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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24화 (1,324/1,404)
  • #1324화 내전의 끝 (12)

    그랜드 크로스가 긁고 지나간 대지는 지글지글 타오르는 중이었고.

    중심에는 키메라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마도 키메라 녀석은 우리 팀을 한 번에 죽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전사 형의 방어력과 우리 팀의 빠른 대처로 인해 그런 키메라의 노림수는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다.

    특히 내게 뒤를 완전히 내어주게 되어 무방비에 가까운 상태로 그랜드 크로스에 당해 지금은 신체의 절반이 날아가 버린 상황.

    솔직히 이 한 방에 키메라 녀석을 완전히 죽일 수 있었으면 베스트였겠지만.

    아쉽게도 녀석의 신체 일부 날리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랜드 크로스가 성 속성이 아니라.

    마 속성의 스킬이었다면.

    어쩌면 이 한 방으로 녀석을 완전히 보내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아주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그랜드 크로스를 쓴 상태라 체력과 마력이 순식간에 바닥난 상태에서 막내별이 빠르게 달려와 내 체력을 채워주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키메라에게로 향해 있었다.

    “세상에. 그만한 위력으로도 안 죽었네요.”

    “뭐 그렇죠. 이렇게 쉽게 죽어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요.”

    뒤가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고는 하나.

    어쩌면 고대 마룡만큼이나 강할지도 모르는 녀석을 그랜드 크로스 한 방으로 죽이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이번에 저만큼의 피해를 준 것도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만약 녀석이 우리 팀을 얕잡아 보고 방심하지 않았다면.

    방금과 같은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일격을 당해 피해가 큰 키메라나.

    그랜드 크로스를 써서 상태가 엉망인 내 쪽이나.

    한 발짝도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 쪽에는 나를 대신해서 싸워줄 동료들이 있었다.

    바로 재중이 형이 고대 마룡의 창을 들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말했다.

    “먼저 간다. 빨리 회복하고 뛰어들어.”

    “네. 부탁해요.”

    카샤스 대공도 마찬가지.

    용의 이빨로 만들어진 대공 전용의 커다란 대검을 들고 재중이 형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여기서 저 녀석을 어떻게든 죽이겠다.”

    “할 수 있다면.”

    둘 다 동시에 오러를 끌어올리면서 내 옆을 지나 달려나가자 키메라가 괴성을 질러댔다.

    “카하하악!!”

    지금 녀석의 상태는 신체의 절반이 날아가 버려 정상이 아니었다.

    전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라.

    무엇보다 신체가 날아가는 저만한 피해를 받고 난 뒤에는 반드시 그에 맞는 경직 상태가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일격을 날리려면 지금이 최선의 상황이지.

    그걸 너무 잘 아는지.

    재중이 형의 고대 마룡의 창 전체에 막대한 기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지금 드래곤 버스터를 쓸 생각인가?

    확실히 저 스킬이라면 빈사 상태가 된 키메라 녀석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 위력만으로만 치면.

    성마대전을 통틀어서 손에 꼽히는 위력을 낼 테니까.

    그리고 바로 옆에는 카샤스 대공 역시 자신의 오러를 끌어올려 뭔가의 스킬을 준비 중이었다.

    지금 용신검이 없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카샤스 대공에게 필살기가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시기상으로 이르긴 해도.

    최강의 영웅에 걸맞는 스킬 정도는 보유하고 있을 터.

    옆을 쳐다보니 이미 챠밍도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최강의 마법을 시전하는 중이었다.

    마왕 아이셔스 스태프에 내장된 기술 중에 가장 강력한 최종 스킬.

    시전 시간이 다소 걸리긴 해도.

    지금처럼 키메라가 경직이 걸려 있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제 위력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전사 형과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역시도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스킬들을 준비 중이었고.

    이 스킬들만 제대로 맞출 수 있다면…….

    어쩌면 키메라를 이 자리에서 보낼 수도 있을지도.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일어났다.

    경직 상태로 제 자리에 있어야 하는 키메라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바로 사라져 버렸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하며 달려들던 재중이 형과 카샤스 대공이 바로 스킬을 중단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하. 경직 상태에서 사라져?”

