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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11화 (1,311/1,404)

#1311화 위장 (14)

처음의 가정부터가 틀렸다.

타란 제국 황제를 강하게 만들어 마엘리타를 천사들에게서 보호해줄 거라는 이 가정.

시작점부터가 틀리니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밖에.

그러니까.

애초에 마엘리타 본인이 강해지면 그만인 일을.

굳이 타란 제국 황제를 강하게 만들어줄 필요가 없지.

그 자신이 강하다면.

천사를 비롯해 다른 압박에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엘리타는 이미 무력에서는 대천사 다음으로 강한 수준이라고 했었다.

그런 녀석이 자신이 강해지는 길을 포기하고 타란 제국 황제를 밀어 준다?

이건 아무리 봐도 이상하지.

<주호> 네. 마엘리타가 노린 건 처음부터 고대 마룡이었겠죠.

어쩌면 고대 마룡과 더불어 타란 제국 황제일 수도 있겠지만.

우선순위로 보면 고대 마룡이 압도적으로 앞선다.

<불멸> 맞아. 아마도 녀석은 처음부터 타란 제국 황제에게 힘을 줄 생각조차 없었을 거야. 자신이 차지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고대 마룡 정도의 힘을 차지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그 대가는 바로 지금의 타란 제국 수도였다.

정확하게는 타란 제국 수도에 있는 시민들과 용기사단.

물론 그들의 힘을 이용하려면.

타란 제국 황제의 허락이 필수적이었을 테니까.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꼬아가면서 타란 제국 황제를 꼬득긴 거겠지.

아마도 타란 제국의 내전은.

마엘리타에게 있어서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기회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내전을 틈타 타란 제국의 힘을 이용할 수 있었으니.

원래라면 타란 제국은 폐쇄적인 국가라 접근조차 힘들었다.

아무리 그게 천사라고 하더라도 말이지.

한 마디로.

제물의 결계를 쓰기에는.

타란 제국의 내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이상한 점이 존재했다.

왜 본인이 오벨리스크의 힘을 가지고 싸우지 않을까 하는 의문.

아무리 적게 잡아도.

당장 오벨리스크에 모인 힘만 해도 상상을 초월할 텐데?

쓸 수만 있다면.

지금 저 하늘에서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와 싸우고 있는 타란 제국 황제만큼의 힘은 내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마엘리타는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굳이…… 타란 제국 황제를 앞세워야 하는 이유가 있나?

<주호> 형. 그런데 왜 마엘리타 본인이 오벨리스크의 힘을 쓰지 않죠? 쓰기만 하면 타란 제국 황제만큼이나 강할 것 같은데.

그러자 내 말에 잠시 생각하는 듯했던 재중이 형이 대답을 들려주었다.

<불멸> 어쩌면…… 제한이 있을 수도 있으려나?

<주호> 네? 어떤?

<불멸> 글쎄. 이건 내 추측이긴 한데. 용족의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같은 용족이지 않을까.

<주호> 흐음.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물의 결계를 써서 모인 힘의 대부분은.

용족의 목숨을 담보로 해서 끌어모은 힘이었다.

물론 개중에 유저들의 목숨도 포함되어 있긴 하겠지만.

그 비율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러니까 순수하게 비교해보면.

현재 오벨리스크에 모인 힘 중 대부분은 용족의 힘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주호> 타란 제국 황제가 직접 쓰는 것만큼 효율이 좋지 않다는 뜻이겠죠?

<불멸> 아마도? 마엘리타도 가능하다면 자신이 직접 쓰려고 했을 텐데. 불가능하니까 저러고 있겠지.

재중이 형의 말에 대치 상태로 뻣뻣하게 서 있는 마엘리타를 쳐다보았다.

좀 전부터 아무 말 없이 하늘만 올려다보는 게 아무래도 재중이 형의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만약 마엘리타가 직접 오벨리스크의 힘을 가져다 쓸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저렇게 소극적으로 굴지는 않았을 테니까.

뭐 타란 제국 황제가 본인 대신 싸워서 고대 마룡의 체력을 낮춰줄 수 있다면 그것도 고려해볼 법도 한데.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이 상황은 많이 이상했다.

