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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84화 (1,284/1,404)

#1284화 제물의 결계 (3)

과연 언제부터 타란 제국 황제가 천사들과 손을 잡은 것일까.

일단 그 시기가 적어도 고대 마룡이 베르탈륨 광산에서 나오기 전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랬다면 분명히 고대 마룡을 잡는데 천사들의 힘까지 동원했을 테니까.

혹여나 타란 제국의 힘만으로 고대 마룡을 잡을 수 있었다고 여겼다면 좀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당시 천사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이후.

타란 제국의 내전이 시작되면서 다른 왕국들이 타란 제국 수도에 입성했을 때가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이미 천사들과 유저들이 손을 잡은 정황이 많이 발견되기도 했고.

그들을 통해 왕국의 병력에 포함되어 타란 제국에 숨어들었다면 충분히 말이 된다.

아마도 왕국의 왕족 직위를 이용해 타란 제국 황제에게 접근했을지도…….

마침 타란 제국 수도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고대 마룡에게 피해를 입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다 베르탈륨 광산들은 하나둘씩 무너져서 쓸 수 없게 되었고.

베르탈륨 광석들의 재고 역시 계속 떨어져 바닥을 보이는 상황.

여기에 카샤스 대공령은 점차 유저들의 왕국들을 휘하에 받아들여 그 덩치를 키워가는 중이었다.

조금만 삐긋하면 타란 제국 수도를 내어주고 황권을 뺏길 수도 있다.

당연히 타란 제국 황제는 안팎으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을 터.

이런 힘든 시기에 천사들이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타란 제국 황제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을 담아.

그중 하나가 지금 우리 눈앞의 상황들이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다시 중급 천사에게 물어보았다.

“그 결계의 종류는?”

그녀는 이미 대략적으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다시 물어본 듯 했다.

그러자 중급 천사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대답했다.

“제물의 결계입니다.”

“천사들 사이에서도 금지된 그 결계를 여기서 꺼내 들었다고?”

책망하듯이 말하는 마왕 헤르게니아의 태도에 중급 천사가 몸을 크게 움찔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했듯.

정말 천사들에게 금지된 결계라면.

보통은 쓰이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결계가 지금 타란 제국 수도에 버젓이 펼쳐지는 중이다.

이건 천사들 중 누군가.

불법으로.

그것도 독단적으로 행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걸 잘 알 수 있는 게.

저 중급 천사가 겁이라도 먹은 듯 계속 몸을 떨고 있었으니까.

아마 다른 곳에 들키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일 지도…….

잠시 중급 천사를 빤히 내려다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을 꺼냈다.

“이번 일. 어느 선까지 알고 있지?”

마왕 헤르게니아가 다그치자 중급 천사가 급히 땅에 머리를 박았다.

쿵.

“……말하면 제가 먼저 죽습니다.”

“감히. 대천사님에게 비밀을 고할 셈이냐.”

어쩌다 보니 대천사님이 되어버렸지만.

확실히 정보를 알 수만 있다면 딱히 상관없었다.

곧 내가 앞으로 나섰다.

“중급 천사라 했던가? 고개를 들어라.”

그럼에도 한동안 머리를 들지 못하던 중급 천사가 어렵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다른 대천사급 선에서 내려온 일이냐?”

“아…… 아닙니다!”

“흠. 그럼 쉽겠군.”

대천사가 아니라는 말에 나름 안도의 숨을 쉬었다.

여기서 대천사가 끼어들게 되면 일이 복잡해진다.

아니.

계획했던 일을 거의 다 엎어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천사가 아니라면 일은 쉬워진다.

적어도 직위에서 찍어 누를 수 있으니까.

“누구지? 윗선이?”

“아…… 그러니까…….”

“괜찮다. 감히 대천사인 내가 하는 일을 최상급 천사 따위가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이건 대충 찍어 넘긴 거다.

대천사가 일단 아니라면.

남은 건 최상급 천사 정도인데.

그 녀석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대천사에게는 닿지 못한다.

곧 포기했다는 듯 중급 천사가 말을 올렸다.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입니다.”

“마엘리타?”

혹시 누군지 알까 싶어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봤는데 그녀는 전혀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전혀 몰라.’

딱 이런 표정이었다.

흐음.

마왕 헤르게니아는 봉인당한 기간이 길어서 외부의 일을 잘 모를 수 있었다.

특히 그녀가 봉인되어 있던 기간 동안에 새로 생긴 천사들이라던가.

기존에 있던 천사들이라면 그녀가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물론 천사의 능력과 세력이 마왕 헤르게니아가 기억할 만큼 강하지 않을 경우도 그 범주에 포함되겠지만.

내 감은 전자가 더 맞는 듯 했다.

어차피 이전부터 약했던 녀석들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위로 치고 올라올 확률이 낮다.

개중에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도 분명 있긴 한데.

이건 알아보면 될 일이겠지.

바로 전사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전사 형. 혹시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라고 알아요?

<방패전사> 잠시만. 기다려봐.

그러더니 다시 연락이 왔다.

<방패전사> 대천사가 아니고?

<주호> 대천사요?

<방패전사> 어. 기록에는 대천사라고 되어 있는데?

그렇단 말이지…….

이건 한 마디로.

지금은 최상급 천사이지만.

