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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36화 (1,336/1,404)

#1336화 키메라 (12)

새크리파이스.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따르면 천사 계열의 자기 희생 주문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자폭 스킬이라는 뜻일 테지.

키메라의 반은 천사의 신체니 천사 계열의 스킬을 쓴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설마 그렇다고 키메라가 자폭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키메라의 자폭 스킬로 인해 주변이 완전히 초토화되어 또 다른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내었다.

대지가 파여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것만 봐도 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략적으로 유추해볼 수 있었다.

아마 조금만 늦게 빠져나왔다면.

남은 체력이 얼마든 간에 녹아내렸을 것이다.

외곽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걸린 가호가 날아감은 물론이고 플레이트마저 반파되었다.

직격으로 맞았다면 무조건 죽었다.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주변을 살피자 먼저 빠져나갔던 재중이 형이 내 옆으로 달려왔다.

재중이 형 역시도 놀랍다는 듯이 지금은 크레이터로 변해버린 자폭 장소를 쳐다보았다.

“자폭 스킬. 무시무시하네.”

“그러게요. 조금만 늦었으면 저도 죽었어요.”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카샤스 대공 역시 크게 피해를 입어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다행히 죽은 것 같지는 않았고.

폭발의 충격을 받아서 잠시 쓰러진 모양이었다.

“카샤스 대공도 살았네. 그럼 키메라가 죽은 건가?”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죽으려면 곱게 죽지. 녀석 덕에 오랜만에 쫄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가 원하는 시스템 메시지가 나오지 않자 재중이 형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헤르게니아가 자폭 스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네.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

자폭 스킬이라고 하면 시전자는 무조건 죽어야 하는 게 맞다.

당연히 키메라도 죽어야 했고.

그럼 자연스럽게 지금쯤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야 할 텐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메시지는 올라오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모양이다.”

재중이 형이 바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혀를 찼다.

“확실하네. 안 죽은 거.”

나 역시 재중이 형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발견했다.

“제물의 결계가 그대로네요.”

“그래. 키메라가 죽었다면 오벨리스크도 없어졌을 테니까.”

재중이 형 말대로 오벨리스크가 없어지면 그걸 축으로 삼아 유지되던 제물의 결계가 사라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시선에는 제물의 결계가 버젓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건 키메라가 죽지 않았거나.

혹은 우리가 모르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단순히 오벨리스크를 부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나?

그런 의문을 가지는 동안 저 멀리서 자폭 스킬을 피해 피신 갔던 우리 팀과 마왕 헤르게니아, 천사들이 달려왔다.

천사들은 오늘 길에 카샤스 대공을 좌우로 잡고 같이 끌고 왔고.

챠밍이 날 보자마자 걱정되는지 물었다.

“오빠. 괜찮아요?”

“응. 겨우 직격은 피했어.”

반파되어 넝마가 되어버린 플레이트가 아니었다면 이것도 위험할 뻔했지만.

“시스템 메시지. 안 뜨지?”

“네. 안 떴어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시선을 돌려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저 자폭 스킬. 시전자는 죽는 거 아냐?”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 질문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자기 희생 주문이니까.”

옆에서 다른 최상급 천사 이베스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새크리파이스는 가진 생명력과 마력을 전부 소모해서 폭발시키는 최상위 희생 주문입니다. 살아남을 수 없죠.”

모르긴 해도 키메라가 네임드와 동급인 걸 고려해보면.

생명력이 꽤 많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마력 역시도 마찬가지.

특히 오벨리스크.

거기 축척된 생명력과 마력량은 상상을 초월할 터.

오벨리스크로 둘러싸인 키메라가 자폭을 했다면.

그 엄청난 양의 생명력과 마력이 한꺼번에 터진 셈이다.

폭탄으로 치면 거의 핵폭탄이라는 거지.

오러와 가호, 플레이트가 동시에 깨져나간 것도 충분히 이해됐다.

문제는.

이런 미친 스킬을 시전한 키메라 놈이 죽지 않은 것 같았다.

마왕 헤르게니아나 이베스는 죽었다고 확신하는 듯 한데…….

바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리키자 마왕 헤르게니아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정말 안 죽었네.”

“그러니까. 이럴 수도 있나?”

