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4화 내전의 끝 (2)
천사군 쪽에 성유가 있고.
에센시아 제국에 정령석이 있듯이.
타란 제국 역시 다른 나라와 달리 고유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리고 그건 카샤스 대공의 대답으로 확실해졌다.
곧장 카샤스 대공이 시선을 돌려 타란 제국성을 바라보았다.
“아쉽지만 지금 내겐 없다.”
“그렇다면?”
“타란 제국성에서 보관 중이지.”
“흐음. 그거 꽤 나쁜 소식인데.”
“그렇지. 보다시피 타란 제국성 내부로 진입할 수 없으니까.”
카샤스 대공의 말대로 현재 타란 제국성은 타란 제국군들이 빈틈없이 방어하는 중이었다.
당장 저 방어를 뚫고 타란 제국성 내로 들어가는 건.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빠른 시간 내에 돌파해야 하니까.
“쉽지 않겠네.”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내게 물어보았다.
“하려고 한다면 피해는 꽤 입겠지만. 불가능하진 않아.”
“뭐 알고는 있어.”
당장 카샤스 대공까지 나서준다면.
그간 뚫지 못했던 제국 성벽을 함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과연 저 위에 녀석이 못 본 척 두고 볼까?”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확실히 그렇긴 하군.”
“지금 우리가 타란 제국성을 돌파하려고 하면 가만히 있을 녀석이 아니지.”
현재 오벨리스크는 타란 제국성 내부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갑자기 타란 제국성을 돌파하려고 하면?
그것도 카샤스 대공까지 나서서 급하게 돌파하는 것을 본다면 그 뒤는 안 봐도 뻔하다.
“황제는 오벨리스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고대 마룡을 내버려 두고 곧장 아래로 내려올 거야.”
지금이야 타란 제국 황제가 고대 마룡을 상대하는데 모든 힘을 쏟고 있지만.
그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하게 되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지게 된다.
어마어마하게 축척된 타란 제국 황제의 힘을 고대 마룡이 아닌 우리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니까.
그건 거의 최악의 상황이다.
마룡에게 집중하고 있는 타란 제국 황제를 괜히 괜히 건드려서 일이 복잡해지는 셈이라.
의도했던 계획과도 멀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카샤스 대공이 자신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걸 절대 두고 볼 리가 없었다.
현재 고대 마룡을 제외하면.
타란 제국 황제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인물이니까.
“흐음…… 어쩐다.”
그렇다고 카샤스 대공을 빼놓고 공성을 하는 건 피해가 너무 커지게 된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그런 식으로 공성을 진행했을 경우.
양측의 사상자가 엄청나게 나올 것이 분명하다.
그건 곧.
타란 제국 황제에게 더욱 많은 힘을 가져다 바치는 셈이라.
정확하게는 최대로 낼 수 있는 힘이라기 보다는.
소모할 수 있는 마력의 총량이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카샤스 대공이 살짝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희생은 어쩔 수 없겠군.”
희생이라…….
확실히 카샤스 대공의 입장에서는 후에 돌아올 피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건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의 황제가 되고 난 뒤의 일이기는 한데.
지금 양측의 전력이 더 깎여나가게 된다면.
결국 타란 제국의 힘이 그만큼 약해진다는 뜻도 되니까.
어쩌면 정말 양측이 싸우다 서로 괴멸이라도 하게 된다면.
아예 남는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곤란하지?”
“가급적이면 희생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질 수는 없다. 필요하다면 바로 진격하도록 하지.”
절대 안 된다고 막아서면 어쩌나 했는데.
역시 과거 성마대전 시대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녀석다운 판단을 내렸다.
뭐 어차피 여기서 지면 끝이니까.
카샤스 대공에게도 선택 사항이 없는 건 매한가지다.
문제는 과연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 황제의 공세를 막아설 수 있느냐인데…….
바로 카샤스 대공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황제 녀석을 상대할 수 있겠어?”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눈매를 무겁게 누르면서 대답했다.
“용혈을 최대로 개방시켜 버티면 몇 분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길어지면 나도 장담할 수 없다.”
“역시 그런가…….”
카샤스 대공이 성마대전 후반기의 그 최강의 영웅이 아닌 이상에야…….
