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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07화 (1,307/1,404)

#1307화 위장 (10)

타란 제국 황제가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하게 만들어줄 생각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샤스 대공군을 불리한 전장에 마구잡이로 갈아 넣고 싶은 마음까진 없었다.

아무래도 공성 측이 수성 측보다 피해를 많이 보는 데다가.

카샤스 대공군의 세력이 적은 것도 한몫했고.

후에 카샤스 대공에게 남은 세력이 없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타란 제국성을 감싸고 있던 존재감을 흐리게 하는 마법진을 마왕 헤르게니아가 해제해버리자 곧 저 멀리 하늘에서 고대 마룡의 거센 하울링이 들려왔다.

곧장 카샤스 대공에게 말을 전했다.

“지금 카샤스 대공군 전부 퇴각시켜.”

내 말에 카샤스 대공 역시도 먼 하늘을 빤히 쳐다보고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처음부터 고대 마룡을 불러들일 생각이었나?”

이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카샤스 대공은 자신의 군대를 제물로 썼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어차피 불리한 전장이잖아. 그럼 우리도 손을 좀 빌려야지.”

여기 있는 누구보다 카샤스 대공은 잘 안다.

지금 자신의 병력으로는 어떻게 해도 타란 제국성을 뚫을 수 없다는 걸.

본인이 직접 나서면 아마 제국성을 뚫는 것까지는 가능해도.

이후에 타란 제국 황제를 상대할 방법이 없다.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기에 카샤스 대공도 바로 손을 들어 명령을 내렸다.

“전군 후퇴한다.”

그리고 휘하의 기사단장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타란 제국성을 바득바득 타고 올라가던 병사들이 썰물 빠지듯 우르르 후퇴하는 모습이 보였다.

공중에서 서로의 꼬리를 물며 도그 파이팅을 하던 용기사들 역시도 명령을 하달 받았는지 하나 둘 상대를 떼어놓고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동시에 비공정들도 선두를 돌려 타란 제국의 비공정들을 떼어놓았다.

뭐 굳이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저 멀리서 고대 마룡이 날아오는 걸 발견한 녀석들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후퇴 명령이 더 빠르게 전달된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무엇보다 현재 카샤스 대공군은 순수하게 NPC들로만 이루어진 집단이라.

유저들이 포진된 왕국군들은 이미 괴멸된 상태라 더욱 명령 체계가 잘 돌아갔다.

명령에 반발하는 녀석들이 없으니까.

반대로 타란 제국성의 군대는 갑자기 카샤스 대공군이 빠지자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저것들 갑자기 왜 다 빠지는 거야?”

“우리가 이긴 건가?”

“휴. 이번엔 정말 뒤지는 줄 알았잖아.”

그리고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제국성 녀석들도 곧 카샤스 대공군이 왜 빠졌는지 곧 알게 되었다.

“고대 마룡……!”

“비상이다!!”

“젠장. 산 넘어 산이잖아.”

저 멀리 하늘에서부터 괴성을 울리면서 날아오는 녀석을 보고도 모른다면 말이 안 되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카샤스 대공군보다.

저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이들에게는 훨씬 큰 위협이라 할 수 있었다.

개별 병력으로 대적이 가능한 카샤스 대공군과 달리.

고대 마룡은 그게 안 되니까.

카샤스 대공군이 후퇴해서 겨우 한숨 돌리려던 타란 제국군에 비상이 걸리며 이번에는 모든 병력이 고대 마룡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꺾었다.

용기사들을 비롯해서 비공정의 함포들까지 전부.

지상의 성벽에 배치된 방어포들 역시 일제히 방향을 틀어 포대를 들어 올렸고 거리에 들어오면 쏠 준비를 마쳤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쟤들은 내전 끝나니 바로 방어전이네.”

“그러게요.”

어차피 이번 공성에서 후퇴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오는 패널티는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패널티 자체가 없기도 했고.

그래서 마음 놓고 카샤스 대공군을 후퇴시켰다.

좀 전의 공성전에서 졌다 뿐이지.

아직 내전에서는 진 게 아니니까.

카샤스 대공과 대공군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내전 상황은 여전히 유효하다.

반면에 타란 제국군은 마찬가지로 공성의 패널티 역시 없겠지만.

