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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47화 (1,347/1,404)

#1347화 재건 (6)

현재 타란 제국의 상황은 풍전등화와 다름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터.

카샤스 대공이 강해졌다고는 하나.

전쟁은 카샤스 대공 혼자서 치르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일단 타란 제국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는 최대한 줄여놓는 게 맞다.

“적의 적?”

“맞아. 당장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해야지.”

몇 가지 수가 있긴 한데.

그중에서 지금 상황에 가장 효과가 있을 만한 건…….

역시나 다른 세력의 힘을 빌리는 일이다.

“타란 제국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가장 먼저 이빨을 드러내는 곳이 어딜 것 같아?”

내 질문에 카샤스 대공이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에센시아 제국. 베르마 제국. 요하스 성국 정도쯤 되겠군.”

“그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건?”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살짝 인상을 구기면서 답했다.

“아마도 베르마 제국은 지금 당장은 타란 제국까지 신경 쓰기 어려울 거다. 성마대전의 최전선을 구축하고 있으니까. 요하스 성국은 반반. 그쪽 마녀는 워낙 변덕이 심해서.”

마녀?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요하스 성국의 누군가를 뜻하는 것 같았다.

일단 카샤스 대공은 두 제국급 나라는 언급했지만 아직 하나의 남은 제국은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역시 카샤스 대공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곳이 남은 하나라는 거다.

“에센시아 제국이 가장 문제다?”

내 추측에 카샤스 대공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이 넘치니까. 에센시아 황제는.”

“약해진 타란 제국을 그냥 두고 보진 않을 거라는 말이지?”

“무조건.”

이건 예측을 넘어선.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하는 목소리였다.

“그 늙은이가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전에 봤을 때는 꽤 친해 보이던데?”

“그때야 타란 제국의 전력이 건재했으니까. 아무리 에센시아 제국 황제라고 해도 건드릴 수 없어.”

“하긴. 괜히 건드렸다가 벌집 쑤신 꼴이 되면 황제도 난감하겠지.”

“그런 것도 있고. 그리고 그때 에센시아 상황이 누굴 건드릴만한 상황도 아니었지.”

카샤스 대공의 말을 듣고 나니 확실히 그 당시의 에센시아 제국이 그다지 좋은 형편은 아니었다.

아크 드래곤이 에센시아 제국 한복판을 헤집고 다니면서 난장판으로 만들었으니.

그런 상황에서 타란 제국의 사절인 카샤스 대공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배짱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 당장 에센시아 제국만 막아주면 되는 거야?”

“가능한가?”

카샤스 대공조차 가능성을 논할 만큼.

에센시아 제국의 침공은 뻔한 일인 듯 했다.

“단순히 시간을 버는 정도라면. 아주 불가능하진 않아. 뭐 이것도 에센시아 제국이 정말 타란 제국을 향해 진격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거지만.”

만약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아무런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다면.

내 의도와 달리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남 좋은 일만 해줄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카샤스 대공의 태도를 보니.

그럴 확률은 극히 낮아 보였다.

반드시라고 하는 걸 보면.

그만큼 확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베르마 제국과 요하스 성국의 동태도 살펴봐야 해.”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센시아 제국만 신경 쓰고 있다가 뒤통수 맞는 일은 없어야겠지.”

그런 카샤스 대공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다른 왕국 연합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쪽도 전력이 만만치 않을 텐데?”

현재 꽤 많은 왕국들이 천사군들에게 넘어갔거나 혹은 유저들이 차지한 상황이었다.

아직 그렇지 않은 곳도 있긴 해도.

결국 시간문제일 뿐.

큰 흐름 자체는 거스르지 못할 터.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왕국들은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다.

그게 타란 제국이 아니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은 타란 제국을 가리키고 있으니까.

“한꺼번에 모든 왕국들이 연합하고 쳐들어오는 것만 아니라면. 그 정도는 막아낼 수 있다.”

이건 자신감이었다.

아직 타란 제국이 거기까지 힘이 빠지진 않았다는 확신.

하지만 난 그런 믿음에 배팅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만약 정말 싹 모아서 연합한다면 어떨 것 같아?”

내 질문에 이번엔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흠. 말이 안 되는데? 왕국의 이해관계는 그렇게 쉽게 합쳐지지 않아. 그것도 왕국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그럴 테고.”

이런 카샤스 대공의 예측은 아마도 평범한 상황일 때는 들어맞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이 그런 평범한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모험가들 알지?”

내가 갑자기 모험가를 언급하자 카샤스 대공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 같은 말인가?”

“맞아. 모험가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 그것도 아주 먼 거리도 가능하고.”

당장 채팅이나 게시판에 글 조금만 끄덕거리면 바로 대륙 끝과 끝이 연락이 된다.

카샤스 대공의 생각처럼 왕국들이 연합하는 데는 그렇게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만약 누군가 나서 약간의 조율만 가능하다면.

양떼들이 늑대를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설만한 녀석들은.

유저들 중에 넘쳐난다.

당장 VRS 밖에 나가서 게시판을 살펴보면 지금 사태에 대해서 토론을 한다고 들썩이고 있을 터.

그들에게 아주 약간의 불씨만 튕겨주면 금새 활활 타오를 것이다.

타란 제국이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지금이 침공하기 좋은 적기라고 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호응할까.

“그렇다면 한 번에 연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군.”

“맞아. 일단 늑대를 잡아놓고 난 뒤 전리품을 갈라 먹으면 되는 일이라.”

물론 그 전리품을 가지는데도 서로 치고박을 게 뻔하겠지만.

그 상황까지 가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전쟁터가 타란 제국이 될 테니까.

겨우 살려놓은 타란 제국이 쑥대밭이 되는 건 너무 아깝다.

