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1화 위장 (4)
멀리서 지켜본 타란 제국 수도 한 가운데 있는 제국성은 현재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철옹성과 같은 방비를 갖추고 있었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에게 수도의 다른 곳은 다 내어주더라도.
저곳만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력해 보이기도 했고.
아직까진 수도 외곽에 있는 고대 마룡이 제국성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결국 시간문제였다.
이 제물의 결계가 유지되고 그로 인해 모이는 힘이 집중되는 곳이 바로 제국성이니까.
옆에 있는 나르샤 누나에게 안쪽의 상황을 알려달라고 하자 제3의 눈으로 살펴보던 중 내게 말해주었다.
“어때요?”
“네 말대로 다른 곳은 다 포기한 모양이야. 제국성에만 병력이 전부 모여 있어.”
“어떻게든 시간만 끌면 된다는 거겠죠.”
만약 카샤스 대공군이라는 변수만 없었다면.
타란 제국 황제의 노림수는 맞아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간만 벌면 고대 마룡의 힘을 빼낼 시간이 충분했을 테니까.
그러면 그만큼 자신은 강해지고.
반대로 고대 마룡은 약해진다.
그렇게 약해진 고대 마룡은 천사들을 동원해서 같이 죽이거나.
혹은 테이밍을 노렸을 터.
이중 어느 쪽을 고려해 봐도 고대 마룡에게 좋은 선택지는 없었다.
그때 나르샤 누나가 궁금한 점이 있는지 내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네 말대로라면 타란 제국 황제가 자신들의 부하들도 제물로 삼아야 했지 않아? 그럼 고대 마룡을 상대할 수 있을 수준으로 단번에 강해질 텐데.”
확실히 나르샤 누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타란 제국군은 카샤스 대공군보다 그 숫자에 있어서만은 확실한 우위에 있었다.
그 개개인의 능력은 둘째치더라도 말이지.
그만한 병력을 전부 제물로 바쳤다면 아마 타란 제국 황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얻게 되었을 터.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전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건 안 될 거예요. 일정 수준 이상 올라서려면 숫자가 의미가 없는 모양이니까요.”
“그래?”
“네. 그 뭐라더라…… 먼지를 아무리 긁어모아 봐도 먼지라고 하던가…… 아무튼 그런 말이었어요.”
“흐응.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네. 그럼 타란 제국군을 그대로 남겨둔 건. 우리를 상대하기 위함이겠네.”
“그렇겠죠. 지금 자신들의 하는 일에 가장 방해가 되는 건 아무래도 카샤스 대공군일 테니까요.”
그런데 나르샤 누나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럼 타란 제국 황제가 마음만 먹으면 타란 제국군과 카샤스 대공군 둘 다 제물로 죽일 수도 있단 뜻 아냐?”
“음…… 그것도 그렇네요.”
과연 저 제물의 결계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저 결계가 힘의 흡수에 단계에 있다면…….
카샤스 대공군은 제물의 결계에 들어가서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전멸해버릴지도 모르지.
바로 마왕 헤르게니아를 불렀다.
“응? 왜?”
“아. 들어가기 전에 확인할 게 있어서. 혹시 제물의 결계가 더 강하게 작용할 수도 있어?”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타란 제국 수도에 진입하기 위해 진형을 짜고 있는 타란 제국군을 쳐다보자 내 물음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해주었다.
“쟤들이 다 죽어 버릴까봐 그래?”
“아. 내 말에 오해가 있었네.”
사실 딱히 카샤스 대공군이 죽고 사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타란 제국 황제가 마주치기 전에 다 녹아버리면 그건 곤란하니까.
최악의 경우라도 마지막까지 타란 제국군과 대치할 정도는 되어 주어야 한다.
“우리가 타란 제국 황제를 상대하기 전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까?”
“흐응. 그건 걱정마. 들어가자마자 다 죽어버릴 수준이라면 오히려 우리 마왕들이 이 제물의 결계를 빼돌리려 했을걸?”
“그런가?”
