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2화 제물의 결계 (11)
현재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와 타란 제국군이 뒤엉켜 공중에서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타란 제국군 입장에서는 이건 거의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라.
생각지도 않았던 고대 마룡이 나타나는 탓에 그들이 하고자 했던 작전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타누스 후작과 장로회의 사람들이 아예 비공정까지 버려가면서 용들에 올라타 전장을 이탈하자 그들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장로회의 세력을 여기서 모두 놓치게 될 테니까.
“비공정을 버린 다고?!”
“전부 용에 올라타고 있잖아!”
“젠장. 저것들 당장 잡아!”
지금까지는 비공정이라는 볼모가 있었으니 여유롭게 쫓아올 수 있었지만.
장로회의 사람들이 용들을 타고 날라버리면 그들 입장에서는 추격에 난항을 겪게 된다.
어떻게라도 여기서 잡아내는 게 최선일 테고.
하지만 그것도 쉽진 않았다.
캬아아악!!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사방에 검은 용암을 뿌려대며 공중을 완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란 제국군의 용들이 속수무책으로 녹아 지상을 추락해버렸다.
워낙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병력을 갈무리하지 못한 데다가 명령 체계도 엉망이 되어 난잡한 전투가 이어졌다.
정확하게는 타란 제국군이 고대 마룡에게 쫓기는 모양새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타란 제국군과 그들을 막아내던 장로회의 용기사들도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수 없었다.
당연히 장로회의 용기사들은 그들에게서 손을 떼고 일제히 뒤로 빠져나왔다.
어차피 발이 느린 비공정을 버린 지금.
더 이상 그들을 막으며 시간을 벌어줄 필요가 없으니까.
언제 개입할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샤스 대공군의 용기사단장 중 하나가 곧장 실피드 옆으로 날아와 붙었다.
“주호 왕자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 상황이 용기사단장에게도 상당히 의외였던지 내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지금쯤 타란 제국군에게서 장로회의 사람들을 빼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어야 했지만.
막상 상황은 그런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설마 이곳에 고대 마룡이 나타날 것이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이 용기사단장은 내가 그 고대 마룡을 불러들였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용기사단장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명령을 내렸다.
“빠져나오는 장로회의 용기사들을 보호하면서 후퇴하는 걸로 하지.”
“여기서 타란 제국군은 치지 않는 겁니까? 잘하면 저들을 괴멸시킬 수도 있습니다.”
확실히 지금 혼란에 빠진 타란 제국군을 치면 피해를 가중 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운이 좋으면 전멸에 가깝게 숫자를 줄일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굳이?
의견을 내는 용기사단장에게 고개를 살짝 흔들고는 고대 마룡이 날뛰는 방향을 쳐다보며 말했다.
“고대 마룡이 눈앞에 먹이가 사라지면 어디부터 노릴 것 같아?”
당장이야 고대 마룡도 화풀이할 녀석들이 많으니까 우리를 돌아보지 않는 거지.
그 녀석들마저 사라지면 그 다음 목표는 바로 우리가 된다.
“흠. 그렇겠군요.”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가만히 놔둬도 고대 마룡이 알아서 저들을 쓸어버릴 테니까.”
거기다 난 너네들을 가급적이며 많이 살려오라는 카샤스 대공의 당부도 지켜야 하거든.
여기서 괜히 저들에게 시비 걸어 싸우다 죽어 나가면 나중에 카샤스 대공에게 할 말이 없어 진다.
“그리고 이미 타누스 후작과 장로회를 빼낸다는 목표는 달성했잖아. 이젠 잘 빠져나가는 데만 집중하지.”
“예! 알겠습니다.”
용기사단장 역시 의견을 냈을 뿐.
그걸 정말 실행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빠르게 자신들의 용기사단에 돌아가 명령을 하달하는 모습이 보였다.
곧 세 개의 용기사단이 진형을 짜며 빠져나오는 장로회의 용기사들을 둘러싸는 모습이 보였다.