“그렇게 말한다는 건. 막을 방법이 있다는 뜻이겠지?”

“어. 이것도 우리 쪽에서 어느 수준까지는 막아줄 수 있을 거야.”

아마도 그 일을 하는 건 전사 형과 사장님이 될 것이다.

유저들 상대로 여론전을 펼쳐야 하니까.

이쪽으로는 더 전문가이기도 하고.

“그럼 내가 할 일은?”

“당장은…… 황제가 되는 거겠지? 황제가 공석으로 있으면 남은 제국민들이 혼란에 빠질 거다.”

“최대한 빨리 이 상황을 수습하라는 말로 들리는군.”

“맞아. 그리고 병력들…… 그러니까 타란 제국 황제 쪽에 섰던 녀석들 말이야.”

아마도 이건 카샤스 대공 입장에서 꽤 고민이 될 문제일 것이다.

당장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의 황제가 되면.

그동안 반대편에 섰던 기존 타란 제국군은 최소 사형일 테니.

“혹시 살려주라는 말을 할 거라면. 거절하지.”

꽤 단호하네.

아마도 카샤스 대공은 이번 기회에 확실히 물갈이를 하고 싶은 듯 했다.

타란 제국 황제의 명령을 들었다고는 하나.

어쨌든 카샤스 대공에게 검을 든 상대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겠지만.

그들을 살려둔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반으로 갈라졌던 제국이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과 같은 상태가 될지도 모르고.

거기다 언제 다시 다른 편에 설지 누가 아는가.

“아니. 굳이 살려주라는 뜻은 아니었어.”

나 역시 카샤스 대공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버려야 할 패조차 아까운 때다.

“그럼?”

“너도 잘 알다시피 현재 타란 제국의 병력 공백이 너무 커.”

당장 키메라 때문에 죽어 나간 병력은 똑같이 채워 넣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카샤스 대공군이 아직 많이 살아있다고 해도 이건 마찬가지.

이런 상황에서 타란 제국군을 싹 처형해버리기라도 하면.

그 공백이 더 커질 것이다.

내 말을 잘 이해했는지 카샤스 대공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 없이 살려두라는 건가?”

“맞아.”

그런데 뒤에 나온 내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일단은 살려두라고.”

“일단?”

“당장 급한 불부터 끄고. 적어도 겉으로는 건재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음…… 나쁘지 않군.”

카샤스 대공이 어느 정도 수긍하자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나중에 타란 제국은 전쟁을 하게 될 거야.”

전쟁이라는 말에 카샤스 대공이 모든 것을 이해했는지 말했다.

“전쟁에 밀어 넣으라는 건가?”

“뭐 그냥 죽일 거라면 이리저리 써먹기라도 하라는 거지.”

당장 쪽수를 채우는 데 쓰고.

전쟁이 일어나면 최전선에 밀어 넣으면 되는 일이다.

그럼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카샤스 대공의 병력들로 전체 구성이 바뀔 터.

아마 중간에 잡음은 좀 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가장 빠르게 타란 제국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 적에 섰던 세력까지 포용했다는 대외적인 황제의 이미지까지도 만들 수 있고.”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 무서운 녀석이었군.”

“뭐 써먹을 수 있는 건 다 써먹어야지. 우리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잖아?”

“우리인가…….”

곧 카샤스 대공이 뭔가를 결심했는지 내게 말을 꺼냈다.

“내가 황제가 되면 대공의 자리가 빈다.”

이 말의 뜻은 확실하다.

“대공의 자리를 내게 주겠다는 거야? 나 이래 보여도 다른 왕국의 왕자인데? 그리고 대공이라는 자리 용혈을 가진 용족만 가지는 거 아니던가?”

“전례는 만들면 되겠지.”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아마 꽤 오래전부터 결심한 듯 했다.

내 입장에서는 그냥 주겠다는데 마다하는 건 삽질이겠지.

제국의 대공 자리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물론 저 자리가 독이 담긴 성배이긴 한데.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다면.

앞으로 최적의 선택지가 될 것이다.

“그럼 대공령 전체를 내게 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대공령 말고도 원하는 곳이 있다면 말해.”

아주 다 퍼주겠다는 걸로 들렸다.

그리고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잠시 고민하는 척하면서 슬쩍 운을 띄웠다.

“이번에 발견한 베르탈륨 광산. 그곳의 광산 전체 채굴권과 면세 특권.”

아예 대놓고 타란 제국에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는데 과연 이것도 받아 줄 것인가?

원래라면 아무리 베르탈륨 광산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타란 제국에 세금을 상당히 뜯겨야 한다.

화련도 이것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 뜻을 표하기도 했고.

그것도 모자라 전 황제는 대놓고 베르탈륨 광산을 우리에게서 뺏어가려고 하기까지 했다.

그런 타란 제국의 최대 베르탈륨 채굴량을 가질 광산을 그냥 낼름 삼킨다는데 어느 황제가 미쳤다고 허락할까 싶기도 하지만.

카샤스 대공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것만 주면 되나?”

“어?”

“베르탈륨 광산 독립 채굴권. 네 대공령에 귀속시켜주지.”

고민조차 하지 않고 너무 쉽게 준다는 말에 잠시 멍하니 카샤스 대공을 보자 카샤스 대공이 당연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어차피 타란 제국이 망하면 광산이고 뭐고 다 날아가. 하지만 네게 광산을 쥐어 준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타란 제국을 지키겠지?”

“하하…… 너 나를 너무 잘 아네.”

이로써 에센시아 제국의 최대 광산의 지분과 더불어 타란 제국의 광산은 통째로 내 손에 들어왔다.

내 대답에 카샤스 대공이 만족했다는 듯 크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럼 잘 부탁한다. 주호 대공.”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18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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