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9화 키메라 (15)
그랜드 크로스와 드래곤 버스터가 겹치는 순간.
강렬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나와 재중이 형이 뒤로 튕겨 나왔다.
폭발로 인한 우리의 피해를 어느 정도 감안하고 쓰긴 했는데.
역시 시스템 메시지는 울리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이 정도 공격으로는 저 키메라를 절대 잡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짧게 입맛을 다시며 다시 르아 카르테와 대천사의 검을 들어 올렸다.
시야를 가리는 폭발이 가시면 바로 달려들기 위해.
그런데 그때.
폭발 속 정중앙 쪽으로 무언가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모습이 보였다.
마치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것 마냥.
재중이 형이 바로 표정을 굳히면서 말했다.
“이 녀석……! 우리 공격을 흡수한 건가?”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타란 제국군의 집중포화를 흡수하는 광경이 딱 떠올라버렸다.
“아무래도 고대 마룡의 능력을 상당히 가져간 것 같아요.”
검은 용암을 쓸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단순히 능력만 흡수한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키메라 역시 고대 마룡의 스킬들을 거의 다 쓸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한 듯 했다.
그렇게 키메라 녀석이 그랜드 크로스와 드래곤 버스터의 폭발을 계속 흡수하자 점점 키메라의 모습이 드러났다.
재중이 형이 바로 외쳤다.
“떨어져!”
그리고는 나나 재중이 형 둘 다 빠르게 좌우로 흩어지면서 거리를 벌렸다.
이쁜소녀와 마왕 헤르게니아 역시도 키메라에게서 멀어졌고.
지금 키메라가 모은 스킬은 그랜드 크로스와 드래곤 버스터의 화력이 합쳐진 상태였다.
저걸 맞으면 아무리 방어력이 좋아도 버티긴 힘들 터.
그렇게 우리가 거리를 벌리자 키메라가 바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카샤스 대공과 고대 마룡이 있는 방향으로.
“칫. 처음부터 노리는 게 저쪽이었나.”
다시 재중이 형이 거리를 좁히려 했으나 이미 늦어버렸다.
키메라가 쏘아낸 브레스와 같은 스킬이 일자로 뻗어 나가며 고대 마룡과 카샤스 대공이 있는 곳을 그대로 덮쳐갔다.
중간에 전사 형이 뛰어들어 막으려 했지만 너무 빨리 일어난 일이라 한발 늦어 버렸다.
이대로 고대 마룡이 직격타를 맞기라도 하면 최악의 상황이 나올 것이다.
그때 갑자기 카샤스 대공과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있는 방향에서 환한 황금색의 빛무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응?”
“저건……!”
눈이 부실 정도의 황금빛은 다른 곳도 아닌 카샤스 대공이 들고 있는 용신검에서 퍼져나오는 중이었다.
그 황금빛은 그대로 카샤스 대공과 고대 마룡을 감쌌다.
곧 그 빛무리에 키메라가 쏘아낸 브레스 공격이 부딪혔고.
강렬한 폭발이 다시 한 번 대지를 크게 울렸다.
쿠구구궁!!
혹시 용신검에 있는 방어스킬인가?
처음 보는 스킬이다 보니 그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저게 그런 종류의 스킬이라면 한 번 정도는 버텨낼 수 있을지도…….
용신검에 내장된 스킬이 평범하지는 않을 테니까.
어쩌면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두 스킬이 폭발하다가 가라앉는 순간.
무언가 거대한 형체가 일어나면서 주변의 기운을 끌어모으는 게 보였다.
그걸 보자마자 다시 키메라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도 마찬가지였고.
그리고는 바로 거체의 실루엣에서 강렬한 기운이 쏘아져 나갔다.
딱 키메라가 쐈던 그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브레스?”
대충 보더라도 브레스가 확실했다.
마치 아까의 공격을 반격이라도 하듯 키메라를 덮친 브레스가 키메라의 몸을 그대로 쓸어버리면서 지나갔다.
