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4화 재건 (3)
원래의 타란 제국 황제가 죽거나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
사실상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의 황제에 오르는 일은 당연하다.
그 말고 다른 녀석들은 애초에 황제에 어울리는 자가 없다고 보면 되니까.
억지로 한 명을 꼽자면 용혈의 순도만을 따졌을 때 가장 진하다는 카샤스 대공의 누이인 아이샤 타란 정도가 있으려나?
하지만 그녀가 타란 제국의 황제가 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같이 성마대전이 한참인 시대에 강력한 무력을 동반하지 못하는 황제는.
자리에 있으나 마나다.
물론 정치나 외교적으로 아이샤 타란이 카샤스 대공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역시 딱 하나.
무력이 부족하다.
당장 현재의 타란 제국 상황만 봐도 무조건 무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치, 외교, 내정 같은 요소들이 성립하려면 일단은 나라부터 지켜야 하니까.
그럼 면에서 아이샤 타란은 제외.
그렇다면 결국 남는 건 카샤스 대공뿐이다.
무엇보다 아이샤 타란이 황제가 되면 그녀를 인정하지 않는 녀석들이 조금씩 고개를 쳐들 테고.
또 다른 내분을 낳을 터.
그럼 결국 제 자리나 마찬가지다.
뭐 어차피 이전의 성마대전에서도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 황제에 오르니까.
어떻게 보면 그 역사가 다시 반복된다고 생각해도 되려나.
카샤스 대공에게 황제라는 단어를 언급하자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흠…….”
“왜? 황제 자리가 안 내켜?”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다 무너져 내린 타란 제국성을 굳은 얼굴로 쳐다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는 걸 보면.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잖아?”
전 타란 제국 황제가 죽음에 가까운 도박을 한 순간부터.
그리고 전투에서 패배해 쓰러지면서.
이미 다음 타란 제국 황제는 카샤스 대공이 내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키메라 때문에 타란 제국이 멸망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어찌됐건 키메라도 잡아냈고.
그 과정에서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까지 카샤스 대공이 테이밍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용신검 아스카론까지 손에 넣었지.
으음.
이거 생각해보니.
이번 전쟁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본 건 다름 아닌 카샤스 대공 아닌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잠시 스치는 사이.
카샤스 대공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들었다.
“결국 내가 황제인 건가.”
“그럼 안 하려고 했었어?”
아마 카샤스 대공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현재 자신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까지도.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 무력이나 지휘, 통솔, 위엄 같은 능력치들을 따져봤을 때.
카샤스 대공만큼 황제에 어울리는 인물도 없다.
거기다 타란 제국의 용족들이 그렇게 바라는 가장 강력한 용혈이기도 했고.
아마 카샤스 대공이 당장 황제를 한다고 해도.
그 어떤 용족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따지고 들만한 녀석들이 있다면 전 타란 제국 황제의 수족들 정도일까.
하지만 그들은 이번 전투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테고 그들의 구심점인 황제를 잃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에야 그들이 반대한다고 나서진 않을 것 같았다.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거야. 네 선택이 늦어질수록 폐허가 된 타란 제국을 재건하는 일이 어려워져.”
카샤스 대공에게 타란 제국의 상태를 언급하자 카샤스 대공의 얼굴에서 벌써 피곤함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지금 상태라면 전쟁 뒤처리를 이놈이 다 해야 하는 상황이라.
곧 카샤스 대공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란 제국의 황제라는 이름은.
꽤나 부담되는 자리다.
“하아. 시작부터 어려운데? 대공령만 관리하는 것도 버거웠는데. 타란 제국이라니…….”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전에 카샤스 대공이 서류철에 파묻혀서 전투조차 나가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이번에는 그보다 수백 배는 많은 서류에 사인하게 될 터.
“서류 결재만 하다 보면 당분간 볼일이 없겠는데?”
“하하…… 농담이 심하군.”
농담이라고 했지만.
내 말뜻을 이해한 카샤스 대공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황제 그거 꼭 해야 하나?”
“대답을 원해서 물어본 건 아니지?”
