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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32화 (1,332/1,404)

#1332화 키메라 (8)

아쉽게도 키메라가 저런 식으로 공중 비행을 계속 지속한다면 우리가 저 키메라를 잡아낼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기동력에서 상대적으로 밀리는 실피드를 타고 녀석의 뒤를 쫓는 정도가 전부겠지.

그게 아니라면 상당한 마력을 소모해 광범위한 폭격을 해야 하는데.

그건 이미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직접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 방법이 유효타가 되지 못한다는 게 더 문제였고.

당장은 키메라를 누르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키메라의 저 방어형 오벨리스크를 전혀 뚫고 있지 못하니까.

뭐 키메라 녀석도 괴성만 지를 뿐.

반격을 못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이야 벌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때 나와 재중이 형의 대화를 들은 마왕 헤르게니아가 나섰다.

“끌어내려줄까?”

“방법이 있어?”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묘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일단 내 전문 분야는 아니긴 한데…… 아주 못하는 건 아니야.”

“전문 분야……?”

“각 마왕들마다 자신들이 잘 하는 분야는 따로 있으니까.”

“이를 테면 너처럼?”

“맞아. 내 입으로 말하긴 그래도. 마법 물품 제작은 마왕들 중에 내가 가장 실력이 좋거든.”

누가 보면 대놓고 자기 자랑을 하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못 미더울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마왕 헤르게니아는 그 아크 드래곤을 만들어낸 실력자였다.

성마대전에서는 마왕군의 중추 역할을 하기도 했고.

거기다 아크 드래곤은 천사군의 부유 도시에 대항할 수 있는 엄청난 마법 제작물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대놓고 실력 자랑을 할만도 하겠지.

“반대로 근접 전투는 약하지.”

“하! 그것까지 다 잘하면 내가 마신이게?”

마왕 헤르게니아의 농담에 나와 재중이 형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모든 능력치가 끝에 달했다면 마신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테니까.

재중이 형이 마왕 헤르게니아를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 말은 지금 네가 쓰려는 기술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기술이라 이건가?”

“맞아. 주력 기술이 아니니까 마력 소모도 심할 테고. 위력도 한참 떨어질 거야.”

“그럼 네 마력이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리는군.”

“말귀를 잘 알아듣네.”

딱히 재중이 형의 추측이 틀리지 않은 듯 했다.

익숙하지 않은 스킬에 마력 소모가 심하고 위력도 약하다면.

마왕이라고 하더라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그 사이에 우리 일을 마쳐야 한다는 뜻이 된다.

재중이 형이 다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말했다.

“그럼 실력 좀 볼까?”

“흥. 보고 놀라지 말라고.”

말을 끝내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들더니 양손에 하나씩 착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장갑인가……?

아니다.

평범한 장갑 같은 게 아니라 장갑 표면에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흑빛의 구슬이 박혀 있었다.

“그건……?”

“타리스만. 베르탈륨 결정을 압축해서 만든 마법 보조구야.

곧 마왕 헤르게니아의 주변으로 마법진들이 하나둘 생성되더니 이내 수차례 중첩된 형태로 마법진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결계와 보랏빛의 문자들이 섞여 있는 묘한 형태의 마법이라…….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마법이라 그런지 챠밍과 막내별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았다.

물론 마법진도 있지만.

마왕 헤르게니아가 착용하고 있는 저 타리스만이라는 장갑도 꽤 궁금해진 듯 했다.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마법 물품이라.

마법사 계열인 그녀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궁금할 법도 했고.

한참 마법진을 형성하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 쪽을 넌지시 바라보면서 말을 꺼냈다.

“나중에 이런 형태의 마법을 쓰는 마왕과 마주치면 가급적 피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래?”

“응. 상대하기 꽤 어려울 테니까.”

굳이 경고까지 해줄 정도라…….

그렇다는 말은 원래의 이 마법을 쓰는 마왕이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는 뜻일 터.

<불멸> 마왕 헤르게니아보다 윗줄에 있는 마왕이다 이건가.