당장 대천사로 알고 있는 나보다 마엘리타 본인이 더 강하다고 판단했다면.

저렇게 대치 상태로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고.

어쩌면 보자마자 칼부터 들이댔을 수도 있으려나?

솔직히 지금 이 자리에서.

마엘리타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는.

다름 아닌 대천사로 위장하고 있는 나였다.

최악의 경우 제물의 결계 자체를 무효화시키거나 없애버릴 수 있는 위치이기도 했고.

마엘리타 녀석을 빤히 쳐다보자 녀석도 내게 시선을 맞추고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면 대천사 앞에서 굳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재중이 형과 나눈 이야기를 고려해봤을 때.

자신의 계획이 어긋나서 표정을 굳혔다는 쪽이 더 맞을 것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마엘리타가 결국 짧게 한숨을 쉬더니 내게 물어보았다.

“타란 제국 황제에게 말할 생각입니까?”

아무래도 마엘리타는 내가 타란 제국 황제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 할까 봐 불편한 모양이었다.

지금이야 타란 제국 황제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막상 사실을 알고 나면 타란 제국 황제의 행동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자 나 역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굳이?”

“네?”

“내가 뭐하러?”

내 대답에 마엘리타가 잠시 벙찐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녀석이 원한 대답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테지.

그런 마엘리타에게 능청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저렇게 잘 싸우고 있잖아. 귀찮게 힘 빼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고. 저놈이 안 싸우면 내가 싸워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

당장 오벨리스크의 힘을 가져다 쓰고 있는 타란 제국 황제가 아니라면.

여기서 고대 마룡과 싸움이 될만한 건 녀석이 생각하기에 나밖에 없다.

아마도 녀석이 예상한 대천사에게 들을만한 답변이 아니었는지 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분명 이 상황은 마엘리타에게 나쁘지 않을 것이다.

마엘리타가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내게 물었다.

“개입하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만약 내가 아닌 다른 대천사가 왔다면 어땠을까.

진짜 대천사가 왔다면…….

일단 마엘리타를 힘으로 눌러 구속부터 했을 것이다.

제물의 결계 자체가 천사군 사이에서는 금지라고 했으니.

그리고 난 뒤 저 고대 마룡과 타란 제국 황제의 싸움에 개입을 하던가 했겠지.

혹은 오벨리스크를 회수한다던가.

딱 마엘리타가 불편해할 행동만을 골라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대천사가 아니니까.

“아까 말한 건 벌써 잊어먹었나?”

그러자 마엘리타 녀석이 내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는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다시 물어보았다.

“스카웃…… 말입니까?”

“어. 내가 엄청 어렵게 말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하…….”

설마 전에 했던 그 말이 진심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지 마엘리타의 표정에 혼란이 생겼다.

마엘리타 입장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천사인 내가 자신을 직접 스카웃하기 위해 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파격적인 걸 넘어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뭐 마엘리타가 희대의 전투 천재라던가 하는 내용은 빼더라도.

변방의.

그것도 다른 권력에 등 떠밀리듯 후방으로 좌천된 최상급 천사 하나 보자고 대천사가 직접 온다?

이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일이다.

저 녀석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걸 믿긴 힘들지.

“절 방심시키기 위해 농담하신 걸로 알았습니다만.”

보통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접하면 혼란이 생긴다.

지금의 마엘리타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대천사가 할 일이 없어서 이곳까지 와서 농담이나 할까.”

어이가 없는지 차마 대답하지 못하는 마엘리타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 대천사가 되고 싶은 거잖아.”

“그걸 어떻게……?”

이건 그냥 단순히 앞뒤 상황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거기다 전사 형에게 들은 이야기까지 합쳐보면 안 봐도 뻔하지.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시간의 흐름이 좀 많이 달라지긴 했어도.

분명 마엘리타 녀석은 무슨 수를 써서든 대천사에 올라설 것이다.

그게 금기나 불법적인 일이 될지언정.

다시 마엘리타 녀석에게 말했다.

“현재 천사군은 성마대전을 치루는 중이야.”

“……그렇습니다만.”