“아니. 무조건 죽어.”

“그럼 저건 어떻게 설명해?”

“나도 몰라. 키메라는 마법 생물이라 다르려나?”

마왕 헤르게니아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폭발이면 키메라의 핵도 무사하지 못하지 않아?”

“응. 핵이 아무리 단단해도. 절대 못 버텨.”

역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자폭으로 핵이 날아갔다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는 건…….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챠밍이 말을 꺼냈다.

“오빠. 핵이 처음부터 키메라에게 없었으면요?”

“역시 그렇지?”

의심할 수 있는 건.

키메라에게 핵이 없다란 추측이었다.

그러자 재중이 형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협공해 키메라의 핵이 있을 만한 곳에 공격했는데도 죽지 않더군.”

“네. 머리나 가슴, 복부까지 전부 찔렀는데 멀쩡했어요.”

“애초에 핵이 없었다면 말이 돼.”

곧장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핵이 없어도 키메라가 유지될 수 있어?”

“흐응. 단순히 형체를 유지하는 거라면. 오래는 아니어도 가능은 해. 다만…….”

“다만?”

“그래도 핵이 근처에 있어야 해. 너무 멀면 신체가 무너져 버리거든.”

“핵이 주변에 있어야 한다라…….”

그 말에 시선을 돌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혹시 핵을 미리 숨겨 놓았다든가 하는 방법도 있을 테니.

하지만 주변이 초토화된 상황이라.

어딘가에 숨긴다거나 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할 리도 없고.

무엇보다 외부에 핵을 노출 시키는 건.

자신을 죽여 달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 정신을 차린 카샤스 대공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용케 살아 있네.”

용신화가 되어 있었으니 그나마 저 폭발에 견뎠지.

카샤스 대공 역시 신체가 넝마가 된 상태였다.

용의 날개들도 찢겨나간 상태고.

자신의 몸을 살피던 카샤스 대공이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르겠군.”

성마대전의 영웅이 고작 이런 전투에서 죽어버리면 그것도 난감하다.

그때 카샤스 대공을 계속 쳐다보던 챠밍이 뭔가 떠오른 듯 내게 말했다.

“오빠. 키메라의 핵이 꼭 본체에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죠?”

“응?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핵이 팔이나 다리 같은 곳에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챠밍의 추측에 다들 충격이라도 받았는지 일제히 시선이 한 곳으로 돌아갔다.

처음에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추락한 장소로.

자폭 스킬 범위 밖으로 튄다고 아무도 신경 쓰지 못했지만.

고대 마룡 역시도 그 자폭 스킬에 당한 듯 저 거대한 덩치가 형편없이 튕겨져 나간 상황이었다.

온몸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전사 형이 바로 인상을 구겼다.

“설마…… 키메라 녀석. 처음부터 저걸 노리고 자폭 스킬을 쓴 거야?”

확실히 전사 형 말대로 키메라의 목적 자체가 우리가 아니었다면?

아마 우리는 죽으면 좋고.

아니라도 크게 상관없었다면…….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된다.

그러자 뭔가 마왕 헤르게니아가 바로 발을 박차면서 고대 마룡 쪽으로 뛰쳐나갔다.

정말 다급한 표정으로.

“당장 막아야 해!”

마왕 헤르게니아가 달리는 것을 보고는 모두가 고대 마룡을 향해 뛰었다.

아마 모두 한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하지만 좀 늦은 듯 했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온몸을 뒤틀면서 고통스러운 괴성을 질러대는 게 보였다.

카하아악!!

거대한 몸을 뒤틀 때마다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그 피를 무언가가 빠르게 흡수하는 것 역시도.

재중이 형이 내 옆을 달리면서 말했다.

“처음에 떨어져 나간 다리…….”

“네. 그걸 생각하지 못했어요.”

고대 마룡이 그래비티 스킬에 낙하하면서 키메라를 짓눌렀을 때.

몸에서 떨어져 나간 신체 부위.

처음에는 빠져나오기 위해 일부러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핵을 그쪽에 옮겨놓고 기다린 모양이었다.

한 번의 기회가 오기를.

마왕 헤르게니아가 급하게 외쳤다.

