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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04화 (1,304/1,404)

#1304화 위장 (7)

유저들의 왕국군들과 고대 마룡이 싸우고 있던 장소에 온 순간부터 저 멀리 누군가가 떨어져 계속 지켜보고 있단 건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타란 제국군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배치해둔 유저들 중 일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이 지켜보는 방향이 정반대였다.

정확하게는 외부의 상황을 살피는 게 아닌.

고대 마룡이 있는 전장 쪽만 살피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저 녀석들은 최소한 유저나 왕국군은 아니라는 뜻이지.

만약 유저 측이었다면 고대 마룡을 지켜보는 게 아니라 타란 제국성 쪽을 살폈어야 하니까.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레이드가 진행될수록 더욱 확신으로 바뀌었다.

고대 마룡의 피해가 가중되자 녀석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타란 제국성 쪽으로 달려나갔다.

마치 누군가에게 빨리 보고라도 해야 한다는 듯.

아주 다급하게 튀어가는 것을 봐서는.

지금처럼 일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 미처 예상하지 못한 듯 했다.

우리도 유저들이 저렇게까지 준비를 많이 해왔을 것이라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하나.

재중이 형 역시 타란 제국성 쪽으로 달려나간 녀석들을 무심히 쳐다보고는 말했다.

“아주 꽁지 빠지게 달려가네.”

“네. 급했나 봐요.”

그러자 이번엔 고대 마룡 쪽을 쳐다보았다.

“예상보다 좀 빠르긴 하지.”

“정말 준비를 많이 했네요.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고대 마룡을 이렇게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래. 누군지 몰라도. 고대 마룡에게 피해를 최대한 입더라도 어떻게든 잡아낼 수 있는 방법을 썼어.”

고대 마룡이 날지 못하게 계속 밧줄로 묶어두는 것도.

그걸 잡고 버틸 수 있는 대규모 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밧줄을 놓고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겠지.

당연히 검은 용암으로 인해 피해가 속출할 테고.

여기서 힐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수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녀석들 입장에서는 왕국군 정도는 소모할 만하다고 생각할 거다.”

재중이 형 말대로 지금 고대 마룡에게 죽어 나간 왕국군의 숫자가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많았다.

아마 보통 같으면 이런 식으로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레이드를 하진 않을 것이다.

한 번 이런 식으로 병력 소모를 크게 해버리면 뒤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는 듯.

왕국군들이 죽어 나가도 계속 밀어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손해가 커져도 고대 마룡만 잡으면 끝난다는 거네요.”

“그렇지. 그리고 녀석들도 저 짓을 오래 하진 못할 거야. 왕국군 병사들이 일정 숫자 이상으로 줄어들면 그때부터는 고대 마룡을 저렇게 묶어두는 게 어려워질 테니까.”

확실히 유저들이 선택한 방법은 시간 제한이 있는 방법이었다.

왕국군들이 먼저 죽어 나가는가.

아니면 자신들이 고대 마룡을 먼저 잡는가.

지금 그 사실을 제일 잘 알 수 있는 건.

유저들의 움직임이었다.

“브레스 후 경직이다!”

“지금 체력을 최대한 깎아야 해!”

“전 병력! 필살기 아끼지 말고 들이 부어!”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는 최종기라고 할 수 있는 저 검은 브레스를 쓰고 나면.

잠시나마 완전히 경직된 상태로 변하게 된다.

애초에 저 브레스를 맞고 상대가 살아있는 경우가 없을 테니 그만한 패널티를 가져도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은 그 브레스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으니까.

그리고 이 자리엔 바글바글한 유저들과.

왕국군의 영웅들까지 존재했다.

유저들 각각이 그동안 플레이하면서 보유하고 있던 가장 강력한 공격들을 준비했고.

이건 영웅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부신 필살기들과 광역기들이 일제히 고대 마룡의 두터운 비늘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강렬한 폭발들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터졌다.

퍼어엉!!

