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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08화 (1,308/1,404)

#1308화 위장 (11)

고대 마룡에 의해 초토화된 타란 제국성의 전경은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때 성마대전에서 마지막 버팀목이 되었던 타란 제국성이 이렇게 무너지다니.

덕분에 누가 황제임에 따라 역사가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역시나 지금의 타란 제국 황제는 황제에 어울리는 재목이 아니었다.

만약 카샤스 대공이 같은 상황이었다면.

타란 제국군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기 전에 먼저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타란 제국 황제는 기어코 자신의 힘을 완성하기 위해 끝까지 버텼다.

모든 병력을 제물로 삼아.

무시무시한 기운이 타란 제국성 안쪽에서부터 밀려 나오자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카베스……!”

그리고 그런 기운을 느낀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카샤스 대공군의 모든 용기사들의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더니 경직된 표정으로 타란 제국성을 쳐다봤다.

“세상에…….”

“이건 대체…….”

“괴물…….”

타란 제국 황제가 대놓고 기운을 퍼트리는 덕에 어지간한 녀석들은 전부 알게 되었다.

저 안에 있는 타란 제국 황제가 괴물이라고.

뭐 원래도 영웅 중에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괴물에 속했지만.

지금의 황제는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 팀에 모두 경고음이 떴다.

그리고 붉은색의 경고로 퀘스트를 알려왔다.

곧 전사 형이 쓴웃음으로 지었다.

“타란 제국 황제 토벌인가?”

“네. 이번엔 토벌이죠.”

이전의 마왕 헤르게니아를 맞닥뜨릴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감당하기 힘든 퀘스트는 언제나 부담스럽다.

그것도 나라 하나를 먹어치운 괴물은 더 그렇고.

옆에서 타란 제국성을 빤히 쳐다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살짝 질린다는 듯 말을 꺼냈다.

“와…… 정말 괴물이 됐잖아.”

“어때? 네가 보기엔?”

우리야 타란 제국 황제의 힘을 어렴풋이 예측할 뿐이지만.

마왕 헤르게니아는 그보다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내 추측은 그녀의 이어지는 말로 확실해졌다.

“말 그대로 괴물이야.”

“굳이 비교를 하자면?”

“나랑?”

“그래 주면 더 고맙고.”

마왕의 힘과 비교를 하는 것만큼이나 정확한 게 또 있을까.

잠시 인상을 구긴 마왕 헤르게니아가 맘에 안 든다는 듯 말했다.

“으음. 난 직접 전투형이 아니라서 비교가 힘들 거야. 굳이 비교를 하면…… 아마 마왕 서열 한 자리 안에도 충분히 들어갈 것 같은데?”

“그 정도냐…….”

원래 타란 제국 황제라는 직위 자체가 엄청나게 강한 영웅에 속했다.

한 제국을 대표하는 영웅이니.

마왕과 천사들까지 다 포함한다면 순위가 많이 쳐지긴 할 테지만.

어지간한 마왕이나 천사들과도 일전이 가능할 것이다.

당대의 제국 황제가 다소 약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응. 그것도 상위야. 어쩌면 지금의 서열 1위하고도 싸워볼 수 있겠어.”

지금 마왕 서열 1위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서열 1위는 안다.

카르페디움 마왕성의 주인.

마왕 바이카르.

단순 비교는 힘들겠지만.

그 정도로 강하다면…….

제물의 결계로 엄청나게 강해진 건 확실했다.

“어쩌면 단독으로 고대 마룡을 잡을 수도 있겠네?”

“흐응? 그건 또 어쩔까나…….”

이건 순수하게 내 추측이었다.

마왕 바이카르의 비밀 창고에서 가져온 무구 중에 재중이 형의 창이 있었다.

고대 마룡의 창.

그렇다는 건.

예전에 마왕 바이카르가 고대 마룡을 잡았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가능했다.

카샤스 대공이 고대 마룡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마왕 바이카르와의 싸움에서 죽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후에 다른 방법으로 얻었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마왕 헤르게니아가 보기에 지금의 타란 제국 황제가 최소 그 정도의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혀를 차며 감탄의 말을 꺼냈다.

