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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56화 (1,356/1,404)

#1356화 재건 (15)

신의 성배.

성마대전 후반쯤에서야 세상에 등장하는.

규격 외의 물건이라고 해야 하나?

그도 그럴 것이.

성배라는 물건 자체가 가진 성질이 기존의 아이템들과는 완전히 달랐으니까.

원 역사에서도 짧게 언급이 되어 있어 정확하게 이 성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짧은 서술 속에서도 신의 성배는 성마대전 통틀어서 최상의 등급을 가진 아이템으로 나온다.

무려 소원을 들어주는 성배라니…….

생각하기에 따라 정말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당연히 유저들도 이 신의 성배에 대해서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저들이 신의 성배를 손에 넣을 수 있느냐 한다면…….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절대적인 이유는.

이 신의 성배를 얻었다고 하는 이가 성마대전에서도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천사고 악마고 할 것 없이.

그 누구도 얻지 못했다.

그냥 허구 속에 떠도는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사실 성마대전에 정말 등장했는지 조차도 확실하지 않았다.

분명 존재는 하지만.

정말 실존했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괴랄하다면 괴랄할 수 있는 아이템.

그 신의 성배를 언급하자 두 천사들의 눈빛이 더 없이 흔들려 보였다.

무려 신의 성배에 신이 되게 해달라고 빈다면.

신이 될 수도 있는.

상상 속의 아이템이니까.

이베스가 누군가 듣기라도 한다는 듯이 바로 목소리를 낮추어서 물어보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신이 된다니…… 믿을 수가…….”

“내가 지금 너희 데리고 농담 따먹기나 할 사람…… 아니 대천사로 보이나?”

마치 한심하다는 듯이 그들을 내려다보자 이베스와 로엔이 바로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닙니다.”

“실언했습니다.”

뭐 어쩔 수 없다.

솔직히 성마대전의 역사를 살펴본 나도 못 믿겠는데.

다짜고짜 저들에게 믿으라고 하면 이게 더 무리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대천사라는 것을 믿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논리에서 벗어난 사실도 그들은 믿을 수도 있을 터.

“신의 성배는 정말 존재한다. 그것도 대륙 한가운데.”

“음…….”

“놀랍군요.”

확신을 가진 내 한 마디에 이베스와 로엔도 이제는 믿는 눈치였다.

절반은 온 건가.

일단 이들이 믿어야 그 다음 일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들의 눈빛에서 약간의 욕망 같은 번뜩임이 보이는 듯 했다.

흐음.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에 혹하기라도 한 건가?

뭐 최상급 천사쯤 되는 녀석들이라면 상위의 존재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 테지만.

문제는 이 녀석들이 신의 성배에 욕심을 가져서 일을 그르칠 수도 있었다.

바로 이베스와 로엔에게 경고했다.

“왜? 신의 성배를 직접 손에 넣기라도 하게?”

내 물음에 두 천사 녀석들이 화들짝 놀라서는 당황한 눈빛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속이 뻔히 보이는데 무슨…….

방금 전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녀석들이 내 경고에 정신이 돌아왔는지 다시 부동자세를 취했다.

“욕심도 부릴 만한 물건에 부려. 신의 성배를 가지기도 전에 너희 둘 다 목이 날아갈 거야.”

“큼…….”

“흐음…….”

천사군에 최상급 천사급이 어디 한 둘일까.

반대로 마왕군 역시도 마찬가지다.

같은 등급의 녀석들은 발에 치일 만큼 많았다.

개나 소나 다 얻을 수 있으면.

그건 이미 신이라는 등급이 붙지도 않겠지.

“만약 너희 정도 수준의 천사들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신의 성배였다면…… 이미 세상에 드러나서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거다.”

착각은 바로 깨주어야 한다.

그래야 제 몫의 일을 할 테니까.

내 말에 둘 다 현실로 돌아왔는지 흥분한 상태에서 다시 눈빛이 가라앉았다.

