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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19화 (1,319/1,404)

#1319화 내전의 끝 (7)

오벨리스크 제단에 가까워질수록 강하게 느껴지던 차갑고 음습한 기운의 정체.

마치 우리가 함께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냥.

어둠속에서 정확하게 목표를 노리고 떨어지더니 그대로 쉬에르를 물어 뜯어버렸다.

그런데 왜 우리가 아닌 쉬에르를 노린 거지?

처음부터 노리려고 했다면 우리를 쳤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키메라……?”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정면을 그대로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키메라.”

그때 재중이 형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전에 네가 부리던 그 타락 천사 같은 것들인가?”

같은 거냐고 물어보는 재중이 형의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바로 정색하면서 대답했다.

“같다니?! 내가 만든 녀석들이 훨씬 고등 기술이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흥.”

마치 자신이 만든 것과 저 키메라가 동급으로 취급당하는 게 못마땅한지 표정을 구기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큰 틀에서는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달라.”

“뭐가 다른 거지?”

“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 거지만. 저건 아직 살아 있는 생명체를 하나로 구겨 넣어서 만든 거니까.”

“구겨 넣었다는 건…… 억지로 합치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런 재중이 형의 말이 핵심을 집었는지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음에 든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 어느 쪽의 비율이 더 높은 건지는 뜯어봐야 알겠지만…….”

키메라를 뜯어본다라…….

확실히 마왕 정도는 되어야 해볼 법한 생각이었다.

아니.

그녀라서 그런 거려나?

원래 이쪽 전문일 테니.

마왕 헤르게니아가 다시 키메라 쪽을 주시하자 우리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 녀석에게로 옮겨갔다.

정확하게는 키메라가 최상급 천사 쉬에르를 식사하듯이 게걸스럽게 물어뜯는 광경으로.

으득!!

콰득!!

흡사 며칠이라고 굶은 사냥개를 풀어놓은 것 마냥.

미친 듯이 고개를 처박고 쉬에르를 거대한 이빨로 난도질하는 모습은.

그간 보아오던 다른 생명체들하고는 다르다는 걸 확연히 보여주었다.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붉은 빛을 발하는 오벨리스크의 광량 사이로 힐긋힐긋 보이는 기괴한 형체.

쉬에르를 물어 헐떡거리면서 위아래로 흔드는 정면의 모양은 우리가 아는 어떤 것과 거의 흡사해 보였다.

재중이 형도 같은 것을 느꼈는지 말을 꺼냈다.

“저건 용…… 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네요.”

그런데 오벨리스크의 빛에 비춰지는 신체의 모습은 또 완전히 달랐다.

등 뒤로 길게 펼쳐지며 흔들리는 날개의 형상이 용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

“저건 아마도 천사의 날개…… 겠군.”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색깔이 용의 그것과 거무튀튀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형태 자체는 천사의 그것과 아주 유사했다.

아니.

그냥 저건 천사의 날개였다.

지금 아래서 뜯어 먹히고 있는 쉬에르의 그것과 완전히 같으니까.

반면 팔이나 다리의 형태는 또 용의 신체와 비슷해 보이는 것 같고.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대로.

서로 어울리지 않는 파트를 누군가가 억지로 기워 넣은 것만 같은.

딱 그런 모습이었다.

이전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만들어냈던 녀석들과는 아예 개념 자체가 달랐다.

전자가 변형의 느낌이라면.

이건 그냥 짜깁기에 가깝달까.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말을 꺼냈다.

“네가 한 말의 뜻을 대충 알겠는데? 저건 누가 봐도 이어 붙이기만 한 거네.”

“역시 그렇지?”

자신에 대한 칭찬을 하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한껏 기뻐하면서 웃음 지었다.

딱히 칭찬이라고 하긴 뭐하긴 한데.

적어도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앞에 있다는 건 부인하기 힘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눈앞에 있는 저 키메라가 약해 보인다는 건 절대 아니다.

무려 저 녀석의 신체를 구성하는 베이스가 천사와 용족이니까.

