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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27화 (1,327/1,404)
  • #1327화 키메라 (3)

    미완성이라 이성이 없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생존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할 만큼 본능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증거로 그랜드 크로스를 맞고 위험하다고 여기는 순간 바로 자리를 이탈해서 새 먹이를 찾아 나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타란 제국군과 카샤스 대공군으로 포식을 한 키메라 녀석이 근처까지 날아오긴 했으나.

    그렇다고 바로 카샤스 대공과 천사들을 노리진 않았다.

    분명히 오자마자 저들을 한 번에 칠 수 있었을 텐데.

    마치 주변을 탐색이라도 하듯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눈치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다들 각자의 스킬을 준비하면서 숨죽이고 이 상황을 지켜봤다.

    일단 키메라의 신체는 원상복구가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반쯤 날아갔던 모습은 지금은 온데간데 찾아볼 수 없고.

    역시 예상했던 대로.

    먹이를 먹어치워서 자신의 신체를 복구한 듯 했다.

    키메라의 몸을 감싸고 있던 오벨리스크 역시도 마찬가지.

    오벨리스크 파편으로 촘촘히 몸 주변을 두른 걸 봐서는 마력이나 체력 역시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왜 저렇게까지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거지?

    신체가 원래대로 돌아갔다면 더 이상 꺼릴 것이 없을 텐데.

    <주호> 안 속는 거 아닐까요?

    혹시라도 은신 상태가 들켰을까 봐 조마조마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만약 마왕 헤르게니아가 걸어준 은신이 들켰다면 이미 키메라 녀석이 우리를 공격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다른 이유라는 건데…….

    같이 지켜보고 있던 재중이 형이 역시 키메라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불멸> 글쎄. 내가 보기엔 꽤 조심하는 것 같은데?

    <주호> 저 녀석이 뭘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자 재중이 형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불멸> 너 말이야. 너. 아마 저 녀석. 지금쯤 너만 찾고 있을 거다.

    <주호> 흐음. 저 말인가요.

    <불멸> 그래. 저 녀석이 키메라로 만들어지진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고려해보면. 세상에 나와서 가장 큰 타격을 입힌 게 바로 너일 테니까.

    확실히 재중이 형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타란 제국 황제는 애초에 큰 피해를 주지 못하고 바로 쓰러졌다.

    고대 마룡은 대치 상태에서 제대로 된 접전이 없었고.

    이 상황에서 실상 키메라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건 바로 나였다.

    <불멸> 이성이 없는 본능뿐이니까 오히려 더 경계하고 있을 거야. 저 녀석 입장에선 생존 본능에 바로 맞닿으니.

    <주호> 그럼 지금 저렇게 주위를 맴도는 게 저를 찾고 있는 셈이네요.

    <불멸> 아마도. 주변에 네가 없다는 확신이 들어야 움직일 거다.

    경계 대상 1호인가…….

    그렇게 키메라가 얼마나 주변을 배회하고 날아다녔을까.

    한참을 뒤져도 내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키메라 녀석의 시선이 카샤스 대공과 천사들 쪽으로 돌아서며 날아다니는 걸 멈췄다.

    <불멸> 이성도 없는 녀석이 꽤나 철저하네.

    <주호> 그러게요. 이렇게 오래 살필 줄은 몰랐어요.

    이미 필요한 스킬들을 최대로 차징하고도 남을 시간동안 녀석은 계속 살피기만 했다.

    그리고 이제 확실히 판단이 섰는지 만족스러워 하는 얼굴로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마도 저건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밑에 뷔페처럼 깔려 있는데도 건들지 못했던 대식가의 표정이랄까.

    이제야 포식을 하게 될 상황을 즐겁게 상상하며 지상에 착지하자 카샤스 대공, 그리고 최상급 천사 이베스와 로엔이 동시에 키메라를 둘러쌓다.

    그 뒤로 다른 천사들 역시 포위망을 만들었고.

    어떻게 보면 키메라에게는 이 자리가 최고의 만찬이었다.

    타란 제국 최강의 용혈과 최상급 천사 둘에 다른 천사들까지.

    당연히 키메라 녀석의 지금 표정은 기쁨을 참을 수가 없는 딱 그런 표정이었다.

    “키아아악!”

    마치 몬스터의 그것처럼 기쁨에 찬 하울링을 터트리자 그 진동만으로 이베스와 로엔을 포함한 천사들의 신체가 크게 뒤로 밀려 나갔다.