이제 주제 파악을 한 거려나.

그때 이베스가 생각을 가다듬은 듯 곧장 내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왜 대천사님께서는 직접 신의 성배를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흐음.

이 녀석.

꽤 날카롭네.

이베스의 말은 누가 생각해봐도 맞는 말이었다.

신의 성배 쯤 되는 물건에 대한 정보를 내가 먼저 입수했는데.

지금은 그 정보를 오히려 다른 대천사들하고 나누려는 것 같지 않은가.

아무리 욕심이 없는 녀석이라고 할지라도.

이건 많이 이상하게 보인다.

먹기 좋은 떡은 나누는 게 아니니까.

하물며 신의 성배인데.

겨우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대신 이 정보를 전달하라는 내 지시가 이상하게 보이는 건 당연할 터.

그런 그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 말을 내뱉었다.

“실은, 천사군에 마왕군과 내통하는 천사들이 있다고 들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말 놀랐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두 천사들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뭘 놀라는 척 해? 한 번도 안 그럴 거라 생각한 적이 있어?”

내 물음에 이베스와 로엔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침묵했다.

사실 이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럴 확률이 적지 않다는 걸.

일단 이 녀석들의 소속도 작전대지 않나.

그럼 여러 작전을 실행하다 이런저런 소문을 꽤 많이 주워들었을 것이다.

개중에는 분명 마왕군과 내통하는 천사들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도 있을 테고.

“그리고 감찰원에서는. 그 내통자들 중에 대천사도 포함되어 있다고 여기고 있다.”

순간 이베스와 로엔의 얼굴이 정말 백지처럼 하얗게 질려버렸다.

무려 대천사가.

마왕군과 내통한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는 절대 믿기 힘든 사실일 테니까.

“정말…… 입니까?”

“어떻게 대천사가…….”

“맞아. 하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중앙군에 신의 성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순간…….”

뒷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이미 두 천사들의 뇌리에 박혔을 것이다.

“만약 저희가 전달한 정보대로 마왕군이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그 대천사가……!”

그런 이베스와 로엔을 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멍청하진 않아서 좋군.”

이베스와 로엔이 신의 성배라는 최상급의 정보를 천사군의 중앙에 전달하는 순간.

대천사들 중 몇몇.

아니 대부분의 대천사들이 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일부러 폐쇄적인 부대가 아닌 중앙군에 통째로 투척하는 거니까.

최대한 많은 대천사들이 알게 하기 위해.

이건 일종의 미끼다.

대천사들의 입질을 위한.

그리고.

난 반대편에서.

마왕군을 똑같이 움직일 생각이니까.

천사들 중.

만약 정말 누구 하나 마왕군에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대천사들 전체가 용의선상에 올라가게 된다.

마왕군과 내통했다는 의욕을 가진 채.

그러니까 이건.

반드시 걸릴 수밖에 없는 함정이다.

절대 벗어날 수도 없고.

“하…… 이런 일이…….”

“어떻게 천사군에서…… 그것도 대천사가…….”

이미 저들의 머릿속에는 마왕군과의 내통을 한 대천사가 있다는 게 기정사실처럼 박혀 들었다.

이젠 누가 어떻게 다른 정보로 옆에서 흔들어도.

무조건 믿게 될 것이다.

아니.

믿어야 한다.

여기까지 들었는데.

발을 빼는 순간.

두 최상급 천사들을 빤히 쳐다보면서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과 함께 경고했다.

“둘 다 잘 알겠지만. 이 사실을 함부로 떠들고 다니진 않으리라 믿겠다. 그럼 어떻게 되는지 잘 알겠지?”

“헙…….”

“아닙니다.”

지금 자신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늪에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이 택할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이대로 호랑이 등에 올라타느냐.

아님 낙오되는냐.

이베스와 로엔이 서로를 잠시 쳐다보며 눈빛을 맞추고는 바로 내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채찍만 계속 때리면 곤란하다.

적당한 당근도 내려줘야지 탈이 없다.