<주호> 네. 그런가 봐요.

이 성마대전 시대에서 한참이나 봉인되어 있던 마왕 헤르게니아의 랭킹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녀가 경계할 정도의 능력이라면…….

랭킹이 한 자리 대의 마왕일 확률이 높았다.

“자. 그럼 한 번 해볼까나?”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법을 완성시키자 그녀의 주변을 돌던 수많은 마법진들이 일제히 부르르 떨려왔다.

그리고는 그 마법진들이 사방으로 확장되면서 일대를 점거해 나갔다.

마법진이 퍼지면서 우리 몸을 훑고 지나갔지만 마왕 헤르게니아가 우리에게 위협을 가할 생각은 없으니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마법진의 효과가 더 궁금해졌다.

과연 어떤 마법이기에 그녀가 장담할 수 있는지.

범위를 넓혀가던 마법진이 더 이상 팽창하지 않자 마왕 헤르게니아의 입에서 스킬명이 흘러나왔다.

【 메가 리버스 그래비티! 】

그러자 재중이 형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하! 중력 스킬……?”

그리고 놀라는 건 재중이 형만이 아니었다.

전사 형과 나르샤 누나, 막내별 할 것 없이 전부 놀라는 눈치였다.

“세상에. 중력 스킬이 있었다고?”

“처음 등장하는 거 아냐?”

“맞아요. 로스트 스카이에서 처음 나오는 거예요.”

다들 몰랐다는 걸 보면 정말인 듯 했다.

사실 나 역시 처음 보는 스킬이기도 했고.

쿠구구궁!!

곧 뭔가의 압력이 내리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온 몸을 압박했다.

어떻게 보면 마왕의 결계와 그 느낌이 흡사하기도 한데…….

바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키메라 녀석의 몸이 흠칫 떠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는 곧 키메라 녀석의 신체가 마치 무언가에 의해 끌려 오는 것 마냥 지상을 향해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키아악?!”

당최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황하더니 곧 자신의 천사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발악했다.

하지만 그런 키메라 녀석의 노력은 몸을 내리누르는 족쇄와도 같은 스킬의 힘에 완전히 무산되어버렸다.

키메라가 날아오르려는 힘이 어떤 보이지 않는 마법적인 힘에 완전히 묻혀버리면서 점점 지상으로 끌려 내려왔다.

그런데 이건 비단 키메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카오오!”

무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마저 그 거대한 신체를 가누지 못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전사 형이 그걸 보고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미친……! 쟤는 또 왜 떨어져?!”

슈우우웅!!

키메라가 떨어지는 것과는 사뭇 다른 파공음을 내면서 육중한 신체가 떨어져 내리자 우리 팀과 카샤스 대공, 천사들 모두 똑같이 외쳤다.

“달아나!”

저만한 덩치의 고대 마룡이 저 높은 공중에서 수직 낙하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라.

정확하게 모르긴 해도 일대의 모든 것이 초토화될 것이 뻔했다.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물었다.

“너무 과한 거 아냐?”

“칫. 일일이 타겟을 조절할 정도로 익숙한 마법이 아니라니까. 덕분에 마력만 무지하게 잡아먹고 있는 중이야.”

하긴.

고대 마룡의 저만한 덩치를 끌어내리려면 얼마나 많은 마력을 써야 할지 엄두도 안 선다.

그 순간 바로 전사 형을 불렀다.

“전사 형!!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호해요!”

내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전사 형이 내 쪽으로 달려오더니 마왕 헤르게니아의 앞쪽에 섰다.

그리고는 그대로 바닥에 타이탄 라지 쉴드를 박아 넣고는 그 뒤로 발뭉도 똑같이 찍어 내리고는 허리를 숙여 자세를 잡았다.

어떠한 충격에도 날아가지 않도록.

“아무리 봐도 지금 마왕 헤르게니아가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맡겨둬라.”

현재 마왕 헤르게니아는 모든 마력을 리버스 그래비티를 쓰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당연히 본인에 대한 방어가 취약할 수밖에 없었고.