그동안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아니 존재할 것이라 생각조차 못한 조합이었다.

내 예상과 같이 마왕 헤르게니아가 바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꺼냈다.

“그래도 상당히 강할 거야. 전 안에 어느 등급의 용족과 천사가 들어갔는지 몰라도.”

상당히 강하다라…….

마왕 헤르게니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쉽게 넘길 수가 없는 말이었다.

특히 그녀가 여기 지하로 내려오기 전.

우리를 붙들었던 때를 고려해본다면.

아마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저 키메라 녀석이.

그 존재감을 내던 녀석이 분명할 테니까.

“저 녀석 때문에 경고한 거지?”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뜻을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뭐지?

아니라는 건가?

어떻게 보면 맞다는 뜻 같기도 한데.

“흐응. 어떨까. 당장은 식사 중이라 우리를 신경 쓰는 것 같진 않지만.”

그리고는 흥미롭다는 듯 말을 이었다.

“천사를 씹어 먹다니. 마음에 들긴 하네.”

아.

이 녀석.

천사들이라면 학을 뗐지.

“식사가 끝나면?”

“타겟을 바꾸던가. 아니면 침묵하거나 달아날 수도 있어.”

“그럼 먼저 치는 건 어떨까?”

“글쎄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흘깃 용족과 천사의 키메라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려 오벨리스크 쪽을 쳐다보았다.

기분 탓인가?

정확하게는 조금 더 뒤쪽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지만.

한참 동안 뭔가를 고민하는 것 같던 그녀가 살짝 인상을 구기면서 말을 꺼냈다.

“흐응. 우린 안 건드는 게 좋겠어.”

“뭐?”

“저 키메라. 지금 오벨리스크의 힘을 가져다 쓰고 있는 중이야.”

“저게?”

그러자 재중이 형이 의아한지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키메라가 어떻게 오벨리스크의 힘을 쓴다는 거지?”

나 역시 궁금해서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자 그녀가 납득이 가는 말을 해주었다.

“저 녀석이 지금 용족의 심장을 핵으로 해서 움직이고 있는 중이거든. 그럼 오벨리스크의 힘을 가져다 쓸 수 있어.”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뭔가 짚이는 게 있어서 물어보았다.

“설마 천사로는 오벨리스크의 힘을 쓰지 못해서 일부러……?”

조금은 허황된 추측이긴 한데.

내 추측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 천사의 신체로는 아무리 해도 용족의 힘이 쌓여있는 오벨리스크를 쓸 수 없었을 테니까. 아예 용족과 키메라로 합성한 거야. 조잡하긴 해도.”

그리고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오벨리스크가 아닌 정면의 한 벽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만 나오지?”

그 순간.

어둠 속의 한쪽 벽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경계가 무너지며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순간 녀석을 중심으로 상당한 광량이 몰아치며 주변의 있는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뭐지?

이 정도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재중이 형 역시도 몰랐던지 바로 표정을 굳혔다.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설명해주었다.

“더미야.”

“더미라고?”

“응. 그것도 대천사의 더미.”

대천사라는 말에 다시 한 번 놀란 눈빛으로 정면을 쳐다보았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걸 보면.

당장 저 대천사의 더미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진 않은 듯한데.

지긋이 대천사의 더미를 쳐다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게걸스럽게 식사 중인 키메라를 가리키더니 말했다.

마치 누군지 확실히 안다는 눈치로.

“조잡한 실력은 여전하네?”

“어머? 오랜만이네. 너 결계에 처박혀 있던 것 아니었어?”

심지어 반대편의 대천사라는 녀석도 마왕 헤르게니아가 누군지 알아보는 눈치였다.

“흥. 내가 누군데 아직도 그딴 허접한 결계에 있겠어.”

보자마자 둘 다 한 치의 양보 없이 으르렁거리는 걸 보면.

서로 사이가 엄청나게 안 좋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곧 대천사의 더미가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마치 재밌는 광경이라도 본다는 듯.

그리고는 눈을 내리깔면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경고했다.

“다시 한 번 더 결계에 처박아줄까?”

