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화 위장 (3)
출발점이 달랐다고 해도.
그 목표점이 같으면.
결국은 한 편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처럼 타 왕국에서 온 천사들의 목적과 내 목적이 하나로 일치한다면.
얼마든지 이 녀석들을 써먹을 수 있단 뜻이기도 했고.
“이베스. 로엔.”
“네. 대천사님.”
“명령하십시오.”
“아. 그 대천사는 좀 빼지.”
“네?”
“무슨?”
이 녀석들 가만히 놔뒀다가는 주야장천 나를 대천사로 부를 작정인 듯 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타란 제국과 다른 왕국들의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까.
“타란 제국에서의 내 위장 신분은 다들 알고 있겠지?”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괜히 나서서 판을 깨지 마라.”
내 말에 최상급 천사 이베스와 로엔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천사들 역시도 제대로 이해한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좋아. 호칭은 로가슈 왕국의 왕자로 통일하지.”
“알겠습니다. 왕자님.”
천사 녀석들도 각 왕국에서 위장 신분을 가지고 있을 테니 이 정도는 바로 이해했다.
일단 호칭 문제는 됐고.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왕국의 병력들을 방패막이 삼아 제물의 결계로 들이밀 필요는 없어졌다.
애초에 이들을 먼저 들여보내려고 했던 건.
이들 중 누가 마엘리타와 붙어먹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 천사 녀석들이 마엘리타를 잡으러 왔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굳이 힘들게 힘 싸움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왕국들은 전부 대기. 곧 타란 제국군과 함께 들어간다.”
“예!”
“네! 알겠습니다.”
“대기하겠습니다.”
천사 녀석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자 만족스러운 미소로 녀석들을 쳐다보았다.
옆에서 마왕 헤르게니아는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렇게 왕국의 대표들을 해산시키자마자 마왕 헤르게니아게 내게 붙어서 크게 웃었다.
“와. 이거 재밌네.”
“그렇게 재밌냐?”
“안 그래? 천사 녀석들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어느 마왕이 안 좋아하겠어.”
음.
생각해보니 마왕 입장에서는 이보다 유쾌한 상황은 또 없으려나.
보기만 하면 서로 죽이지 못해 난리인 녀석들인데.
지금은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중이니.
“그렇게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면 쟤들이 수상하게 여긴다?”
“아! 맞다!”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억지로 웃음을 참는 모습을 보였다.
“뭐 이쪽은 된 것 같고. 슬슬 준비해.”
“정말 들어가게?”
“아니면 방법 있나?”
“없어.”
“그럼 가야지.”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제물의 결계를 보면서 말했다.
“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계속 체력이 소모될 거야. 단순히 들어간다고 죽진 않겠지만. 안에서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해.”
“속전속결이라 이거지.”
“응. 맞아.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적은 더 강해지니까.”
솔직히 카샤스 대공군을 전부 데리고 들어가는 게 맞는 결정인지 아직 확신이 서진 않았지만.
제물의 결계 안에 있는 타란 제국군을 상대하려면 방법이 없었다.
마왕 헤르게니아 말대로 속전속결로 적을 쳐야 하는데.
그들이 막고 서면 결국 시간을 끌리는 건 매한가지니까.
이쪽을 선택하든.
저쪽을 선택하든.
결국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한다.
왕국의 대표들이 전부 물러나자 이번엔 카샤스 대공과 우리 팀이 다가왔다.
“왕국의 대표들과는 잘 해결한 건가?”
“아. 뭐 우리 뜻에 따르겠다고 하던데?”
“흠. 대체 무슨 수를 쓴지 모르겠지만. 네가 그렇다고 하면 된 거겠지.”
카샤스 대공은 내가 협상력을 잘 발휘해서 처리한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실제로는 그와는 완전 다르지만.
곧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해주었다.
<주호> 대천사인 척 하니까 전부 넘어왔어요.
<불멸> 역시 통했나?
<주호> 네. 이제부터는 내 명령에 왕국들이 움직일 거예요.
재중이 형은 처음부터 이럴 것이라 알고 있어서인지 담담한 웃음만 지었다.