    “순간 이동인가……”.

    당연히 우리 팀 역시 모든 스킬들을 바로 캔슬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다가 최종 스킬들을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렇게 시야에서 녀석이 사라져버리자 나 역시 바로 감각을 사방으로 퍼트리면서 키메라 녀석을 찾았다.

    눈으로 찾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넓은 공간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

    그러다 아주 멀리 있는 곳에서 뭔가의 소란이 일어난 것을 알아냈다.

    정확하게는.

    바로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혀를 찼다.

    “젠장. 저 녀석 지금 학살 중이에요.”

    내 말에 막내별이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학살요?”

    “네. 아까 외곽으로 대피시킨 카샤스 대공군 사이에 키메라 녀석이 뛰어들었어요.”

    그 뜻을 바로 눈치챈 듯 막내별이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카샤스 대공군 자체가 전부 용족…… 이죠.”

    “네. 심지어 천사들까지 있으니까.”

    용족과 천사.

    이건 키메라 녀석이 가진 신체 구성과 완전히 동일했다.

    그러니까 키메라가 카샤스 대공군에 뛰어든 이유는.

    누가 봐도 명확하다.

    곧장 내 옆으로 달려온 재중이 형 역시도 같은 생각을 한 듯 멀리 카샤스 대공군이 있는 방향 쪽을 쳐다보며 내게 말했다.

    “저 녀석. 아예 뷔페를 차렸네.”

    “네. 키메라에게는 최상의 조건일 거예요.”

    “그래. 몸을 회복하기에는 저만한 먹이도 없을 테니까.”

    아무리 키메라가 치명타를 입었다고는 하나.

    카샤스 대공군의 전력으로는 절대 키메라를 막지 못한다.

    애초에 체급 차이가 너무 나니까.

    반대로 키메라가 카샤스 대공군을 죽이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특히 카샤스 대공군이 죽으면.

    오벨리스크의 영향으로 흡수된 모든 마력이 죄다 키메라에게 전달될 것이다.

    거기다 이전에 타란 제국성 지하에서 최상급 천사를 먹어치우면서 신체가 점점 커졌던 것을 고려해봤을 때.

    용족과 천사들을 먹어치우면서 키메라의 신체를 회복할 테니까.

    우리 팀들 역시 전부 내게로 달려왔다.

    걱정이 한가득 담긴 표정으로.

    카샤스 대공 역시 급하게 달려오더니 이를 바득 갈았다.

    “감히 내 부하들을……!”

    그대로 튀어 나가려는 카샤스 대공을 손을 뻗어 말렸다.

    “이미 늦었어.”

    “늦었다고 해도 가야 한다.”

    “대책 없이 가면 개죽음이야. 그리고 너까지 잡히면 정말 답이 없다.”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다시 인상을 구겼다.

    아마 우리가 도달하는 순간.

    이미 키메라는 원하는 만큼 회복을 했을 것이다.

    표정을 굳힌 카샤스 대공이 내게 물었다.

    “저 녀석. 막을 방법이 없냐?”

    그 물음에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어려워. 저런 식으로 바로 회복을 해버리면.”

    당장 그랜드 크로스를 수십 발 때려 박을 수 있다고 해도.

    매번 키메라가 먹이를 먹어 회복을 해버린다면 답이 없었다.

    그리고 그 먹이인 카샤스 대공군과 천사들이 완전히 전멸해버린다고 해도 문제였다.

    과연 그때까지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그때 달려온 이베스와 로엔이 역시나 우리와 같은 방향을 보고는 우려 섞인 말을 했다.

    이건 새하얗게 질렸다는 표정이 더 맞으려나?

    “지금 천사들의 존재감이 계속 사라져가는 중입니다.”

    “알아.”

    “그럼 어떻게…….”

    “생각 중이야.”

    당장 눈앞의 최상급 천사들이 안 먹힌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려나.

    재중이 형이 이베스와 로엔을 흘깃 보더니 알겠다는 듯 말했다.

    “이 녀석들이 처음 목표였나 보네.”

