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3화 내전의 끝 (11)
그동안은 지켜보기만 했던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역시도 우리만큼이나 키메라의 움직임을 막고 싶었던 것 같았다.
이건 졸지에 생각지도 못한 지원군이 생긴 느낌이려나…….
그렇다고 고대 마룡이 우리 편에서 싸운다는 건 또 아니었다.
이해관계가 잠시 맞아떨어져서 도움을 주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 증거로 고대 마룡이 소환해놓은 마법진들은 언제라도 우리까지 폭격할 수 있다는 듯 하늘을 휘황찬란하게 수놓고 있었으니까.
“카하악!!”
반대로 그만큼 짜증이 난 녀석은 따로 있었다.
타란 제국 황제의 신체를 차지하려고 했던 키메라가 고대 마룡이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찢어지는 괴성을 질러댔다.
자신의 일을 방해받아서 화가 잔뜩 난 것이었다.
내 옆으로 재중이 형이 다가오더니 대치 중인 둘을 보고는 말했다.
“상황이 꽤 묘하게 돌아가네.”
“그러게요.”
정확하게는 고대 마룡과 키메라.
그리고 우리가 타란 제국 황제의 몸을 가운데 두고 대치해 있다고 해야 하려나.
누구든지 한 발자국만 더 들어가면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공격할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균형이 깨지면…….
카샤스 대공도 섣불리 움직이기 힘들어져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몰라. 일단은 지켜 봐야해.”
우리가 먼저 나서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잘못하면 고대 마룡과 키메라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을 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라.
저들 중 하나만 적으로 돌려도 힘든데 둘 다 상대하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최악이다.
당장 키메라가 타란 제국 황제의 몸을 차지하게 되면.
그만큼 전력이 기울 것이다.
반대로 타란 제국 황제가 여기서 죽어버려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오벨리스크를 소유하고 있는 건 키메라 녀석이었으니까.
타란 제국 황제의 마력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건 매한가지다.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지 말을 흘렸다.
“몸을 주느냐 마력을 주느냐인가. 정말 귀찮은데.”
그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타란 제국 황제를 죽여야 하겠지만.
그러면 그만큼 키메라의 힘이 강해진다.
안 그래도 팽팽한 상황에 녀석에게 힘을 더해주는 건 답도 안 나온다.
재중이 형이 이 상황이 어이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졸지에 타란 제국 황제가 죽지 않게 지켜줘야 할 판이잖아.”
“정말 그렇네요.”
그렇게 얼마나 대치가 이루어졌을까.
갑자기 키메라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이 왜……?
타란 제국 황제를 노리고 있던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보고는 바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지금 녀석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챠밍을 비롯한 우리 팀이 있는 방향이었으니까.
재중이 형 역시도 이를 깨물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젠장. 저 녀석. 약한 쪽부터 잡을 생각이다.”
아무리 봐도 우리의 방해에 당장은 타란 제국 황제를 잡을 순 없을 것 같으니까.
아예 그 타겟을 바꾼 듯 했다.
“당장 피해!!”
재중이 형이 외치면서 달려나갔지만.
이미 천사 날개를 활짝 펴서 가속이 붙은 키메라의 속도를 따라잡는 건 무리였다.
“형! 바로 따라와요!”
그리고는 바로 쓸 수 있는 모든 가속을 몸에 걸었다.
【 대천사의 가호! 】
대천사의 날개가 등 뒤로 펼쳐지면서 1차 가속을 걸어주었고.
《 주호 님에게 『 용사 후보 전용 오러 Lv.10 (MAX) 』이 적용됩니다. 》
용사 후보 오러로 신체 능력을 끌어올린 뒤.
【 전투 형태 변형! 】
《 마왕 올펠 플레이트가 마력을 소모하여 전투 형태를 유지합니다. 》
《 해당 마왕의 능력 중 일부가 마왕 올펠 플레이트에 깃듭니다. 》
【 이중 가속! 】
전투형으로 변형된 마왕의 플레이트로 재차 추가 가속을 걸어주었다.
【 엑셀레이션! 】
여기에 초가속까지 연이어 거는 순간.
전신에 어마어마한 압력이 걸리며 대기를 찢어내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풍경이 내 뒤로 밀려나는 것만 같은.