더 이상의 피해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그러자 후퇴하는 장로희의 용기사들을 겨우 쫓아왔던 타란 제국군의 용기사들이 인상을 쓰며 고함을 지르더니 열 받는지 삿대질까지 해댔다.
다 잡은 먹이를 놓친 셈이라.
만약 여기서 더 들어오면.
타란 제국군의 용기사들도 이제부터는 목을 걸어야 한다.
숫자의 우위로 일방적으로 사냥하던 아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용기사단장이 그들을 향해 창을 길게 내밀면서 협박하듯 외쳤다.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날아오면 전부 죽인다.”
“젠장……!”
그리고는 추격하던 타란 제국의 용기사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뒤는 고대 마룡이 난동을 부리고 있고.
반대로 앞은 타란 제국군의 용기사들이 포진해 있었다.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랄까.
뭐 도망가려고 마음먹으면 위든 아래든 도망이야 갈 순 있겠지.
그렇게 대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격했던 타란 제국의 용기사들이 이를 갈더니 바로 용들을 하강시켜 전투 지역을 벗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어차피 뒤로 가봐야 고대 마룡과 싸워야 할 판이라.
무엇보다 이미 저들은 목표를 놓친 뒤였다.
여기서 더 추격해봐야 아무 의미도 없었다.
대치 상황에서 긴장했던 카샤스 대공군의 용기사들도 저들이 일제히 돌아서자 바로 장로회의 용기사들과 함께 후퇴하기 시작했다.
용기사단장이 다시 다가와 물었다.
“이대로 빠집니까?”
“그래. 고대 마룡도 슬슬 저 장난감들에 질려 보이거든.”
내 말에 용기사단장이 고대 마룡 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도 타란 제국의 용기사단을 상대하는 것보다.
고대 마룡을 상대하는 게 몇 배는 더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빨리 여기서 우리가 사라져줘야.
챠밍이 아래서 작업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곧장 챠밍에게 연락했다.
<주호> 도착했어?
<챠밍> 네. 오빠. 지금 모두하고 알려준 좌표에 왔어요.
<주호> 오케이. 우린 지금 빠진다.
<챠밍> 장로회는 구한 거예요?
<주호> 응. 피해 없이.
그리고는 바로 당부의 말을 전했다.
<주호> 추락한 비공정들이 꽤 넓은 지역에 떨어져 있을 테니까 조심하고.
<챠밍> 알았어요.
<주호> 그럼 우린 이따가 합류할게.
“그럼 돌아가지.”
우리가 돌아서려는 그때.
타란 제국군 역시도 이 전장에서 조금씩 발을 빼는 모습이 보였다.
흐음.
아무래도 저들 역시 이대로 버티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빠지려는 거려나.
어차피 장로회는 이미 놓쳐버렸고.
남아서 추격하려다가는 고대 마룡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들이 후퇴하는 모습이 조금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슬쩍 용기사단장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저거…… 좀 안 이상해 보여?”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용기사단장이 내 말에 빤히 고대 마룡과 타란 제국군을 쳐다보더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대답했다.
“타란 제국군이 후퇴하려는 걸로 보입니다만.”
“어. 그렇게 보이지?”
분명 저게 맞는 모습이긴 한데…….
묘하게 거슬리네.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쳐다보자 재중이 형도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내게 말했다.
“흐음. 저 녀석들. 후퇴하는데 굳이 저렇게 줄지어서 할 필요가 있나?”
“역시 이상하죠?”
보통은.
그러니까 당장 타누스 후작과 장로회의 용들이 도망갈 때 최대한 분산해서 도망가는 것과.
지금의 저 타란 제국군이 하는 퇴각 행동은.
전혀 달랐다.
둘 다 쫓기고 있다는 걸 감안해 보면.
정상적인 상황에서 나올 패턴은 아니니까.
“도망가려고 하면 위든 아래든 얼마든지 갈 수 있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굳이 저렇게 일렬로 도망갈 이유가 있어요?”
“흠. 최단 거리를 빠르게 도망치려면 가능하긴 한데…….”
이건 고지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굳이 돌아서 도망칠 필요는 없단 뜻이었다.
일직선으로 도망가는 게.