“키에에엑!!”
그 순간.
키메라가 왜 피하지 못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예전에 고대 마룡도 흡수하는 스킬을 쓰고는 잠시 경직되었다.
지금 키메라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고대 마룡의 브레스를 직격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까처럼 흡수 스킬을 쓰지 못하는 건.
우리 때문에 이미 한 번 스킬을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저런 큰 기술이 쿨타임이 그렇게 빨리 돌아올 리도 없을 테고.
곧 모두의 시선이 황금빛이 사그라든 곳으로 돌아갔다.
그곳엔 상태가 꽤 회복된 것 같은 고대 마룡과 바로 옆에 서 있는 카샤스 대공이 있었다.
“테이밍에 성공했나?”
내 물음에 카샤스 대공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고대 마룡을 죽음까지 몰아간 위기와 카샤스 대공이 들고 있는 용신검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았다.
거기다 추가로 카샤스 대공 역시 용족과는 친밀도가 기본적으로 굉장히 높을 테니.
고대 마룡을 테이밍하기에는 누구보다 좋은 특성과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뭐 당장 고대 마룡의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지만.
회복만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존재보다 강력해지겠지.
옆에서 재중이 형도 고대 마룡을 보고는 다소 실망한 듯 작게 말했다.
“역시 원본 그대로는 안 되나 본데…….”
“그러게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는 성마대전에서 재앙이라고까지 불렸던 네임드였다.
그런 네임드가 원래의 능력을 그대로 지닌 채로 테이밍 된다면…….
사기도 그런 사기가 없었다.
만약 유저가 원형 상태를 얻을 수 있다면.
혼자서 유저 수만 명을 학살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는 셈이라.
지금은 그것보다는.
저 테이밍 된 고대 마룡이 충분히 도움이 되어 주어야 한다.
키메라를 잡기 위해선.
방금의 브레스를 직격으로 맞았지만 여전히 시스템 메시지는 올라오지 않았다.
어지간해서는 죽지도 않는다는 건데…….
마왕 헤르게니아가 고대 마룡이 테이밍된 모습을 보고는 놀랍다는 듯 말했다.
“흐응…… 신기하네.”
“마계 쪽은 테이밍이 없나 봐?”
아니다.
생각해보면 이전에 마왕 벨라가 언데드 드래곤을 타고 다닌 전력이 있었다.
그 드래곤이 소환형이 아니라면.
테이밍을 했다는 뜻일 테고.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계는 용마족이 있으니까.”
“역시 그런가.”
“용마족도 용을 타고 다녀. 이상할 건 없지만…….”
“그런데?”
“고대 마룡이 테이밍 된 건 처음 봐서.”
하긴.
어느 미친놈이 고대 마룡을 테이밍하려고 들겠는가.
우리 역시 이전의 성마대전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면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고대 마룡을 테이밍한 카샤스 대공을 보면서 생각했다.
역시 중요 역사는 역사대로 흘러가는 거려나…….
어떻게 보면 용신검과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는 원래부터 카샤스 대공이 얻는 거라…….
그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살짝 표정이 어두워졌다.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은데?”
방금 브레스를 쏘아낸 고대 마룡의 상태가 예상과는 달리 너무 안 좋아 보였다.
아니.
그보다는 그냥 약하다.
우리가 생각했던 고대 마룡과는 너무 차이가 있어.
솔직히 카샤스 대공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완벽히 회복된 고대 마룡이라면 키메라를 충분히 누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저런 불안정한 상태로는 절대 무리라 생각했다.
재중이 형 역시 같은 생각인지 살짝 쓴웃음을 보였다.
“노력에 비해 남는 게 없는데?”
“그래도 공중에서 견제할 순 있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고대 마룡이 키메라에게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컸다.
만약 그대로 고대 마룡이 죽어버렸다면.
그 뒤는 뭐 답이 없으니까.
곧 브레스를 맞아 날아간 키메라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일단 직격을 맞아서 녀석에게 상당한 피해를 준 건 맞긴 한데.
