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5화 재건 (14)
성마대전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마왕군과 천사군이 대륙을 사이에 두고 치고받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딱 그 중간에 낀 인간군은 그냥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보면 대리전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도 있었고.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괜찮다.
카샤스 황제의 말대로 천사군이 직접 인간군의 세력을 노리거나 하지는 않을 때니까.
아직은 대륙에서 인간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 시점에서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타란 제국이 급격하게 약해졌을 때는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고양이가 지나가는 쥐를 한 번 툭툭 장난스럽게 발로 치는 것 마냥.
한 번 건드려본다는 식으로라도 분명히 손을 뻗을 것이다.
카샤스 황제가 궁금증 가득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되물었다.
“먹이?”
“어. 천사군이 타란 제국에 신경조차 쓰지 못할 먹이. 그 정도는 되어야 천사 녀석들의 눈을 돌릴 수 있을 거야.”
“흠. 그런 게 있나?”
뭐 카샤스 황제는 모를 수도 있다.
아니.
그걸 아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이건 성마대전의 역사에 관련된 사건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카샤스 황제 역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다.
“있어. 거기다 그건. 마왕군들도 눈이 돌아갈 만한 먹이라서.”
카샤스 황제는 절대 멍청하지 않았다.
한마디를 하면 거의 다 유추해서 알아듣는다.
그렇게 내가 마왕군을 언급하자마자 바로 눈빛이 진하게 물들었다.
“천사군과 마왕군. 둘 다 원하는 먹이라…… 두 세력을 경쟁이라도 시키겠다는 건가?”
역시.
한 번에 알아듣네.
“어. 맞아. 지금의 성마대전은 너무 소극적인 면이 없잖아 있잖아?”
내 말에 카샤스 황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성마대전에서 죽어 나갔던 영웅들이 묘지를 뚫고 다시 일어설만한 발언이군.”
확실히 카샤스 황제는 직접 성마대전에 가서 싸워봤으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름대로 치열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아는 성마대전은 고작 저렇게 전선 좀 유지하면서 간만 보는 전쟁이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의 영역을 뚫고 들어가서 대학살을 일으키는.
개싸움의 끝판왕이었다.
성마대전 역사에 적힌 내용과 비교해보면.
지금은 그냥 서로 잽만 날리면서 상대가 좀 아픈가 확인해 보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난.
그 잽만 날리는 전쟁에.
제대로 된 불씨를 날려줄 생각이다.
그 와중에 요하스 성국에서 주력 병력을 빼서 타란 제국으로 온다?
어림도 없지.
천사들 뒤꽁무니를 따라 먹이를 차지하려고 정신이 나가 있겠지.
“그때 가면 타란 제국은 언급도 안 될 거야. 마왕군이나 천사군들이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일 테니까.”
내 말에 카샤스 황제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내게 다시 물었다.
“그렇게 엄청난 먹이라면…… 우리가 먼저 차지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카샤스 황제의 말에 바로 손사래를 쳤다.
“불가능. 예전의 온전한 타란 제국의 힘이라면 몰라도. 지금 타란 제국 형편으로는 어림도 없어.”
“흠…….”
“그리고 이번엔 마왕들과 대천사가 직접 나서야 할 만큼. 먹이가 커.”
“그 정도인가.”
“그래. 그 사이에서 원하는 걸 얻어내려면 진짜 타란 제국의 명운을 걸어야지.”
바로 확답을 해 주자 카샤스 황제가 의자에 몸을 푹 넣으면서 짧게 한숨을 쉬었다.
“꽤 욕심이 동하긴 하는데. 먹으면 체한다 이거군.”
“맞아. 어차피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먹을 만한 사이즈는 아니야.”
물론 카샤스 황제의 말대로 한 번쯤 시도는 해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타란 제국의 재건도 해보기 전에 박살 날 터.
무엇보다 고래 싸움에 괜히 끼어들어서 등 터지는 꼴은 면해야 하니까.
“이번에는 바싹 몸을 낮추고 지나가야 해.”