어떻게 보면 가장 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이니까.
거리가 줄어들면 그만큼 위험한 상황에 노출 될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전장의 위치는 타란 제국의 수도와는 상당히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저런 식으로 도망가다가는 그냥 가는 길에 다 죽는 거다.
당장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망가도 모자랄 판에…….
왜?
다시 용기사단장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답을 찾으려면.
같은 용기사단이었던 이 녀석에게서 물을 수밖에.
아무래도 같은 매뉴얼을 썼을 테니.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혹시 타란 제국 용기사단의 퇴각 메뉴얼에 저런 내용이 있어? 퇴각 시에 최단거리로 간다던지…….”
내 물음에 잠시 고민에 빠진 용기사단장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답을 꺼내놓았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퇴각 거리가 가깝다면 최단 거리로 날아가는 것을 우선합니다. 장애물이 없다는 가정하에.”
“지금은 아니지.”
“네. 그렇습니다. 큰 위협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저렇게 퇴각하는 건 미련한 짓이죠.”
“흐음. 일단 메뉴얼에는 없단 이거지?”
“네. 적어도 타란 제국 용기사단의 행동 강령에는 포함되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일부러 저렇게 움직이고 있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그럴 겁니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용기사단장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만약에 네가 저 상황이라면. 왜 저렇게 움직였을 것 같아?”
“음.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저런 퇴각 방법을 선택했다면…….”
용기사단장이 말을 멈추자 나와 재중이 형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여기서 어떤 말이 나오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선택이 달라질 테니.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유인 작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응?”
“뭐?”
유인 작전이라는 말에 우리 둘 다 어이없다는 듯 용기사단장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용기사단장이 자신의 추측이 틀렸나 싶어서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이건 아닙니까?”
“아냐. 유인 작전이라…….”
그리고는 곧장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저 방향이면 무조건 타란 제국 수도일 테고. 그럼 저 녀석들이 타란 제국 수도로 고대 마룡을 유인하고 있다는 말인데…… 머리에 총 맞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선택이지.”
“역시 그렇죠?”
“아예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선택이야. 추격 명령을 받고 나온 용기사단장이 단독으로 판단할 만한 선택도 아니고.”
그 말과 함께 재중이 형이 용기사단장을 쳐다보자 용기사단장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타란 제국 수도에 위협이 갈만한 행동을 명령 없이 용기사단장 단독으로 행하긴 불가능합니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타란 제국 수도로 향한다는 것 자체가 저들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
지금까지 수도에 입힌 피해도 있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굳이 고대 마룡을 유인한다?
그것도 추격 나온 용기사단들을 미끼로 써가면서까지?
이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수뇌부에서 뭔가 따로 노리는 게 있지 않고서야……
적어도 저들의 이상한 행동에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지 내게 말했다.
“이것들 뭔가 노리는 게 있나 본데?”
“네. 아무래도 타란 제국 수도로 따라가 봐야할 것 같아요.”
“그래, 이대로 모른 척 넘어가기에는 너무 이상하지.”
궁금한 건 우리 둘 다 마찬가지라.
그리고 저들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걸 모른 상황에서 카샤스 대공군이 타란 제국 수도로 진격하는 것도 문제였다.
바로 용기사단장에게 말했다.
“장로회를 호위하는 건 두 개 기사단이면 되겠지?”
“네. 충분합니다.”
“그럼 너희는 우리를 따라간다.”
“타란 제국 수도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어. 저들이 뭔 짓을 하고 있는지 눈으로 봐야겠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 개의 용기사단은 퇴각조로 돌아가고 한 개의 용기사단만 우리를 따라 수도로 이동했다.
딱 멀리서 그들을 지켜볼 만한 거리에 붙어서.
가는 길에 죽어 나가는 용기사들이 있었지만 저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지 계속해서 고대 마룡을 유인했고.
결국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 수도에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자 저들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황당한 눈으로 그걸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 준비한 게 이거였어?”
재중이 형 역시 놀랍다는 듯이 웃어버렸다.
“큭. 황제 이 녀석. 생각 이상으로 또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