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6화 키메라 (2)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는 우리가 키메라를 데리고 나왔다고만 생각했지.
정작 그걸 만든 녀석이 누구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조차 타란 제국성 지하로 내려가지 않았다면 그 안에 뭐가 있었을지 전혀 알 수 없었을 테니까.
설마 대천사가 키메라 같은 녀석을 만들고 있을 거라고는 직접 보기 전까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당연히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는 키메라가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테고.
키메라가 자신을 먹어치울 거라고 하는 말에 카브레시아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버렸다.
[ 무슨 뜻이지? ]
“말 그대로다. 키메라는 천사와 용족의 힘을 빌려 만든 존재니까. 용족의 끝에 달해 있는 네 신체를 차지하면 보다 강력해질 거다.”
미완성 상태라 이성이 없는 저 키메라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무래도 보다 완성 상태에 가깝게 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사실은 내 생각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뭐 그 의도야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키메라가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노린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자 곧 카브레시아에게서 강렬한 기운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방의 공기를 무겁게 압도하는 그 기운에 순간 감각이 죄다 활성화되면서 경고음을 울려왔다.
저건 명백한 분노.
[ 감히 키메라 따위가……! ]
고대 마룡 입장에서는 키메라 같은 존재들은 발 아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실상 대천사가 만들어낸 저 키메라는 그와는 달리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오벨리스크라는 사기 아이템을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으니까.
일반적인 키메라와는 이미 그 품질에서부터 확연하게 차이가 있는 셈이었다.
이제 적당히 양념이 잘 뿌려진 것 같자 카브레시아에게 말했다.
“우리도 네가 키메라 따위에게 먹히는 건 원하지 않아.”
[ 내가 고작 저따위 녀석에게 먹힐 것 같으냐? ]
“시간만 주어진다면?”
이건 카브레시아를 도발하기 위함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이 꽤 심각하다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지.
카브레시아 녀석이 내 말을 어떻게 알아들을지는 모르겠다만.
곧 녀석이 거대한 이빨들을 바득 갈아대는 게 보였다.
으득!
덩치가 덩치다 보니 이 갈리는 소리도 크네.
그만큼 카브레시아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일 터다.
“시간은 절대 우리 편이 아니야. 카브레시아. 너도 알 텐데? 이렇게 대화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너와 우리 힘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당장 나나 우리 팀들은 보유하고 있는 체력 물약이 있으니 적어도 이 물약이 완전히 소모될 때까지는 버티려고 하면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뭐 그것도 전투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상황에 한해서 말이지.
만약 여기서 키메라와 전투를 하게 되면 그 물약의 소모는 급격하게 빨라지게 된다.
반대로 그만큼 키메라의 힘과 체력은 올라가게 될 테고.
카브레시아 역시 자신의 피부와 비늘 사이로 줄기줄기 빠져나가는 붉은 기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고대 마룡쯤 되는 녀석이 이런 현상을 모를 리가 절대 없었다.
지금쯤 자신의 남은 체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이미 파악이 끝났을 테고.
아마 카브레시아가 선뜻 우리에게 대답해준 것은.
이런 이유가 복합적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낭비라 생각했는지 카브레시아의 기운이 한참 뿜어져 나오다가 조금씩 가라앉자 곧장 말을 꺼냈다.
“두 번의 전투는 없어. 딱 한 번으로 끝내야 해.”
한 번 정도는 가진 전력을 다해서 전투를 치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두 번이 되면 안 된다.
일단 물약이 부족한 것도 부족한 거지만.
걷잡을 수 없이 키메라가 강해지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녀석이 아직 미완성인 상태에 힘이 부족한 지금.
반대로 우리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가진 지금만이.
키메라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잠시 생각을 하던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이내 기운을 전부 갈무리하고는 할 수 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 이번 한 번뿐이다. ]
“오케이. 그 대답이 듣고 싶었어.”
《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일시적으로 유저 『 주호 』 님에 대한 적대 상태를 해제합니다. 》
시스템이 아예 보증해주는 상황이라…….
이 정도라면 적어도 뒤치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중간에 상황이 바뀐다며 또 모르겠지만.
일단은 키메라를 상대하기 위한 전력은 마련된 셈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실피드를 하강시켜 지상으로 내려갔다.