아직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키메라를 감싸고 있는 저 오벨리스크.
이전에 폭발한 분신 같은 녀석과 함께 다 날아갔다고 생각했는데.
오벨리스크의 크기가 좀 작아졌을 뿐.
여전히 키메라의 신체를 감싸면서 보호하고 있었다.
거기다 그 오벨리스크가 주변의 생명들에게서 계속 체력과 마력을 가져오는 중이었다.
“이대로는 끝이 안 나겠는데…….”
재중이 형의 말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열심히 체력을 깎아놔 봐야.
핵을 가진 신체가 빠져나가 다시 부활해버리면 답이 없었다.
물론 녀석도 신체분리를 하면서 그만큼 오벨리스크를 잃어버리기는 하지만.
그만큼 제물의 결계를 써 어딘가에서 체력과 마력을 보충했다.
당장 우리만 해도 싸우면서 녀석에게 체력을 흡수당하는 중이었다.
아직은 물약이 꽤 있어서 버틸만하지만.
조금만 더 전투가 길어지면 결국 우리도 다른 녀석들처럼 바닥에 누울 확률이 높았다.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봤다.
“저 녀석 잡을만한 뭔가 없어?”
“무슨 말이야?”
“키메라를 한 방에 잡지 못하면 결국 우리가 다 죽어.”
내 그랜드 크로스와 재중이 형의 드래곤 버스터 같은 경우 계속 쓸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일단 쿨타임이 굉장히 긴 것도 문제지만.
한 번 쓰고 나면 우리 역시 체력과 마력을 상당히 소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결국 딱 한 번에 키메라 녀석을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말인데.
이 이상 대미지를 끌어올리는 건 솔직히 무리였다.
챠밍의 광역 스킬도 계속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했고.
혹시나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 물어봤는데 그녀에게서 그다지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진 못 했다.
“오벨리스크가 피를 빨아들여서 체력을 복구하는 것만 어떻게 처리하면 해볼 만할 것 같기도 해.”
“그게 제일 어렵지 않나?”
키메라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저 오벨리스크를 전부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건데.
그게 정말 가능했다면 진작에 키메라를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키메라의 신체가 반이나 날아가도 도로 회복되는 상황은 피했을 테니까.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도 억울할 수 있는 게.
특수한 상황.
특수한 괴물에게 걸려 결국 죽을 뻔한 걸 테이밍으로 살려놓은 셈이라.
아무리 박살 내놔도 다시 멀쩡히 신체가 복구되는 놈을 어떻게 잡겠는가.
심지어 마력까지 회복되는 놈이라.
이대로 장기전으로 가면 우리가 무조건 진다.
“휴. 할 수 없나. 어떻게든 죽을 때까지 패보는 수밖에.”
답이 없기 때문에 르아 카르테와 대천사의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아직은 물약이 남아 있으니.
이게 바닥나기 전에 저 녀석과 담판을 지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녀석이 고대 마룡의 힘을 흡수하는 덕에 우리 쪽의 무기들이 더 잘 먹히게 됐다는 점 정도일까.
그런데 그때.
갑자기 머리를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고개를 돌려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오벨리스크 저거…… 피를 모아서 작동하는 거였지?”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피를 매개체로 힘을 얻는 거야. 그 힘을 키메라에게 그대로 전달해주고.”
“혹시…… 이쪽에서 오벨리스크의 피를 흡수해버리면 어떨까?”
“응?”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마왕 헤르게니아가 묘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자 인벤에서 바로 하나의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간 쓸 일이 없어서 계속 처박아둔 무기.
마신의 무기 중에 하나인 마검을 꺼내 들었다.
칠흑의 어둠이 박혀 있는.
그리고 검신에 붉은 기운이 맴도는 마검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크게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마치 엄청난 먹이를 발견해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딱 그런 떨림이랄까.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울부짖는 마검과 키메라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잔뜩 지으며 말했다.
“헤…… 쟤 이제 큰일 났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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