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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02화 (1,302/1,404)

#1302화 위장 (5)

이 천사 녀석들은 절대 모른다.

자신들이 불러들인 유저들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그러니까.

기회만 생긴다면.

유저들은 얼마든지 천사 녀석들을 배신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왕국군을 전부 빼돌리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거지.

그것도 천사들 몰래.

내 눈앞에서 당황하는 최상급 천사 이베스와 로엔을 다소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들 역시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분명히 처음에는 자신들이 포섭한 왕국군들과 모험가들을 전부 통솔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 있게 말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게 전혀 아니었으니까.

누가 봐도 지금 저 왕국군은.

이 천사들의 지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상황이 왜 이렇게 된 지는 안 봐도 뻔하다.

애초에 유저들이 작정하고 준비했다면.

중간에 눈치채지 못하는 이상은.

이런 상황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최상급 천사 이베스와 로엔을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너희가 뭘 실수한 건지는 알아?”

내 물음에 두 천사들이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꿀 먹은 병아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첫 번째는. 모험가들을 너무 믿은 게 문제야.”

아마도 이 두 천사 녀석들과 다른 천사 녀석들은.

유저.

그러니까 모험가들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 칠 수 있다는 걸 사전에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이 그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

반대로 먹히고 있다고는 상상조차 못 한 채.

“그리고 둘째는. 모험가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준 것도 문제고.”

처음에 왕국을 통째로 먹어치우고 관리하려면.

그만큼 유저들을 밀어주어야 했을 것이다.

원래 있던 왕국의 귀족들은 천사들에게 완전히 이권을 내어주진 않았을 테니.

그런 그들을 쳐내고 새로 모험가들을 세워놓으면.

당연히 자신들에게 충성할 줄 알았겠지.

하지만 그건 천사들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유저들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NPC들에게 고개를 숙였다가 뒤통수 칠 준비가 되어 있는 녀석들이라.

그리고 지금처럼 왕국군을 통솔할 수 있는 권한까지 쥐어준 건.

명백한 천사들의 실수였다.

다른 말로.

천사들이 직접 왕국을 관리하지 못하는 허점을.

유저들은 대놓고 이용한 셈이었다.

뭐 이것도 성마대전을 길게 끌고 갈 생각이었다면.

천사들과 반목하는 일은 해선 안 되는 일이겠지만.

다른 믿는 구석이 있다면 얼마든지 해볼 만한 일이었다.

“앞으로 모험가들을 다룰 때는 조심하라고. 뒤통수치는 게 일상인 녀석들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내 지적에 다소 풀이 죽은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린 이베스와 로엔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최상급 천사 정도면 어지간한 마족들은 씹어 먹을 능력이 있었다.

그런 그들이 내 앞에서 이렇게 숙이고 있는 모습은 쉽게 보기 힘든 모습이기도 했다.

이것도 다 지금 내가 대천사를 연기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겠지.

겉으로 보기에는 대천사가 최상급 천사들은 혼내고 있는 그림이라.

“뭐. 어차피 저 녀석들이 뒤통수 칠 건 알고 있었으니까.”

당연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말하자 천사 이베스가 고개를 들어 물어보았다.

“그렇습니까?”

“그래. 지금 녀석들 앞에 차려진 만찬을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있나.”

“만찬이라면……?”

“저기서 한참 날뛰고 있는 녀석 있잖아.”

내 말에 천사 이베스와 로엔의 눈빛이 중간에서 마주쳤다.

그리고는 눈치챈 듯 내게 물었다.

“고대 마룡 말입니까?”

“어. 모험가들에게는 최고의 만찬이라.”

내전에서 기여도를 올려 타란 제국에서 직위 하나 얻는 것보다.

고대 마룡을 잡는 게.

유저들에게는 수십만 배는 이득이다.

잡을 수만 있다면 말이지.

평소 같으면 엄두도 못 냈겠지만.

이미 유저들도 다 지켜본 상태였다.

고대 마룡의 브레스가 제물의 결계를 뚫지 못한 장면을.