곧바로 한숨을 쉬는 걸 보면.
차라리 전쟁에 나가면 나갔지 서류 더미에 둘러싸이고 싶진 않은 듯 했다.
그런 그에게 한 줄기 동아줄을 내려주었다.
혹시라도 카샤스 대공이 황제가 하기 싫다면서 도망쳐 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그동안 이 녀석에게 투자한 게 얼만데.
최소한 본전 이상은 뽑아먹기 전에는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꼭 네가 다 할 필요는 없어.”
“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다. 굳이 네가 모든 일을 다 맡아서 할 필요는 없다고.”
단순히 카샤스 대공을 황제 자리에 놓고 타란 제국 내에만 처박아두는 건 큰 손해다.
성마대전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 그렇고.
소 잡는 칼로 닭을 잡고 있으면 그만한 낭비도 없을 테니까.
“내정, 정치, 외교 같은 분야는 네 누이에게 권한을 일임해.”
그러자 내 말뜻을 잘 알아들었는지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이전보다는 다소 나아졌다.
“그럼 난 전장에 모든 힘을 쏟을 수 있겠군.”
“뭐 그런 셈이지.”
예전 성마대전에서는 아이샤 타란이라는 존재가 죽고 없었기에 어떤 식으로 타란 제국을 운영했는지 전혀 모른다.
실제로 타란 제국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으니까.
어쩌면 그때도 다른 이를 황제 대리로 내세웠을 수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역할을 아이샤 타란이 해주면 된다.
“한 번 이야기 해봐야겠군.”
아마 카샤스 대공은 억지로라도 그녀에게 짐을 지울 것이다.
자신이 빠져나가려면 말이지.
그래도 적어도 이 녀석이 도망칠 걱정은 덜었네.
“그건 알아서 하고.”
잠시 말을 끊고는 카샤스 대공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불길한 느낌이 들었는지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왜 계속 보는 거지?”
촉이 좋은 카샤스 대공에게 한껏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내전도 이겼고 말이지. 이제 우리도 계산을 좀 해야 하지 않나 싶은데?”
그러면서 카샤스 대공이 꽉 쥐고 있는 용신검 아스카론을 넌지시 쳐다보았다.
그 순간 카샤스 대공의 손이 빠르게 등으로 돌아갔다.
아마 반사적인 행동일 터.
“그런다고 안 숨겨져.”
“흠.”
“용신검 아스카론이 원래부터 타란 제국의 물건이라고 말할 생각이라면 미리 접어 둬.”
정곡을 찔렀는지 카샤스 대공이 움찔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애초에 용신검은 타란 제국의 성물인 건 맞다.
혹시라도 카샤스 대공이 발뺌할까 싶어서 미리 선수 쳐서 못을 박아둔 거고.
이제 와서 딴 말을 하면 곤란하니까.
“설마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태도가 바뀌는 그런 사람은 아니겠지? 이제 황제까지 될 사람이?”
그 말에 다시 한 번 카샤스 대공이 움찔했다.
이거…….
정말 먹고 쨀 생각이었나?
할 수 없이 완전히 못을 박아줘야겠다.
“만약 내가 빼돌리지 못하고 용신검이 타란 제국 황제 손에 그대로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그러자 잠시 생각을 하던 카샤스 대공이 살짝 인상을 썼다.
저도 잘 알 것이다.
용신검이 황제에게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절대 나오지 않았을 거라고.
“꽤 어려웠겠지.”
“어려운 정도가 아니고. 우리 모두 전멸했을 거야.”
그러면서 카샤스 대공 뒤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지금 저 고대 마룡을 테이밍한 건 네가 아니라 전 황제였을 테니까.”
솔직히 이건 장담을 못 하겠다.
과연 저 고대 마룡이 전 황제를 인정했을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라.
죽음의 위기까지 가야 하는 상황까지도 고려해 봐야 하고.
여러 가지 조건이 잘 맞아떨어져서 테이밍이 가능해진 거니까.
어쩌면 전 황제는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과정을 뿐.
