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1화 키메라 (7)
재중이 형의 예상대로.
처음에는 카샤스 대공이 용신검 아스카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용신검 아스카론의 능력을 이해했는지 두 번째 전투에서부터는 이전과 사뭇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용신화로 변한 자신의 신체 능력을 한껏 더 살려냈다.
그리고 지금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게 바로 그 능력이었다.
“초고속 기동.”
전에 베르탈륨 광산에서 지하의 제단을 지키고 있던 용마족 녀석이 보여주었던.
그 능력과 거의 흡사한 능력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뿌리는 같다고 봐야 하려나.
그쪽이나 이쪽이나 용족의 능력인 건 마찬가지라.
아마 지금의 카샤스 대공의 용신화 상태라면.
그때의 용마족이 했었던 전투 능력들을 대부분 따라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겨졌다.
실제로 방금 카샤스 대공이 한 방법도 마찬가지고.
거기다 카샤스 대공은 이 초고속 기동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 이전부터 따로 작업을 했었다.
바로 용신검 아스카론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의 기운들을 수도 없이 분산해 날려 키메라의 시선을 빼앗은 것.
워낙 다양한 각도로 원거리 공격이 들어오자 키메라도 그쪽에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후속타로 중앙에 강력한 한 방.
이러면 키메라는 어쩔 수 없이 그걸 막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양옆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키메라의 움직임을 제한해버렸으니까.
그 때문에 순간적으로 키메라의 오벨리스크가 방어형의 쉴드로 변했고.
카샤스 대공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거대한 쉴드로 변한 그 순간은 잠시나마 키메라의 정면 시선이 사라지니까.
정확하게는 쉴드의 형태로 인해 키메라 정면에서 거의 절반가량 시야가 막혀버린다.
바로 이때 카샤스 대공이 초고속 기동을 이용해서 빠르게 움직여 버리면.
아무리 키메라가 동체 시력이 좋다고 해도 순간적으로 카샤스 대공의 움직임을 놓쳐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잠깐의 실수는.
카샤스 대공이 키메라의 뒤쪽으로 돌아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만약 탱킹 경험이 많은 전사 형이었다면.
시야가 사라졌을 때 상대가 후방으로 돌아 들어올 것까지 예측하고 대비를 했을 텐데.
키메라에게 그런 전투 경험은 전무할 것이다.
애초에 누군가를 학살하면 학살했지.
자신이 막는 포지션에 서는 경우가 없었을 테니까.
재중이 형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판단이 꽤 괜찮네.”
“네. 카샤스 대공이 머리를 잘 썼어요.”
전방 시야가 막힌 키메라와 달리.
우리는 측면에서 보고 있었으니.
어떻게 카샤스 대공이 키메라의 후방으로 돌아 들어갔는지 정확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카샤스 대공의 용신검의 검날이 키메라의 허리를 뚫고 들어갔다.
동시에 용신검 아스카론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건 돌아가는 그 사이에 미리 스킬을 쓸 것을 예상하고 짧게나마 차징을 했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맞출 자신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고.
“키아악!!”
당황한 듯한 키메라의 외침은 카샤스 대공의 미소로 바뀌었다.
거기에 카샤스 대공의 용의 날개들이 뒤로 활짝 펼쳐지면서 황금색 빛의 기류들이 날개 사이로 흘러나왔다.
곧이어서 용신검 아스카론의 검신 표면에 수도 없이 많은 황금빛 문자가 배치되며 더욱 밝은 황금빛을 내뿜더니 이내 하나의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냈다.
그것도 키메라의 허리에 박힌 상태로.
“드래고닉 블레이드!”
화아아악!!
쿠아앙!!
비산하는 황금빛이 눈이 부실 정도라 나와 재중이 형 모두 손을 들어 정면을 막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곳엔.
황금빛의 거대한 용이 키메라의 신체를 폭발시키며 끝도 없이 터져나가더니 곧 저 멀리 하늘까지 뻗어 나갔다.