타란 제국 함대조차 한 번에 쓸어버렸던 그 어마어마한 최종기가.

이번에는 별다른 힘을 내지 못하고 중간에 막힌 것이다.

거기다 지금 제물의 결계가 그 고대 마룡의 힘도 빼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고.

최상의 상태에서의 고대 마룡은.

유저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잡지 못한다.

하지만 약해질 대로 약해진 지금이라면 어떨까.

뭐 아무리 약해진다고 하더라도 고대 마룡이 유저들 손에 쉽게 죽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 유저들이 준비한 건.

바로 왕국군.

여기서 그들을 전부 소모하더라도.

고대 마룡을 잡기만 하면 얼마든지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천사들의 명령?

이 정도 보상이라면 충분히 무시할만 하지.

천사 이베스가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눈치를 보며 물었다.

“대천사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신 일입니까?”

“모험가들이 배신할 거라고 물은 거라면. 맞아. 처음부터 저들을 미끼로 쓸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냥 두라고 하신 거군요.”

“아직 써먹을 데가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최상급 천사 이베스와 로엔이 달려가서 모험가들을 다 죽여 버리면 어떻게든 수습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그림이 아니니까.

“그리고 너희들은 다른 최상급 천사들을 상대해야 하니 힘을 아껴두도록. 아직은 너희들의 전장이 아니야.”

“분부 받들겠습니다.”

“네!”

여기서 괜히 힘자랑한다고 설치기라도 하면 오히려 곤란하다.

유저들을 다 죽여 버리는 것도 마찬가지.

“휘하의 다른 천사들에게도 알려. 괜히 쓸데없이 나서서 일 망치면 죽여 버린다고.”

내 말에 두 천사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다른 천사들에게 돌아갔다.

이 정도로 말해놨으면 잘 알아듣겠지.

천사들이 사라지자 재중이 형이 옆으로 다가왔다.

“말 잘 듣는데?”

“그렇죠?”

“대천사 빨이 크긴 크네.”

“하하…….”

저들이 날 대천사라 여기고 있는 이상.

어지간한 명령은 다 받아들일 것이다.

나중에 다른 대천사의 명령과 부딪히는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은.

재중이 형이 우르르 이탈하는 왕국군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무 예상대로 움직여줘서 당황스러울 정도야.”

저들이 배신할 것이라는 것은 재중이 형이 먼저 알아채고 말해주었다.

“미끼로 충분할까요?”

“흠. 그럭저럭? 좀 부족한 느낌도 있다만. 타란 제국 황제를 끌어내는 데는 나쁘지 않을 거다.”

“카샤스 대공군은 예정대로 진격시킬 거죠?”

“어. 그래야지. 카샤스 대공군이 방향을 틀어버리면 타란 제국군도 따라 움직일 테니까. 지금 우리 목적은 타란 제국군과 황제를 분리시키는 거니.”

재중이 형 말대로 타란 제국 황제를 타란 제국성 바깥으로 끌어내는 방법을 써야 하는데.

만약 타란 제국군도 같이 움직여버리면 답이 없었다.

그때는 정말 서로 죽자 살자 난전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을 테고.

“황제만 좋을 일을 해줄 순 없지.”

“그렇죠.”

난전이 일어나면 제일 이득 보는 건 아무래도 타란 제국 황제였다.

“카샤스 대공에게는 잘 말해두었지?”

“네. 적당히 보고 빠져나오라고요.”

아무래도 카샤스 대공군의 지휘는 카샤스 대공이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타란 제국 황제를 상대할 수 있는 것 역시 카샤스 대공밖에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고 둘 중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당연히 후자가 압도적으로 위였다.

결국은 카샤스 대공과 타란 제국 황제의 싸움이.

이 내전의 피날레를 장식할 테니.

“그럼 우리도 빠지자. 어차피 대공군 쪽에 있어 봐야 할 것도 없어.”

“네. 이대로 빠지죠.”

그리고는 신호를 보내자 우리 팀이 모두 카샤스 대공군에서 빠져나왔다.

“우린 고대 마룡 쪽으로 갑니다.”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전사 형이 앞장서면서 말했다.

