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6화 재건 (5)
르아 카르테의 능력은 다른 아이템들의 옵션들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 능력을 주로 사용해왔고.
하지만 금속의 정령이 말해주는 르아 카르테의 능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 사용법이 원래의 정령검의 성격과 다르게 사용한 쪽에 가까운 거려나?
사실 르아 카르테의 원래 이름도 정령신의 검 아니던가.
그러니까 정령을 활용하는 게 주능력.
옵션을 흡수하는 건 부능력일 것이다.
“레오나 에센시아가 분명 정령족 쪽의 혈통이었지…….”
내 물음에 금속의 정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조금은 의외의 말을 했다.
“그 여자. 나도 혹할 정도로 향기로운 기운을 내뿜어.”
“황녀 스스로가 정령을 끌어들이는 건가?”
그 말에 역시 금속의 정령이 긍정을 표했다.
“아마 다른 정령들은 가만히 있어도 끌릴걸? 어떤 부탁을 해도 들어줄 만큼.”
“넌 어때?”
“나?”
“주인을 바꿀 만큼이야? 걔가 자신에게 오라고 하면…….”
혹시라도 금속의 정령이 레오나 에센시아를 주인으로 삼겠다고 넘어가버리는 일도 배제할 수 없었다.
내 르아 카르테도 진품이지만.
레오나 에센시아가 가진 르아 카르테 역시도 진품이니까.
어떻게 보면 선택지가 두 개가 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 내 물음에 금속의 정령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왜?”
“응?”
“관심 없어.”
“흐음. 그래?”
곧 금속의 정령이 양 허리에 손을 척 올리더니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제일 좋은 집 놔두고 다른 데 가는 바보도 있어?”
르아 카르테가 이 녀석에게는 집인가…….
어째 표현이 꽤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한 번에 와 닿는 대답이기는 했다.
거기다 조금 다른 내용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정령왕들이 정령신의 무구에 깃들면 그 속성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밖에 없어.”
“무슨 뜻이야?”
“으음. 네 표현 대로하면…… 능력들이 전부 정령의 속성으로 바뀐다고.”
금속의 정령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으음.
이거 내가 이해한 게 맞으려나?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어보았다.
“혹시 르아 카르테의 옵션들이 정령들의 능력으로 바뀐다는 말이야?”
내 물음에 금속의 정령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만약 르아 카르테에 불의 정령왕 같은 녀석이 깃들면…….”
아마 발록을 상대할 때였나.
이전에 불의 최상급 정령은 직접 본 적이 있었다.
좀 전에 정령왕이라고 했으니 그보다 상위의 존재일 테고.
“응. 맞아. 르아 카르테의 능력이 정령왕의 능력과 같아져.”
“그거 참…….”
“그리고 쓰기에 따라 여러 정령왕의 능력도 한꺼번에 쓸 수 있을 걸?”
“정말?”
“응. 소유자가 정령왕들의 힘을 감당할 수 있다면 불가능하지 않아.”
금속의 정령의 말을 듣고 나니 이제 좀 이해가 된다.
이전 성마대전에서 레오나 에센시아가 어떻게 해서 최강의 영웅이 되었는지.
본래 자신도 정령족의 혈통인데다가.
르아 카르테가 정령왕의 능력을 고스란히 가져다 쓰게 해주니까.
그것도 정령왕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도와준다면…….
“거의 괴물이겠네.”
“맞아.”
금속의 정령도 순순히 인정했다.
정령족 출신인 레오나 에센시아가 정령왕의 힘을 못 버틸 리도 없고.
자유자재로 정령왕의 힘을 가져다 쓴다면.
어지간한 마왕들과 붙어도 절대 밀리지 않을 것이다.
적을 상대할 때 속성을 스위칭하거나 여러 속성을 섞어서 쓰며.
그만큼 까다로운 상대도 없다.
아직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어느 수준 이상으로 숙련된다면야…….