착지하자마자 재중이 형과 우리 팀이 내게 다가왔다.
“방금 시스템 메시지 봤다.”
“네. 어떻게 잘 되긴 했네요.”
이쁜소녀는 깜짝 놀라서 외쳤고.
“와. 대박! 고대 마룡하고 한 편이라니.”
나 외에도 우리 팀 전체에게 시스템이 적용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왕 헤르게니아가 오더니 역시 놀란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고대 마룡과 대화가 가능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누구도 시도를 안 해봤으니까 모를 수밖에.”
정말 어느 미친놈이 고대 마룡 앞에 가서 대화를 하려고 할까.
솔직히 나도 반쯤은 포기한 상태로 간 건데.
일이 생각 이상으로 잘 풀렸다.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야.”
“일시적인 동맹이다?”
“그렇지. 당장 키메라를 잡고 나면 카브레시아 녀석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그때 재중이 형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자.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기로 하고. 어차피 키메라만 잡으면 제물의 결계가 사라지니까.”
“더 이상 여기 묶여 있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그래.”
재중이 형 말대로 당장은 제물의 결계가 타란 제국성에 펼쳐져 있어서 이탈하지 못할 뿐.
그때쯤 되면 그런 걱정은 사라지게 된다.
“그럼 어디 한 번 제물을 모아볼까요?”
그러면서 멀찍하게 떨어져 있던 최상급 천사들인 이베스와 로엔.
추가로 몇몇 천사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희 말입니까.”
“어. 너네들.”
자신들이 제물이라는 말에 좋아할 만한 녀석들이 있을까 싶긴 한데.
이쪽이 일단은 명색이 대천사라.
찍소리도 못하고 명령을 따라야 했다.
“우린 너희를 놔두고 다 멀리서 지켜볼 거다. 일단은 키메라를 끌어들여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최상급인 이베스가 먼저 대답하자 다른 천사들 역시 할 수 없이 따르는 모양새였다.
그리고는 시선을 돌려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단체로 기척을 숨길 수 있는 마법 같은 것 없어?”
함정을 파려면 적어도 우리가 근처에 대기하고 있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된다.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잠시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이지만 않으면. 광역 은신 정도는 걸어줄 수 있어.”
“그래?”
생각 이상으로 쓸모가 많네.
그리고 광역 은신 같은 스킬은.
아직 유저들에게 풀리지 않은 스킬이기도 했다.
“그거 나중에 쟤들도 좀 가르쳐줘라.”
그러면서 챠밍과 막내별을 가리키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혀를 쑥 내밀면서 말했다.
“공짜로?”
“너…… 키메라 잡으면. 연구할 거 아냐?”
“헤에. 그걸 나한테 넘겨주게?”
“전부는 말고. 네 마법 값어치만큼만.”
그 순간.
마왕 헤르게니아의 눈빛이 반짝이면서 챠밍과 막내별에게 물었다.
“너네들 뭐 더 배우고 싶은 거 없어?”
“네?”
“예……?”
“마법. 원하는 거 가르쳐줄게.”
그 말에 챠밍과 막내별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마왕이 직접 마법을 가르쳐준다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너 지금 마법 값어치만큼 키메라를 넘겨준다고 더 가르쳐주려고 하는 거냐?”
“왜? 안 돼?”
순간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는 바로 판단을 내렸다.
안 될 게 머냐.
당연히 이건 최상의 거래였다.
어차피 키메라는 잡아야 하는 데다가.
잡고 난 뒤에 뭐가 나올지는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마왕 랭크 수준의 스킬이라면.
절대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키메라는 전부 다 넘겨줄 것도 아니니까.
“딜?”
“오케이. 딜.”
마왕 헤르게니아가 직접 전투 계열의 마왕은 아니라고 해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그걸 보고 있던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잡지도 않은 키메라 가지고 벌써 흥정이냐.”
“결국 잡을 거잖아요?”
“하긴. 못 잡으면 우리가 죽을 판이니까.”
그러면서 하늘 위를 날고 있는 고대 마룡을 쳐다보았다.
“저 큰 녀석은 무슨 수로 숨긴담?”
“그건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생각나는 게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 녀석. 자체적으로 전체 은신이 되는 놈이었지.”
