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0화 키메라 (6)
타란 제국의 신물.
용신검 아스카론.
이건 전에 용의 제단에서 타란 제국 황제 몰래 복사해서 빼돌린 물건이었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타란 제국의 물건이 맞긴 한데.
결과적으로 지금 타란 제국 황제 손에 용신검 아스카론이 있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두 발 뻗고 서 있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용신검을 꺼내들어 카샤스 대공에게 보여주자마자 카샤스 대공의 시선이 쓰러져 있는 타란 제국 황제에게 돌아갔다.
“용신검 아스카론? 이건…… 카베스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카샤스 대공의 말이 맞다.
원래라면 말이지.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타란 제국 황제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게 말이 된다.
“아. 그게 전에 내가 좀 슬쩍 했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
카샤스 대공이 돌린 시선에서는 여전히 타란 제국 황제의 손에 용신검 아스카론이 들려 있었다.
타란 제국 황제가 쓰러지면서도 절대 손에서 놓지 않은 용신검.
그런데 자세히 보면 분명히 다른 점이 존재했다.
“잘 보라고.”
그러자 카샤스 대공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마치 무언가를 살피는 것처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샤스 대공의 눈이 놀라기라도 한 듯 크게 떠졌다.
“카베스의 용신검의 검신에…… 금이 가 있군.”
“눈썰미가 있네.”
용신검 아스카론은 그 등급이 신급에 해당하는.
성마대전의 인간군, 천사군, 마왕군을 전부 통틀어 최상단에 위치한 가장 강력한 무기 중에 하나로 손꼽힌다.
그런 용신검의 검신에 금이 간다?
정말 우리가 상대하는 적이 신급의 무언가가 아니라면.
고작 키메라 하나 상대한다고 금이 가거나 부러질만한 무기는 절대 아니었다.
지나가는 행인 1이 용신검을 든다고 해도 이건 마찬가지였다.
그 내구도 자체가 상상을 초월하는 물건이라.
하지만 타란 제국 황제가 가지고 있는 용신검은 이야기가 다르다.
애초에 내가 복사한 물건이다 보니.
그 내구도가 본품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원본이 워낙 내구도가 좋아 그걸 카피한 복사품도 지금까지 버틴 거지.
어쩌면 타란 제국 황제도 싸우다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기능상 복사한 시점의 능력과 유사하다고는 하나.
중간에 용신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면.
분명히 의심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혹은 뭔가 잘못 됐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게 복사품이라 내구도에 문제가 생겼다고는 꿈에도 몰랐겠지만.
반대로.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이 용신검은.
잔 흠집조차도 없는.
그야말로 무결점의 용신검이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아. 설명하자면 길고. 어쨌든 이게 진짜야. 저기 누워있는 타란 제국 황제가 들고 있는 건 가짜고.”
“하…….”
차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눈치였지만.
실제로 타란 제국 황제가 들고 있는 용신검에 금이 가 있는 걸 본 이상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딱히 안 믿는다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이게 가짜라고 해도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있나?”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한참 힘을 끌어모으고 있는 키메라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곧 내게 손을 뻗어 용신검 아스카론을 쥐었다.
“그렇지.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는 일이지.”
용신검 아스카론을 손에 쥔 카샤스 대공이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내게는 저 키메라와 싸울 수 있는 보다 강력한 힘이 필요할 뿐이다.”
카샤스 대공은 내가 어떻게 이 용신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과정은 정말로 상관없다는 듯 단호한 표정으로.
그렇게 카샤스 대공이 용신검 아스카론을 손에 쥐자마자.
갑자기 용신검 아스카론에서 어마어마한 기류가 폭사하듯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카샤스 대공에게서도 강렬하고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쿠구구궁!!
대지를 짓누르는 압도적인 위압감.
내 착각이 아니라면.
이건 흡사 이전에 봤던 마왕 바이카르의 그것과 맞먹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간 내가 용신검 아스카론을 쥐고 있을 때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변화였다.
더 놀라운 건.
용신검 아스카론의 기운들이 카샤스 대공의 심장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드드드득!!
갑자기 카샤스 대공의 등 뒤로 마치 용의 그것과 같은 형태를 지닌 황금색 날개들이 쭉 뻗어져 나왔다.
그와 함께 카샤스 대공의 신체가 급격하게 생성된 황금빛이 도는 비늘들로 촘촘히 채워져 갔다.
