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5화 재건 (4)
용신검 아스카론의 봉인을 내 손으로 해제할 수 없다면.
굳이 내가 용신검을 들고 있을 필요는 없다.
반대로 용신검의 봉인을 카샤스 대공이 풀 수 있으니까.
완벽하게 봉인이 풀려 있는 용신검을 손에 넣으려면.
카샤스 대공의 손을 빌릴 필요가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고.
내가 필요한 건.
상징으로서 존재하는 용신검 아스카론 그 자체가 아니라.
용신검의 능력치일 뿐이다.
고유의 스탯과 옵션.
이걸 봉인을 우회해서 억지로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웨폰 카피.
과연 이 복사 스킬이 타인이 풀어놓은 봉인까지도 해결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시도는 해봐야 했다.
【 웨폰 카피! 】
곧 나와 카샤스 대공 사이에서 환한 빛이 번쩍이며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웨폰 카피 스킬을 실패했습니다. 》
《 웨폰 카피 대상의 랭크가 너무 높습니다. 》
《 웨폰 카피 대상에 대한 이해도가 낮습니다. 》
흐음.
역시 한 번에는 안 되는 거려나?
무려 고유 이름 안에 신이 들어가는 무구였다.
쉽게 될 거라 여기진 않았지만 막상 실패하고 나니 쓴 웃음을 지었다.
“너…… 지금 무슨?”
카샤스 대공이 살짝 당황한 듯 했지만.
곧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 이해하고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 용신검을 복사하려고 한 거냐?”
“왜? 하면 안 돼?”
“음…….”
살짝 고민도 될 것이다.
타란 제국의 성물을 복사한다고 하니까.
그런데 이미 복사한 전력이 있는데 말이지.
예전에 타란 제국 제단에서 용신검을 바꿔치기 했을 때 이미 시도는 많이 해봤다.
문제는 지금의 용신검이 그때의 용신검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게 문제다.
아무래도 용신검의 봉인이 완전히 풀리면서 등급이 더 올라가버린 듯 했다.
대상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고 나오는 걸 보면.
당황한 듯 했지만.
“복사한 무구가 완전히 용신검을 대신할 수 있는 거냐?”
그 물음에 바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 능력만 복사할 뿐. 고유의 특성 같은 경우는 무리다.”
이를테면 용신검 아스카론에 있는 에고 능력이라던가 하는.
스탯이나 옵션으로는 나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복사를 한다고 해도 불가능했다.
만약 옵션 중에 용혈에 반응해서 발동되는 스킬이라도 있다면.
아마 그것마저도 발동이 안 될 확률이 높았고.
결국 반 쪽짜리이긴 하지만.
앞서 봉인을 푼 마검 크레도스 같은 경우만 봐도.
그 능력치 자체가 이미 사기였다.
스탯 옵션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는.
그러니까.
봉인이 풀린 용신검 아스카론의 능력치 부분만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쓸 만하다.
아니 차고 넘치겠지.
내구도 같은 경우야.
어차피 르아 카르테로 복사한 용신검의 옵션을 죄다 흡수해버리면 그만이라.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잠시 나를 쳐다보던 카샤스 대공이 짧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안 된다고 해도 할 것 같으니까.”
정확하게는 원형의 용신검을 되돌려달라고 할까봐 미리 발을 뺀 셈이었다.
분명히 보상이라고 했으니까.
“그렇다면야.”
그리고는 다시 용신검 아스카론의 검신을 잡고 스킬을 시전했다.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스킬을 실패했습니다.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스킬을 실패했습니다.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스킬을 실패했습니다. 》
.
.
그래도 신의 무구라고 복사되기를 거부하는 것 마냥 아주 끈질기게 복사가 되지 않았다.
마력이 부족하자 바로 베르탈륨 광석들을 꺼내 들고는 르아 카르테로 내려치면서 다시 마력을 흡수했고.
그렇게 풀로 채운 마력으로 웨폰 카피를 수도 없이 시도했다.
이건 길바닥에 돈을 뿌리는 것과 같은 일이지만…….
딱 한 번만 성공하면.