아찔할 것 같은 가속을 어떻게든 제어해 달려나가면서 르아 카르테와 대천사의 검을 앞으로 들어 올리자 두 검이 부르르 떨리며 좌우로 대기를 갈라내는 게 느껴졌다.
제발!
늦지 마라.
이미 키메라보다 출발선이 늦었기에.
누군가 조금만 시간을 벌어주길 바랄 때.
우리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던 전사 형이 제일 먼저 반응해서 발뭉과 타이탄 라지 쉴드를 앞으로 세우면서 달려 나왔다.
지금 키메라의 공격력에 맞서 버틸 수 있는 건 전사 형이 유일하니까.
그렇게 전사 형이 앞을 가로막자 키메라가 괴성을 지르면서 세차게 타이탄 라지 쉴드 위를 팔로 후려쳤다.
콰아앙!!
딱 한 번의 공격이었지만.
그 한 방이 얼마나 강력한지 바로 전사 형의 몸이 타이탄 쉴드 채로 들어 올려지며 뒤로 튕겨 나가려는 찰나.
어느새 전사 형 뒤에서 나타난 이쁜소녀가 전사 형의 뒤를 받치면서 악을 썼다.
“오빠! 버텨요!!”
“그래!!”
그렇게 전사 형과 이쁜소녀가 동시에 버티자 잠시나마 키메라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었다.
“카하악!!”
둘이서 어떻게든 버텨내자 키메라가 다시 괴성을 질렀다.
아마도 단번에 방패 채로 뚫어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겠지.
하지만 전사 형의 방어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게 아무리 키메라라고 할지라도 말이지.
콰앙!!
콰아앙!!
연이은 두 방의 공격이 더 들어오자 전사 형이 악을 질렀다.
“젠장. 뭐가 이렇게 쎄……!”
그나마 전사 형의 방어력이 높아서 저렇게 버틴 거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림도 없었다.
전사 형이 어떻게든 막아내는 순간.
막내별의 회복 스킬이 폭포수처럼 연이어 전사 형을 향해 쏟아졌다.
겨우 막긴 했지만.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건 막을 수 없으니까.
타이밍 좋게 들어오는 힐에 전사 형도 안심하면서 그대로 앞으로 전진했다.
거기다 전사 형의 양옆으로 나르샤 누나가 날린 화살 십여 발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키메라가 마음대로 날뛸 수 없게 조금이라도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날린 모양이었고.
그런 화살들을 귀찮다는 듯이 한팔로 쳐내며 키메라가 괴성을 질러댔다.
“카하악!!”
하지만 그렇게 버티는 것도 잠시.
전사 형을 바로 뚫을 수 없다고 여긴 건지 키메라가 전사 형의 타이탄 라지 쉴드를 발로 박차면서 위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는 천사 날개를 펴서 공중에서 빠르게 가속을 걸었다.
그 순간.
전사 형과 이쁜소녀가 바닥에 납작 엎드리면서 외쳤다.
“챠밍! 지금이다!”
“언니! 날려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후방에서 대기를 얼리면서 날아온 챠밍의 거대한 얼음 폭풍이 튀어 오른 키메라의 몸을 거칠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카가가각!!
그 짧은 순간에.
전사 형, 이쁜소녀, 챠밍이 작전을 주고받은 듯 했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키메라가 튀어 오른 순간에 챠밍의 마법이 준비될 순 없었을 테니까.
이건 키메라 녀석의 다음 움직임까지도 예측할 수 있어야 나올 수 있는 연계였다.
거기다 나르샤 누나가 좌우로만 화살을 날린 것도 이제 이해가 됐다.
좌우가 아니라면.
키메라가 튀어나올 곳은.
공중밖에 없다.
챠밍의 한 방을 맞추기 위한 준비는 완벽했다.
잠시나마 공중에서 키메라를 묶어놓는 순간.
빠르게 따라잡던 내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초가속이 붙은 상태 그대로 몸을 날려 르아 카르테와 대천사의 검을 녀석의 등에 강하게 꽂아 넣었다.
푸우욱!!!
파아악!!
“키에에엑!!”
대기를 가를 정도로 가속이 붙은 상태라 그런지 이번에는 르아 카르테와 대천사의 검을 완전히 키메라의 등에 박아 넣을 수 있었다.
거기다 현재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전투 버프를 전부 걸어둔 상태라.
솔직히 이것마저도 안 통했다면 키메라를 상대하는 걸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통했다.
