

빼돌린 헤르마늄 광석을 어디에 팔아야 가장 이득이 되는지.

정확하게 캐치하고 있었다.

<화련> 마왕군이 침공하면 가장 필요한 게 헤르마늄이니까. 그때 가서 제국 내에서는 전혀 구할 수 없는데 갑자기 타란 제국에서 팔기 시작하면 꽤 볼만하겠네.

아마 지금쯤 화련은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주호> 물건은 가장 목마른 사람에게 팔아야 제값을 받겠죠.

당장 필요하다고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카샤스 황제에게 비는 모습까지 상상될 정도였다.

<화련> 유저들에게 헤르마늄 물량을 푸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주호> 흐음. 설마 중간 유통을 맡기자는 건가요?

<화련> 맞아. 걔들 아예 가격 담합해서 대놓고 에센시아 제국을 등쳐먹으려고 들걸?

<주호> 확실히 유저들은 욕심이 많으니까요.

<화련> 그럼 카샤스 황제는 에센시아 제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놓고 가격을 올려도 돼. 애초에 유저들이 그 가격에 사 간다는데 지들이 뭐라고 할 거야?

<주호> 시장에 맡기는 척 가격을 폭등시키자는 거군요.

<화련> 그래. 카샤스 황제가 직접 높은 가격으로 에센시아 제국 황제와 흥정하면 결국 나중에 문제가 생길 테니까.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하면 타란 제국이 에센시아 제국을 노리고 헤르마늄을 푼다는 의심도 할 수 없게 되거든.

<주호> 어차피 유저에게 풀어버리니까…… 한 발자국 떨어진 상태에서 지켜볼 수 있겠네요.

<화련> 아예 카샤스 황제가 개입하지 않는 것도 괜찮아.

<주호>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그럼 무조건 비싼 가격에 살 수밖에 없겠군요.

타란 제국은 아예 흥정 대상에서 빼버린다.

이게 화련이 말한 거래 방법이었다.

거래 자체는 유저들에게.

그럼 흥정할 대상 자체가 바뀐다.

카샤스 황제에서 다수의 유저들로.

<화련> 돈은 우리가 쓸어 담고. 욕은 유저들이 먹는 거지.

<주호> 그런데 카샤스 황제가 직접 개입해서 에센시아 제국의 이권을 받아내는 건 어때요?

<화련> 아까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어?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줄 것 같아?

<주호> 흐음. 하긴 그렇네요. 타란 제국에 이권을 넘길 리가 없죠.

<화련> 그러니까.

화련과 이야기를 해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헤르마늄 판매로 에센시아의 이권을 뜯어낼 생각도 어느 정도 있었는데.

줄 리가 없는 물건으로 흥정하는 건 역시 어렵지.

<화련> 나중에. 정말 에센시아 제국이 불리해지면. 그때 카샤스 황제가 나서면 돼.

<주호> 발등에 불 떨어진 때 말이죠?

<화련> 응. 그때쯤 되면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높은 콧대도 꺾여 있을 테니까. 당장 집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뭔들 못 해주겠어. 이권이고 뭐고 일단은 다 뱉어낼걸?

<주호> 유저들을 이용해서 먼저 쌓인 자금을 뱉어내게 하고…….

<화련> 마지막에 카샤스 황제가 마침표를 찍는 거지.

우린 전쟁에 참가하지도 않는데.

이미 양쪽을 저울질하면서 이득 볼 계산이 다 서 있었다.

이건 가만히 앉아서 에센시아 제국을 통째로 뜯어내는 거다.

돈과 이권 모두.

<주호> 나중에 타란 제국과 맞닿은 국경 부근의 영지들을 얻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화련> 흐응? 아주 거대 제국이라도 만들려고?

<주호> 땅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요. 그리고 유저들이 타란 제국에 정착하게 되면 점점 수여해야 할 토지도 많아질 테니까.

<화련> 누가 보면 네가 황제인 줄.

<주호> 뭐 일단은 타란 제국의 대공이죠.

물론 그 토지는 아주 비싸게 팔아먹을 생각이었다.

거기다 단순히 거기에서 끝낼 생각도 없다.

타란 제국의 주변 토지를 얻어내면.

그곳에 유저들을 보내.

성마대전의 방어선을 구축할 생각이니까.

이건 먼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미리 준비해놔도 나쁘지 않겠지.

이전 성마대전과 다른 역사를 만들려면.

지금부터 차곡차곡 준비해야 한다.

물론 그러려면 에센시아 제국이 아주 많이 망가져야 한다.

당연히 마왕군이 에센시아 제국을 밀어붙이면 밀어붙일수록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 펼쳐지게 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화련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

<주호> 흐음. 그럼 마왕군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할까 봐요.

<화련> 여기서 더? 원래 마왕군이 더 강하지 않아? 가만 놔둬도 피해가 꽤 될 텐데?

<주호> 아뇨. 그 정도로는 많이 부족해요. 성마대전은 단순히 마왕군과 에센시아 제국만 치르는 게 아니잖아요.

내 말에 화련이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화련> 에센시아 제국으로 지원 올 녀석들 말이지?

<주호> 네. 당장 베르마 제국이 전방에서 버텨준다고 해도 에센시아 제국이라는 옆구리가 터져버리면 천사들을 위시한 연합군은 절대 버티지 못하니까요.

<화련> 그럼 천사들이 왕국들을 움직이겠네.

<주호> 어쩌면 요하스 성국까지도 움직일 수 있어요.

<화련> 걔들까지?

<주호> 천사들 입김이 가장 많이 들어간 나라잖아요. 자신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요하스 성국이 움직이기 가장 좋은 패일 거예요.

그런데 내 말에 잠시 멈칫한 화련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화련> 너…… 또 말 안 한 게 있구나?

<주호> 네?

<화련> 어째서 천사들이 움직이지 못한다고 확신하는 거지?

아.

이건 실수다.

아니.

화련이 너무 예리한 거지.

딱 한 번 말실수한 것을 바로 알아챘으니.

여기서는 일단 어떻게든 넘어가 볼까…….

아직 성배 이야기는 너무 이르다.

<주호> 마왕군이 있으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겠죠.

<화련> 흐응? 뭔가 수상한데…… 한 번은 넘어가 줘?

<주호> 하하.

<화련> 뭐. 댔어. 천사들이 움직이지 못하면 오히려 좋지.

아마 뭔가 눈치챈 것 같은데.

이번은 덮어주는 거려나.

아무튼 그런 화련의 관심을 바로 돌릴만한 패를 하나 더 꺼내 들었다.

화련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의 패.

<주호> 지금 우리가 제일 많이 가진 게 베르탈륨이잖아요.

<화련> 응? 그런데?

<주호> 그거. 마왕들에게 판매해보는 건 어떨까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18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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