전에 고대 마룡이 날아다니는 걸 타란 제국 함대가 포착하지 못한 이유.
그건 바로 카브레시아 스스로 은신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근데 저 녀석. 공격하면서도 은신을 했었잖아.”
“아. 그렇네요.”
보통은 공격이나 피격을 당하면 은신이 풀리게 된다.
하지만 카브레시아는 아니었다.
검은 용암을 들이부으면서도 은신 상태는 여전히 유지를 하고 있었지.
그때 옆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마법이 아니야.”
“그래?”
“응. 고대 마룡의 비늘이 은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거야.”
“굉장하네.”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렇게 말하는 거라면 확실하다고 보면 된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농담조로 말했다.
“나중에 몇 개 좀 떼어달라고 할까?”
“줄까요?”
“안 주겠지.”
뭐 어쨌든 고대 마룡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그러고는 저 멀리 하늘을 쳐다보았다.
내 감각에 가장 격하게 움직이고 있는 한 녀석.
그 녀석이 어느 순간 제 자리에서 멈춰 버렸다.
“아마 키메라 녀석의 식사가 끝난 모양이에요.”
제물의 결계에 아이샤 타란을 데리고 들어오지 않을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카샤스 대공만큼이나 강렬한 용혈은.
분명 키메라의 관심을 끌었을 테니까.
레오나 에센시아와 라첼을 포함한 에센시아 기사들은 우리 근처에서 대기 중이니 안심이고.
만약 키메라 녀석이 그쪽으로 향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았을 것이다.
고작 이런 곳에서 키메라에게 죽으라고 데리고 온 게 아니니까.
마왕 헤르게니아 역시 먼 하늘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녀석이 움직여.”
“응. 이쪽으로 오는 중이네.”
타란 제국군과 카샤스 대공군을 학살하면서 신체와 힘을 충분히 보충한 모양인지 이전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카샤스 대공이 뭔가 결심한 듯 내게 말했다.
“나 역시 미끼로 서도록 하지.”
“뭐?”
“분명 녀석이 원하는 건 보다 강한 용혈이겠지.”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전부 다 사라지면 반드시 의심할 거다.”
으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카샤스 대공을 미끼로 쓰기에는…….
내가 망설이자 카샤스 대공이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지 않나?”
“……그렇긴 해.”
“그렇다면 확률이 높은 곳에 걸어라.”
확실히 카샤스 대공과 최상급 천사들이 몰려 있으면.
키메라는 절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할 것이다.
최강의 용족.
그리고 최상급 천사들.
이건 아마도 녀석이 이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만찬일 테니까.
고대 마룡을 상대하기 위한 발판으로 이만한 미끼는 없었다.
“하. 좋아. 하지만 문제 생기면 바로 빠져라.”
“알았다.”
녀석은 모르겠지만.
카샤스 대공을 이런 곳에 잃는 건.
성마대전을 포기하겠다는 뜻과 다름없으니까.
바로 하늘로 올라가 카브레시아에게 말했다.
“은신 가능하지?”
[ 물론이다. ]
그 순간.
녀석의 비늘들일 일제히 바깥으로 들리는가 싶더니 곧 거대한 동체가 한꺼번에 하늘에 동화되듯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역시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이 맞았네.
이건 마법이 아니라 아이템 빨이다.
곧장 다시 내려와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자 그녀가 광역 은신 마법을 시전했다.
일대의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은신으로 모습이 사라지자 재중이 형도 놀란 듯 말했다.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마력으로는 시도조차 못 하겠는데?”
“네. 굉장하네요.”
심지어 이걸 오래 유지해야 한다면 들어가는 마력도 상상을 초월할 터.
가르쳐줘도 못 쓸 수도 있으려나?
그리고 우리 팀 모두에게 말했다.
“가장 강력한 기술을 최대한으로 차징해요.”
어차피 한 번 스킬을 쓰고 나면 은신이 풀릴 터.
아마도 카브레시아 역시 가장 강력한 스킬을 준비 중일 것이다.
두 번째 기회는 없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까지 날아왔던 키메라가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카샤스 대공과 천사들을 발견하고는 급격하게 방향을 꺾어서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이 미끼를 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