“이대로면 키메라가 고대 마룡을 전부 흡수할 거야!”

그녀의 말은 우리의 예상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곧 고대 마룡의 피를 잔뜩 흡수한 키메라의 다리가 급격하게 변형되면서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갔다.

원래의 신체와 똑같은.

딱 자폭하기 전의 키메라 모습이었다.

조금 다른 건.

전과 달리.

몸을 감싸는 비늘의 색과 형태가.

고대 마룡의 그것과 완전히 같아진 상태였다.

오벨리스크 역시도 이전과 같이 녀석의 몸을 감싸고 있었고.

재중이 형이 바로 혀를 찼다.

“칫. 핵이 저쪽에 있으니 대놓고 자기 희생 주문을 걸었겠지.”

맞다.

만약 핵이 있었다면 절대 자기 희생 주문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핵이 다른 곳에 있다면.

얼마든지 자폭 스킬을 쓸 수 있었다.

핵이 없는 키메라의 몸이 터져봐야 자신은 절대 죽지 않을 테니까.

잘 터져서 우리까지 죽으면 베스트.

꼭 그게 아니더라도 고대 마룡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키메라에게는 좋은 결과였다.

아니.

이번 같은 경우는 오히려 자폭 스킬로 고대 마룡을 노렸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지금처럼 자폭 스킬에 쓰러진 고대 마룡의 힘을 흡수하기 위해서.

나르샤 누나가 달리면서 화살을 연달아 날렸는데.

놀랍게도 키메라가 보이지 않는 화살들을 훤히 보인다는 듯 한 팔을 가볍게 휘둘러서 쳐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화살을 쳐내던 팔이 하나의 포대 형태로 변형되더니 나르샤 누나를 가리켰다.

위이잉!!

파아아아!!

그 순간 바로 뛰어서 나르샤 누나를 잡고 바닥을 뒹굴렀다.

놀랍게도 그런 우리 위쪽으로 스치듯이 날아간 건.

고대 마룡이 쓰던 검은 용암 스킬이었다.

이어서 키메라 주변으로 수도 없이 많은 마법진까지 형성되었다.

저것 역시도 전에 많이 봤던 마법진이었다.

곧 마법진들이 일제히 돌아가며 검은 용암 다발이 우리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파아아아!!

“다들 피해!”

설마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건 아예 고대 마룡의 스킬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과 다름없었다.

다들 정신없이 떨어지는 검은 용암을 피해 후퇴하자 녀석이 아쉽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까딱거렸다.

갑자기 키메라의 등 뒤로 검은 용의 날개가 뻗어 나왔다.

동시에 천사의 날개 역시 겹쳐서 펼쳐졌다.

그리고는 입을 열어 고대 마룡이 쓰던 하울링을 그대로 터트렸다.

“카하하학!!”

기쁨에 찬 것 같은.

딱 그런 하울링이 땅을 뒤집으면서 퍼지자 다들 더욱 뒤로 떨어졌다.

동시에 녀석의 머리가 용의 그것처럼 변형되더니 입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건 딱 고대 마룡이 쓰던 그 브레스였다.

한 차례 더 브레스가 정면을 긁고 지나가자 확신했다.

스킬 카피 정도가 아니다.

전사 형이 뒤로 빠지면서 인상을 구겼다.

“저놈 완전 신났잖아?”

마치 새로 얻은 힘을 다 시험이라도 해본다는 듯 몇 번 더 스킬을 써보더니 만족한다는 듯 한쪽 팔을 뻗어 고대 마룡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팔을 변형시켜 이번엔 고대 마룡을 향해 검은 용암과 더불어 강렬한 광선을 내뿜었다.

푸하악!!

파아아악!!

두 스킬이 섞인 마법이 고대 마룡의 배를 뚫고 반대편으로 뻗어나가자 고대 마룡의 거대한 몸이 거칠게 들썩거렸다.

카하악!!

하지만 힘이 다한 듯 고대 마룡이 반격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미 힘을 다 뺏겨 버렸을 수도 있고.

저대로 두면 무조건 죽겠는데…….

여기서 고대 마룡이 죽으면.

진짜 최악이다.

이를 악물고는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이제 고대 마룡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고대 마룡. 테이밍 해야겠어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18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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