흡사 재중이 형의 드래곤 버스터와 유사한 형태의 직선형 스킬이라 더욱 시선이 갔고.
당연하겠지만.
저런 직선형 스킬은.
그 위력이 한 곳에 응축되어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비록 짧게 준비했지만.
절대 위력이 약하지 않다는 거지.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카샤스 대공 녀석. 너 따라 한 것 같지 않냐?”
“네?”
“전에 네가 키메라의 등에 그랜드 크로스를 박아 넣었잖아.”
“아. 확실히 그렇네요.”
분명 전사 형과 챠밍의 도움으로 묶어둔 키메라의 등에 대천사의 검을 박아 그랜드 크로스를 시전 했었다.
그리고 지금 카샤스 대공이 그걸 똑같이 따라 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혼자의 능력으로만.
“노리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봤으니 한 번 해봤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랜드 크로스를 직접 때려 박는 방법으로 키메라의 신체 절반을 날렸으니.
비슷한 계열의 스킬을 보유한 자신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다.
아마 나라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따라 해봤을 것이다.
그렇게 황금빛이 눈부시게 퍼져나간 지 얼마나 됐을까.
곧 그 빛들이 사그라지면서 정면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재중이 형이 먼저 상황을 확인했는지 말도 없이 바로 발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먼저 나간 재중이 형이 빠르게 대지를 박차고 뛰어오르더니 고대 마룡의 창에 오러를 씌워서 허공으로 내질렀다.
카아앙!!
그리고 그곳엔 붉은 기운의 오벨리스크 검신이 재중이 형의 창을 막아내면서 튕겨져나갔다.
연이어 고대 마룡의 창이 계속 휘둘러지면서 키메라를 압박하자 키메라가 아쉽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나 역시 상황을 알게 되자마자 가속 스킬을 시전했다.
【 이중 가속! 】
【 엑셀레이션! 】
빠르게 거리를 좁힌 뒤 물러나는 키메라에게 르아 카르테와 대천사의 검을 휘두르자 키메라 역시 두 오벨리스크 검으로 내 쌍격을 막아내었다.
키이익!
카가강!
내 바로 옆에 착지한 재중이 형도 그대로 따라붙으면서 고대 마룡의 창을 같이 휘두르자 결국 키메라가 날개를 활짝 펴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무래도 우리 둘의 합격을 저 상태로 계속 막아내는 건 무리였던 모양이었다.
재중이 형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칫. 결국 날아 올랐나.”
아쉽게도 나나 재중이 형은 키메라처럼 비행 능력을 보유하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우리가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었다.
곧바로 챠밍이 하늘로 빙계 마법들을 쏘아 올리면서 키메라를 견제했고.
나르샤 누나가 끝도 없이 쏘아 낸 화살들이 줄을 이어 키메라 뒤를 따라붙었다.
마왕 헤르게니아도 주변에 몇 개의 마법진을 띄워서 동시에 하늘로 마법들을 쏘아 냈다.
그러자 키메라가 인상을 확 구기면서 빠르게 비행해 마법과 화살들을 피해내면서 쫓겨 다녔다.
지금의 키메라 상태면.
어떤 공격이 들어간다고 해도.
아마 꽤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을 터.
그걸 놓칠 수는 없으니까.
고개를 돌려 카샤스 대공을 보자 드래고닉 블레이드 같은 큰 기술을 써서 그런지 잠시나마 몸이 경직된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가 벌어준 시간 동안 빠르게 몸을 풀어 다시 황금의 날개를 펼쳐내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쉽다는 눈치가 가득한 채로.
바로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그러자 재중이 형이 남아있는 흔적을 보고는 빠르게 상황을 유추해냈다.
“키메라 녀석. 자신의 허리를 직접 끊어냈어.”
“네?”
“저기 봐봐. 하체의 흔적만 남아 있잖아.”
재중이 형이 가리킨 곳에는 드래고닉 블레이드가 휩쓸고 간 대지의 흔적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 키메라의 흔적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두 다리의 형태 정도이려나.
