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2화 내전의 끝 (10)
현재 무너진 크레이터의 중심 어딘가에 타란 제국 황제가 쓰러져 있을 테니.
녀석을 죽이려고 한다면 지금이 최적의 시기이긴 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카샤스 대공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음…….”
막상 죽일 기회가 오니까 망설이는 건가?
아니다.
평소 카샤스 대공을 성격을 고려해보면 이런 일에 미련을 가지거나 망설임을 남길 인물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성마대전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데.
“당장 죽이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어?”
내 질문에 카샤스 대공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내 누이를 죽이려던 황제를 굳이 살려둘 이유는 없다. 다만…….”
그러면서 카샤스 대공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와 새로운 적이 된 키메라가 긴장된 대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라도 앞으로 튀어 나갈 수 있다는 듯 서로 노려보면서.
“저 싸움에 황제가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거야?”
“어쩌면…….”
그런 카샤스 대공에게 전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미 황제는 그럴 힘을 잃었어. 타란 제국 수도에서 시민들을 죽여 얻은 오벨리스크의 힘은 전부 저 키메라가 가져갔으니까.”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잠시 생각해보더니 곧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타란 제국 황제가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와 동등한 전투를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저 오벨리스크의 힘 덕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오벨리스크를 전부 키메라가 차지한 상태였다.
키메라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저 오벨리스크의 파편들이 그 증거고.
반대로 타란 제국 황제는 오벨리스크로부터 받는 힘이 끊어지자 키메라의 공격들에 속수무책으로 밀려서 지금 크레이터에 처박혀 있었다.
이젠 아까와 같이 싸우려고 해도 그만한 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곧 카샤스 대공이 결심한 듯 표정을 굳히더니 아직도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크레이터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고는 나를 슬쩍 밀었다.
“따라가자. 당장 오벨리스크의 힘을 잃었다고 해도 아직 상당히 힘이 남아 있을 거야.”
“네. 가죠.”
그렇게 카샤스 대공의 뒤를 따라 걸어가자 우리가 따라오는 걸 눈치챈 듯 카샤스 대공이 슬쩍 뒤를 보더니 상관없다는 듯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카샤스 대공이 크레이터 중앙에 도달할 때쯤.
갑자기 섬뜩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들어올렸다.
재중이 형도 같은 걸 느꼈는지 역시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그리고 그곳에는 저 하늘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키메라의 시선이 있었다.
저 녀석.
여길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 다 보고 있었던 건가?
솔직히 고대 마룡만 보고 있어서 이쪽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닌 모양이었다.
바로 카샤스 대공에게 알리려는데 카샤스 대공 역시도 키메라의 시선을 느꼈는지 긴장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키메라가 우리를 내려다보는 동안 우리 역시 전투 준비를 마치고는 그대로 하늘을 주시했다.
그때 키메라의 시선이 우리가 아닌 타란 제국 황제에게 옮겨갔다.
이미 이겨버린 상대에게 왜 저렇게 관심을 가지는 거지?
특히 우리가 타란 제국 황제에게 접근하자 더욱 그런 낌새를 보였다.
마치 자신의 영역 표시라도 하려는 듯.
재중이 형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내게 말했다.
“키메라 저 녀석. 아무래도 타란 제국 황제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데…….”
“고대 마룡이 아니고요?”
당장 고대 마룡과 대치를 하고 있는 데다가.
녀석의 관심은 온통 고대 마룡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따르면 키메라 녀석이 고대 마룡의 신체를 원한다고 했던가?
그런데 굳이 타란 제국 황제를 왜?
그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런.
위치가 거의 겹쳐 있어서 착각한 거였어.
그런 생각은 재중이 형이 더 빨랐는지 급하게 외쳤다.
“저 녀석! 지금 노리는 게 타란 제국 황제가 아니라…… 카샤스 대공이다!”
그런 판단이 들기 무섭게 빠르게 카샤스 대공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키메라가 지상의 크레이터 중앙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칫.
너무 타란 제국 황제에게 몰두했어.
이미 힘이 다해버린 타란 제국 황제는 키메라에게는 그다지 흥미가 없는 존재겠지만.
카샤스 대공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현재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이들 중.
정상적인 힘으로만 치면 카샤스 대공이 고대 마룡과 키메라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키메라의 시선을 끌었을 것이다.
