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5화 위장 (8)
아마 타란 제국 황제 입장에서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제물의 결계 안에서 죽어주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타란 제국성 안에 가만히 앉아서 고대 마룡의 힘을 취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카샤스 대공군만 막아내면 되는 일이라.
하지만.
그런 타란 제국 황제에게도 가장 걱정되는 점이 있었다.
확률상 아주 떨어지기는 해도.
분명히 가능성이 존재하는.
하늘로 날아오른 고대 마룡을 빤히 올려다보면서 말을 꺼냈다.
“테이밍.”
“뭐?”
전사 형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고.
우리 팀들 역시 의아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재중이 형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별다른 표정 변화는 없었다.
그때 챠밍이 눈치챘다는 듯 먼저 물어보았다.
“아. 고대 마룡을 누군가가 길들이면…… 제국 황제가 힘을 얻을 수 없어요.”
“빙고.”
그러자 우리 팀들 모두 이해한 모습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솔직히 고대 마룡을 테이밍 하는 게 말이 쉽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는 했다.
모든 조건이 최상에 맞춰져 있어야 겨우 해볼까 말까한.
난이도로 치면 마왕을 때려잡는 것보다 더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게 문제였다.
타란 제국 황제에게는 더 그렇고.
재중이 형이 흘리듯이 말했다.
“분명 카샤스 대공은 고대 마룡을 테이밍 했었지.”
“네.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용신검 아스카론.
이걸 제대로 써낼 수 있다면.
분명히 그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걸 확신할 수 없다는 게 딱 하나의 문제긴 해도.
“그리고 타란 제국 황제 역시 알고는 있겠죠.”
“카샤스 대공에게 가능성이 있다?”
“자신이 아니면 카샤스 대공뿐이니까요.”
그리고는 다시 고대 마룡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타란 제국 황제는. 카샤스 대공이 테이밍을 시도하기 전에 고대 마룡을 어떻게든 죽이고 싶을 거예요.”
“그래. 죽 써서 다른 놈 줄 게 아니라면 말이지.”
제물의 결계가 강력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직접적으로 고대 마룡을 죽일 수 있느냐를 물어본다면…….
솔직히 그만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일반적인 NPC들은 제물의 결계로 모든 체력을 깎아 죽일 수도 있겠지만.
고대 마룡은 약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죽을 만큼 체력이 깎이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벌써 쓰러졌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진 건.
유저들과 왕국군의 병력들이 저렇게까지 공격을 퍼부었는데도.
겨우 페이즈가 한 단계 넘어간 게 끝이었다.
그러니까.
아직 고대 마룡을 죽이려면 엄청나게 많은 체력을 깎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고.
결론적으로.
제물의 결계만으로는.
절대 고대 마룡을 죽이지 못한다.
이걸 이야기했더니 챠밍이 알겠다는 듯 물었다.
“타란 제국 황제가 고대 마룡을 직접 죽이는 게 가장 확실하겠어요.”
“맞아. 어차피 제물의 결계로는 해결이 안 되는데. 시간을 끌다가 카샤스 대공이 테이밍 해버리기라도 한다면. 최악이지.”
“그런데 아직까지 직접 나서지 않은 건…… 힘을 더 모으기 위해서겠죠?”
“아마도? 타란 제국 황제는 아직도 확신이 없을 거야. 자신이 나서서 고대 마룡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신.”
“그래서 저렇게 정찰병들이 대기한 거였네요.”
챠밍 말대로 고대 마룡과 유저들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보고하러 간 녀석들이 있었다.
이건 고대 마룡이 제물의 결계로 인해 얼마나 약해져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 일 테고.
그 와중에 유저들과 왕국군이 나서서 대신 싸워줬으니 타란 제국 황제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타란 제국군을 써야 했을 테니까.
여기서 더 좋은 점은.
왕국군들이 죽으면서 그 힘이 다시 타란 제국 황제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점이었다.