“아마 그쯤 되면 거의 신급의 결계야. 고작 최상급 천사 몇이 모여서 만든 결계가 그렇게까지 강할 리가 없잖아. 그리고 그렇게 편한 결계가 있으면 내가 먼저 썼겠다.”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은 명확했다.
그렇게까지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결계는 아니다.
“일단 들어가자마자 카샤스 대공군이 싹 녹아버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군.”
“그래. 하지만 시간을 오래 끌면 고대 마룡도 힘을 뺏길 수 있으니까.”
“오래 머무는 건 안 된다 이거네.”
“맞아.”
곧 카샤스 대공을 포함한 모두를 불러서 이 상황을 정확히 인지시켰다.
정리가 되자 카샤스 대공에게서 명령이 떨어졌다.
“전군. 타란 제국 수도로 진격한다.”
그렇게 카샤스 대공의 명령에 카샤스 대공군 전체가 들썩이면서 대군 곳곳에서 우렁찬 기합이 들려왔다.
“우오오!!”
“진격하자!!”
“적을 모두 쓸어버려!!”
일대가 들썩이는 함성에 고조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게 과연 잘 될 것인가 하는 불안감도 살짝 들긴 했다.
일단 이번 작전은 변수가 너무 많다.
그래서 중간에 상황이 바뀌면 늦지 않고 바로 구멍을 메우듯이 작전을 바꿔야 한다.
조금만 실수하면…….
아니.
이미 실수를 가정하고 진행하는 일이니까.
어느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쿵쿵!!
곧 카샤스 대공군과 지원 온 천사들의 왕국군.
그리고 그 사이에 섞여 있는 유저들까지 섞여 형성한 대군이 제물의 결계로 하나둘 발을 넘기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 팀을 보면서 말을 꺼냈다.
“이번엔 쉽지 않을 거예요.”
전사 형도 전방에 앞장서며 대답했다.
“언제는 쉬웠나. 황제라는 대어를 잡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하하. 뭐 그렇죠.”
그리고는 우리 팀에게 확실히 인지시켰다.
“원래 계획에서 변경했어요. 우리는 타란 제국성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의 계획에서는 카샤스 대공군이 타란 제국군을 상대하는 동안.
시선을 끌리면 우리가 몰래 타란 제국성으로 침투하는 방법을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결과에 비해 피해가 너무 큰 것도 문제였고.
확실히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타란 제국성 안에서 싸우면.
비등하거나.
혹은 우리 쪽의 전력이 처진다.
그렇게 되면 전멸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역시 크게 손해를 볼 터.
아무리 타란 제국 황제를 잡는 게 중요하지만 거기까지 감수할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타란 제국 황제를 바깥으로 끌어낼 거예요.”
타란 제국성 안이 전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자 막내별이 궁금한지 내게 물어보았다.
“그럼 저들은 다 미끼인가요?”
“네. 우리 쪽에서 거는 미끼죠.”
“정말 비싼 미끼네요.”
그 말에 다들 웃어버렸다.
맞다.
어디에도 구할 수 없는 비싸고 많은 미끼지.
진군 중간에 카샤스 대공과 눈이 마주쳤는데.
이미 이야기가 끝난 상태지만.
자신의 군대를 미끼로 쓴다는 게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옆에는 레오나 에센시아가 섰고.
5기사단장 베인 테스와 에센시아 기사단 역시도 그런 레오나 에센시아를 지키기 위해 참가했다.
미래의 영웅이 될 라첼 역시 마찬가지.
아마 이 전투를 거치고 나면 꽤 성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여기서 죽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레오나 에센시아는 여차하면 카샤스 대공이 도와줄 거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라첼은 그렇진 않았다.
그래서 들어가기 전에 베인을 따로 불러서 명령을 내려놨었다.
에센시아 기사단이 전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라첼은 무조건 빼내라고.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해야 하나.
미래의 괴물이 될 라첼은 이런 곳에서 죽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우니까.