반대로 지금 날아 올라간 키메라는 상체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마치 무언가로 몸을 정확하게 갈라낸 것 같이.
“드래고닉 블레이드에 당하기 전에 몸을 분리했다는 건가요?”
“빙고. 드래고닉 블레이드에 맞느니. 아예 하체를 포기한 거지. 전에 네 그랜드 크로스에 맞은 상황을 학습한 거야. 저걸 또 맞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학습 능력이라…….
이전에는 그랜드 크로스에 그대로 맞아줬지만.
똑같은 상황에 처하자 대처를 달리했다는 말이었다.
“본능만 남아있어도 할 건 다 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재중이 형이 빠르게 튀어나가서 창을 내지른 것도.
하체를 잃긴 했어도 상체는 자유로웠던 키메라가 카샤스 대공에게 역공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 분명 카샤스 대공도 허를 찔려서 위험했을 것이다.
설마 키메라 스스로 자신의 몸을 갈라내는 짓을 한다고는 절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이건 키메라의 신체 특성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몸의 절반이 갈려도.
살아 있을 수 있는 생명체라서.
카샤스 대공만큼이나.
키메라도 자신의 신체 특성을 잘 활용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법을 하늘로 쏘아 올리면서 내게 달려오더니 방법이 틀렸다는 듯 말했다.
“핵을 부셔야 해.”
“핵이라고?”
“저건 애초에 마법 생명체라. 어설프게 신체들만 공격해봐야 다시 회복할 거야.”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대로.
공중으로 날아오른 키메라가 서서히 신체를 복구하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오벨리스크에서 나오는 붉은 빛이 마력을 끝없이 공급해주는지 그 회복력이 마치 유저의 힐과 같은 역할을 하는 듯 했다.
저런 식으로 회복을 해버리면 아무리 피해를 많이 주더라도 결국 제자리일 뿐이다.
물론 마력 소모야 시킬 수 있겠지만.
키메라 녀석의 목숨을 끊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력을 깎아야 할지 감도 안 선다.
“핵이라면……?”
“위치를 말하는 거라면 몰라. 직접 뜯어보기 전에는. 그래도 적어도 하체는 아니겠네.”
그러면서 키메라 녀석이 포기하고 간 아래쪽을 가리켰다.
곧 재중이 형이 키메라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흐음. 가슴 중앙이나 심장. 혹은 머리겠군.”
“가장 건들기 힘든 곳이기도 해. 방어도 철저히 할 테고.”
결국 저렇게 날아다니는 키메라 녀석의 핵을 어떻게든 부셔야 한다는 건데…….
이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실피드를 타고 올라간다고 해도 결국 기동력이 너무 밀릴 테고.
그때.
저 높은 하늘 위에서 검은 용암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쿠아아아!!
안 그래도 우리 팀의 원거리 공격에 쫓기던 키메라가 확 인상을 구기면서 방어형 오벨리스크를 만들어 쏟아져 내리는 검은 용암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콰과광!
콰아앙!!
워낙 한꺼번에 쏟아져 저러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으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키아악!!”
아래에서는 우리 팀이.
위에서는 고대 마룡이 동시에 합격을 하자 키메라가 짜증난다는 듯 크게 괴성을 질러댔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웃어버렸다.
“고대 마룡 녀석. 타이밍 죽여주네.”
“그러게요. 녀석도 이때를 놓치고 싶지 않은가 봐요.”
고대 마룡 입장에서도 키메라가 약해진 지금이 최적의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키메라를 잡아야 하는 건.
녀석도 마찬가지라.
말하지 않아도 저렇게 알아서 협조하는 거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키메라에게 유효타는 날리지 못했다.
“마력을 소모시킬 순 있지만. 결국 핵을 날려야 해.”
재중이 형이 말하자 아쉽다는 듯 내가 중얼거렸다.
“어떻게든 지상에서 싸울 수만 있다면…….”
그러자 갑자기 마왕 헤르게니아가 진한 미소와 함께 내게 말했다.
“쟤. 끌어내려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