손과 발도 죄다 용의 그것과 같은 형태로 변하는 것도 모자라.
머리에서 거대한 황금색 뿔들까지 솟아나는 걸 보고는 옆에서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혀를 내둘렀다.
“용신검 아스카론 저거. 너무 차별이 심한 거 아냐?”
“하하. 그러게요. 원래의 주인이라고 완전 변신시켜주네요.”
아마도 저 변화가 용신검 아스카론의 봉인이 온전히 풀렸을 때 용신검의 주인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중에 하나일 것이다.
급격하게 변화를 겪은 카샤스 대공의 눈빛이 곧 황금색으로 물들면서 우리에게 한 마디 말을 내뱉었다.
“이게 진짜였나.”
“속고만 살았나. 그렇다니까.”
사실 저 정도의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줄 거라고까지는 상상도 못 했지만.
“용신화. 방금 용신검 아스카론이 알려주는군.”
“그거 에고도 가진 녀석이었나?”
그 말을 듣고는 어이없다는 듯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능이 있는 물건이라…….
“그래. 애초에 주인이 있는 물건이라 이거지?”
“무슨 뜻이지?”
“별 뜻 아냐. 제일 잘 쓸 수 있는 놈이 쓰는 게 맞다는 거려나.”
성마대전에서는 고유의 무기를 가진 최강의 영웅들이 몇몇 있었다.
그중 하나가 눈앞의 카샤스 대공이고.
그러자 머릿속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떠올랐다.
아마 그녀 역시도 정령신의 검의 원래 주인이었으니.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검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뭐 아직은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 듯 하지만.
검이 각성할 정도로 제대로 힘을 가지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눈앞의 카샤스 대공만큼이나 강력한 존재로 변하게 될 터.
언제 한 번 제대로 알아봐야 하려나.
이제부터 우리가 싸울 상대들은.
지금 저 카샤스 대공만큼에 준하는 능력을 가져야 상대가 될 테니까.
“어때?”
“무슨 말이지?”
그러자 시선을 돌려 이제는 신체를 거의 다 회복한 키메라 쪽을 빤히 쳐다보았다.
당장 우리에게 튀어나올 것 같았던.
키메라 역시도 카샤스 대공의 변화를 확인한 듯.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경계라기 보다…….
오히려 무언가의 욕망에 가득 찬 딱 그런 눈빛이려나.
“저 녀석. 상대할 수 있겠냐고.”
그 순간.
카샤스 대공에게서 폭발적인 황금빛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눈빛 역시 황금색으로 번뜩였고.
몇 번 몸을 체크하더니 더 없이 만족스럽다는 카샤스 대공이 웃어보였다.
“지금 내 상태는…… 최상이군.”
그 말에 나 역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키메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말했다.
“그럼 가서 조져.”
이왕 이렇게 된 거.
성마대전 최강의 영웅의 힘을 구경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그러자 카샤스 대공의 황금빛 날개가 활짝 펼쳐졌고.
날개들 사이로 황금색 입자가 세차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원래 선두로 튀어나가려던 전사 형도 잠시 발을 멈추고는 말을 꺼냈다.
“용신이 무슨 골드 드래곤이었나…… 죄다 황금빛이야.”
“하하…… 정말 그렇네요.”
그리고 그 황금빛은.
키메라 주변으로 불길하게 뿜어져 나오는 핏빛의 오벨리스크와 완전히 대조된 느낌이 들었다.
“간다.”
카샤스 대공의 신형이 쏜살 같이 앞으로 튕겨져 나갔고.
등 뒤로 황금빛 기류가 따라가듯 선을 그어냈다.
반대로 키메라 역시 그와 비슷한 붉은 빛의 용의 날개들을 펼쳐내면서 카샤스 대공에게 달려들었다.
“카아악!”
동시에 키메라의 앞을 막고 있던 방패 형태의 오벨리스크가 잘게 분해되어 키메라의 양팔에 분배되었다.
그와 함께 키메라의 양 팔이 날카로운 검과 같은 형태로 변형되더니 그 위로 분해 된 오벨리스크의 파편이 수십 겹씩 쌓여졌다.
전사 형이 놀랍다는 눈빛을 보였다.
“변신이 너무 빠른데? 저렇게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니. 사기잖아.”
“네. 아무래도 그런가 보네요.”