그때 금속의 정령이 손가락을 꼬물꼬물 꼬면서 내게 물어보았다.
“부러워?”
“응? 내가?”
“그…… 정령왕들이 힘을 빌려준다니까…….”
잠시 금속의 정령을 빤히 쳐다보니 고개를 살짝 틀어 내 시선을 피해보였다.
흐응.
그런 건가?
슬쩍 손바닥을 내밀어 금속의 정령의 머리카락을 헝크러뜨리면서 쓰다듬었다.
“걱정 마. 내가 다른 정령왕들을 불러낼 이유는 없으니까.”
“으응? 그랭?”
“이미 최강의 정령왕이 옆에 있는데 뭐 하러.”
그러자 금속의 정령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변했다.
뭔가 고양된 것 같은 흥분이 느껴지기도 했고.
“헤헷. 그렇구나.”
금속의 정령이 기분 좋다는 듯 미소 짓는 걸 보니 아마도 이게 정답인 듯 했다.
《 금속의 정령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금속의 정령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꼭 시스템 메시지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말이지.
솔직히 내가 다른 정령왕의 능력을 빌릴 필요는 전혀 없었다.
금속의 정령의 말을 들어보니 옵션들이 죄다 정령왕의 능력으로 채워진다는 뜻일 테니.
그렇다는 말은.
지금까지처럼 다른 무기들의 옵션을 전혀 가져다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될 지도 모른다.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쪽이 마이너스다.
물론 당장에야 정령왕들의 능력이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 마검 크레도스의 옵션을 르아 카르테에 옮기기만 해도.
마신의 파편을 하나 더 사용하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보여주는데.
거기다 옵션의 조합에서 오는 이점은.
정령왕의 능력의 그것과는 확실히 궤를 달리 한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이쪽이 내게는 훨씬 좋다.
익숙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른 정령왕들의 능력을 쓴다는 건.
금속의 정령의 능력을 못 쓴다는 말이 된다.
이건.
옵션을 추가로 몇 개 더 쓸 수 있는 그 정령의 축복들이 사라진다는 거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말을 잘 들을지 확신도 없는 정령왕들을 쓴다?
일단 난 레오나 에센시아와 같이 정령족의 혈통도 아닌 데다가.
정령을 다루기 위한 어떠한 능력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뭐 르아 카르테가 중간에 있으면 좀 다르긴 하겠지만.
굳이 모험을 걸 이유도 없고.
모험에 성공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약해질 확률이 높았다.
노력은 노력대로 했는데 더 약해지면 그게 바로 삽질 아닐까.
그리고 금속의 정령은 다른 정령들과 다르게.
유일한 속성을 가진 정령이었다.
다른 정령들 한 트럭을 가져다 줘도 못 바꾸지.
고개를 돌려 타누스 후작을 보며 물었다.
“다른 병력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정확하게는 에센시아 제국군에 대해서 물은 것이었다.
타누스 후작도 눈치는 빠른지 내 의도를 알고 바로 대답해주었다.
“다소 부상이 있어서 후방에서 치료 중이라네.”
부상이라는 말에 눈썹이 살짝 치켜세워졌다.
그런 내 표정을 보더니 타누스 후작이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걱정 말게. 심각한 부상은 아니니까. 능력을 과도하게 써서 탈진한 거니 회복만 하면 털고 일어날 걸세.”
“그렇습니까.”
만약 크게 다쳐서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따져야 할 상황이었지만.
우려스러운 일은 빗겨간 듯 했다.
옆을 보니 카샤스 대공도 귀를 쫑긋하고 우리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레오나 에센시아가 다치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쉬었고.
표정이 너무 드러나니 참…….
곧 타누스 후작이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허허. 타국의 황녀가 제국의 내전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외교 문제 아닌가. 최선을 다해 도왔지.”
아무래도 타누스 후작은 그쪽에 더 신경이 쓰였나 보다.
