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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91화 (1,291/1,404)

#1291화 제물의 결계 (10)

우리가 데리고 온 용기사단은 고작 셋.

반면 타란 제국군이 타누스 후작의 장로회를 추격하기 위해 보낸 용기사단은 그에 몇 배는 많은 숫자였다.

물론 장로회에 소속된 용기사들 역시 적지 않은 숫자이긴 하지만.

이들은 그들이 이끌고 온 비공정을 지키는데 또 그만한 병력을 써야 했다.

아마도 저 비공정에는 그들의 식솔들이 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까 타란 제국군이 턱밑까지 추격해도 발이 느린 비공정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버텼겠지.

그들이 뒤를 잡힌 이유이기도 했을 테고.

당연히 숫자 면에서는 우리 쪽의 병력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거기다 카샤스 대공이 가급적이면 자신이 지원해준 용기사단을 살리길 원할 테니.

그들을 방패막이 삼아 갈아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그렇게까지 해도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병력은 병력대로 날리고.

타누스 후작의 장로회는 전멸할 수도 있었다.

이건 거의 최악이라고 봐야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이곳에 불러들였다.

적어도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날뛰는 상황에서는 타란 제국군들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진 않을 테니.

타누스 후작이 타고 있던 용에 접근해서 외치자 타누스 후작이 날뛰고 있는 고대 마룡과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알겠다는 듯 급하게 물었다.

그에게 있어서도.

이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살아서 타란 제국을 빠져나갈 수 있는.

“우리가 어디로 가면 되는 건가?!”

그 말에 바로 손을 들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우리가 날아왔던 방향을.

괜히 이상한 대로 날아가다가 엇나가면 안 되니.

“이쪽 방향으로 계속 날아가면 카샤스 대공의 군대가 있습니다.”

내 손짓에 타누스 후작의 눈빛이 굳게 변했다.

“알겠네.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도록 하지.”

그러더니 타누스 후작이 장로회의 병력들에 크게 외쳤다.

“전 병력! 비공정을 보호하면서 이 지역을 빠르게 이탈한다!”

그 명령에 타란 제국군과 싸우고 있던 용기사단을 제외한 모든 비공정들과 그들을 호위하던 용들이 일제히 내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그들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를 내 이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으음.

역시 비공정은 버릴 수 없는 거려나.

슬쩍 쳐다보니 비공정 위에 타고 있는 인원이 상당히 많아 보였다.

그만큼 그들이 지니고 있는 짐들도 많아 보였고.

저러니 비공정이 느릴 수밖에.

당연하겠지만 그런 느린 비공정이 이들이 발목을 계속 잡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이야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때문에 비공정에서 잠시 시선을 놓쳤지만.

이대로라면 아무리 빨리 이 지역을 이탈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다시 타란 제국군의 용들에게 뒤를 잡히고 말 것이다.

그때는 더 손 쓸 방법이 없다.

순간 뭔가가 생각나서 타누스 후작에게 외쳤다.

“타누스 후작!”

내 외침에 타누스 후작이 바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다른 문제가 있나?”

굳이 자신을 다시 부를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타누스 후작이 궁금한 듯 쳐다보자 비공정 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저 비공정들.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만.”

그 제안에 타누스 후작이 거절의 의사를 보내왔다.

“안 되네. 저 비공정에는 장로회의 가족들이 타고 있다네. 절대 비공정을 버릴 수 없네!”

이런.

급하게 말하다 보니 내 말을 오해했네.

아마 타누스 후작은 자신들의 가족들을 버려서 살아남으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난 비공정들을 버리라고 했지.

그들을 버리라고 한 게 아니니까.

“어차피 조금만 가면 카샤스 대공군의 진영입니다.”

“흠? 무슨 말인가?”

“그러니까. 어떻게든 카샤스 대공군까지만 날아가면 된다는 말이죠.”

굳이 저 덩치가 크고 상대적으로 용들보다 느린 비공정을 끌고 온 건.

많은 인원을 장거리로 운반할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거리가 짧다면?

그리고 많은 짐을 실을 이유가 없다면?