“음. 그런데 대체 그런 정보는 어디서 난 거지? 그만한 사이즈의 먹이라면 마왕과 대천사들이 모르는 게 더 이상할 것 같은데…….”
이건 의심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듯 했다.
두 거대 세력이 전혀 모르는 일을.
어떻게 아는가 하는.
딱 그 정도의 궁금함이다.
사실 이 정보는.
꽤 우습지만.
어지간한 유저들은 거의 다 알고 있는 정보였다.
성마대전의 역사에 주구장창 나오는 정보이기도 하니까.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그 모든 유저들이 알고 있음에도 왜 아직까지 말이 없을까.
이건 딱 하나의 이유밖에 없었다.
전달되어야 하는 이들에게 전혀 전달이 안 되는 것.
그런 정보가 있다고 하나.
지금 유저들의 수준으로는.
절대 써먹을 수가 없다.
유저들 중에 마왕에게 직접 접근해서 말을 할만한 녀석들이 있냐고 하면…….
중간에 공격당해 죽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렇게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마왕에게 가서 말한다고 치자.
그걸 과연 마왕이 믿어주기나 할까?
반대로 천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이쪽은 천사들의 자원을 빌려다 쓰는 처지라 어떻게 좀 연결이 될 수도 있겠지만.
천사들은 모험가들은 장기판의 졸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대천사에게 정보를 전한다?
정말 어림도 없다.
최상급 천사들도 만나기 힘든 대천사를 유저들이 만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마왕이나 대천사나.
유저들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거지.
이게 정보를 알아도.
절대 써먹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뭐 개중.
정말 귀를 열고 유저들의 말을 들어줄 녀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벌써 난리가 났어야 했다.
곧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해주었다.
“그냥 오다가다 주워들은 거야. 내가 좀 이리저리 친하거든.”
어차피 카샤스 황제에게 말해줘 봐야 성마대전의 역사는 설명이 안 된다.
안 되는 일 한다고 애쓸 바에는.
그냥 되는 일에 집중하는 게 훨씬 낫다.
“흠. 그 말만 듣고 움직이기에는 신빙성이 너무 낮은데?”
“어? 내 신용이 그거밖에 안 되나?”
그러자 카샤스 황제가 나를 진지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쪽은 제국의 운명을 걸어야 하니까.”
나 역시 카샤스 황제를 빤히 마주 보며 말했다.
“그러니 믿어 봐라. 나 역시 타란 제국에 걸린 게 많거든.”
“흠. 뭐 좋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은가.”
정답이다.
카샤스 황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작업은 내가 할 테니까.
“넌 구경하다가 원하는 것만 주우면 돼.”
***
카샤스 황제와의 대면을 끝내고 나오자 바깥에서 재중이 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길어졌잖아? 이야기는 잘 끝났나?”
“네.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대전 안에서 카샤스 황제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재중이 형에 추려서 알려주었다.
대부분은 재중이 형이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타란 제국을 유저들에게 개방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호오. 카샤스 황제가 그걸 허락했어?”
“필요하다고 하니까 마음대로 하라던데요?”
“큭. 대공 자리가 좋긴 좋네. 제국 내정을 원하는 대로 휘두르고.”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이해했다는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카샤스 황제가 베르마 제국으로 가달라고 했다고?”
“뭐. 거기 갈 놈이 없다네요.”
“그래서 유저들을 끌어들인 거냐?”
“네. 빈손으로 갈 순 없잖아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총알받이라…… 나쁘지 않아.”
나도 알고 재중이 형도 안다.
정말 순수하게 좋은 의도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겸사겸사 타란 제국도 살리고요.”
“확실히 돈이 많이 돌면 빠르게 회복되겠지. 세금도 많이 걷을 테고.”
재중이 형 말대로.
유저들이 유입되면서 얻게 되는 어마어마한 세금은 곧 카샤스 황제가 타란 제국을 재건하는데 바로 투입될 것이다.
복구 속도가 몇 배는 빨라질 터.