용신검이 고대 마룡의 테이밍에 큰 역할을 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걸 너무 잘 아는 카샤스 대공도 딱히 내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실제 본인이 지금 고대 마룡을 데리고 있으니 할 말이 없는 거다.
“용신검에 고대 마룡을 테이밍할 수 있는 기회까지. 설마 먹고 싹 입을 닦을 생각은 아니지?”
“흠.”
내가 용신검을 향해 슬쩍 손을 내밀자 카샤스 대공이 다시 뒤로 한 발자국 멀어졌다.
무려 신검 급의 무구 맛을 알아버린 이상.
쉽게 손에 놓지 못할지도.
그러니까 지금의 내 협박은 더 잘 통할 것이다.
“분명히 빌려준다고 했지. 아주 준다고 한 기억은 없는데?”
저 눈치 빠른 녀석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내게 원하는 게 뭐지?”
“아. 용신검 돌려 달라니까 무슨 말이야?”
능청스럽게 못 들은 척을 하자 결국 카샤스 대공이 두 손을 들었다.
“이것만은 안 된다. 대신 다른 건 다 주겠다. 말만 해라. 난 차기 타란 제국의 황제니까.”
용신검을 얼마나 주기 싫으면 하기 싫어 보이던 차기 타란 제국 황제까지 들먹이면서 조건을 제시하란다.
물론 난 충분히 만족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아, 그리고 원래 그 고대 마룡은 내가 테이밍할 생각이었거든. 안 그러면 용신검을 괜히 가지고 있었겠어?”
용신검에 이어.
고대 마룡까지 언급하자 카샤스 대공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용혈이 없는 내가 고대 마룡을 테이밍하기 힘들다는 건 나도 잘 알지만.
가능성이 낮다 뿐이지.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저 둘을 합치면.
그 값어치를 정확하게 모르긴 하지만.
대충 잡아도 타란 제국 지갑을 탈탈 털어야 보상이 가능할 거다.
“시작부터 빚에 허덕이는 황제를 만들고 싶은 건가?”
결국 카샤스 대공이 완전히 항복해버렸다.
적당히 봐달라는 뉘앙스의 말투와 함께.
“뭐 나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리는 일화는 유명하지 않은가.
그런 실수를 할 필요가 있나.
잠시 뜸을 들인 뒤 카샤스 대공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건 거부하기도 애매한.
아니.
오히려 카샤스 대공을 당황하게 만들만큼 소극적인 보상을 말했다.
“일단은 앞선 보상부터 처리하지. 잠시 그 용신검 좀 내가 만져 봐도 될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야. 용신검 아스카론. 내가 잠시 잡아본다고.”
“다시 달라는 게 아니고?”
의아함 가득한 카샤스 대공의 표정에 다시 웃으면서 답했다.
“사실 용신검을 빼돌린 건 타란 제국 황제의 힘을 빼기 위해서였어.”
카샤스 대공도 이게 내 진심이라는 걸 잘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타란 제국의 신물을 내가 들고 나가면 네 입장에 어떻게 되겠냐. 황제 자리에 앉자마자 반쪽짜리 소리 듣고 싶어?”
“음…….”
타란 제국의 지배를 공고히 하려면 용신검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용신검은 용혈에 반응하는 에고가 있는 특수한 검이었다.
아마도 저 용신검 아스카론의 봉인 자체가 유저들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는 건.
결국 카샤스 대공이 가지고 있어야 용신검이 최대의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 된다.
거기다 앞으로의 전투들을 고려해보면.
최상의 전투력을 가진 카샤스 대공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러니까 그냥 한 번 잡아본다고.”
앞뒤 다 끊어먹고 하는 말에 카샤스 대공이 여전히 어리둥절했지만.
돌려주는 것과 한 번 잡아보게 해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했다.
곧 카샤스 대공이 용신검 아스카론을 내게 내밀자 검신에 손을 뻗어 잡았다.
그리고는 하나의 스킬을 시전했다.
【 웨폰 카피! 】
카샤스 대공이 소유해 봉인이 온전히 풀려 있는 상태의 용신검.
그걸 복사해버리면.
과연 어떻게 되려나?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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