“와. 진짜 마왕들도 이렇게까진 안 하는데.”

“희생양들 말하는 거야?”

“응. 아마 다른 마왕도 울고 갈 거야. 저 모습을 보면.”

그 말을 듣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마왕들은 같은 방식으로 힘을 키우지 않나?”

“으음. 할 수 있는 있는데…… 마족들에게도 금지된 마법이라서.”

“마족들이 그런 걸 따질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강해지면 그만 아닌가?”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한때 마족과 천사들 사이에도 유행할 때가 있었는데…….”

“둘 다 썼다는 건가?”

처음엔 천사들만 쓴지 알았는데.

마족들 역시도 쓴 역사가 있었다.

“맞아. 그리고 어떻게 됐는지 알아?”

“글쎄? 강한 녀석들이 잔뜩 나온 건가?”

그런 추측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짧게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둘 다 멸망할 뻔했어. 마계고 천계고 할 것 없이.”

“음. 그건 또 의외네.”

솔직히 힘을 한데 모은 개체가 나와서 더 강해질 줄 알았는데.

멸망까지 입에 담을 정도였다니.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시선을 돌려 타란 제국성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때도 딱 저랬으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폐허가 된 타란 제국성.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리고 남은 건 딱 하나뿐.

강한 개체인 타란 제국 황제.

만약 이런 상황이 마계와 천계 전체에 일어났다면?

그때부터는 종의 존속을 우려해야 할 상황까지 가지 않았을까.

순간 궁금한 점이 생각나서 물어보았다.

“그런데 남은 강자들은 어떻게 된 거지? 그들이라도 있으면…….”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다시 한숨을 쉬고는 답했다.

“저렇게 인위적으로 우겨 넣은 힘이 영원 할거라 생각해?”

“아냐?”

“응. 아냐. 풍선처럼 부풀어진 저 힘은. 한 번 쓰고 나면 사라져. 원래의 그릇은 그 강대한 힘을 담아둘 수 없으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전사 형도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하…… 그럼 한 번뿐인 힘을 써보겠다고 그 많은 녀석들이 죽어 나간 겁니까?”

전사 형의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해. 전에 말했잖아. 힘을 구겨 넣는다고 급이 올라가진 않는다고.”

그 순간 전사 형도 뭔가를 떠올렸는지 말을 흘렸다.

“마계나 천계가 망할 뻔한 이유를 알 것 같군요. 다들 씨가 말랐을 테니.”

전사 형 말대로.

숫자는 줄어드는데 그 목숨을 대가로 얻은 힘은 한 번 써버리면 증발한다.

그럼 정말 존속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왔겠지.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의외의 말을 해주었다.

다시 타란 제국성 쪽을 쳐다보면서.

“저 황제. 아마 곧 죽을 거야.”

“뭐?”

순간 우리를 비롯한 카샤스 대공까지 모두 놀란 눈빛을 보였다.

그리곤 카샤스 대공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 죽는다고.”

“고대 마룡에 죽는다는 뜻인가?”

“아니. 말했잖아. 그릇을 넘어서는 힘을 억지로 구겨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카샤스 대공이 흐릿하게 답했다.

“아마도. 깨지겠군.”

“맞아. 저 힘을 소모하는 대가는 죽음이야.”

아까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해주지 않은.

제물의 결계를 쓴 강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로써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릇이 깨져 죽거나.

혹은 그들끼리 싸워서 죽거나.

어쨌든 죽는 건 매한가지였다.

“가만히 놔둬도 죽는다 이거군.”

“그전에 저 힘은 다 쓰고 죽을 건데?”

“음…….”

시간이 지나서 자연적으로 죽는다고 여기서 굳이 타란 제국 황제를 노릴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까지 얼마나 걸리냐가 문제겠지.

그때 생각나는 게 있어 바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그걸 타란 제국 황제도 알고 있을까?”

“나도 몰라. 이 결계를 만든 녀석이 알려줬다면 알고 있겠지만.”

흐음.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인가.