엄청난 가속으로 낙하하는 키메라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카샤스 대공이 빠르게 자리를 이탈해 뒤로 빠져나갔다.
그 위로 폭발적인 기세로 키메라가 떨어져 내렸다.
쿠우웅!!
마치 포탄이 터진 것마냥.
단순히 낙하하는 것만으로 다시 한 번 커다란 크레이터를 만들어낸 키메라가 용의 그것과 같은 두터운 두 다리로 하락 충격을 버텨내더니 그대로 다시 정면으로 튀어 나갔다.
충격이 있을 텐데도 전혀 타격이 없어?
그 말은 그만큼 저 키메라의 신체가 튼튼하다는 뜻일 것이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키메라의 뒤를 같이 따라붙으면서 혀를 찼다.
“과연 용족의 신체이려나?”
그리고는 표정을 굳히고서 내게 전달했다.
“방심하지 마. 용마족을 상대한다고 생각하고 붙어.”
“네.”
보통 용족.
그러니까 드래곤 형태의 녀석들은 덩치가 크기 때문에 저런 식으로 민첩한 움직임을 가져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저건 용족의 신체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인간형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 준다.
그만큼 체격이 작기도 하고.
민첩함이나 기동력에서 역시도 비교할 수 없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신체가 더없이 단단한데.
움직임은 인간형의 그것과 같다면.
용마족과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전에 용마족을 상대하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고려해본다면.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저 키메라를 상대로는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뒤를 따라붙자 카샤스 대공에게 날아가듯 달려가던 키메라의 두 날개가 갑자기 활짝 펼쳐졌다.
그렇게 몸이 급제동되자 다시 날개를 접으며 그대로 몸을 뒤로 회전시키고는 우리를 향해 방향을 바꿔 두 다리를 튕겼다.
파아악!
디딤발을 한 땅이 크게 패이면서 터져나갔고 동시에 두 날개를 활짝 펴면서 다시 급가속을 해오는 녀석을 보고는 재중이 형이 표정을 굳혔다.
“지상에서조차 급가속. 제동이 자유로운 녀석인가.”
마치 하늘에서 했던 것마냥 빠르게 자세를 바꾸고 역으로 튀어오는 키메라 녀석을 보고는 재중이 형이 빠르게 고대 마룡의 창에 오러를 씌워 정면으로 내질렀다.
그 순간 키메라의 날개가 한쪽만 접히면서 한쪽으로 크게 신체가 기울었다.
동시에 한쪽 팔을 바닥에 박아 넣어 그대로 긁으면서 한쪽만 제동을 걸자 신체가 반회전하면서 재중이 형의 사이드로 빠르고 돌아갔다.
기존의 몬스터들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신체의 모든 능력을 최대한으로 쓰는.
그것도 어떻게 해야 순간적인 급제동과 빠른 회전이 가능한지까지 전부 몸에 익은 듯한 모습이었다.
“하! 이 새끼 봐라?!”
재중이 형 역시 눈을 빛내면서 그대로 고대 마룡의 창의 창신을 아래로 내리자마자 창신이 땅을 파고들면서 자연스럽게 재중이 형의 몸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 순간 옆으로 돌아갔던 키메라의 팔이 재중이 형이 떠올라 사라진 위치를 거칠게 휩쓸고 지나갔다.
만약 저런 식으로 재중이 형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방금의 공격으로 크게 타격을 입었을 텐데.
임기응변과 순간적인 판단력, 전투 센스는 재중이 형도 절대 녀석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떠오른 상태로 재중이 형이 몸을 크게 회전시키며 창신으로 땅의 마찰력을 최대한 끌어내 튕겨내듯 키메라에게 휘둘렀다.
그렇게 가속이 붙은 창신에 키메라의 옆구리가 맞으려는 찰나.
키메라의 날개가 다시 한 번 크게 펼쳐지면서 가속해서 그 위치를 벗어나 버렸다.
“칫. 이 속도로는 안 된다 이거지?”
그 순간.
재중이 형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반격이 실패했음에도 웃을 수 있는 건.
키메라 녀석이 이동한 위치에.
카샤스 대공이 이미 가속을 붙여 녀석에게 달라붙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휘우웅!!