바로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들어가면 타란 제국 성을 향해 최단 거리로 카샤스 대공군을 진군시켜.”
“음. 그럼 피해가 커질 텐데?”
“할 수 없어. 어차피 안에서 머무는 시간 동안 계속 피해가 가중될 거야.”
“제물의 결계 때문인가.”
“그래. 가만히 있어도 체력을 뺐기고. 싸우다 죽으면…….”
“역시 힘을 빼앗기겠군.”
“그렇지. 그럴 거면 차라리 시간을 줄이는 편이 나아.”
그리고는 우리 팀에게도 말했다.
“카샤스 대공군이 시선을 끄는 동안 우리는 최대한 빨리 타란 제국성에 침투해야 합니다.”
챠밍이 먼저 내게 물었다.
“직접 싸울 생각이에요?”
“이번에는 어쩔 수 없어.”
막내별도 궁금한 게 있는 물어 보았다.
“그럼 우리만 가요?”
“아뇨. 최상급 천사 둘에 휘하 천사들 역시 동행할 겁니다.”
천사들이 지원할 거라는 말에 다들 놀란 눈빛을 보였다.
“타란 제국성 안에 들어가면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 쉬에르. 에멘스 같은 녀석들이 있을 거니까. 적어도 그들은 천사들 쪽에서 막아줘야 하거든요.”
아무래도 천사들은 천사들의 힘으로 막는 게 가장 밸런스가 맞았다.
“그리고 타란 제국 황제는…….”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앞으로 나섰다.
“역시 그 녀석은 내가 맡는 게 맞겠지.”
“어. 솔직히 너 아니면 안 돼. 게다가 황제는 이미 제물의 결계의 능력으로 고대 마룡의 힘을 상당히 빼앗았을 거야.”
“상대하기 버거울 수도 있다는 뜻인가?”
“맞아. 어쩌면 혼자 힘으로도 안 될 거야.”
그리고는 저 멀리서 우리 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레오나 에센시아도 데리고 가.”
“흠. 그녀는…….”
“어지간한 영웅보다 훨씬 강하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짧게 한숨을 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하고 싶지 않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표정이라…….
“적어도 발목은 잡지 않을 거다.”
“무리다 싶으면 내가 단독으로 상대하지. 그녀까지 챙겨가면서 싸울 자신은 없으니까.”
“뭐 그건 알아서 하고.”
아마 레오나 에센시아는 빠지려고 하지 않을 테지만.
카샤스 대공이 그렇다고 판단했다면 거기까지 말릴 이유는 없었다.
예상 이상으로 타란 제국 황제가 너무 강한 경우는 카샤스 대공의 판단이 맞을 테니.
아이샤 타란은 어차피 그런 싸움에 직접 도움이 되진 않을 테니 후방 지원을 맡기면 될 테고.
“타누스 후작은…….”
“저쪽 공작들 있잖아.”
“베르가 공작과 그렌 공작 말인가.”
“어. 그쪽은 장로회에서 맡아줘야 해.”
“알겠다. 말해두도록 하지.”
베르가 공작과 그렌 공작 역시 전투력은 영웅들 중에서도 상위급이었다.
어중간한 녀석들을 붙여봐야 상대도 안 된다.
적어도 비슷한 상대로 붙여둬야 겨우 시간을 끌 수 있을 터.
재중이 형도 적들의 세력과 우리 쪽의 세력을 비교해보더니 괜찮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균형은 맞겠는데? 최악의 경우라도 밀리지는 않겠어.”
“최악의 경우라면…….”
그러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제물의 결계에서 날뛰고 있는 고대 마룡 방향을 쳐다보았다.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 황제과 천사들에게 잡히거나 다른 방법으로 죽는 경우.”
첫 번째는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다.
타란 제국 황제가 약해진 고대 마룡을 그냥 놔둘 리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다른 방법으로 죽는다고?
그때 전사 형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유저들이 있군요.”
“어. 맞아. 그들이 최대 변수지.”
현재 고대 마룡을 잡으려는 건 타란 제국 황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유저들이 이 타란 제국 내전에 끼어든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했고.