그렇다면 굳이 비공정을 끌고 가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내 말에 타누스 후작이 뭔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뭔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

“비공정과 짐을 전부 버리고. 사람만 데리고 가자는 건가?”

“네. 바로 그겁니다.”

용기사들이 타고 있는 용은.

장거리 이동 수단으로는 빵점이지만.

단지 짧은 거리를 이동하기에는 더없이 빠른 이동 수단이었다.

잠깐이라면 여러 명이 올라탈 수도 있을 테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편함 정도는 모두가 감수할 수 있을 터.

그리고 그 살아남음에 그들의 무거운 짐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전부 버리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짐까지 모두 버려버리면 굳이 느린 비공정을 끌고 갈 이유도 없어지고.

그럼 이제껏 장로회의 발목을 잡던 가장 큰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

“알겠네. 바로 명령하도록 하지.”

타누스 후작이 주변의 다른 용기사들에게 전달하자 그들 역시 처음에는 어리둥절할 표정이었다가 이내 이해하고는 모두에게 날아가 지시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공정으로 내려선 용들에 그들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올라타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꽉 잡으십쇼!”

“조금만 참고 날아가면 카샤스 대공군입니다.”

“짐은 전부 버리십시오! 짐까지 운반할 순 없어요!”

가지고 온 짐을 버리라는 건 곧 재산을 포기하라는 뜻이라 그들도 잠시 머뭇거렸지만.

당장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은 많지 않았다.

이대로 비공정에 남아봐야 어차피 남은 건 죽는 것밖에 없으니까.

다소 소란이 있었지만 식솔들의 협조가 있자 빠르게 용들에 사람들이 옮겨 탔고.

그대로 하나둘 용들이 카샤스 대공군의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올랐다.

용들이 사람을 여럿 태워서 다소 느려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비공정의 느린 속도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이전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후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타누스 후작이 내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여기서 모두 죽었을 거네.”

타누스 후작과 장로회의 목숨 값이라…….

이러면 나중에 타누스 후작에게 뭘 요구하더라도 어지간한 것들은 다 들어줄 것이다.

그 증거로.

《 장로회 수장 타누스 후작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장로회 수장 타누스 후작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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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네.

재중이 형도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호오. 비공정을 버린다라. 꽤 괜찮은데?”

“네. 이러면 더 이상 추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가 여기서 타란 제국군을 조금만 지연시켜준다면.

별다른 무리 없이 카샤스 대공군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재중이 형이 비워져 가는 비공정과 날뛰고 있는 고대 마룡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말을 꺼냈다.

“확실히 저렇게 커다란 목표물은 고대 마룡의 우선 목표가 될 테니까. 그대로 타고 있었으면 아마 다 죽었을 거야. 굳이 타란 제국군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점도 있죠.”

지금이야 반격하는 타란 제국군에게 시선이 쏠려 있겠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도처에 커다란 비공정이 날아다니니까.

무엇보다 비공정의 느린 기동력으로는 고대 마룡의 검은 용암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조금만 늦게 대처했으면 비공정에 탄 상태로 장로회의 가족들이 다 죽어버렸겠지.

타누스 후작과의 친밀도 역시 박살났을 테고.

카샤스 대공과의 거리 역시 멀어지게 됐을 터.

그럼 힘들게 구해놓은 이득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이 방법은 모두를 살리는 길이었다.

그렇게 비공정에 있던 사람들이 용기사들의 용에 올라타 모두 빠져나가는 순간.

운용할 사람이 없어져 버린 이십여 대의 비공정들이 그대로 바닥을 향해 하나둘 추락하기 시작했다.

재중이 형이 그 비공정들을 보더니 바로 입맛을 다셨다.

비공정의 겉과 속이 멀쩡한 데다가.

심지어 안에는 장로회의 사람들이 그대로 두고 간 수많은 재산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었다.

물론 중요한 재산 서류 같은 경우는 그렇게 무게가 나가는 게 아니니 전부 챙겨갔을 테지만.

그럼에도 남겨진 재산이 적지 않다는 건 확실했다.