용의 뼈로 만들어진 거대한 대검이 타이밍 좋게 크게 스윙되는 순간.
키메라가 다시 한 번 날개를 펼치면서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워낙 대검의 회전 반경이 커서 당장 피할 곳은 공중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정확하게 그 위치로.
공중에서 내가 떨어져 내렸다.
르아 카르테와 대천사의 검을 그대로 찍어 내리면서.
아마도 나라면 반드시 저런 식으로 피할 것이라 본능적으로 따라붙은 건데.
아니나 다를까.
완벽하게 내 아래에서 튀어 올라오는 키메라 녀석이 처음으로 크게 인상을 쓰고는 괴성을 질렀다.
“키아악!!”
늦었어!
그리고 그대로 두 검으로 키메라 녀석의 정수리를 노려 찍어 내렸다.
거의 대부분의 스탯을 민첩에 몰빵 한 상태라 절대 공속에서는 뒤처지지 않는다.
특히 이렇게 한쪽이 몰리 상태에서는 더 그렇고.
하지만 그런 내 예상과는 다르게.
키메라가 한쪽 팔만 변형시키더니 바로 포격을 뿜어내며 몸을 뒤틀어냈다.
그러자 아쉽게 내 검신들이 키메라 녀석의 머리가 아닌 천사 날개 중 한쪽만을 찍어 내렸다.
카가가각!!
하…….
그 짧은 순간에 저런 식으로 몸을 틀었다고?
문제는 그 천사 날개조차 오벨리스크의 힘과 천사의 기운에 보호가 되는지 쉽게 잘리지도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쪽의 무기 등급이 절대 낮은 것도 아닌데.
치명타조차 주지 못 하다니.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녀석의 방어력이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래도 아주 타격이 없는 건 아니었는지.
키메라 녀석이 보호막이 길게 갈려 나간 한쪽 천사 날개를 쳐다보더니 상당히 짜증나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보고는 재중이 형이 왠지 신이 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거 셋이 동시에 합격했는데도 피해내네?”
“쉽지 않네요. 한 방 정도는 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카샤스 대공 역시도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이 녀석. 정말 괴물이군.”
“동감이야.”
자신의 잘려나간 보호막을 쭉 쳐다보던 키메라 녀석이 이번에는 쉽게 달려들지 못하고 우리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쉽게 잡을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라는 것을 저 녀석도 느낀 듯 했다.
타란 제국 황제야 키메라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한 방에 당한 거라.
만약 이전에 녀석을 봤다면.
지금 상황이 꽤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키메라 녀석과 잠시 대치 상황이 되자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서로 눈치를 보는 게임이 되어 버린 거려나.
키메라 녀석에게 우선순위는.
일단은 고대 마룡이지만.
카샤스 대공 역시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재중이 형도 그걸 잘 아는지 내게 말했다.
“녀석이 원하는 건 카샤스 대공의 신체일 거다.”
“네. 알고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카샤스 대공이 먹히는 건 막아야 해.”
만약 카샤스 대공이 녀석에게 당하는 상황이라도 오면.
그땐 정말 골치 아프게 된다.
그런데 그 순간.
키메라 녀석이 몸을 뒤집어서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방향을 본 재중이 형이 녀석의 노림수를 눈치챈 듯 빠르게 달려나갔다.
“젠장. 저 녀석. 황제의 몸을 노리고 있어.”
곧장 나와 재중이 형, 카샤스 대공이 동시에 키메라 녀석의 뒤를 따라붙었는데 이미 가속을 시작한 녀석을 따라잡긴 힘들었다.
바로 카샤스 대공에게 급하게 외쳤다.
“절대 황제를 넘겨주면 안 돼!”
“알고 있다!”
칫.
타란 제국 황제도 먹이에 포함될 수 있다는 걸 생각했어야 했는데.
어느새 크레이터 중심에 도착한 키메라 녀석이 입을 커다랗게 벌리면서 타란 제국 황제의 축 늘어진 몸을 먹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뭔가 강렬한 기운이 폭사하며 정확하게 키메라 녀석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키메라가 급히 몸을 틀어 자리를 이탈했고.
그대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이건…….”
곧장 하늘을 올려다보니 고대 마룡이 우리를 주시하듯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에 수많은 마법진들을 띄워놓고.
그 모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거참. 너도 이건 안 된다 이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