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5화 제물의 결계 (4)
성마대전에 참여한 이상.
언제가 되었든 한 번은 천사들과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 시작으로 이 마엘리타라는 최상급 천사는 꽤 괜찮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천사들과 접촉해봐야.
그들에게 큰 이득이 없는 이상에야 우리에게 협조하는 일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지금 같은 케이스가 아니라면야.
미래의 대천사가 되는 것이 확정되어있는.
최상급 천사의 값어치가 과연 얼마나 될까.
마엘리타가 이쪽에 관심을 가져줄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겠지.
잘 안 풀리면 그냥 원래의 계획대로 밀고 가면 될 테고.
어차피 손해 볼 건 없었다.
반대로 잘 됐을 경우에는.
무력만으로는 대천사 바로 아래라는 최상급 천사와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중급 천사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래서 마엘리타가 이곳의 총 책임자인가?”
타란 제국에 파견된 최상급 천사들의 숫자가 셋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마엘리타 외에도 두 녀석이 더 있다는 뜻이 된다.
작업을 하려면 이 녀석들에 대해서도 파악해둘 필요가 있었다.
내 물음에 중급 천사 녀석이 그대로 알려주었다.
“최상급 천사 쉬에르와 최상급 천사 에멘스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왕국이고?”
“예.”
그리고 이어서 그들에 대한 설명을 굳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줄줄이 읊어주었다.
중급 천사는 어차피 이미 말해버린 것.
그냥 포기하고 아는 사실들을 죄다 알려주는 중이었다.
한참을 듣다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넌 쓸모 있군.”
“감사합니다!!”
마치 당장 목이 날아가지 않아 안심하는 모양새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대천사라는 게.
정말 이 녀석들에게는 무서운 존재인 듯 했다.
곧 중급 천사 녀석에게 말을 꺼냈다.
“제물의 결계의 중심으로 안내해라.”
그러자 화들짝 놀란 중급 천사 녀석이 애처로운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그게…….”
“왜? 어려워?”
결계로 가는 게 어렵냐고 물어보면서 대천사의 검을 좌우로 한 번 흔들자 중급 천사 녀석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바닥에 엎드렸다.
“아닙니다! 다만…….”
“다만?”
“결계의 중심부에는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의 허락이 있어야 접근할 수 있습니다.”
“넌 결계 관리를 하는 게 아니었나?”
결계 관리를 한다면 안으로 당연히 드나들 수 있을 텐데.
지금 반응을 보니 그게 안 되는 모양이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게 와서는 말했다.
“그런 종류의 결계도 있어. 전에 내가 있던 결계도 그렇고.”
“아. 그런 건가.”
이전에 마왕 헤르게니아도 제한이 있어 봉인 결계를 오가지 못 했다.
그것과는 꽤 다른 듯 하지만.
어쨌든 당장은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확실하다.
“결국 마엘리타를 만나봐야 한다는 거네.”
그때 챠밍이 내게 말했다.
<챠밍> 오빠. 괜찮을까요? 최상급 정도 되면 눈치챌 수도 있어요.
챠밍이 걱정하는 건.
단순히 대천사의 검만을 들고서 최상급 천사를 속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대천사의 검 차체가 대천사임을 증명하는 도구이기는 한데.
그 외에는 모든 점에서 대천사의 능력을 따라가지 못 했다.
갑자기 대놓고 내 정체를 눈치챈 마엘리타가 덤벼들기라도 하면.
그때부터는 정말 답이 없어진다.
싸우다보면 마왕 헤르게니아의 정체도 알려지게 될 테고.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거 괜찮을까?”
슬쩍 눈짓으로 그녀의 주변의 아우라를 쳐다보자.
내가 물어보는 게 마왕 헤르게니아가 쓴 저 천사 위장 스킬임을 알아챈 그녀가 괜찮다는 듯 말했다.
“날 뭘로 보는 거야? 상대가 대천사만 아니라면야 아무 문제없거든?”
“그래? 그럼 됐네.”
적어도 최상급 천사인 마엘리타에게 마왕 헤르게니아가 쓴 위장 스킬이 들킬 염려는 없다는 뜻이었다.
챠밍이야 마왕의 스태프만 꺼내들지 않으면 문제가 없을 테고.
이참에 챠밍에게 천사 계열의 스태프를 하나 구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또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준비는 해둬서 나쁠 게 없다.
곧 중급 천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를 이곳에 데리고 올 수 있나?”
제물의 결계 쪽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지금은 베르가 공작가와 타누스 후작의 장로회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굳이 사서 일을 벌일 필요는 없겠지.
괜히 아는 녀석과 마주치면 그것도 곤란하니.
내 말에 중급 천사가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은 어렵습니다.”
“어렵다?”
“마엘리타는 현재 타란 제국 황성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유는?”
“저도 그것까지는…….”
그 말에 챠밍을 보자 챠밍도 눈치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챠밍> 타란 제국 황제를 만나러 갔나 봐요.
<주호> 귀찮게 됐네.
그렇다고 우리가 타란 제국 황성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룻이라.
챠밍에게 황성 안의 텔레포트 좌표가 있긴 하지만.
황성 안에서는 우리를 알아보는 녀석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전에 한 번 뒤집고 나오기도 했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중급 천사에게 물었다.
“혹시 제물의 결계 때문인가?”
내 물음에 중급 천사의 어깨가 다시 움찔했다.
이것 봐라?
알긴 안다는 건데…….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손을 뻗어서 중급 천사의 목을 틀어쥐었다.
“컥!!”
“너. 이 목은 이제 필요 없나 봐? 지금 바로 끊어줘?”
“살려…… 주십……!”