콰과광!!

쿠아아앙!!

이 일대를 진동시킬만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그 반동으로 고대 마룡의 육중한 몸이 튕기듯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폭발들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았다.

“휘유. 무섭게 들이붓네.”

재중이 형의 감탄만큼 유저들도 사력을 다해 공격을 하는 중이었다.

여기서 마력을 전부 소모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마력을 쏟는 게.

오히려 더 좋았다.

어설프게 스킬을 아껴 봐야 고대 마룡을 맞추지 못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거기다 무력화된 상태에서는 대미지가 압도적으로 많이 들어가게 된다.

다른 스킬들과의 연쇄적인 중첩 효과 역시 기대할 수도 있고.

레이드할 때 보스 몹을 어떻게든 다운시키려는 것도.

그런 방식의 일환이었다.

대미지를 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줘야 한다.

안 그러면 레이드가 길어지면서 실패할 확률이 높아질 테니.

그때 레이드 상황을 지켜보던 전사 형이 다소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음. 저러다 정말 잡는 거 아닙니까?”

지금 전사 형이 걱정하는 건.

여기서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정말 죽을 때의 상황이었다.

제물의 결계 안에서 고대 마룡이 죽게 되면.

그건 고스란히 타란 제국 황제의 힘이 된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저렇게 해서 잡을 수 있을 거면…… 이런 걱정 안 하지.”

“예?”

“못 잡는다고. 쟤들은.”

나올 결과가 예상이라도 된다는 듯 당당하게 말하는 재중이 형의 모습에 전사 형이 다소 당황한 눈빛을 보였으나.

재중이 형이 이런 걸로 틀린 적은 없으니.

바로 믿는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유저들과 왕국군 영웅들이 가진 모든 화력을 들이부어서 만들어낸 폭발이 잦아질 때쯤.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안 죽어?”

“이렇게까지 했는데?”

“거의 다 죽어가는 거 아냐?”

“조금 더 쳐야 하나?”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다들 손발을 놀리지 않고 끊임없이 공격하는 중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고대 마룡이 죽었다는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공격을 들이부으면.

그게 어떤 네임드라고 해도 잡을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연합 몇 개분의 유저들뿐만 아니라 전 왕국군의 영웅들까지도 포함된 전력이었으니까.

하지만 저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건 아크 드래곤을 잡을 때도 생각한 거지만…….

나도 모르게 말을 흘렸다.

“고대 마룡이라면 일정 이하의 대미지는 무시하겠죠.”

내 추측에 재중이 형이 바로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저렇게 화려해 보여도. 실질적으로 들어간 대미지는 그렇게 크지 않을 거다.”

“네. 어지간한 공격은 아예 먹히지 않을 테니까요.”

아크 드래곤 때도 그랬지만.

고대 마룡 역시도 그 방어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방어력을 뚫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강력한 공력력이 필요한 법.

전에 재중이 형과 함께 아크 드래곤을 잡을 때의 대부분의 공격들은.

성유와 정령석.

비공정의 폭발력.

대천사의 무기를 먹인 르아 카르테 같은.

일정 등급 이상의 강력한 공격 방법을 썼다.

그래서 그땐 대부분의 대미지가 다 먹혔던 거고.

저 유저들이 가진 무기들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당연히 일정 이하의 공격력을 가진 그런 공격들은.

그냥 겉으로 보기만 화려할 뿐.

실제 입히는 피해는 적을 것이다.

왕국군 영웅들이야 어느 정도까지 피해를 주긴 할 테지만.

숫자가 워낙 적으니.

결국 합쳐 봐도 대미지가 그렇게까지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게 폭발이 눈에 띄게 잦아드는 순간.

크아아아!!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하울링이 터지면서 주변에 있는 유저들과 왕국군들의 일부가 경직에 걸려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폭발의 구름 속에서 뭔가가 번쩍이는 모습이 보였다.

전사 형이 놀란 눈빛을 하고는 쳐다봤다.