그리고 가장 큰 단점은.
이 녀석에게 용신검 아스카론과 고대 마룡이 없다는 점이었다.
지금이라도 카샤스 대공에게 용신검을 들려줘야 하나…….
그럼 적어도 타란 제국 황제에게 확 밀리지는 않을 텐데.
잠시 고민 후 재중이 형 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주호> 형. 용신검. 카샤스 대공에게 쥐어 줄까요?
이건 전에도 여러 번 고민하기는 했었다.
솔직히 용신검을 카샤스 대공에게 주는 순간.
어지간한 문제는 다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재중이 형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불멸> 지금의 저 타란 제국 황제를 상대로 카샤스 대공이 용신검을 들었다고 해서 상대가 될 것 같아?
<주호> 그런가요?
<불멸> 오히려 반대로 뺏기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만약 여기서 타란 제국 황제에게 용신검까지 뺏겨 버리면 답도 없어.
확실히 재중이 형의 생각도 일리는 있었다.
당장 용신검을 쥐어 준다고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 황제를 압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용신검을 뺏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과거 성마대전 최강의 영웅이.
뒤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진짜 용신검을 가진 타란 제국 황제가 고대 마룡을 눌러버릴 수도 있으니.
최악의 경우 고대 마룡의 테이밍하거나 그 힘을 흡수하게 되는 건데…….
전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했듯이.
타란 제국 황제가 거의 용신급의 괴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럼 다 만들어놓은 판이 한순간에 뒤집히겠지.
<불멸> 필요한 순간이 올 거야. 기다려 봐.
<주호> 네.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다면…….
<불멸> 그땐 카샤스 대공에게 모험을 걸어 봐야지. 남은 패가 그것밖에 없을 때.
<주호> 알았어요.
그런데 그때.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대 마룡에게 연신 밀리는 것 같던 타란 제국 황제가 아래로 시선을 주더니 곧장 지상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카샤스 대공군이 포진해 있는 진영을 향해.
동시에 타란 제국 황제의 팔에 엄청난 크기의 오러가 일어나더니 쭉 늘어난 반달 형태로 지상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그리고 연이어 다시 한 번 팔을 휘두르자 아까와 같은 형태의 오러가 겹치듯이 뒤따라 지상을 폭격했다.
콰콰콰쾅!!
쿠아아앙!!
“으아아악!!”
“살려줘!!”
어떻게 보면 단순한 반달 형태의 오러였지만.
그 크기와 위력은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오러의 범위에 닿는 모든 카샤스 대공군의 병력이 한 번에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게 녹아내렸고.
동시에 오러가 지상을 할퀴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력을 감당하지 못한 병력들 역시 사지가 찢겨지면서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저 엄청난 방어력을 가진 고대 마룡의 외갑에까지 피해를 준 오러인데.
그걸 카샤스 대공군이 막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카샤스 대공군의 중앙이 오러의 폭발에 휩쓸려 사라지는 모습을 본 카샤스 대공이 바로 이를 바득 갈았다.
“저놈이……!”
바로 튀어 나가려는 걸 손을 뻗어 카샤스 대공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안 돼.”
지금 카샤스 대공이 달려들면.
무의미한 개죽음이 될 것이다.
“타란 제국 황제가 지금 원하는 건…… 고대 마룡을 상대하는데 필요한 부족한 마력을 채워줄 용족들이다.”
안 그래도 고대 마룡과의 전투에서 밀리고 있던 터라.
과도하게 마력을 소모했을 것이다.
이미 오벨리스크의 힘을 많이 가져다 썼다는 뜻일 테고.
어쩌면 이대로 가면 부족하다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 와중에 카샤스 대공군을 목표로 삼은 건.
이 근방에서 가장 빨리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
카샤스 대공에게 무거운 투로 말했다.
“지금 네가 당하면 뒤가 없어져.”
어쩌면 최악의 경우 카샤스 대공마저도 타란 제국 황제에게 당해서 마력을 흡수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내 손을 뿌리치면서 외쳤다.
“그래도 해야 한다.”
일전의 각오가 선 모습이라…….
그 끝이 죽음이라도 하더라도.
