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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03화 (1,303/1,404)
  • #1303화 위장 (6)

    제물의 결계로 고대 마룡이 약해진 건 알았는데.

    이 정도까지 약해졌을 줄은 나 역시도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라면 지금의 검은 용암에 왕국군이고 유저고 할 것 없이 그 자리에 녹아내려 사라졌겠지만.

    검은 용암이 흩어진 자리에는 마법사들의 지원을 받아 배리어를 중첩해 둘러싸고 라지 쉴드를 치켜든 기사들이 온전한 상태로 버텨냈다.

    물론 그렇다고 피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기사 등급 수준의 방어력은 버틸 수 있어도.

    일반 병사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검은 용암의 여파로 일부 병사들이 쓸려나가면서 여전히 검은 용암이 강력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국군이 전멸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곧 왕국군 전체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며 기세가 오를 대로 올랐다.

    총 7개국의 왕국군.

    이들의 수만 따져 봐도 최소 몇 천은 된다.

    그중 영웅 급에 닿은 기사나 마법사들도 다수 존재했고.

    유저들 역시 뒤에서 전력을 그대로 보존한 상태였다.

    전사 형이 그 모습을 보더니 놀라워하며 말했다.

    “이야. 이러면 싸워볼 만 하겠는데?”

    “역시 그렇죠?”

    “처음부터 싹 녹아버리면 싸움 자체가 안 되잖아. 그런데 지금은 피해를 보긴 해도 버텼거든.”

    확실히 전사 형 말대로.

    싸움이 되려면 어떻게든 한 방은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애초에 전투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그러니까 버텼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이러면 뒤에서 힐을 지원받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

    왕국군에 속한 힐러들이 막대한 힐량을 뿜어내면서 죽어가던 전방의 기사들을 살려내기 시작했다.

    한 방에 살리지도 못하게 죽어버리는 것과.

    어떻게든 버티는 것의 차이는.

    이만큼 컸다.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의미니까.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도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듯 잔뜩 인상을 쓰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라면 이미 죽어서 사라져야 하는 왕국군들이.

    버젓이 두 다리로 서서 버티고 있었다.

    동시에 사방에서 왕국군들이 포위하듯 밀고 들어오자 다시 한 번 검은 용암들을 소환해 그들에게 뿜어냈다.

    콰아아아!!

    “막아!”

    “우린 버틸 수 있다!”

    “우와아!!”

    콰아앙!

    쿠우웅!!

    한 번 기세를 탄 왕국군이 다시 한 번 대규모의 배리어를 치며 그런 검은 용암을 꿋꿋하게 버텨냈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힐 샤워에 전방의 기사들의 상태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대로 전진!”

    “이젠 무서울 게 없다!”

    동시에 왕국군의 후방에서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의 화살 세례가 뻗어 나오더니 이내 고대 마룡을 목표로 다시 떨어져 내렸다.

    각종 마법과 스킬이 걸린 화살들은.

    고대 마룡의 방어를 뚫기 위해 사력을 다해 날아가 비늘에 두들겼다.

    쐐애액!!

    파아악!!

    퍼어엉!!

    하지만 검은 용암의 방어에 성공했다고.

    고대 마룡의 방어를 쉽게 뚫을 수 있는 건 또 아니었다.

    용족이라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방어력을 가진 존재인데.

    그에 더해 고대 마룡은 그들의 정점에 있는 녀석이라.

    채 고대 마룡을 감싸고 있는 방어막조차 뚫지 못하고 중간에 터지거나 꺾여 나가는 화살이 줄을 이었다.

    아마도 일정 이하의 공격력은 저 방어를 절대 뚫지 못할 것이다.

    녀석의 엄청난 방어력에 감쇄된 공격이라 대미지가 1이라도 들어가면 다행이겠지.

    문제는 그런 마법적인 방어막을 뚫어야.

    겨우 녀석의 비늘에 닿는다.

    아직 고대 마룡에게 손가락 하나 대어보지 못한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고대 마룡은 이 상황이 많이 거슬리는 듯 했다.

    카하아악!!

    분노에 찬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하울링이 거칠게 터져 나오자 가장 전방에 있던 기사들의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파동을 따라 그 뒤쪽에 있는 병력들 역시도 굳어졌고.

    일대가 마비라도 된 듯 정지되자 고대 마룡의 거대한 꼬리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가 이내 지상을 향해 거칠게 떨어져 내렸다.

    쿠웅!!

    콰아앙!!

    콰가각!!

    압도적인 크기의 꼬리가 낙하하는 속도까지 붙여서 지상을 내려친 결과는 그대로 드러났다.