용에 실을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재산이라…….

“아까운데?”

“역시 그렇죠?”

비공정도 비공정이지만.

재산 역시 아까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재중이 형과 서로 눈빛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동시라고 할 정도로 똑같이 말했다.

“챙기자.”

“챙기죠.”

“크큭. 어째 생각하는 게 똑같냐.”

“어차피 눈먼 돈이잖아요.”

물론 나중에 장로회에서 저걸 찾으러 다시 올 수도 있긴 하지만…….

“그런데 후에 분명히 찾으러 올걸요?”

“확실히 그렇긴 해.”

재중이 형도 그 점을 고려해서인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눈빛을 반짝이더니 바로 답을 내놓았다.

그것도 타란 제국군을 빤히 쳐다보면서.

“흐음. 타란 제국군이라…… 물어보면 쟤들이 챙겼다고 하면 그만 아냐?”

“그거 괜찮네요.”

“쟤들이 타란 제국군 애들한테 가서 따질 순 없으니까. 오히려 더 불이 붙겠지.”

재중이 형 말대로.

비공정과 안에 있던 재산이 사라진 걸 타란 제국군 탓으로 돌리면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전시 상황이었다.

거기다 주변에는 아직 타란 제국군과 싸우는 장로회의 용기사단들도 꽤 남아있기도 했고.

당장은 비공정과 재산을 챙기러 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흐음. 어떻게 저걸 다 챙긴다?”

이미 타누스 후작을 안전하게 후퇴시키는 미션은 거의 성공한 셈이라.

둘의 생각은 추락한 비공정과 재산에 쏠려 있었다.

어차피 고대 마룡이야 적당히 피해 다니다가 어딘가 떨어뜨려 놓고 오면 되는 문제라.

그리고 조금만 시간을 끌면 장로회의 용기사들도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타란 제국군의 용기사들은 지금 고대 마룡과 싸운다고 혼이 나가 있기 때문에.

“아, 형, 그냥 챠밍한테 부탁할게요.”

“응?”

그 말을 하고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우리가 여기서 빠지면 모양이 이상해지잖아요.”

“하긴 그렇긴 해. 보는 눈도 많고.”

지금 여긴 우리뿐만 아니라 카샤스 대공이 붙여준 용기사단이 셋이나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을 피해 지상으로 추락한 비공정을 찾으러 간다는 건.

우리가 저걸 다 빼돌리겠다는 걸 그대로 알려주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제 3자가 나서는 게 좋았다.

그리고 그걸 아주 잘 해낼 수 있는 자원이 우리에겐 존재했고.

“연락할게요.”

<주호> 지금 바빠?

<챠밍> 아뇨. 장비 점검 끝내고 대공군과 함께 움직이고 있어요.

<주호> 그럼 나랑 일 하나 할래?

<챠밍> 네?

그리고는 챠밍에게 지금 이곳의 상황과 더불어 챠밍이 해주어야 하는 일을 그대로 전달했다.

<챠밍> 아하! 다른 사람들 몰래 가서 추락한 비공정과 재산을 전부 빼돌리라는 거죠?

<주호> 아주 정확해. 가급적이면 아무에게도 눈에 안 띄면 더 좋고.

<챠밍> 은신 걸고 움직일게요.

여기서 챠밍이 필요한 이유는.

일단 한 번에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유일한 유저이자.

저만한 비공정들을 아무 흔적 없이 한 번에 쓸어 담을 수 있는 유일한 유저이기 때문이었다.

<주호> 혹시 모르니까 다른 사람도 데리고 가.

일단은 이곳의 지상 역시도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런 곳에 챠밍 혼자 보내는 건 어렵지.

<챠밍> 음. 그럼 모두 데리고 갈게요.

<주호> 마력은 괜찮겠어?

<챠밍> 거리가 멀지 않으니까 충분히 같이 텔레포트 할 수 있어요.

<주호> 오케이.

우리 팀과 함께 가면 위급 상황에서 대처는 충분히 가능했다.

조율이 끝나자마자 재중이 형을 보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형. 싹쓸이 가능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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