방패 형태에서는 오벨리스크를 중첩시켜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광역기를 막아낼 정도로 방어력을 낼 수도 있는데.
지금은 그 오벨리스크를 팔 쪽에 모아서 검신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지금 저 오벨리스크 검신들은.
그만큼의 공격력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곧 중간에서 카샤스 대공의 용신검과 키메라의 두 적색 오벨리스크 검들이 맞부딪혔다.
카가가각!!
키이이잉!!
콰아아앙!!
거칠게 쇠들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의 공명 소리 역시 세차게 그들 사이에서 울려 퍼졌고.
동시에 두 강력한 힘들의 충돌로 인한 충격파도 연속으로 퍼져 나왔다.
딱 한 번의 충돌이었지만.
확실한 건.
이전에 카샤스 대공이 튕겨나갔던 것에 비해.
지금은 전혀 키메라의 힘에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엔 카샤스 대공의 등 뒤로 세차게 황금빛 기류가 터지면서 더욱 힘을 추가하자 키메라 역시도 그에 질세라 등 뒤의 날개로 붉은 빛이 더욱 진하게 뿜어져 나왔다.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랄까.
그리고는 수십 번에 달하는 일격들을 서로에게 동시에 뿌려냈다.
카가가강!!
키이이익!!
황금빛의 궤적과 붉은색의 검신들이 수차례 허공을 수놓으면서 치고 박기를 연이어 하더니 곧 마지막 일격을 서로에게 날리고는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이어진 잠시 소강 상태였지만.
누구 하나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어놓지 않았다.
그걸 느꼈는지 전사 형이 감탄하듯 말했다.
“기세 싸움 한 번 살벌하게 하네요.”
전사 형의 말에 재중이 형이 답해주었다.
“초반 기세에서 밀리면 계속 밀리는 걸 알 테니까. 절대 밀릴 수 없을 거다.”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우리 영웅이 조금 부족하긴 하네. 아직 제대로 각성한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재중이 형 말대로 용신검을 든 카샤스 대공이 초반에 조금씩 뒤로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아주 작지만 용신화의 비늘에 약간의 피해가 있기도 했고.
분명히 키메라의 검신이 닿았던 흔적이었다.
그렇다고 확 갈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카샤스 대공이 첫 전투에서 밀렸다는 뜻이 되긴 했다.
“반대로 키메라는 익을 대로 익어서 말이야.”
생각해보니 카샤스 대공은 저 용신화 형태로 변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익숙해지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터.
그와 달리 키메라는 꽤 오랜 시간동안 저런 상태를 유지한데다가 실전 역시 몇 번 겪은 상태였다.
현재 둘의 힘 차이가 크게 차이 안 난다면…….
아직까지는 키메라의 손을 들어줄 수 있으려나.
“그래도 금방 적응할 거야. 키메라와 달리 이쪽은 전투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하긴 그렇겠네요.”
꼭 성마대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이전부터 카샤스 대공은 늘상 전장에 살고 있었다.
타의든 자의든 상관없이.
그 전투 경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곧 카샤스 대공이 침묵을 깨고 용신검에 뭔가의 기운을 모았고.
다시 한 번 키메라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용신검이 휘둘러 질 때마다 검신에서 황금빛 용들의 형상들이 뭉쳐 쏘아지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이 전부 원거리 공격인 것 마냥.
그리고 그걸 키메라가 일일이 오벨리스크 검신들을 휘둘러 빠르게 쳐내었다.
콰과광!!
콰아앙!!
피할 수도 없게 사방을 점하며 날아드는 백여 발이 넘는 기운들을 정신없이 일일이 쳐내는 동안.
다시 기운을 한데 모은 용신검에서 폭발적인 기세로 거대한 용이 뿜어져 나갔다.
이전의 것과는 달리 강력한 기운이 뿜어지자 키메라가 빠르게 방어 형태의 오벨리스크로 변형시켰다.
전방으로 쉴드형 오벨리스크를 들어 올려 막는 순간.
갑자기 카샤스 대공의 신형이 녹아들 듯 사라졌다가 키메라의 뒤편에서 나타나더니 용신검을 그대로 키메라의 허리에 박아 넣었다.
카가각!!
푸우욱!!
“키아악!!”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용신검에 찬란한 황금빛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마치 지금의 순간을 위해 준비한 듯.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