“혹시라도 위험할 수 있느니 내 뒤에서 벗어나지 마.”

그리고는 타이탄 플레이트와 라지 쉴드를 착용하고는 앞서 걸어갔다.

뒤이어 우리 팀 모두 아크 드래곤 장비를 꺼내입고 뒤를 따라붙었다.

전사 형이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아크 드래곤 플레이트는 내가 잠시 빌려 입었다.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는 너무 눈에 띄니 여기서는 사용할 수 없어 일단 넣어두었고.

무엇보다 천사들이 있는 게 문제이기도 했다.

녀석들은 날 대천사라 알고 있으니.

“언제 시간 내서 천사에 관련된 방어구도 구해봐야겠어요.”

“아아. 확실히 위장하려면 그것도 필요하겠네.”

쉽게 구할 순 없겠지만.

아마 이베스와 로엔에게 물어보면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최상급 천사들이 걸치는 무장 정도는 구해놔야 한다.

앞으로 편하게 활동하려면.

그렇게 이탈한 왕국군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고대 마룡이 날뛰고 있는 장소에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근처까지만 가고 접근하진 않았고.

그리고 이미 수많은 왕국군들이 고대 마룡을 포위하는 진형을 짜고 주변에 배치된 상황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유저들은 그보다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서서 왕국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마치 서로 양보라도 하듯 멀리 떨어져 있는 모습은.

누구 하나 먼저 들어가서 싸워보라고 뒤에서 밀고 있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 광경을 본 전사 형이 한심하다는 듯 그들을 쳐다보았다.

“먼저 죽긴 싫은가 보네.”

“유저들이 그렇죠, 뭐.”

고대 마룡이 약해졌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걸 직접 몸으로 때워가면서 알고 싶어하는 유저는 없는 듯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몸빵을 대신해 줄 좋은 대안이 있으니까.

천사들에게 있어 모험가들이 그러하듯.

유저들에게는 왕국군의 병사들은 잃어도 그다지 상관없는 패였다.

당연히 먼저 고대 마룡에게 밀어 넣는 수를 냈고.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밀린 병사들이 먼저 앞장섰지만.

그들 역시 쉽게는 고대 마룡에 접근할 순 없었다.

겁나는 건 그들 역시 마찬가지라.

그런데 이번엔 오히려 고대 마룡이 먼저 자신을 둘러싼 왕국군을 노려보다가 검은 용암들을 소환해 사방으로 뻗쳐냈다.

콰아아아!!

그간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에 수시로 드나들며 검은 용암을 뿌려댄 전력이 있어 유저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

저걸 맞으면 그대로 녹는다는 사실까지도.

“기사들 방패 들어!”

“전 마법사들 베리어! 풀로!”

“무조건 버텨!”

그리고 유저들의 눈빛에는 작든 크든 뭔가의 기대감에 물들어 있었다.

옆에서 재중이 형 역시 빤히 그 광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만약 이걸 왕국군이 막아내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겠지.”

“네. 그만큼 고대 마룡이 약해진 거니까요.”

반대로 막지 못 한다면?

볼 것도 없었다.

왕국군은 녹아버리고 유저들은 바로 도망칠 것이다.

자신들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모든 시선이 검은 용암에 집중되었고.

퍼엉!!!

콰아아앙!!

쿠우웅!!

도처에서 검은 용암이 터져나가며 후폭풍과 새까만 연기를 뿜어내었다.

결과를 알려면 저 연기들이 전부 걷혀야겠지만.

이미 난 감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형.”

“그래. 재밌게 돌아가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에 연기가 걷혀나가며 남은 것은.

거대한 쉴드와 중첩된 배리어로 무장된 왕국군의 모습이었다.

동시에 사방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 버텼다!”

“살았다!!”

“할 수 있어!!”

일부 병력들이 죽긴 했으나.

분명히 버텨냈다.

그 순간 유저들에게서 명령이 쏟아졌다.

“전군 공격!”

“고대 마룡을 죽여!”

“무조건 오늘 잡는다!”

이거…….

정말 승산이 있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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