카샤스 대공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했다.
아마 이런 성향이 성마대전에서 최강의 영웅으로 만들어주었겠지.
그때 하늘을 잠시 올려다봤다가 곧장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되겠는데?”
“뭐?”
“고대 마룡. 저 녀석이 가만히 있겠냐고.”
그러자 카샤스 대공의 시선 역시 고대 마룡에게 가서 닿았다.
쿠오오오!!
동시에 고대 마룡의 입가에 강렬한 기운들이 몰려가 한 점에 맺히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스파크 역시 고대 마룡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였던 고대 마룡의 브레스가 강렬한 스파크를 동반해 길게 쭉 뻗어 나갔다.
정확하게는 타란 제국성을 향해.
쿠아아아!!
콰아아앙!!
그렇게 뻗어 나간 고대 마룡의 화려하고도 눈이 부신 브레스는.
완벽하게 타란 제국성의 중앙을 뚫어버리더니 그 위력을 잃지 않고 계속 돌진해 나갔다.
“브레스다!!”
“으아악!!”
“죽기 싫어!”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가는 카샤스 대공군과 달리.
타란 제국성은 어디로 도망가지도 못한다.
당연히 그곳을 지키고 있던 타란 제국군도 마찬가지였다.
브레스에 직접 닿아 녹아버린 병력과 타란 제국성이 무너지면서 깔려죽은 병력들까지.
피해로 치면 저쪽이 월등히 규모가 컸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거지.”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의아한 듯 말했다.
“왜 고대 마룡이 제국성을?”
타란 제국성이 무너지고 있어서 아깝다는 표정이 아니라.
왜 그런지 궁금해하는 눈빛이라…….
“너도 타란 제국성 중앙에 있는 게 뭔지 잘 알잖아.”
그러자 바로 이해하겠다는 듯 답했다.
“오벨리스크인가?”
“맞아.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 않을까. 그게 확실히 뭔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는 걸.”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도 이쯤 되면 이상하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갑자기 타란 제국 황제가 자신을 상대하다 말고 지상으로 내려가서 카샤스 대공군을 죽이기 시작했으니.
그리고 그렇게 죽어 나간 카샤스 대공군에게서 붉은 기운들이 빠져나와 어디론가 흘러가는 모습까지도 봤을 테고.
거기까지 지켜봤는데 이상한 걸 못 느끼면.
고대 마룡이 바보겠지.
다시 시선을 돌려 타란 제국 황제를 쳐다보자 녀석도 낭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제 저 녀석도 딴 짓 할 여유가 없을 걸?”
오벨리스크를 고대 마룡에게서 지켜야 하니까.
물론 최상급 천사들이 오벨리스크를 지키기 위해 힘을 빌려주긴 하겠지만…….
마엘리타와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기에 타란 제국 황제의 생각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예상대로 마엘리타가 침묵해준다면 말이지.
만약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여기서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타란 제국 황제가 급하게 오벨리스크가 있는 타란 제국성으로 날아갔고.
그 모습을 본 카샤스 대공은 바로 휘하의 용기사단장들을 불러서 외쳤다.
“모든 잔여 병력들을 부상병들과 함께 편성해 후퇴시킨다.”
“전 병력을 말입니까?”
“그래. 지금 당장. 왕국군들 역시 마찬가지다. 영웅급들만 제외하고는 전부.”
“알겠습니다!”
“명령 받듭니다!”
명령이라 이유조차 묻지 않고 용기사단장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카샤스 대공군 전체를 후퇴시키기 시작했다.
이 이상의 피해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거려나.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저들이 남아 있어 봐야 죽어서 제물이 될 뿐이니까.”
“좋은 판단이네.”
바로 죽지 않을 제국과 왕국의 영웅급 병력만 남겨둔 것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의 공성은 필요 없겠지.”
카샤스 대공의 말대로.
고대 마룡의 브레스로 인해 타란 제국성이 일자로 뚫려버린 상황이었다.
이러면 공성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자 바로 불타오르는 타란 제국성을 보며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우리도 제국성으로 들어간다.”
고대 마룡이 장애물들을 싹 치워주었으니.
제대로 한탕 하러 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