에센시아 제국의 협곡으로 마왕들을 유인한다는 내용까지 듣고는 괜찮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짓던 재중이 형이 마지막 말을 듣더니 살짝 표정을 굳혔다.
“흠. 벌써 그걸?”
“네. 못 먹는 감이잖아요. 사실 찔러 보는 것도 힘들 테고.”
“하긴. 천사군과 마왕군 진영 한복판에 있는 걸 가지려다가는 양쪽에서 같이 피가 터질 테니까.”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어차피 그거 걔들 절대 못 먹어.”
이 정보를 푸는 진짜 이유.
재중이 형 말대로.
아직은 누가 가도 못 먹는다.
만약 마왕이나 대천사들 중 누구 하나 그걸 먹게 되면.
성마대전의 전황이 급격하게 기울게 되겠지만.
먹을 수 없는 걸 뻔히 아니까.
“머리를 제대로 굴렸네.”
“나쁘지 않죠?”
“시간 벌기에는 최적이지.”
“그럼 슬슬 작업 좀 들어가 볼까요?”
***
아직 타란 제국에 남아 있던 이베스와 로엔을 타란 제국성으로 불러들였다.
에센시아 제국으로 떠난 베인 녀석이야 따로 전달할 방법이 있으니.
그쪽에서 움직이는 사장님을 통하면 정보야 얼마든지 전달 가능하다.
“일 처리는?”
이베스가 고개를 숙이면서 답했다.
“남은 천사들을 전부 모아서 규합했습니다.”
일단 교통정리는 끝난 거려나.
적어도 타란 제국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천사 녀석들은 없다는 뜻이었다.
“좋아.”
잠시 이베스와 로엔을 빤히 쳐다보다가 슬쩍 운을 띄웠다.
“혹시 너희들. 대륙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아나?”
“네?”
“무슨?”
뜬금없이 대륙의 역사를 물어보자 둘 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천사들은 대륙의 역사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겐 필요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금부터 하는 말은.
아마도 꽤 큰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사실 대천사들이 대륙에서 몰래 찾고 있는 물건들이 있다.”
“음…….”
이베스와 로엔은 내가 대천사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말은 꽤 신빙성이 있는 정보가 된다.
“그 중에 하나가 최근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더군.”
그러자 둘 다 날개를 크게 움찔했다.
대천사가 대륙에서 몰래 찾는 물건.
이 한 마디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위치를 아는 듯한 내 말의 뉘앙스는 그들의 관심을 가지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저희들에게 그 말을 하시는 연유가……?”
여기서는 다소 엄살을 좀 해줘야 한다.
“키메라와 전투에서 꽤 부상을 입다 보니 당장 움직일 수 없어서 말이야.”
“아…… 그렇군요.”
“그런데 문제가 있다. 마왕군 역시 이 정보를 습득했다는 첩보가 있어.”
“으음. 그건 큰일이군요.”
대천사가 직접 찾을 만큼의 물건이 발견되었는데 마왕군에서 먼저 움직이면?
잘못하다가는 마왕들에게 뺏길 수도 있는 노릇이라.
그때 눈치를 보던 로엔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럼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눈치가 빨라서 좋네.
“이 사실을 중앙군에 전달할 수 있겠나?”
중앙군이라면 그들이 속한 군단 작전대보다 훨씬 상위의 부서였다.
그리고 이만한 정보는.
전달하는 것만으로 그들의 공과로 남게 될 터.
거기다 정말 물건의 유무가 확인된다면.
그 공로가 전부 이들에게 돌아간다.
내 뜻을 잘 아는지 이베스와 로엔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이베스가 슬쩍 내게 물어보았다.
“혹시 어떤 물건인지…….”
“음. 정보를 전달하는 너희가 모르고 있으면 안 되니까.”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말을 꺼냈다.
“신의 성배. 가진 자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 속의 성배지.”
성배라는 말에 그들이 놀라기 전에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어떤 천사가 신이 되고 싶다고 한다면 말이야. 과연 어떻게 될까?”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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