“밀고 오는 마왕군 상대한다고 후방은 시선이 잘 닿지 않거든. 일을 벌이기도 좋아.”

그리고는 다 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대천사가 되면 어지간한 일은 다 묻힐 테지. 지금 이 상황도 그렇고.”

내 말에 딱히 마엘리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기까지 충분히 고려했을 테니까.

여기서 미친 척 하고 일을 벌이더라도 녀석이 대천사만 되면.

해결은 보다 쉬워진다.

대천사쯤 되는 위치의 녀석을 천사군에서 마냥 내치지는 않을 테니까.

특히 지금이 성마대전을 치르는 중이니까.

대천사 하나의 전력이 추가된다는 점은.

다른 이유를 막론하고.

녀석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강력한 무력.

만약 대천사만 될 수 있다면.

이보다 나은 상황은 없을 테지.

마엘리타 녀석도 이 상황을 잘 알고 있는지 표정을 굳혔다.

그때 녀석을 흔들 말을 해주었다.

“그런데 네가 여기서 정말 대천사가 될 수 있을까?”

내 말을 듣자마자 마엘리타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리로 무기를 잡기 위해서인지 손을 가져다 댔다.

여차하면 나를 치기라도 하겠다는 각오가 보이는 눈빛이라.

“설마 방해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런 마엘리타에게 손을 들어 보이면서 싸울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아. 내 말에 오해가 있었나 본데…….”

여기서부터는 전부 추측으로 때려 맞추는 셈이라.

잘 되면 괜찮겠지만.

아니라면 바로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옆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엘리타 녀석의 반응을 보고는 바로 손을 쓰려 했지만.

내 쪽에서 막아섰다.

“아직 기다려봐.”

“안 죽여?”

“죽이려면 천천히 죽여도 돼.”

당장 마엘리타를 언제라도 죽일 수 있다는 늬앙스로 대화하자 마엘리타 녀석의 몸이 움찔했다.

아마 녀석이 보기에 마왕 헤르게니아 역시 자신과 동급으로 보일 터.

거기다 내 쪽은 대천사로 생각하고 있을 테고.

그러다 보니 쉽사리 검을 뽑는다거나 하진 못했다.

그런 마엘리타를 보고는 한마디 말을 던졌다.

“용족의 힘. 흡수하지 못하지?”

내 질문에 다시 한 번 마엘리타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빙고.

재중이 형이 해주었던 말이 아무래도 사실인 듯했다.

직접적으로 용족의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이 지금 녀석에게 있어서 유일한 약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확신이 서자 바로 쐐기를 박아주었다.

“오벨리스크에 있는 용족의 힘으로는 대천사가 되지 못해.”

그리고는 한마디 말을 더 붙였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힘도 마찬가지고.”

자.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녀석도 확신은 없을 것이다.

앞선 사례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테니.

내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마엘리타의 손이 그대로 검에서 떨어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속고만 살았나.”

아니.

속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대천사의 말을 녀석이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녀석보다야 이런 쪽으로 지식이 많을 테니까.

“섞일 수 없는 힘을 쓰려면 효율이 떨어지지. 그게 저 고대 마룡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야. 무엇보다 고대 마룡의 힘 자체가 우리와는 극 상성이다.”

“……알고는 있습니다만.”

고대 마룡.

이름에 마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마족에 가깝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천사들의 힘과는 맞지 않지.

이걸 동시에 쓰는 건.

내가 알기로 지금 내 옆에 있는 마왕 헤르게니아 뿐이었다.

그것도 한쪽의 힘은 거의 봉인시키다시피 따로 쓰는 셈이지만.

애초에 저 마엘리타가 구상하고 있던 일은.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진 일이었다.

여기서는 확실하게.

“극상성인 고대 마룡의 힘을 흡수하면. 반발력으로 인해 넌 반드시 죽는다.”

“…….”

어떻게 상황이 맞춰지는 것 같자 마엘리타에게 하나의 동아줄을 내려주었다.

녀석이 가장 원하는.

반드시 물 수밖에 없는 먹이를 던져 준다.

“대천사. 그거 내가 만들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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