“아마 이번 일이 잘 되면 중앙군의 요직에 있는 상당수의 천사들이 자리를 잃고 갈려 나갈 것이다.”

그러자 내 말뜻을 알아들은 그들의 눈빛이 환하게 바뀌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절대 말이 새어나가지 않을 겁니다.”

“마음에 드는군.”

이로써 두 최상급 천사들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터.

그리고 그 일이 마무리되면.

몇몇 대천사들의 목줄을 쥐고 흔들 수도 있을 것이다.

마왕군과 내통했다는 증거를 들이밀면서.

물론 그걸로 대천사들의 목을 날리거나 하진 못하겠지만.

급할 때 써먹을 패 정도는 될 터.

천사들이 내 명을 수행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 재중이 형이 들어왔다.

“쟤들이 잘 속아줘?”

“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고 여길 텐데 말이야.”

“높은 자리를 약속했잖아요.”

자신들이 일을 잘 할수록.

더 많은 요직의 천사들이 자리를 잃는다.

그럼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차지할 수 있게 되고.

그들 입장에서는 열심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왕군 쪽은?”

“천사군들의 움직임에 맞춰서 흔들 생각이에요.”

“그래. 마왕군이 천사들보다 먼저 신의 성배가 있는 장소로 움직여버리면 곤란하니까.”

이 일의 핵심은 천사군에서 마왕군과 내통자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데 있었다.

그런데 마왕군이 한 발짝 먼저 움직여버리면?

일이 완전 꼬이는 거지.

“최악의 경우. 네가 마왕군과 내통했다고 의심받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요. 그런 일은 없어야죠.”

내게서 신의 성배에 대한 정보가 나왔는데.

천사군들보다 마왕군이 먼저 움직이면.

그 화살은 바로 내게 날아온다.

삽질도 그런 삽질이 없지.

제 무덤 파는 짓을 할 이유도 없고.

“잘하면 이번에 엄청나게 죽어 나가겠네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성마대전에서 처음으로 마왕과 대천사들이 격돌하는 순간이 될 테니까.”

재중이 형 말대로 그동안은 서로 일정한 라인만 긋고 간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 마왕이나 대천사가 전선에 직접 나서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래서 지금도 마왕과 대천사들은 그 숫자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들끼리 치고받는다고 숫자가 줄어들었으면 줄었지.

상대 진영에서 싸우다 목이 날아간 녀석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그 마왕과 대천사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그런 먹이를 풀어놨으니.

“전리품이라도 챙기러 가야 할까요?”

무려 마왕과 대천사들의 전쟁이다.

잘 하면 어부지리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이 넘쳐날 터.

하지만 재중이 형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마왕이나 대천사의 무구 중에 뭐라도 하나 얻을 수 있다면 최고겠지만. 괜히 고래 싸움에 등 터진다. 그리고 너. 싸운다면 어느 쪽에 서서 싸울 건데?”

“음……?”

잠시 고민을 해봤는데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의 내 위치가 마왕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대천사라고 해야 하나…….

정체성에 혼란이 살짝 오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재중이 형도 보란 듯이 마주 웃었고.

“생각해보니 너도 꽤 웃기지?”

“정말 그렇네요.”

대천사 쪽에서 서서 싸우면 마왕 헤르게니아가 이상하게 볼 테고.

반대로 마왕군에 서서 싸우면 천사군 쪽에선 내통자로 볼 것이다.

“앞에 나서는 전면전은 힘들겠네요.”

“아직은 기다려. 지금은 전면에 나설 때도 아니고. 양쪽 전부에서 쫓길 수도 있거든.”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신의 성배.

구경 정도는 해보고 싶은데…….

정말 신의 성배가 소문대로 신으로 만들어 준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꽤 재밌지 않겠는가.

슬쩍 재중이 형을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

“형. 신의 성배…… 우리가 한 번 빼돌려 볼까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dia.kr

ISBN : 979-11-618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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