    “네. 그런가 봐요. 챠밍 쪽을 노린 게 아니라.”

    최상급 천사 정도면 키메라에게 있어 최상의 만찬이었을 것이다.

    이베스와 로엔으로 하여금 우리 팀을 보호하라고 했었으니까 같은 장소에 있기도 했고.

    그 순간.

    최상급 천사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흐음.

    이게 되려나?

    그리고는 바로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형. 덫을 놓는 건 어때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나와 최상급 천사인 이베스와 로엔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곧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먹음직한 먹이로 유인하자는 거냐?”

    “네. 이 정도는 되어야 키메라 녀석도 혹하겠죠.”

    먹이라는 말에 이베스와 로엔의 몸이 바로 움찔했다.

    “저희 말…… 입니까?”

    그런 이베스와 로엔을 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 키메라를 불러들이기에는 최상의 미끼니까.”

    “…….”

    “…….”

    차마 대천사 앞에서 명령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속으로는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자신들을 미끼로 쓴다는 말이니까.

    그때 재중이 형도 한 수 더 거들었다.

    아까 생긴 크레이터 쪽을 쳐다보면서.

    “이왕 하는 거. 큰 것도 한 장 더 올리자.”

    그런 재중이 형의 시선에 모두가 크레이터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타란 제국 황제…….”

    확실히 타란 제국 황제 정도면.

    키메라 녀석이 혹할만한 최상의 미끼일 것이다.

    최상급 천사들보다 급이 높으니까.

    어지간한 녀석들 흡수하는 것보다는 말이지.

    그런데 과연 저 하늘의 고대 마룡이 이 상황을 그대로 지켜볼지는 의문이었다.

    전사 형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내게 물었다.

    “저건 어쩔 거냐? 지금 딱히 시비를 걸어오는 것 같지는 않은데…….”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현재 상공에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우리 주변을 배회하듯이 날고는 있는데 그렇다고 딱히 공격을 하거나 하진 않고 있었다.

    만약 녀석이 공격을 했다면 이렇게 여유 있게 작전이나 짜고 있을 순 없을 테니까.

    그러자 재중이 형이 추측을 내놓았다.

    “더 큰 적 앞에서 일단은 지켜보는 건가?”

    “키메라 말이죠?”

    그때 나르샤 누나가 내게 한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아까. 키메라가 그랜드 크로스에 맞아 쓰러졌을 때. 고대 마룡 역시 키메라를 공격할 준비를 하더라고. 처음에는 우리까지 공격하는지 알았는데. 방향이 키메라 쪽이었어.”

    “흐음.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고대 마룡이 단순히 네임드 몬스터라고 보기에는.

    마치 판단력이 유저의 그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상황에 따라 피아식별이 가능할 정도의 지능이라…….

    타란 제국성에 오벨리스크가 있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파괴하러 가는 것도 그렇고.

    만약 단순히 먹이를 찾거나 눈앞의 적들과 전투만을 해야 하는 몬스터의 습성이었다면.

    절대 저런 식으로 상황을 판단하진 못 한다.

    현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아닌지 이성적으로 생각이 가능하다면…….

    지금처럼 우리 주위를 배회하면서 그냥 지켜보는 것도 충분히 말이 된다.

    고개를 들어 고대 마룡을 쳐다보면서 말을 꺼냈다.

    “저 녀석. 당장 우리를 죽이는 일이. 자신에게 전혀 득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마자.

    옆에 실피드를 불러냈다.

    여기서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일이려나?

    그런 나를 다들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튀어요.”

    솔직히 이게 아니라면.

    답이 없는 건 맞으니까.

    지금은 그 조그만 가능성에 한 번 손을 들어봐야겠다.

    그리고는 바로 실피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정확하게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바로 앞까지.

    그런데 내가 바로 앞까지 날아왔는데도.

    고대 마룡은 가만히 내 쪽을 주시하기만 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지켜보는 것 마냥.

    휴.

    이게 통해야 할 텐데…….

    잠시 숨을 들이켰다가 고대 마룡을 보면서 한 마디 제안을 던졌다.

    “너. 우리하고 손 좀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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