한 마디로.
유저들은 제대로 삽질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만약 고대 마룡을 잡았다면.
모든 게 해결되었겠지만.
지금은 타란 제국 황제의 힘만 늘려준 데다가.
고대 마룡까지 약하게 만들어주었으니.
타란 제국 황제가 고대 마룡을 죽이거나 테이밍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준 셈이었다.
여기서.
조금 더 좋은 조건을 만들려면…….
챠밍이 눈치챘는지 내게 물어보았다.
“타란 제국군과 카샤스 대공군이 정면에서 붙으면…….”
“그래. 죽어 나간 녀석들의 힘이 타란 제국 황제에게 가니까.”
“그때는 타란 제국 황제가 나서겠네요.”
이게 굳이 카샤스 대공군이 제물의 결계으로 진격해올 때까지.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었던 이유였다.
제물의 결계 안에서 싸워주기만 하면.
무조건 자신에게 유리하니까.
밀리는 경우 타란 제국성을 뺏길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란 제국 황제에게는 고대 마룡의 힘만 얻으면.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게 된다.
전사 형이 내게 시선을 돌려서 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타란 제국 황제가 힘을 더 얻을 수 있도록 일부러 방치했다는 뜻이지?”
“네. 뭐 그런 셈이죠.”
일단 유저들과 왕국군을 일차 제물로 준다.
여기서 타란 제국군과 카샤스 대공군까지 제물로 주면?
곧 챠밍이 놀란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오빠는 처음부터 타란 제국 황제와 고대 마룡이 서로 싸우게 만들 생각이었죠?”
“맞아. 서로 피 터지도록 싸우려면. 타란 제국 황제가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거든.”
그리고는 아쉽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솔직히 타란 제국 황제만 죽이려고만 했다면 한참 이전에 죽여 버렸을 거야.”
내 확신이 담긴 말투에 다들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곧 전사 형이 의아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황제를 죽일 수 있었다고?”
“네. 마음만 먹었으면 몇 번이고 기회는 있었어요.”
일단 용신의 파편으로 고대 마룡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아마 고대 마룡을 빼내지 않고 계속 타란 제국 수도에 머물게만 했어도 이미 망해도 몇 번을 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고대 마룡은 그대로 남게 되겠지.
결국 고대 마룡을 상대해야 하는 건 우리나 카샤스 대공이 될 테고.
용신검으로도 완벽하게 테이밍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는.
고대 마룡의 힘을 최대한 깎아내 줄 상대가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게 바로.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였다.
제물의 결계라는 특수한 방법을 지닌.
그때 생각했다.
이 결계라면…….
고대 마룡을 직접 상대할만한 스파링 파트너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중간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여기까지는 끌고 왔다.
“아마도 타란 제국 황제는 고대 마룡의 힘을 깎아줄 최고의 상대가 되어 줄 겁니다.”
그러자 전사 형이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처음부터 노리던 게 타란 제국 황제의 목숨이 아니라. 고대 마룡이었구나.”
“네. 제가 직접 타란 제국 황제 목을 따서 당장 뭐에 쓰겠어요. 어차피 카샤스 대공이 할 일인데.”
아무리 우리가 타란 제국 황제를 죽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타란 제국의 차기 황제는 될 수 없었다.
타란 제국 자체가 강렬한 용혈을 가진 자를 모시는 집단이니까.
이쪽은 차라리 역사대로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의 황제가 되어주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고대 마룡은 아니지.
카샤스 대공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얻을 수 있다면.
이 성마대전에서 최고의 보상이 될 수 있었다.
당장 저 많은 유저들이 눈이 벌겋게 되어 죽을 것을 각오하고 덤벼드는 것만 봐도.
얼마만큼의 값어치가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두 손뼉을 치면서 웃음 지었다.
“와. 정말 마왕도 울고 가겠네.”