여기에 들어간 비용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것이다.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도한 복사는 내 주변에 수도 없이 많은 베르탈륨 광석들을 쏟아낸 이후에야 빛을 발했다.
한 순간 손에 강한 진동과 함께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 웨폰 카피 스킬을 성공했습니다! 》
그리고는 더욱 환한 빛과 함께 내 손에는 용신검 아스카론과 완전히 닮은 검이 들려 있었다.
어느새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 팀들 모두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내 손에 들린 레플리카 용신검을 쳐다보았다.
이쁜소녀가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오빠? 성공이에요?”
지금 말하는 성공은.
단순히 복사만 된 성공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바로 봉인이 풀려 있는.
완벽한 상태의 용신검이 복사가 되었는가 하는가였다.
만약 그렇지 않고 원래 상태의.
그러니까 봉인이 풀리기 전의 상태로 복사만 되었다면 쓸데없는 삽질이 된다.
나 역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복사된 용신검의 옵션을 하나둘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됐어.”
이건 이전의 상태가 복사가 된 게 아니라.
현재 상태의 용신검이 복사된 것이었다.
“꺄악! 됐다아!”
이쁜소녀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기뻐하자 챠밍과 나르샤 누나, 막내별도 덩달아 환호했다.
전사 형도 내 옆으로 와서 복사된 용신검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흐…… 이것도 완전 대박인데?”
“그렇죠?”
그동안 봉인이 되어 있어서 보지 못 했던 옵션들이 지금은 전부 보인다.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성마대전에서 그렇게 활약할 수 있었는지 얼핏 알 것도 같았다.
물론 복사된 용신검이라 이걸 전투에서 그대로 쓰지는 못하겠지만.
카샤스 대공이 날 빤히 보고는 물었다.
“드디어 원하는 걸 얻었나?”
“그래. 덕분에.”
만약 카샤스 대공이 아니었다면.
봉인이 풀린 용신검은 절대 가지지 못 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카샤스 대공이나 나나 서로 윈윈한 셈이라고 해야 하나.
“그럼 용신검 아스카론은?”
“원래 너 네 물건이잖아. 그리고 너네 쫄다구들한테 쫓겨 다니기 싫다.”
“그렇군.”
소유자를 아예 못 박아주자 카샤스 대공도 만족스러워하는 듯 했다.
적어도 검 하나를 두고 말썽 피울 일은 없을 테니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레플리카 용신검을 들어 올리면서 하나의 스킬을 시전했다.
【 용신화! 】
그 순간.
전에 카샤스 대공이 그랬던 것처럼.
내 신체에서 화려한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아쉽게도.
중간에 스킬이 강제 취소되어 버렸다.
《 용신화 스킬의 시전 조건을 충족하지 못 했습니다! 》
《 용신화 스킬이 캔슬됩니다. 》
으음.
이것까진 안 되는 건가.
자신에게 나왔던 황금빛이 그대로 퍼져 나오자 카샤스 대공이 깜짝 놀란 듯 했지만 스킬이 캔슬되자 원인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마 용혈이 없으면 용신화는 불가능할 거다.”
용신검에 있는 에고 녀석이 가르쳐준 거려나?
“정말 그런 것 같네.”
시전 조건 중에 하나가 용혈의 존재 유무라면.
당장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용신화는 쓰지 못한다.
“뭐 됐어. 어차피 내게 필요한 건 용신화는 아니라서.”
물론 쓸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없다고 하더라도 크게 상관없다.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레플리카 용신검을 인벤에 집어넣고는 카샤스 대공을 보며 물었다.
“저건 어떻게 할 거냐?”
내가 저 멀리 한쪽을 가리키면서 물어보자 카샤스 대공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는데.
그 순간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힘을 다해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타란 제국 황제.
이 녀석에 대한 처리를 물어보는 거라.
“음…….”
일단은 혈족이니까.
타란 제국 황제에 대한 마지막 처분은 카샤스 대공에게 맡기는 게 맞을 것이다.
뭐 우리가 죽이면 경험치라던가.
드랍 보상이라던가.
좀 더 얻을 순 있겠지만.
여긴 우리가 나설 자리는 아니겠지.