    몇몇 천사들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면서 무릎을 꿇고 쓰러졌고.

    단순히 하울링만으로 천사들을 무력화 시킨다라…….

    키메라의 전투력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한 듯 했다.

    그나마 카샤스 대공만이 정면 바닥으로 대검의 날을 찍어 하울링의 파장을 막아내면서 제 자리에서 온전히 버텨냈다.

    그러자 키메라의 시선이 카샤스 대공에게 집중되었다.

    “카악?”

    저 표정만 보면 당연히 날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려나?

    카샤스 대공이 대검을 어림도 없다는 듯 말했다.

    “고작 이것뿐이냐?”

    대놓고 도발이라.

    평소의 카샤스 대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이지만.

    지금은 미끼의 역할에 충실한 듯 했다.

    카샤스 대공의 도발에 짜증이라도 난 듯 곧장 키메라가 두 천사 날개를 펼치면서 급가속을 걸어 카샤스 대공에게 쏘아져 나갔다.

    <불멸> 가만히 서 있는 상태에서도 저런 가속이라니. 저 천사 날개가 진짜 사기긴 사기네.

    <주호> 네. 저 날개만 꺾으면 기동력을 확 줄일 수 있을 텐데요.

    키메라의 발을 묶어놔야지 우리가 준비한 스킬들을 제대로 먹여줄 수 있을 것이다.

    저 높은 하늘에서 날아다닐 고대 마룡의 스킬도 마찬가지고.

    과연 카샤스 대공이 거기까지 해줄 수 있을지…….

    일단 지금은 그를 믿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면.

    재중이 형 말대로 키메라가 달아나 버릴지도 모르니까.

    급격하게 가까워진 키메라의 두 팔이 마치 검신처럼 변형이 되었고 그 두 팔을 교차로 빠르게 휘두르자 카샤스 대공 역시 대검을 크게 휘두르면서 앞으로 치고 나갔다.

    휘우웅!!

    카가가각!!

    멀리서 들릴 정도의 대기를 가르는 파공음들과 쇠가 갈리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오더니 이내 카샤스 대공이 뒤로 튕겨 나가버렸다.

    “큭!”

    카샤스 대공이 비록 용신검을 들고 있지 않다고 해도.

    최강의 영웅임에는 틀림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진 파워에서 역부족인 듯 했다.

    단 한 번의 격돌이었지만.

    현재 키메라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

    <불멸> 정면에서 부딪혀서는 승산이 없어.

    재중이 형 역시 같은 생각이었고.

    그렇게 카샤스 대공이 튕겨나가자 양옆으로 이베스와 로엔이 서로 반대편 방향에서 천사 날개를 펼치고 빠르게 달려들었다.

    키메라와 마찬가지로 저 천사들 역시도 천사 날개를 가지고 있으니까.

    비록 급은 낮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가속을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양 옆에서 동시에 달려들자 키메라가 살짝 인상을 쓰고는 그대로 한 녀석을 내버려 두고 그대로 등을 보이며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아예 등을 내준다고?

    보통은 포위를 당하면 양쪽 다 신경 쓴다고 멈칫하다가 그 자리에서 합격을 받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키메라는 한쪽의 방어를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그런데 저것도 충분히 이유가 있었다.

    갑자기 급가속이 걸리며 키메라의 몸이 튀어 나가자 아예 한쪽의 공격은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져서 따라잡지 못한다고 해야 하나.

    반대로 가속이 붙은 방향 쪽은 그와 완전히 달랐다.

    잠깐 사이에 서로의 거리가 확 줄어들면서 코앞까지 붙어버렸으니까.

    달려들던 천사뿐만 아니라 키메라도 급가속을 걸었으니 서로의 거리가 생각 이상으로 너무 좁혀져 버렸다.

    <불멸> 저래서는 포위가 의미가 없잖아.

    그리고는 바로 달려들던 로엔의 돌진 공격을 너무 쉽게 피하면서 검신으로 변한 한쪽 팔을 로엔의 복부에 강하게 찔러 넣었다.

    푸욱!!

    “크아악!!”

    원래 키메라의 공격도 강력한데.

    거기에 서로 거리를 좁히던 가속까지 더해져서 그 충격이 몇 배로 들어갔다.

    최상급 천사 정도로는 상대가 전혀 안 된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로엔!!”