마왕 헤르게니아가 아무리 비전투계라해도.
고작 중급 천사의 목 하나 잡아 비트는 건 그녀에게 식후 간식거리도 안 될 수준이었다.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손아귀에 힘을 풀었고.
사색이 된 중급 천사가 자신의 목을 잡고는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번에도 장난질 치면 그 목은 이제 없는 거야.”
“예옙!!”
“타란 제국 황제를 만나러 간 게. 제물의 결계 때문이지?”
“네! 맞습니다.”
“이제 좀 마음에 드네. 꼭 처맞아야 입을 연다니까.”
음.
깔끔하긴 하네.
다음에 나도 따라 해볼까 싶기도 하고.
“정확하게 다시 설명. 하나도 빼먹지 말고. 하나 빠질 때마다 뒤에 녀석들 목을 하나씩 날려주지.”
마왕 헤르게니아의 엄포에 뒤에 있는 하급 천사들의 표정이 시커멓게 죽어버렸다.
까딱 잘못하다가 여기서 목이 다 날아갈 판이라.
“아…… 그냥 좀 말해주세요.”
“여기서 죽기 싫습니다.”
살고 싶은 건 다 한 마음인 듯 중급 천사를 책망하자 중급 천사도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곧 설명을 시작했다.
“제물의 결계는 결계 안에 들어온 모든 개체의 피를 힘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그래서 천사들 사이에서 금지된 거잖아.”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들이 처음부터 전부 말하지 않는 것도.
이걸 들키는 것 자체가 목이 날아갈 만한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러워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굳이 마엘리타가 타란 제국 황성까지 가는 이유를 숨긴다라…….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인데.
그렇다는 건.
이건 우리가 모르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단순히 베르가 공작가에 펼쳐진 제물의 결계가 문제였다면.
지금처럼 숨기지도 않았을 터.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던 중급 천사가 곧 눈을 질끈 감고는 날 쳐다보면서 말을 꺼냈다.
“사실은…… 이 타란 제국 전체에 제물의 결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바로 그 자리에서 점프를 하더니 하늘 위로 뛰어올랐다.
제자리에서 뛰어 올랐지만 이미 십여 미터를 뛰어오른 그녀가 타란 제국 전경을 둘러보더니 이내 지상에 착지해서 내게 말했다.
“이 녀석 말이 사실이야. 타란 제국 전체에 제물의 결계가 펼쳐져 있어.”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만한 범위에 제물의 결계를 쓰려면 헤르마늄 광석이 엄청나게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그런데 그때.
우리 대화를 들은 중급 천사가 우리가 잊고 있던 사실을 알려주었다.
“오르가 왕국이 대륙의 대표적인 헤르마늄 생산 국가입니다.”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왕국 하나가 가지고 있는 헤르마늄 광산의 매장량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타란 제국에서 그간 모은 베르탈륨 광석만큼.
혹은 그 이상의 헤르마늄 광석이 필요할 텐데…….
그러자 챠밍이 아까 들었던 것들이 생각났는지 내게 말했다.
“최상급 천사 쉬에르가 점령한 국가가 크록스 왕국이에요. 그리고 역시 다른 천사인 에멘스가 가진 국가가 테난 공국이죠.”
잠시 숨을 고른 챠밍이 말을 이었다.
“두 국가 모두 대륙에서 손꼽히는 헤르마늄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광산을 보유하고 있어요.”
단지 오르가 왕국 하나의 매장량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세 곳 국가의 헤르마늄 광석을 모두 긁어온다면?
챠밍 말대로 이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제물의 결계에 필요한 헤르마늄 물량을 맞출 수도 있다는 뜻이지?”
“아마 그럴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마왕 헤르게니아가 중급 천사를 빤히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너희들. 그동안 천사군에게 가야하는 헤르마늄 광석을 빼돌린 모양이네.”
마왕 헤르게니아의 날카로운 말에 중급 천사를 비롯한 나머지 하급 천사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버렸다.
설명이 필요한 것 같아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자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일단 보자아…… 타란 제국 수도는 꽤 넓어. 이만한 범위를 커버하려면 그냥 적당히 나오는 물량만 캐서는 절대 불가능하겠지.”
“그래서 빼돌렸다?”
“아예 오르가 왕국, 크록스 왕국, 테란 왕국 자체를 흡수해버렸으면. 채굴량 정도는 얼마든지 숨길 수 있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이전에는 천사들이 왕국 자체를 차지한 경우는 없었다.
대륙의 다른 제국이나 왕국들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
협력을 구해야 하는 국가들을 차지해버린다는 것 자체가.
천사군들이 최악의 경우에서야 할 수 있는 선택지일 것이다.
그런데 중간에 유저들이 대거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달라져버렸다.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대륙의 국가들을 삼킬 수 있는.
그야말로 최적의 환경이 이루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냥 뒤에서 조금 지원만 해주면.
유저들이 알아서 왕국들을 집어삼키니까.
그러면 천사들이 뒤에서 그 왕국들을 직접 다스리는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그 왕국에서 나는 헤르마늄 광석의 매장량을 속일 수도 있을 테고.
그러니까.
유저들이 왕국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천사군 쪽에서 그들을 이용한 셈이었다.
정확하게는 마엘리타, 쉬에르, 에멘스 같은 후방에 위치한 최상급 천사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그리고 지금 그 목적 중에 하나를 달성하기 위해 타란 제국에 숨어들었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또 다른 가능성이 하나 떠올랐다.
아마 이건.
좀 골치 아프려나?
짧게 한숨을 쉬고는 중급 천사에게 물어보았다.
“너네. 이미 오르가 왕국, 크록스 왕국, 테난 공국에서 제물의 결계를 써 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