레오나 에센시아가 에센시아 제국에서 후계 구도에서 상단에 있지 않다고는 하나.
일단은 외교 사절로 타란 제국을 방문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타란 제국의 내전을 치르다 다치기라도 하면.
그때부터는 외교적인 문제를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아마 많이 다쳤다면 에센시아 제국에서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이곳에 진격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지금처럼 타란 제국이 무너진 상태라면 더 그럴 테고요.”
내 예상에 타누스 후작도 짧게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타누스 후작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번에는 아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나 말이지. 안 그래도 내전으로 내정이 어지러운데 말이야. 에센시아 제국까지 끼어들면 난감해.”
반파된 타란 제국성을 비롯해 거의 폐허가 된 시가지들 하며…….
제물의 결계로 죽어 나간 타란 제국의 용기사단과 용.
그리고 수많은 병사들까지.
이걸 원래 상태대로 복구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자원이 소요될지 아무도 모른다.
솔직히 그게 가능할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부터는.
타란 제국이 가만히 복구하게끔 주변에서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니까.
시선을 돌려 카샤스 대공을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타국의 견제가 심해질 거야.”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이번 타란 제국 내전으로 거의 폐허가 됐다는 걸 다른 제국들과 어지간한 왕국들에서는 다 알게 됐을 터.
특히 유저들이 이곳에 와 있는 상황이라 그들의 정보 전달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그들이 메신저나 귓속말로 타란 제국의 상황을 전하면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다.
“그리고 우리가 상대해야 할 건. 제국과 왕국들만 있는 게 아니야.”
지금 말의 숨은 뜻을 눈치챘는지 카샤스 대공이 살짝 이를 갈면서 물었다.
“천사군들 말인가?”
“그래. 키메라까지 만든 대천사가 깊숙이 관여된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이 타란 제국에 간섭할 거야. 타란 제국이 약해진 지금처럼 좋은 기회도 없을 테니까.”
카샤스 대공이 용신검을 온전히 손에 넣고.
이전 성마대전의 역사처럼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까지 테이밍하긴 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절대 다른 제국이나 천사군이 건드려볼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만.
그때는 타란 제국이 멀쩡할 때의 이야기고.
지금은 거의 쑥대밭이 된 상황이라…….
“앞으로는 타란 제국을 재건할 여유도 부족할 거야. 여기저기서 다 타란 제국을 건드려 볼 거다. 아마 조금만 빈틈을 보여도 목줄을 물어뜯고 놓아주지 않을걸?”
“으음.”
누가 봐도 병든 먹이를 먹을 수 있나 없나.
한 번은 찔러나 보는 게 인지상정.
그리고 찔러봤는데 생각보다 약하다 싶으면.
주변의 제국들과 왕국.
거기다 천사군들까지 다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약해진 먹이를 먹어치우기 위해서.
“많은 준비가 필요하겠군.”
여기서 카샤스 대공이 말한 준비는.
외적의 침입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래. 지금부터는 타란 제국을 지키는 데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야 해.”
여기서 천천히 내실을 다지는 건.
어차피 지금 상황에선 절대 무리다.
시간상 부족하기도 하고.
자원 역시도 부족하다.
그중 가장 부족한 건.
역시 시간이다.
어떻게든 병력을 재정비할 여유.
이 시간조차 벌 수 없다면.
다른 무엇도 의미가 없었다.
카샤스 대공 역시도 마찬가지 생각인지 인상을 구기면서 말을 꺼냈다.
“병력을 준비할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아마 쓸 수 있는 자원이야 타란 제국 내에 넘쳐 날 터.
하지만 그 자원을 병력으로 바꾸는데 걸리는 시간.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기반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서도 자력으로는 불가능.
그렇다면…….
“시간만 벌어주면 돼?”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눈빛이 되살아나면서 물었다.
“방법이 있나?”
“확신은 없긴 한데. 그래도 써먹을 만한 방법이 있기는 해.”
그리고는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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