이어지는 저 방어전이 문제였다.

우리처럼 타란 제국성을 버리고 나올 수 없다는 점이 문제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

타란 제국성을 내어준다는 것 자체가.

이미 녀석들에게는 패배나 마찬가지라.

어느새 전장의 외곽까지 모든 병력을 뺀 것을 확인하자마자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애들 정비하면서 준비해둬.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어.”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물어보았다.

“다시 타란 제국성으로 진입할 생각인가?”

“어. 고대 마룡이 한 번 제대로 엎어주고 나면 들어갈 거야.”

솔직히 바로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카샤스 대공군이 낄 자리가 아니었다.

괜히 여기서 밀고 들어가 봐야 고대 마룡에게 죽기나 하겠지.

어느새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성의 상공에 도착해 주변을 탐색이라도 하듯 크게 반원을 돌면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카아아악!!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젠 자신의 힘을 빼앗아가고 있는 주체가 누군지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대 마룡의 커다란 몸체에서 뭔가의 붉은 기운이 흘러나와 타란 제국성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동안은 천사들의 마법진이 그걸 가려주었지만.

그 마법진은 마왕 헤르게니아가 해제해서 없애 버린지 오래다.

당연히 고대 마룡의 분노가 타란 제국성 안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곧 하늘을 날던 고대 마룡에게서 수도 없이 많은 마법진이 형성되더니 검은 용암을 끝도 없이 불러내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약해진 것이 맞는가 의심이 들 정도로.

그러자 옆에서 전사 형이 두 손을 번쩍 들고는 고대 마룡을 응원했다.

“오오!! 가서 박살 내버려!!”

그런 전사 형의 응원이 모두에게 들렸을까.

갑자기 카사스 대공군에게서 대찬 응원 소리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라! 고대 마룡!!”

“싹 쓸어 버렷!”

“복수해 달라고!”

어느새 다들 한 자리씩 깔고 앉아서 응원하는 모습이란…….

이들도 잘 아는 것이다.

지금은 고대 마룡이 우리 편이라는 것을.

카샤스 대공군 입장에서는 내전으로 죽어 나간 전우의 복수를 고대 마룡이 대신 해주는 셈이라.

그걸 지켜보던 막내별이 웃음 지으며 말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네요?”

“뭐 그런 셈이죠.”

뭐 당장 저 싸움 속으로 들어가면 다 같이 죽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지켜보기만 하면 되니.

곧 타란 제국성을 부수려는 고대 마룡과.

타란 제국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비공정과 성벽 방어포가 연신 불을 뿜어댔고.

고대 마룡은 그걸 피해가며 지상으로 검은 용암을 계속 뿌려대자.

타란 제국성 곳곳이 검은 용암에 녹아내리거나 폭발하며 그 형체를 점점 잃어갔다.

선회하는 고대 마룡을 잡기 위해 용기사들이 뒤를 잡고 열심히 따라가 공격을 퍼붓는 모습 역시 볼만 했다.

당연히 고대 마룡도 따라붙는 그들을 격추하면서 포효를 질러댔다.

마치 하늘의 제왕은 자신이라는 듯.

재중이 형이 그걸 보고는 혀를 찼다.

“역시 공중에서는 상대가 안 되는데?”

“네. 어렵죠.”

지금이야 용기사단이 물량으로 밀어붙이고는 있는데.

기동력이 워낙 밀리다 보니 뒤를 쫓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지상에서 쏘는 방어포는 피해버리기 일쑤였고.

당연하겠지만 발이 느린 비공정은 고대 마룡의 붉게 달아오른 비늘에 그대로 선체 중앙이 뚫려서 폭발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늘에서 비공정들이 연신 터져나가자 전사 형이 아깝다는 듯이 한탄했다.

“아…… 저게 돈이 다 얼만데.”

“하하……”

당장 터져나가는 비공정들만 합쳐도 어지간한 왕국 예산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 피해 규모는 커질 것이다.

애초에 비공정으로 고대 마룡을 막겠다는 생각 자체가 무리였다.

하지만 여기서 비공정을 외곽으로 돌리거나 지상으로 뺄 수가 없는 게 더 문제였다.

당장 방어라인이 뚫리면 그 다음은 바로 타란 제국성이라.