그렇게 카샤스 대공군 사이에 섞여 제물의 결계에 들어서자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타란 제국 수도에 정체불명의 결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
《 진입하시겠습니까? 》
그걸 본 전사 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친절하게 시스템 메시지로 알려주네.”
“네. 그것도 붉은색으로 말이죠.”
대놓고 위험하다는 표시를 해주는 걸 보면.
이번에 제물의 결계로 죽어 나간 유저들이 한소리 했던 게 컸던 것 같았다.
뭐 이런다고 그 유저들이 좋아할 것 같진 않지만.
제물의 결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 타란 제국 수도의 제물의 결계에 진입하셨습니다. 》
《 여기서부터는 전투 이탈 불가 지역입니다. 》
바로 텔레포트라던가 귀환 같은 모든 시스템이 막혀버렸다.
“한 번 들어오면 못 나간다 이거군.”
“네. 이 상징만 없다면 말이죠.”
그리고는 미리 우리 팀에게 나누어주었던 상징을 들어 올렸다.
이전에 제물의 결계에서 적들에게서 얻은 상징을 꺼내자마자 전투 이탈 불가 지역이라는 시스템 메시지는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적어도 여기서 죽진 않을 거예요.”
동시에 또 다른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의문의 상징 이뮨 효과로 제물의 결계의 힘이 반감됩니다. 》
《 제물의 결계로 흡수되는 힘이 대폭 감소합니다. 》
흐음.
이건 꽤 의외인데.
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다들 신기하다는 듯 상징을 쳐다봤다.
그리고 지금쯤 카샤스 대공과 그들 주변의 사람들도 전부 이걸 봤을 것이다.
재중이 형이 알겠다는 듯 말했다.
“이 상징이 있으니까 타란 제국군이 결계 안에서 버티고 있었겠네.”
“네. 아마 그런 모양이에요.”
이 제물의 결계 안에서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까지도 힘을 뺏기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개 제국군이 이걸 버틴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천사들이 뭔가 수를 쓴지 알았는데.
그 수가 바로 이 상징이었던 모양이었다.
단순히 탈출을 위한 상징이 아닌.
버티기 위한 상징이라…….
“카샤스 대공과 레오나 에센시아 쪽에도 줬으니까 적어도 타란 제국 황제를 만나기 전까지는 괜찮을 겁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죽지 않아야 할 사람들에게는 전에 얻은 상징은 다 나눠주었다.
적어도 싸우기 전에 체력이 빠져 죽는 일은 없다는 거지.
여차하면 빠져나가면 되는 일이고.
뭐 유저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
지금쯤 꽤 당황하고 있을지도.
제물의 결계에 들어온 순간부터 체력이 줄줄 새는 걸 본 유저들이 바로 인상을 구기기 시작했다.
“무슨 체력이 이렇게 빠져?”
“상태 이상 디버프도 걸리는데?”
“행동도 느려지고. 너무 제약이 심한 거 아냐?”
“탈출 불가는 또 뭐고.”
그런 반면에.
침착하게 지금 상황을 살피는 유저들도 많았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건.
바로 저 변수들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니.
대충은 예상이 된다만.
아니나 다를까.
카샤스 대공군이 진군하는 방향을 따라가지 않고 점차 옆으로 빠지는 녀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시작됐네요.”
“아아. 녀석들 생각하는 건 뻔하니까.”
그리고 그걸 신호로 점점 많은 유저들이 빠져나가더니 이내 우리를 지원 온 왕국군 전체가 아예 통째로 카샤스 대공군에서 이탈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사 형도 어이없다는 듯 한심한 투로 말을 꺼냈다.
“거. 할 거면 좀 몰래 하던가.”
“그러게요.”
상황이 이상하게 변해가자 화들짝 놀란 듯 최상급 천사 이베스와 로엔이 내게 급하게 달려왔다.
이런 일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
아니.
유저들의 습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저들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왕자님……!”
“갑자기 왕국군들이 제 마음대로……!”
그런 두 천사에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괜찮다는 듯 말했다.
“그냥 놔둬.”
“네?”
“무슨?”
“저것들도 미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