오벨리스크와 천사의 마력을 뚫어내고.
그 파편들로 붉게 덥힌 녀석의 비늘까지도 한 번에 뚫어내는 순간.
바로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으면서 르아 카르테와 대천사의 검을 더욱 찍어 누르고는 키메라 녀석에게 말했다.
“선 넘지 마! 새끼야.”
“카하아악!!”
지금껏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피해를 준 존재가 없어서 그런지 키메라가 더욱 큰 괴성을 질러댔다.
등 뒤에 박힌 두 검을 어떻게든 빼내기 위해서 몸을 뒤틀었지만.
이런 기회를 쉽게 놓칠 수는 없었다.
곧 키메라의 몸에 박혀있는 르아 카르테와 대천사의 검이 동시에 하얗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달아오르는 검들을 본 키메라 녀석은 뭔가 불길한 것이 온다는 사실을 직감이라도 한 듯.
다시 한 번 괴성을 질러댔다.
“카하악!!”
곧장 키메라가 두 천사 날개를 펼쳐 올리면서 날 떨쳐내기 위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게 통할지 모르겠지만……!”
바로 키메라 녀석의 몸 안에 박아 넣은 검들로 스킬을 시전했다.
【 그랜드 크로스! 】
화아아악!!
순간.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아찔한 빛의 폭발이 눈앞에서 터져 나왔다.
사방이 정적이라도 일어난 듯 새하얗게 세상이 물 들어갔고.
그 모든 빛의 힘이 키메라의 등을 타고 몸 한가운데서 폭발했다.
파아아아아!!
쿠와아아앙!!
키메라의 몸을 관통한 르아 카르테와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를 통해 그랜드 크로스의 폭발력이 그대로 전달되어왔고.
스킬의 화력이 죄다 키메라에게 먹혔다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다.
허공에만 쏴도 압도적으로 강력한 그랜드 크로스를.
아예 녀석의 몸에 처박은 상태로 내부에서부터 터트렸으니.
그것도 현재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버프를 받은 상태에서 최고의 마력을 지닌 상태로 쓴 그랜드 크로스였다.
위력만으로는 그간 썼던 그 어떤 스킬과는 비교 자체가 불허했다.
동시에 강렬한 폭발에 의해 두 검신에서 키메라 녀석의 몸이 찢겨지며 그대로 앞으로 튕겨나갔다.
그리고 여전히 그랜드 크로스의 빛에 파묻혀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키에에엑~~~!!!”
이제껏 들었던 괴성과는 차원이 다른 찢어지는 비명이 강렬한 폭발음에 묻혀 겨우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아무리 키메라가 강하다고 한들.
그랜드 크로스 역시 성마대전을 통틀어 손꼽히는 최상위의 스킬이었다.
딱 하나 걸리는 점은.
그랜드 크로스 자체가 성 속성의 스킬이라.
과연 이 대천사의 스킬이 용족과 천사의 키메라인 녀석에게 완벽하게 먹힐 것인가 하는 점 정도가 마음에 걸렸다.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랜드 크로스의 빛의 향연에 놀란 듯 나와 터져나가는 키메라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최상급 천사들인 이베스와 로엔을 포함한 하위 천사들은 아예 입을 쩍 벌리고는 넋 놓고 이 광경을 지켜봤다.
아마도 그들에게 있어서.
이 그랜드 크로스는 닿고 싶은 마지막 종착지인 스킬일 테니까.
“세상에……!”
“그랜드 크로스……!”
“천상의 십자가!”
마치 신앙이라고 되는 듯 그들은 두 손을 들어 올려 이 상황을 찬양했다.
이젠 앞으로 아니라고 해도 저들은 내가 대천사라고 믿을 것이다.
이런 위력을 내는 그랜드 크로스를 쓸 수 있는 게 대천사가 아니면 말도 안 되니까.
모든 것을 삭제해버리는 극에 달한 빛.
솔직히 이걸로 키메라가 죽어주었으면 최상이겠지만…….
빛이 잦아들 무렵.
그렇게 그랜드 크로스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대지와 공중을 갈라버리며 길게 뻗은 십자가가 남긴 형태만이 남아있었다.
다만 그렇게 엎어져 버린 흙더미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좌우로 반쯤 몸이 날아가 버린 키메라가 분노 가득한 눈빛을 한 채 내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휴. 그래. 쉽게 죽어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