“저건…… 뭡니까?”

그 물음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나도 처음 보는 거라.”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그동안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상대하면서 봤던 그 어떤 패턴들과도 달랐다.

그렇다는 건.

재중이 형이 피식 웃음 지었다.

“그래도 한 페이즈 정도는 어떻게든 넘어간 모양이네.”

우리가 그간 못 본 패턴이 나왔다는 건.

유저들의 공격들이 어느 수준까지는 먹혔다는 뜻이 된다.

적어도 페이즈 하나를 넘길 수준은 된다라…….

유저들이 아주 헛수고를 한 건 아닌 듯 했다.

비록 그 공격이 고대 마룡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마 저걸 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 텐데요. 아쉽게 됐네요.”

“그래. 페이즈를 넘겨서 죽여버리는 게 제일 좋은데 말이지.”

처음 상대하는 네임드를 레이드할 때.

가장 골치 아픈 점은.

아마도 전혀 모르는 패턴이 나왔을 때일 것이다.

후에 몇 번 겪어 보고 나면 대처 방법이 나오는 편이지만.

처음 다른 패턴을 상대할 때는.

여럿 죽어 나가는 걸 무조건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새로운 패턴은.

어떻게 보면 유저들과 왕국군에게는 최악의 패턴을 수도 있었다.

녀석의 전신에 있는 검은 비늘들인 동시에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주변 공기가 타오르듯 붉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전신에 걸쳐져 있던 밧줄들이.

일제히 그 열기에 타오르며 하나둘씩 끊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툭!

툭!

그렇게 끊어진 굵은 밧줄들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팽팽히 당기던 밧줄들이 끊기자 힘겹게 잡고 있던 왕국군들 역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일제히 뒤로 넘어져 쓰러졌다.

그 광경은 유저들과 왕국군들의 표정을 하얗게 질리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저건 그동안 고대 마룡이 하늘을 날지 못하게 막아주던 유일한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어…… 안 돼!”

“젠장. 밧줄들이 전부 끊어진다!”

“야! 새로 밧줄 걸어! 저놈 날아오르면 우리 다 죽어!”

지상에 있는 고대 마룡과.

하늘을 나는 고대 마룡은.

상대 난이도부터가 압도적으로 차이 난다.

후자가 강한 건 당연한 일이고.

그동안 유저들이 날아다니는 고대 마룡을 잡지 못한 것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고대 마룡을 공중에서 따라잡을 만한 무언가가 없다면.

거기다 지금 데리고 온 왕국군의 병사들은.

그냥 녀석의 먹잇감이 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펄럭!!

자신을 구속하던 모든 밧줄들이 붉게 달아오른 비늘에 녹아 떨어져 나가자 바로 고대 마룡의 날개들이 하늘을 향해 크게 펼쳐졌다.

그 모습에 유저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저걸 저지할 수 있는 광역기들은 이미 이전에 다 써버렸으니까.

“날아오르지 못하게 뭐든 날려!”

“속박할 수 있는 디버프 써!”

누군가 악에 바친 듯 외쳤지만.

고작 유저들의 마법 수준과 화살들만으로는.

날아오르는 고대 마룡을 저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곧 공중으로 날아오른 고대 마룡을 보고는 유저들과 영웅들이 인상을 쓰며 자신들의 탈 것들을 소환했다.

스스로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알겠지만.

지금은 뭐라고 해야 하니까.

그때 하늘에서 활짝 펼쳐진 고대 마룡 주위로 백여 개의 마법진이 동시에 발현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시에 붉게 달아오른 검은 용암들이 지상을 향해 동시에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콰아앙!!

그와 함께 지상 곳곳이 거대한 크레이터를 남기면서 터져 나갔다.

왕국군들이 녹아버린 건 덤이었고.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전사 형이 내게 말했다.

“이래선 황제 얼굴 구경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뇨. 꼭 올 거예요. 황제는. 저 녀석을 상대로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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