“방어 결계만 있었으면 저렇게 뚫리진 않았을 텐데요.”

내 말에 전사 형도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방어 결계를 쓰려면 저 제물의 결계를 꺼야 하니까.”

타란 제국 황제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제국성을 방어하겠다고 제물의 결계를 껐다가는 고대 마룡이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셈이라.

그럼 그동안 준비했던 일들이 전부 물거품이 될 테니까.

곧 전사 형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왜 황제가 아직도 안 나오는 거야? 당장 제국성이 먼저 무너지겠구만.”

“흐음. 그러게요.”

솔직히 이쯤 몰아붙였으면 타란 제국 황제가 먼저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직도 타란 제국성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쭉 지켜보던 나르샤 누나가 내게 물었다.

“혹시 황제가 남은 제국군까지도 전부 제물로 쓰려는 거 아냐?”

“설마요.”

아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카샤스 대공군을 뺀 시점이 조금 빨랐을 수도 있으려나?

그러니까 타란 제국 황제에게는 아직 제물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사 형도 신음을 흘렸다.

“제국이 전부 망해도 본인만 강해지면 된다는 건가…….”

당장 타란 제국군과 고대 마룡이 싸우면.

타란 제국군은 전멸할 확률이 높았다.

거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고대 마룡의 힘도 빼앗아 올 수 있으니.

제국 군대 전체를 희생할 각오만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짓이었다.

문제는 대놓고 타란 제국 황제가 저렇게 나오면.

여기서 우리가 더 이상 개입할만한 방법이 없다는 데 있었다.

그저 결과를 기다리는 정도려나.

이젠 얼마나 괴물이 되어 나올지 상상이 안 되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전장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고대 마룡의 공격에 타란 제국성이 무너질 것마냥 반파되었고.

수많은 용기사들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비공정들도 하늘에 떠 있는 숫자보다 지상에 떨어진 숫자가 훨씬 많아졌다.

처음에는 고대 마룡을 응원했던 카샤스 대공군도 고대 마룡의 전력에 질렸는지 다들 입을 다물어 버렸다.

카샤스 대공군의 침묵 속에서 여전히 전투가 진행되었고.

더 시간이 지나자 간헐적으로 반항하는 병력만 남아 초라하게 고대 마룡의 전진을 겨우 막아내었다.

아니.

이젠 막아낸다는 말도 사치였다.

물론 그만큼 고대 마룡도 체력이 달했는지 신체 곳곳이 피로 물들어 흘러내렸고.

그렇게 단단했던 비늘들 상당수가 깨져 제 형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굳건했던 커다란 날개 역시 찢어질 대로 찢어져 넝마가 된 것마냥 볼품없어졌다.

이건 결코 타란 제국군이 못한 게 아니었다.

다만 고대 마룡이 너무 강했을 뿐.

그것도 제물의 결계에 계속 약해진 녀석이 이 정도였다.

고대 마룡이나 타란 제국군은 서로 상처만 가득 입은 채 마지막 전투를 향해 달려갔다.

카샤스 대공이 그 모습을 보기 힘들었는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당장은 내전 상태였지만.

어쨌든 모든 용기사단은 그에게 있어서 수족과 다름없었다.

그런 용기사단들이 마지막 불꽃을 태워가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카샤스 대공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밖에는.

여기서 나섰다가는 고대 마룡의 표적이 카샤스 대공군이 될 테니.

짧게 한숨을 쉬고는 그에게 말했다.

“역시 어렵지?”

“휴. 그래. 답이 없는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아.”

그런 카샤스 대공에게 말을 이었다.

“네가 다음 대 황제가 되면 저러지 말라고.”

“절대. 그럴 일은 없다.”

안다.

카샤스 대공이 성마대전에서 어떻게 싸웠는지를.

“넌 아마 좋은 황제가 될 거다.”

“말은 고맙군.”

그 순간 나와 카샤스 대공의 시선이 동시에 타란 제국성의 중심으로 옮겨갔다.

무언가 주변을 내리누르는 듯한 강렬한.

기분 나쁘고 섬뜩한 기운이 공기를 타고 무겁게 전해져오는 것만 같았다.

흡사 마왕을 볼 때 느끼던.

딱 그런 느낌이다.

“드디어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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