전사 형이 살짝 인상을 구기면서 말했다.
“타란 제국 황제를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고대 마룡을 잡을 수 있다면…….”
“유저들 입장에서는 땡큐지. 잡고 죽는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죽을걸?”
“그만큼 떨어지는 게 많으니까…….”
“그래. 고대 마룡만 잡으면 성마대전을 여기서 끝내도 상관없겠지.”
확실히 재중이 형 말대로.
천사들을 통제할 순 있지만.
유저들의 행동까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퀘스트로 묶어놔도.
그걸 무시하고 고대 마룡을 레이드하기 위해 빠진다면…….
고대 마룡이 팔팔한 예전 같으면 그런 행동들도 다 죽으러 가는 불나방이라 여겨 무시했겠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어쩌면 정말 약해져 있는 고대 마룡을 잡을 수도 있는 노릇이라.
전사 형이 신음을 흘리듯 말했다.
“으음. 만약 고대 마룡이 잡혀버리면…….”
“그때는 최악이야. 타란 제국 황제가 죽어버린 고대 마룡의 힘을 제물의 결계로 그대로 흡수할 거다.”
재중이 형의 결론에 카샤스 대공 역시 표정을 구겼다.
지금이야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 황제를 힘으로 누를 수 있겠지만.
고대 마룡의 힘을 흡수한 타란 제국 황제는.
과연 얼마만큼 강해질지.
여기 있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딱 하나.
마왕 헤르게니아만 제외하고는.
그녀가 확신을 심어주듯 우리에게 말했다.
“그러면 타란 제국 황제가 마신급에 가까운 존재가 될 거야. 당연히 카샤스 대공은 상대도 안 돼.”
“으음…….”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다시 무거워졌다.
여기서 타란 제국 황제를 직접 상대할 수 있는 건 카샤스 대공밖에 없는데.
그런 카샤스 대공조차 상대가 안 된다고 해버리니.
이건 레오나 에센시아가 가세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어쩌면 우리 쪽의 영웅들과 천사들이 전부 달라붙는다고 해도 부족할 것이다.
곧 카샤스 대공이 내 쪽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병력을 전부 진격시켜 어찌어찌 타란 제국성을 함락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죽어버리면 게임이 끝난다는 말로 들리는데?”
“아마도…… 그렇겠지.”
한 방에 모든 전세가 역전되는 수.
어쩌면 타란 제국 황제도 이걸 노리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곧장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형. 과연 타란 제국 황제가 카샤스 대공군이 온 걸 모르고 있을까요?”
“아니. 이미 멀리서부터 보고 있을 거다. 걔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흐음. 그렇다는 건 역시 전력을 다해 타란 제국성을 치러 온다는 걸로 예상하겠네요.”
“그리고 그에 맞는 준비를 했겠지.”
어떻게 생각해보면.
타란 제국 황제는 저 제국성에서 고대 마룡이 죽기까지 버티기만 하면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었다.
아니지…….
혹시라도 카샤스 대공군의 진격이 더 빨라 고대 마룡이 죽기 전에 함락된다면?
그러면 직접 우리와 싸워야 하는데.
이런 경우의 수를 타란 제국 황제가 과연 달가워할까?
카샤스 대공과 직접 붙는다면.
타란 제국 황제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테니…….
결국 타란 제국 황제 입장에서 베스트는.
어떻게든 고대 마룡이 빨리 죽어주는 거다.
아니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죽인다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뻗어 나가자 바로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형. 아무래도 타란 제국 황제가 타란 제국성을 미끼로 쓸 것 같지 않아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타란 제국 황제가 직접 고대 마룡을 잡으러 나올 거라는 거지? 우리의 시선은 전부 타란 제국성으로 몰아놓고?”
“네. 저 같으면 무조건. 백 프로 이길 방법이 있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잖아요.”
“하긴. 고대 마룡만 잡으면 카샤스 대공과 붙을 필요도 없으니까.”
“반드시 나올 겁니다. 타란 제국 황제는.”
둘 다 같은 결론에 서자 바로 시선을 마주치면서 웃어 보였다.
“그럼 속아주는 척…….”
“함정을 놓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