그런 대천사의 더미의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는 콧방귀를 뀌며 대응했다.

“왜? 그때처럼 친구들 우르르 몰고 오게? 떼거리로 몰려다니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게 입만 살아서는.”

빠직.

순간 대천사 더미의 손이 과하게 움켜지며 부러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저쪽도 빡친 모양이네.

그리고 마왕 헤르게니아가 한마디 말을 더 붙였다.

“꼬우면 혼자 튀어 오던가. 오랜만에 그 조잡한 실력 한 번 감상해보자.”

“이익!! 너 죽었어.”

그동안 잘 몰랐는데.

이 녀석.

아주 사람 속을 긁는데 천부적인 소질을 지니고 있네.

“꺼져!”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팔을 한 번 휘두르자.

검은 구 형태의 마법탄이 빠르게 날아가 대천사의 더미의 중앙을 뚫어버렸다.

퍼억!!

동시에 대천사의 더미가 그대로 동력을 잃고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뿜어내던 광량 역시 바로 사라져버렸고.

“없앤 건가?”

“아니. 더미만. 대천사가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잖아.”

“하긴 그렇네.”

바로 궁금한 점이 있어서 물어보았다.

“누군지 아는 눈치던데?”

“응. 있어. 아주 쌍년이.”

마왕이 원래 대천사하고 사이가 안 좋은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안 좋은 녀석도 있는 듯 했다.

그때 재중이 형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네 정체가 드러나면 안 되는 것 아니었나? 대천사의 결계에서 나온 것도 그렇고. 이제부터 대천사들이 전부 주의할 텐데?”

그런 재중이 형의 질문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답했다.

“어차피 저 녀석과 이곳에서 마주친 이상 바로 드러날 일이었어.”

“그 천사 위장도 안 통했을 거라는 거군.”

“맞아. 하위급 천사들이야 속일 수 있어도. 대천사는 안 돼.”

“아쉬운데?”

“어차피 다른 천사로 위장하면 그만이야.”

“그런가.”

마왕 헤르게니아는 신경 쓰지 않는 듯해서 재중이 형도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그럼 이곳의 일들이 전부 저 대천사 녀석이 꾸민 짓이라는 건가?”

“맞아. 저 년이 여기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걸 증명하는 거니까.”

그런 둘의 대화에 궁금한 점이 있어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제물의 결계도 계획에 포함되는 거야?”

“아마 그럴걸? 어디서 제물의 결계 수식이 나왔나 했더니. 저 년이 뿌린 거였어. 솔직히 일개 천사가 구하기에는 너무 금기에 가까운 물건이라.”

어쩌면 뒤에 다른 존재가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은 있었다.

그런데 그게 대천사일 줄이야.

그것도 마왕 헤르게니아가 잘 아는 녀석이라니.

재중이 형이 키메라 쪽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럼. 저 키메라 녀석의 베이스는 아무래도 그 에멘스라는 최상급 천사겠는데?”

정확하게 정답을 맞췄는지 마왕 헤르게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키메라의 재료가 될만한 녀석은 그 최상급 천사밖에 없을 테니까.”

또 다른 최상급 천사가 있긴 한데.

마엘리타는 어디로 사라진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 결국 남는 건 에멘스 밖에 없었다.

다른 한 녀석은 지금 키메라에게 먹히는 중이라.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키메라 쪽을 보며 말했다.

“대천사의 더미가 사라졌으니. 이제 저 녀석을 조정할 녀석이 없어졌어.”

“명령할 녀석이 없다는 거야?”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맞다는 듯 답했다.

“응. 이제 저 녀석. 폭주할 거야.”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키메라의 날개가 활짝 펴지면서 공동이 떠나가라 괴성을 질러댔다.

“캬하하악!!”

그리고는 오벨리스크에서 붉은 기운이 잔뜩 끌려 나와 키메라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힘을 가져다 쓴다는 듯.

매서운 기운이 몰아치는 순간.

바로 마왕 헤르게니아가 나와 재중이 형의 팔을 잡고는 외쳤다.

“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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