    뒤늦게 따라붙은 이베스가 하얀 검신을 휘두르면서 키메라를 위협했지만.

    그 순간.

    키메라가 변형된 자신의 팔에 꿰뚫린 로엔의 신체를 반대로 돌려 이베스의 앞에다가 들이댔다.

    “미친……!”

    그러자 이베스가 바로 가속을 멈추면서 휘두르던 검의 궤적을 억지로 틀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속이 붙은 상황에서 급하게 검의 궤적을 비트는 행동이 제대로 제어가 될 리가 있나.

    당연히 자세가 크게 무너지며 키메라에게 틈을 내주었다.

    이 상황을 놓칠 키메라도 아니었고.

    키메라가 남아 있던 다른 팔을 그대로 쏘아내 이베스의 옆구리를 강하게 베어내자 바로 피분수가 터지며 이베스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두 최상급 천사들이 동시에 달라붙었는데도.

    키메라가 이들을 농락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주호> 아예 상대도 안 되네요.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저 최상급 천사들이 어느 정도 카샤스 대공에게 시간을 벌어줄 것이야 여겼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냥 처참하게 발려버렸다.

    만약 카샤스 대공이 저 자리에 없었다면.

    이미 첫 하울링 때 천사들이 전부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럼 미끼의 의미도 없어지고.

    뭐 천사들까지 다 함께 광역기로 죽여 버린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미끼라고 들이 밀어놓고 다 같이 죽이는 건 양심상 못 할 짓이지.

    어쨌거나 저들은 날 믿고 목숨을 건 녀석들인데.

    그렇게 하면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두 최상급 천사들에게 양팔이 모두 묶인 키메라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빠르게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카샤스 대공?

    언제 뛰어올랐지?

    저건 아마도 두 천사들이 시선을 끄는 동안.

    카메라의 눈을 피해 공중으로 뛰어오른 듯 했다.

    그리고 지금 카샤스 대공이 들고 있는 대검이 붉게 달아오르면서 오러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죽어!!”

    곧 지상을 향해 카샤스 대공의 대검이 휘둘러지자 잔뜩 모여있던 오러들이 용의 형상으로 수십 갈래로 나뉘어져 곧 폭풍처럼 회전해 완전히 합쳐지면서 아래로 몰아쳤다.

    지금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카샤스 대공만의 고유 스킬이려나?

    붉게 달아오른 폭풍의 비가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리며 키메라를 압박하자 올려다보던 키메라의 표정이 완전히 썩어버렸다.

    아무리 키메라가 방어가 탄탄하다고는 해도.

    카샤스 대공의 저 고유 스킬에 피해를 안 입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자 바로 키메라가 급가속을 걸면서 튀어 나가려고 했는데…….

    최상급 천사 이베스와 로엔이 두 팔을 뻗어 키메라의 팔들을 잡더니 동시에 천사 날개들을 크게 펼쳐냈다.

    마치 키메라가 튀어 나가지 못하도록 잡기라도 하겠다는 듯 천사들의 날개를 역방향으로 펼치며 제동을 걸었다.

    “어딜 튀려고!”

    “못 가! 이 새끼야!”

    둘 다 악을 쓰면서 키메라를 잡아당기자 당황한 듯 키메라가 큰 괴성을 질러댔다.

    “키아아악!!”

    그리고 어떻게든 두 천사를 뿌리치려고 했지만.

    두 천사들도 대놓고 엎어져서 붙들고 있는 중이라.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동안 카샤스 대공의 고유 스킬이 그대로 키메라를 덮쳤다.

    후아아앙!!

    콰과과광!!

    붉은 용의 비가 강렬한 폭발력과 함께 키메라의 몸 전체를 터트리면서 그 화력을 뽐냈다.

    두 천사들도 워낙 가깝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 스킬에 휘말려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고.

    공중에서 일직선으로 낙하한 카샤스 대공이 그 폭발 안으로 뛰어내리더니 대검의 날을 그대로 키메라의 가슴에 내려찍었다.

    푸우욱!!

    동시에 키메라의 몸이 거대한 대검의 날과 함께 꼬치 끼워지듯 꿰뚫리며 대지에 박혀버렸다.

    “키에에엑!!”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아예 대검을 손에서 놓아버리고는 너덜너덜해진 두 천사들의 팔들을 억지로 잡아채 폭발 바깥으로 끌어내며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우리 쪽을 향해 크게 외쳤다.

    “주호 왕자!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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