당장 타란 제국 황제를 쳐다보고 있는 카샤스 대공의 눈빛에는 분노보다는 뭔가의 애잔한 감정이 더 엿보였으니까.
잠시 한숨을 쉬던 카샤스 대공이 결국 결정을 미루었다.
“누님이 오면 결정하도록 하지.”
무른 녀석이라고 하려다가.
이 녀석의 과거를 확실히 아는 게 아니라 일단은 말을 아꼈다.
카샤스 대공을 죽이려고 온갖 술수를 다 부린 황제 녀석을 바로 죽이지 못하는 걸 보면.
그만큼 이 녀석도 복잡한 심정일 것이다.
타란 제국 수도를 감싸고 있던 제물의 결계가 사라진 하늘은 이전과 같은 풍경으로 돌아왔고.
곧 저 멀리서 살아남은 카샤스 대공군의 병력들이 우리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제물의 결계가 없어져서 우리가 이겼다는 건 알지만.
일단은 조심스러워하는 듯 했다.
그만큼 키메라가 저들에게는 공포스러운 존재라는 소리였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역시도 마찬가지겠지만.
다가오던 카샤스 대공군 녀석들이 카샤스 대공 옆에 거대한 날개를 세우고 서 있는 고대 마룡을 보더니 그대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괜찮다. 고대 마룡은 이젠 우리 편이다.”
“헉!”
“세상에……!”
“고대 마룡을 길들이다니……!”
“역시 대공님!”
카샤스 대공군 전체에 감탄과 환호가 이어졌고.
그중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장로회의 수장.
타누스 후작.
타란 제국군과의 전투에 이어 키메라의 습격까지 막아낸다고 아주 넝마가 된 모습이었지만.
그 눈빛만은 아직 형형하게 살아있었다.
노장의 투혼 같은 거려나?
바로 타누스 후작이 달려와 카샤스 대공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전후 사정을 살펴봤을 때.
이미 카샤스 대공을 황제라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공님…… 많은 녀석들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카샤스 대공군의 안전하게 후퇴시키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죄를 지은 것마냥 고개를 숙이자 타누스 후작을 내려다보고는 괜찮다는 듯 일으켜 세웠다.
“최선을 다했을 터. 그럼 됐다.”
“죄송합니다.”
타누스 후작의 저 온몸을 불사른 전투 흔적을 보고도 그를 욕하기는 힘들겠지.
그 키메라에게서 병력을 저만큼이나 살려낸 것 자체가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살아남은 이들 중에는 에센시아 제국에서 데리고 온 병력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
언제 카샤스 대공군과 합류한 거지?
솔직히 실수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버릴 수 없었다.
절대 죽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
근처에서 대기하라고 확실히 못 박아놨어야 했는데.
그런데 그들 중 한 명의 기세가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라첼?
슬쩍 타누스 후작에게 시선을 주자 곧 타누스 후작이 나와 라첼을 번갈아 보고는 정말 놀랍다는 듯 말을 꺼냈다.
“저 에센시아 기사 덕분에 많은 이가 목숨을 구했다.”
“으음……”
“키메라를 상대로 결코 밀리지 않더군.”
거기다 타누스 후작은 또 다른 놀랄만한 이야기를 내뱉었다.
“그리고 에센시아의 황녀님도 엄청났지.”
“네?”
“갑자기 엄청난 숫자의 정령들을 불러내시더니 키메라를 막아주시더군.”
“정령……?”
“특히 정령왕들이 나타났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
정령왕이 하나만 나타나는 것도 놀라운데.
복수로 말한 걸 보면 하나만 나온 게 아니었다.
“그게 무슨?”
“나도 잘 모른다.”
아무래도 타누스 후작이 더 알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그때 갑자기 르아 카르테가 빛을 내 인벤에서 꺼내자 금속의 정령이 빠져나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더니 눈빛을 반짝거리면서 말했다.
“그게 정령신의 무구의 진짜 힘이야.”
“뭐?”
“정령이 머무를 수 있는 검.”
그러면서 금속의 정령이 자신을 빤히 가리켰다.
“바로 나처럼. 다른 정령왕들이 르아 카르테에 깃든 거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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