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0화 위장 (13)
이미 최상급 천사인 이베스와 로엔을 통해 확인했듯이.
대천사라는 등급은 천사군 내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대천사 위의 등급이 없기도 하고.
마왕군으로 치면 마왕과 맞먹는 존재이니까.
그간 마왕들이 하위 마족들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을 가졌다는 걸 고려해본다면.
이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그런 대천사가 직접 자신을 스카웃 한다고 하면 어떨까.
아마도 어느 천사나 한 번쯤은 고려해볼 만한.
그런 제안이지 않을까.
지금 눈앞에 있는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를 포함해서 말이지.
스카웃이라는 내 말에 마엘리타의 두 눈동자가 마치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착각한 것마냥 크게 흔들렸다.
당황한 눈빛도 함께 담아.
그리고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어보았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 마엘리타가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 이곳 타란 제국 수도에 자신이 벌여놓은 일만 해도 당장 끌려가서 죽더라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금기라 여기는 제물의 결계를 타란 제국 황제와 결탁해서 대규모로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이미 죽음을 각오한 것과 다름없었다.
“설마 제물의 결계를 이렇게 대규모로 사용하고도 안 걸릴 것이라 여긴 건가?”
내 추궁에 마엘리타가 입술을 바짝 깨물면서 답했다.
“설마 그럴 리가요. 천사군들이 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저 말만 들어 봐도 확실히 마엘리타는 이미 들킬 것을 각오하고 벌인 일이었다.
그것도 한참 전부터 체계적으로 준비를 해왔었고.
그냥 아주 대책 없이 벌인 일이 아니라는 거지.
틀린 예상이 아니라면.
분명히 천사군에게 들킬 때를 대비해 준비해놓은 다른 대안도 있을 것 같았다.
그게 과연 저 타란 제국 황제일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싶어 마엘리타에게 물어보았다.
“타란 제국 황제를 대천사에 대항하기 위한 존재로 만들 생각이었나?”
내 추측 가득한 물음에 마엘리타의 어깨가 살짝 움찔했다.
뭐 아주 아닌 건 아닌 모양이네.
슬쩍 고개를 돌려 타란 제국 황제와 고대 마룡의 전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확실히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힘을 흡수할 수만 있다면 대천사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긴 하겠지.”
아마 그것도 한둘이 아닌.
여러 명의 대천사를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대천사 하나 어떻게 해보려고 이렇게 크게 일을 벌일 리도 없었고.
그리고 겨우 하나 막아봐야 다른 대천사들이나 천사군은 막을 방법이 없으니까.
무엇보다도.
타란 제국 황제 스스로도 이미 인간군의 영웅 중에서는 최상위라 할 수 있었다.
굳이 고대 마룡의 힘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천사를 어떻게든 상대할 수준은 된다는 거다.
그런 그와 합심해 일을 벌인 건.
그만큼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마엘리타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과연 타란 제국 황제가 모든 것을 이루고 나서도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까?”
“…….”
내 물음에 마엘리타의 입술이 다시 질근 씹히는 듯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마 이 녀석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고대 마룡의 힘을 흡수한 타란 제국 황제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상황을.
그런데 과연 이렇게까지 준비를 한 마엘리타가 그것까지 고려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미 알고 있는가 보군.”
“네. 말씀하신 대로 타란 제국 황제는 쉽게 다루기 힘든 자죠.”
무려 커다란 제국의 황제였다.
최상급 천사 하나가 다루고 어쩌고 할 위치가 아니긴 하지.
그렇다는 건.
녀석도 뭔가의 조건을 걸었다는 뜻이 된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타란 제국 황제에게 뭔가 제약이라도 걸었나?”
그게 아니라면.
마엘리타가 자신이 가진 모든 걸을 다해 타란 제국 황제를 밀어줄 리가 없었다.
과거 성마대전에서 이 녀석이 대천사가 된다는 걸 고려해본다면 말이지.
꼭 타란 제국 황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대천사가 될 몸이었다.
뭐 자신은 아직 모르겠지만.
그런데 그런 그가 무리해가면서까지 타란 제국 황제를 밀어준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어쩌면 대천사가 될 길을 빠르게 단축시킬 단서가 될 수도 있을 테고.
제약이라는 말에 마엘리타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역시 그런가?”
미래의 대천사가 될 녀석이 아무 대책 없이 일을 벌일 리가 없지.
그 정도로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면 다른 천사들의 눈을 속이고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제약이지?”
그 물음에는 마엘리타가 차마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거기까지 알려줄 이유는 없다라는 거려나?
당장 내 쪽에서 스카웃이라는 패를 꺼내 들긴 했지만.
마엘리타 입장에서는 불쑥 찾아와서 이런 제안을 하는 내가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하긴 나 같아도 똑같았을 테니.
그리고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 덥석 물 만큼 쉬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뭐 그건 댔다. 어차피 당장 타란 제국 황제의 목숨을 빼앗거나 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닐 테니까.”
이건 그냥 단순한 추측이었다.
따로 반응은 안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확신했다.
제약 자체가 그렇게 위험하진 않을 것이라고.
마엘리타가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이상으로.
타란 제국 황제도 머리 회전이 좋았다.
아니.
그보다는 자신의 죽음까지 담보로 할 정도는 아니지.
만약 그런 제약이었다면 애초에 타란 제국 황제가 손을 잡지도 않았을 터.
그리고 지금의 녀석의 반응에서 하나의 가정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 녀석…….
아마도 말을 안 한 것 같은데.
솔직히 타란 제국 황제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대화를 해보니 아닌 듯했다.