    포탄 터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대지가 움푹 패여 나가며 동시에 그 범위에 있던 병력들이 갈기갈기 육편으로 갈려 터져나갔다.

    그나마 방어력이 강한 기사들은 어떻게든 버텨냈지만.

    일반 병사들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는 듯 바로 증발했다.

    그런 그들이 죽는 순간.

    붉은 기운이 뽑혀 나오며 제물의 결계의 중심을 향해 줄기줄기 뻗어 나갔다.

    전사 형이 바로 신음을 흘렸다.

    “흠. 역시 죽으면 바로 빨려 들어가네.”

    “네. 저대로 타란 제국 황제의 힘이 되는 거겠죠.”

    “많이 죽으면 역시 손해인데?”

    유저들도 이런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피해는 어쩔 수 없어.”

    “시간을 주지 마! 빠르게 잡는다!”

    “전 병력 공격 퍼부어!”

    이미 죽어버린 녀석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이번엔 후방에서 준비하고 있던 마법사들과 궁수들의 연이은 광역기들이 고대 마룡을 향해 뻗어져 나갔다.

    종류가 다른 수백이 넘는 광역기가 동시에 뿜어져서 두들기는 광경이란.

    콰아아앙!!

    쿠우우웅!!

    쐐애애액!!

    압도적인 숫자의 광역기의 화려한 이펙트들이 중첩되며 순간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하늘이 하얗게 달아올랐다.

    옆에서 손바닥으로 눈을 살짝 가린 재중이 형이 혀를 찼다.

    “이거 선글라스라도 있어야겠는데?”

    그와 함께 고대 마룡에게서 고통이 섞인 울음이 터져 나왔다.

    카하아악!!

    아무리 고대 마룡이 방어력이 좋다고는 하나.

    물량 앞에는 장사 없다고.

    적은 대미지도 쌓이고 쌓이면 결국 아픈 건 매한가지다.

    그리고 왕국군들의 저력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꽤 좋다고 해야 하나.

    어지간한 공격은 먹히지도 않을 텐데.

    풀 차징 뒤에 위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단 한 번에 고대 마룡을 쳤으니까.

    이러면 고대 마룡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왕국군마다 다른 녀석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마법사나 궁수들이 하나씩은 존재했다.

    그들이 쏘아 올린 광역기들은 그 크기부터가 달랐으니.

    위력 또한 차원이 다를 터.

    “왕국에 있는 영웅들의 공격은 제대로 먹히는 것 같아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천사들로 치면 상급은 넘어갈 테니까. 어중이떠중이 같은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르겠지.”

    제국에 있는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성마대전에서 활약하는.

    그러니까 역사서에 한 줄 정도는 기록되는 인물들일 것이다.

    저들만 제대로 모아서 성마대전에 싸웠다면.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지진 않았을 텐데.

    이미 기록되어 있듯.

    왕국들은 저들끼리 영역 싸움만 하다가 마왕군에게 허무하게 밀려버리고 만다.

    천사들이 지원해줬음에도 말이지.

    뭐 그때도 지금처럼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어지는 왕국군의 거센 공격에 결국 고대 마룡이 먼저 손을 들었다.

    고대 마룡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제물의 결계 때문에 체력이 깎여나가는 중에 별 이상한 것들이 다 달라붙어서 추가로 체력을 깎는 격이라.

    절대 달가운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날개를 크게 펼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유저들 쪽에서 큰 외침이 들렸다.

    “준비한 것들! 전부 던져!!”

    “지금이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되어 있듯 후방에 있던 유저들이 뛰어나오며 엄청난 수의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고대 마룡에게 집어던졌다.

    딱히 그 밧줄 자체가 뭔가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허공에서 수많은 밧줄들이 날아가 고대 마룡의 등 뒤로 걸치듯이 넘어갔다.

    어떤 갈고리는 직접 비늘에 걸리기도 했다.

    혹은 날개나 다리를 휘감는 녀석들도 더러 있었고.

    정확하진 않았지만.

    워낙 숫자가 많았기에 얻어걸리라는 식으로 던진 밧줄들이 고대 마룡을 휘감거나 반대편으로 넘어가자 다시 크게 외쳤다.

    “전부 잡아당겨!”

    “앞에 있는 밧줄 아무거나 잡아당기라고!”

    일단 한 번 날아오르면 절대 잡지 못한다는 걸.

    유저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유저들만 할 수 있는 방법을 준비했다.

    무려 수천에 달하는 병사들이 달려들어 동시에 밧줄을 잡고 매달리는 순간.