아마도 알려주지 않았을 확률이 높을 것 같은데.

녀석의 정확한 성향을 모르는 지금은 확신할 순 없었다.

“그럼 안다고 쳤을 때.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은?”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몇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 넘치는 힘을 버틸 수 있도록 그릇을 키우면 돼.”

“정확하게는?”

“음. 마신의 파편이나 흔적 같은 상위의 물건이 있으면 가능할 거야. 그게 없다면 저런 상위 개체를 잡아서 급을 높이는 방법도 있어.”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우리 팀 모두가 슬쩍 날 바라봤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고.

마신의 파편이나 용신의 파편.

신의 흔적 같은 아이템들.

아이템의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등급을 올려주는데 쓸 수 있다는 거겠지.

물론 난 이것들을 다 들고 있었다.

그리고 타란 제국 황제에게 필요한 건 아마 용신의 파편이 아닐까.

원래라면 용신의 파편을 아이샤 타란이 가지고 있다가 황제에게 주어야 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타란 제국 황제가 고대 마룡을 잡는 것밖에 없으려나.

“황제는 여기에 사활을 걸었군.”

이미 시작한 일.

중간에 멈추기에는 너무 멀리 왔을 것이다.

그러니 제국군을 전부 희생양으로 삼아서라도 추가로 힘을 더 구겨 넣은 거다.

그릇이 깨져 죽을 것을 안다고 가정했을 때 말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타란 제국성의 중앙에서 뭔가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온몸에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는 타란 제국 황제와.

검은 용인 키로아.

하얀 날개를 펼치고 있는 세 명의 천사들이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순간.

카샤스 대공군 사이에 섞여 있던 두 명의 천사가 달려 나오더니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최상급 천사들인 이베스와 로엔.

그중 이베스가 내게 물었다.

“움직입니까?”

“아니. 아직 지켜본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타란 제국 황제 역시 우리 쪽을 발견했는지 잠시 시선을 주다가 이내 고대 마룡 쪽으로 돌렸다.

상대가 아니라는 듯.

전사 형이 그걸 보고는 내게 말했다.

“우리 방금 황제에게 무시당한 거냐?”

“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무시라기보다는…….

좀 다른 눈빛이던데.

마치 귀찮은 무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옆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설명을 해주었다.

“굳이 우리에게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을걸? 고대 마룡을 상대하는 데만 해도 모든 힘을 다해야 할 테니까.”

“일회성 힘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거네.”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방해하면 바로 우리를 칠 거야.”

“죽이진 않을 테니 가만히 있어라 이거군.”

그만큼 지금 타란 제국 황제는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안다는 뜻이었다.

이곳에는 카샤스 대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할 정도면.

그 말에 이베스와 로엔이 바로 일어나더니 내게 뭔가를 말하려던 것을 손을 들어 막았다.

아마도 내가 대천사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발끈한 것 같은데.

“됐어.”

“하지만……!”

“두 번 말 하게 하지 마.”

“알겠습니다.”

곧 키로아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 타란 제국 황제와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일전이 펼쳐졌다.

아마 이전 같았으면 상대도 안 됐겠지만.

경계를 하던 고대 마룡의 검은 용암이 연이어 키로아에게 뻗어졌는데.

그걸 타란 제국 황제는 손짓 한 번에 강렬한 빛을 뿜어내더니 검은 용암들을 그대로 반으로 갈라 내버렸다.

마치 이게 끝이냐는 것마냥 편안히 웃어 보이는 여유라…….

타란 제국 황제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저것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세 명의 최상급 천사들이 진을 치고 지키고 있었다.

저건 다른 녀석들이 방해할 때를 대비한 거려나?

그때 공중에서 우리 쪽을 내려다보던 마엘리타 녀석과 중간에서 눈이 마주쳤다.

흐음.

한 번 해볼까?

이게 먹힐진 모르겠는데.

품에서 슬쩍 대천사의 검을 꺼내는 순간.

마엘리타 녀석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정확하게 알아봤네.

곧 마엘리타에게 웃으면서 입 모양으로 말을 전했다.

‘튀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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