“흐음. 그럼 제물의 결계로 얻은 힘으로 그릇이 깨지면 본인이 죽는 것도 타란 제국 황제가 알고 있겠군?”
순간 녀석이 숨기려고 했지만.
마엘리타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그걸……?”
아무래도 이게 정답인 듯했다.
“너, 대천사를 너무 물로 보는 거 아냐?”
사실 이건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해준 거지만.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자 내가 알아서 하라는 듯 웃음만 보였다.
결과적으로 대천사인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만 되는 거라.
아마도 녀석은 그 사실에 대해 우리가 모를 거라 여긴 듯했다.
잘 숨겼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올려 다시 하늘을 보면서 말을 꺼냈다.
“타란 제국 황제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그러자 마엘리타가 입술을 다시 깨물었다.
아무래도 저 입술 깨무는 건 버릇인 모양이네.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일단 마엘리타 입장에서는 타란 제국 황제가 고대 마룡의 힘을 흡수하는 상황이 베스트일 것이다.
그걸 위해 준비한 제물의 결계니까.
아마도 그릇이 깨질 수 있는 정보를 속인 건.
알고 나면 타란 제국 황제가 하지 않을 거라 판단했을 테니까.
제물의 결계를 어떻게든 쓰려면 타란 제국 황제를 속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바로 재중이 형에게 연락했다.
<주호> 형, 황제는 모르는 모양이에요. 그릇이 깨진다는 걸.
<불멸> 일부러 속였다는 건가?
<주호> 네. 그런데 좀 이상하긴 하네요.
<불멸>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주호> 그냥 석연찮은 구석이 있어서요. 조금 더 캐봐야 알 것 같아요.
<불멸> 흠. 일단 알아보고. 문제 생기면 바로 뛰어 든다.
이미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우리 팀과 최상급 천사들이 대기 중이었다.
상황을 봐서 뛰어들 수 있도록.
뭐 바로 옆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있으니까 여차하면 대처가 되긴 할 테니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마엘리타 녀석을 구석으로 몰지는 않았다.
만약 이 자리에서 녀석이 죽자 살자 달려들면 곤란하니까.
꼭 마엘리타를 포섭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선을 긋기에도 아쉬운 건 사실이라.
미래에 대천사로 예정된 녀석을 놓치는 건.
꽤 아까운 일이지.
그리고 굳이 타란 제국 황제와 고대 마룡을 앞에 두고 더 이상 적을 늘리는 것도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때 순간 머리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대천사…….
예정되어 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마엘리타는 최상급 천사.
그런 녀석이 단시간 내에 한 단계 뛰어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하늘로 올라갔다.
흐음.
이거 예상이 맞다면…….
꽤 복잡해지겠는데?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물었다.
“혹시 대천사가 되는 방법 같은 게 따로 있어?”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처음에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곧 나와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알겠다는 듯 웃어 보였다.
“전에 말했지? 그렇게 쉽게 마왕이나 대천사가 될 것 같으면 아무도 고생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이전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분명 그때 말하기로…….
억지로 보다 상위의 등급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대가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대가에는…….
“제물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겠네.”
“맞아.”
일단 내가 가진 것 중에서는.
마신의 파편이라던지 하는 것들이 있을 테고.
지금 당장 이곳에는 그런 종류의 것이 있을 리가…….
그러다 시선을 돌려 타란 제국성 쪽과 타란 제국 황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곧 마왕 헤르게니아와 동시에 흘리듯이 말했다.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
그것도 그냥 오벨리스크로는 안 된다.
적어도.
보다 상위의 무언가를 흡수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지금.
그 상위의 무언가가.
이 타란 제국 수도에 들어와 있었다.
바로 재중이 형에게 연락했다.
<주호> 형. 아무래도 우리가 처음부터 잘못 짚은 것 같아요.
<불멸> 이 상황의 끝이 황제가 아니라 마엘리타라는 거지?
<주호> 알고 있었어요?
<불멸> 네가 이상하다고 한 순간부터 생각을 해봤지. 왜 마엘리타가 저렇게까지 해서 타란 제국 황제를 돕는 건가 하고. 처음에야 자신의 방패막이를 위해 황제를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너무 과하긴 하잖아?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타란 제국 황제가 강해지는 게.
마엘리타를 대천사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 줄 것이라고.
실제로 타란 제국 황제가 정말 그렇게 강해진다면 충분히 가능한 스토리이기는 했다.
후에 타란 제국 황제가 약속을 지켜준다면 말이지.
하지만 마엘리타 입장에서 보면 제약을 걸어놨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뭔가가 삐걱되고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제어하기 힘든.
그것도 자신보다 월등히 강해질 타란 제국 황제라면 말이지.
그간 겪어봐 온 경험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도 강한데 여기서 더 강해진다면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걸 마엘리타가 모를까?
아니.
절대 여기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이건 가정일 뿐이지만.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타란 제국 황제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난 후에.
마엘리타를 죽여 버릴 수도 있을 테고.
다른 녀석이라면 몰라도.
타란 제국 황제라면 충분히 할 법한 생각이니까.
그는 자신에게 걸려 있는 마엘리타라는 목줄을.
좋다고 넘겨 봐줄 녀석이 절대 아니었다.
뭐 마엘리타가 천사라는 이용 가치가 그때도 있다면 최악의 상황까지 가진 않겠지만.
그리고 만약 나라면.
내가 마엘리타라고 생각해 본다면.
타란 제국 황제를 굳이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곧 재중이 형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불멸> 마엘리타는 본인이 직접 고대 마룡의 힘을 흡수할 생각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