반대로 전사 형의 발뭉과 타이탄 라지 쉴드의 방어력이라면 낙하 충격에도 충분히 방어가 될 터.

곧 발뭉의 커다란 검신에서 주변을 잠식하는 것 같은 검은 기운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이건 아마도 전에 설명해 줬던 들어오는 대미지를 퍼센트 단위로 깎아낸다는 바로 그 스킬일 것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방의 공격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했던가.

거기다 타이탄 라지 쉴드 전체에서 환한 빛을 내뿜으면서 추가로 방어력을 끌어올렸다.

“이 정도면 고대 마룡의 브레스도 막겠는데요.”

“으음. 그건 좀 자신 없는데……! 대미지를 퍼센트 단위로 깎아주기는 하지만. 무적은 아니야.”

“그래도 저건 막겠죠?”

“당연한지. 너도 내 뒤에 숨어.”

그리고는 우리 팀에게 외쳤다.

“다들 내 뒤로!”

그러자 재중이 형, 챠밍, 막내별 할 것 없이 전부 전사 형의 타이탄 라지 쉴드 뒤로 옹기종기 달라붙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 광경을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 물었다.

좁은 곳에 우르르 몰려 있는 모습이 썩 예쁜 그림은 아니라서.

“너네 다 머 해?”

“보다시피. 같이 우산 좀 쓰자고.”

심지어 카샤스 대공과 천사들 역시 달려와 우리 뒤쪽에 달라붙었다.

그런 카샤스 대공을 향해 저리 가라는 식으로 말했다.

“야. 여기 좁아. 그리고 너 지금 용신화 되어서 방어력 짱짱하잖아.”

“흠……!”

용신화가 처음이라 그다지 확신은 없는 거려나.

이미 고대 마룡이 너무 빨리 떨어지고 있어서 피하자고 하면 전사 형 뒤가 최적이긴 하지만.

“에휴. 모르겠다. 꽉 버텨.”

“그럼 신세 좀 지지.”

설마 이렇게까지 다 모일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거대한 덩치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세차게 낙하했다.

키메라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때 고대 마룡의 시선이 키메라 쪽으로 돌아갔다.

그걸 발견한 건 나뿐만이 아닌지 챠밍이 손을 들어서 외쳤다.

“오빠. 고대 마룡! 옆으로 움직여요!”

“정말?”

이미 숨기로 한 마당에 다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자 고대 마룡의 거대한 날개들을 활짝 펼치더니 아주 조금이나마 몸을 움직여댔다.

추락하는 건 아마 고대 마룡의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고대 마룡이 전혀 다른 판단을 해버렸다.

아래로 떨어지는 것까지는 못 막더라도.

떨어지는 위치 정도는 자신이 정한다는 듯이 아주 세차게 날개를 펼쳐서 활강하듯 옆으로 조금씩 위치를 이동했다.

그리고 그 방향에는…….

곧 이쁜소녀도 화들짝 놀라면서 외쳤다.

“고대 마룡이 키메라 위쪽에……!”

이쁜소녀 말대로 고대 마룡의 변경된 낙하할 위치가.

키메라의 그것과 겹치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키메라의 바로 위에 고대 마룡이 있다고 해야 하려나?

“카아악!!”

그걸 키메라가 보더니 완전히 당황한 듯 늦게나마 자신의 천사 날개를 펼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발견하기 전부터 빠져나갔다면 또 모를까.

거의 지상에 가깝게 추락하는 상황이라 여기서 궤도를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 기분이겠지만.

왠지 모르게 고대 마룡이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쿠아아앙!!

콰아아앙!!

쿠르르릉!!

그리고는 키메라와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동시에 지상에 추락하면서 일대에 강렬한 지진과 함께 충격파를 터트렸다.

최소 덩치가 수십 배인 고대 마룡이 위에서 내려찍는 건.

지금 고대 마룡이 내릴 수 있는 판단 중에 최선의 판단이었다.

그걸 보고는 다들 두 손을 불끈 쥐면서 외쳤다.

“나이스! 고대 마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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