    날아오르려던 고대 마룡의 동체가 크게 휘청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날개 역시 곳곳에 밧줄이 얽혀서 제대로 펼쳐지지 못했고.

    아마 정확하게 모르긴 해도.

    단순히 무게만 따지면.

    왕국군의 병사들 쪽의 무게가 더 크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반대였다면.

    이미 고대 마룡이 저들을 뿌리치고 하늘로 날아올랐을 텐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재밌다는 듯 웃어버렸다.

    “이야. 쟤들 준비 많이 했네.”

    “그러게요. 날아오르는 것까지 막을 줄은 몰랐어요.”

    이것도 전부 엄청난 물량 공세가 가능해야 준비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무려 7개 왕국군이라는 숫자에서 오는 위엄이라고 할까.

    물론 숫자가 많으면 작전의 손발이 맞아야 하겠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그들의 호흡이 딱히 잘 맞을 필요는 없었다.

    그냥 눈앞에 떨어지는 밧줄을 죄다 잡고 늘어지면 되는 일이라.

    “누군지 몰라도 머리 많이 썼네요.”

    “천사들까지 배신하고 나왔잖아. 쟤들도 뒤가 없는 거니까.”

    급한 놈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그리고 그 작전은 지금 꽤 유효하게 먹히는 중이었다.

    다만 아쉽게도 오래 붙잡고 있긴 힘들 것이다.

    고대 마룡이 고작 저 정도 밧줄을 끊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

    아마 이걸 계획한 녀석도 잘 알고 있는 듯 유저들 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날아오르면 끝이다!”

    “할 수 있는 공격 전부 퍼부어!!”

    이건 대놓고 서로 맞불 작전이라도 하겠다는 건지…….

    그리고 이번엔 유저들까지 전부 나서서 고대 마룡에게 달려들었다.

    왕국군 역시도 병사들의 무게에 꽁꽁 묶여 제대로 운신을 하지 못하는 고대 마룡에게 달려들어 칼과 창을 수없이 찔러 넣기 시작했다.

    카하아악!!

    설마 자신이 이렇게 묶여서 난타를 당할 것이라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고대 마룡의 눈빛이 당황에 물드는 모습이 보였다.

    꼬리로 내려치려고 해도 들어 올리기 전에 왕국군이 우르르 밧줄을 당겨 무게로 내리누르는 중이라.

    검은 용암도 써 봤지만.

    이미 왕국군을 전부 녹이기에는 그 위력이 부족했다.

    어느 한 곳의 병사들을 죽이더라도.

    또 다른 곳에서 그만큼 밧줄이 날아와 추가로 몸을 걸고 넘어졌다.

    그래서인지 결국 고대 마룡의 거대한 입이 벌어지면서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브레스다!!”

    “전방에 녀석들 튀어!”

    그런데 고대 마룡이 브레스를 준비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각 왕국의 영웅들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유저들과 함께 뭔가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밧줄들을 던져 고대 마룡의 목 쪽에 잔뜩 걸더니 어느 정도 걸리고 나자 한 유저가 크게 외쳤다.

    “뒤로 잡아 당겨어!!!”

    곧 그 밧줄에 걸린 고대 마룡의 목이 뒤로 크게 꺾이면서 시선이 하늘 방향으로 바뀌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브레스를 하늘로 뿜어지게 하기에는.

    콰아아아!!

    검은 용암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압도적으로 강한 브레스가 곧 하늘로 쏘아져 올라갔고.

    당연히 고대 마룡이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했으나 영웅들과 유저들.

    그리고 수백에 달하는 병사들이 매달려 사력을 다해 잡아당기니 방향을 바꿀 수가 없어 보였다.

    이번에는 재중이형도 감탄했다.

    “오…… 이 녀석들. 아주 칼을 갈고 나왔는데?”

    저건 마치 쪽수를 활용하는 가장 좋은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하나?

    숫자만 많다면 한 번쯤은 해봐도 될 것 같은 방법이었다.

    저대로 마무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누군지 몰라도 뒤에서 작전 짜주는 녀석이 있나 봐요.”

    “아마 그렇겠지.”

    어지간한 머리로는 이런 짓을 할 수 없었다.

    누구 작품인지는 몰라도.

    나중에 한 번 보고 싶은데?

    그때 감각에 아까 전부터 거슬리던 무언가가 점차 거리를 벌려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타란 제국성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흐음.

    이제 지켜보는 건 끝났다는 거려나.

    저 멀리 타란 제국성 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예상보다 황제를 볼 시간이 빨라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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