마왕한테 저런 소리를 들으니 좀 이상한 기분이긴 한데?
“그런데 혹시라도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 황제에게 죽으면? 걔 진짜 마신급이 될 건데?”
“아니. 그건 안 될 거야. 정말 최악의 상황에 쓸 수 있는 카드가 있으니까.”
“헤에. 궁금하네.”
“뭐 이것까지 안 쓰길 바라야지.”
다시 전사 형이 내게 물었다.
“그래서 카샤스 대공까지 속인 거냐?”
“아무래도 좀 그렇죠.”
무려 카샤스 대공군까지도 제물로 쓰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제대로 말을 했다면.
아무리 내게 호감이 높은 카샤스 대공이라고 하더라도.
카샤스 대공 성향상.
협조를 안 해주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샤스 대공이 알게 되면.
절대 지금처럼 카샤스 대공군이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적어도.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흐음.
이제 저쪽은 시작된 거려나?
날 발견한 녀석이 바로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주변의 눈치를 잠시 보다가 괜찮겠다 싶은지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는 보고했다.
“주호 왕자님. 보고 드립니다.”
이 녀석은 그때 왕국을 대표하던 천사들 중에 한 녀석이었다.
아마 대천사라고 했다가 주변 사람들 때문에 곤란할 것 같아 왕자라고 부른 모양이고.
“시작된 건가?”
“예. 현재 타란 제국성을 포위한 채로 카샤스 대공군이 공성을 시도 중입니다.”
생각보다 빠르네.
아니다.
어차피 제물의 결계 안에서 시간을 끌어봐야 카샤스 대공 입장에서는 불리하다고 판단했을 테니까.
“나쁘지 않네.”
“네?”
“아니. 적당한 시점이라고.”
지금부터 공성을 시작해야 빠르게 양측의 병력이 소모될 것이다.
그만큼 타란 제국 황제도 원하는 힘을 갖추게 될 테니.
뭐 전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해주었듯이.
단순히 숫자만 많다고 급이 확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부족한 건 마력량으로 때울 수 있게 되니까.
나를 찾아와 보고했던 천사 녀석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더니 살짝 눈을 찌푸렸다.
“왕국군은 실패한 겁니까?”
자신들의 명령을 무시하고 고대 마룡에게 달려들었는데 결과를 보아하니 제대로 망한 것 같으니까.
어쩌면 고소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그렇게 됐어. 그리고 어차피 쟤들은 소모품이었으니. 문제 있나?”
소모품이라는 내 말에 천사 녀석이 기꺼운지 웃음 지었다.
“아닙니다.”
어차피 천사 녀석들도 왕국군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건 똑같을 테니까.
그런 녀석에게 물었다.
“이베스와 로엔은?”
“아. 두 분은 지금 타란 제국성에 있는 마엘리타와 다른 최상급 천사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래?”
“네. 여차하면 침투해 그들을 제압해야 하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을 잡아서 제물의 결계를 없애거나 할 요량인 듯 한데…….
그러면 곤란하지.
아직은 말이야.
“그냥 내버려둬.”
“네?”
내버려 두라는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천사 녀석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제물의 결계를 없애는 게 이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녀석에게는 절대 이해되지 않는 명령일 것이다.
“쓸데없는 힘 빼지 말고. 그냥 지켜봐.”
“명령 받듭니다.”
괜히 천사 녀석들이 나서서 일을 망칠 뻔했네.
그렇다고 타란 제국 황제를 더 강하게 만들 예정이라는 말을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사 녀석을 빤히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혹시 마엘리타와 연락할 수 있나?”
“네?”
“두 번 말해야 하나?”
“아닙니다. 가깝게 접근할 수 있으면. 천사들끼리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거부하지만 않는다면요.”
“그래?”
그 말을 듣고는 곧장 천사 녀석에게 말했다.
“그럼. 마엘리타에게 전해. 내가 좀 보자고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