성마대전을 겪는 동안에.

대천사 급으로 올라간 케이스를 뜻하는 것이었다.

<방패전사> 갑자기 그건 왜? 대천사라도 만났어?

<주호> 아뇨.

그리고는 간략하게 지금 상황을 설명하자 전사 형이 알겠다는 듯 말했다.

<방패전사> 흐음. 그 제물의 결계라는 거. 아무래도 그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의 트레이드 마크인 것 같은데?

<주호> 그래요?

<방패전사> 딱 봐도 그렇잖아. 단기간에 힘을 얻는 방법인데 천사들 사이에서 금지된 방법이라…… 그냥 냄새가 나네.

확실히 전사 형의 말을 듣고 나니 뭔가 아주 구린 냄새가 나는 느낌이 들었다.

<주호>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에 대한 다른 정보는요?

<방패전사> 일단 찾아는 보겠는데. 크게 기대는 하지 마. 오히려 네가 붙들고 있는 그 녀석들이 정보가 더 많을 거야. 천사들 정보는 거의 다 감춰져 있거나 소실되었으니까.

<주호> 네, 그래도 한 번 찾아봐 주세요.

마왕들도 그렇지만.

대천사들에 대한 정보도 그렇게 많은 게 아니었다.

일단 고급 정보에 속하는 데다가 열람하려면 조건 자체가 꽤 빡빡하다.

할 수 없나.

그나마 지금 눈앞의 녀석들이 있으니.

녀석에 대한 정보를 캐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여차하면 이 녀석들을 죽여서라도.

원하는 정보는 알아내야 한다.

타란 제국 황제가 어디까지 연관되어 있는지 알아내려면.

그리고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가 어디까지 바라보고 있는지도 마찬가지.

“마엘리타라. 아는 대로 말하도록.”

그러자 난감하다는 듯 중급 천사가 내게 물었다.

“대천사님께서 알고 싶어 하시는 정보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려주신다면…….”

하긴 지금 물어본 건 너무 광범위했나.

“마엘리타가 어떤 경로로 타란 제국 황실과 접촉한 거지?”

내 물음에 이건 확실히 안다는 듯 중급 천사가 대답했다.

“혹시 오르가 왕국이라고 아십니까?”

“오르가?”

“네. 이번에 타란 제국에 가담한 왕국 중 한 곳입니다.”

알다마다.

전에 그 대장이라고 불리던 녀석이 있는 매서커 연합이 차지한 왕국이 오르가 왕국이었다.

설마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는데…….

그 녀석 어디까지 개입되어 있는 거지?

그때 옆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물어보았다.

“최상급 천사가 몇이나 타란 제국 수도에 투입되어 있지?”

그 물음에 중급 천사가 자신이 아는 대로 대답해 주었다.

“제가 알기로 셋이라고 들었습니다.”

“셋 밖에 안 된다고?”

의외의 답변이었는지 마왕 헤르게니아도 놀란 눈빛을 했다.

“아! 그것이…… 현재 성마대전의 전선이 워낙 불안정해서 많은 인원이 올 수 없었습니다.”

이건 왜 그런지 우리가 확실히 안다.

내 쪽에서 마족들을 통해 헤르마늄 광산과 베르탈륨 광산들의 위치를 다 뿌려버렸으니.

천사군이나 마왕군이나 서로의 거점을 공략하고 방어한다고 지금쯤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쉽사리 후방에 가까운 타란 제국에까지 병력을 내려보낼 수 없었을지도.

특히 대천사 같은 경우는.

공백이 생기면 바로 마왕에게 숫자가 밀려버리니 절대 빠지기 힘들었다.

“그래서 최상급 천사인 마엘리타를 포함해 둘이 더 왔다?”

“네. 아시다시피 그들 모두 후방에서 헤르마늄 광석의 보급을 총괄하는 분들이라…….”

그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보급조라 이거네?”

“아…… 그렇게 말하시면…… 틀리진 않지만…….”

아마도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는 그렇게 듣는 걸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날 보면서 슬쩍 말해주었다.

“좌천된 녀석들이 잘도 여기까지 기어 들어왔네.”

좌천?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빛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해주었다.

“그냥 전투 능력 후달리는 녀석이거나. 가문이 한미해서 상류에 끼지 못하는 녀석. 혹은 문제를 일으켜서 뒤로 밀린 녀석이겠지. 마왕군에도 그런 녀석들이 있으니까.”

그러자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중급 천사에게로 가서 닿았다.

“방금 내 부관이 말한 것 중. 어느 쪽이지?”

부관이라는 단어에 잠시 마왕 헤르게니아가 발끈하려다가 앞에 녀석들이 있어서 그런지 애써 참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중급 천사가 정말 어렵게 대답을 했다.

“제발 제가 말했다고는 하지 말아주십시오.”

“말해보도록.”

“그러니까……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 님은 뒤에 두 가지에 해당됩니다.”

뒤에 두 가지라면…….

“한미한 가문. 거기다 사고 경력이 있다 이건가?”

“음. 전에 다른 엘리트 천사 가문의 장자를 두들겨 팬…….”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전투 능력은 꽤 괜찮은가 보네.”

“아. 마엘리타 님은 천계에서 십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전사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으십니다.”

“그래?”

“네. 아마 대천사 님들을 제외하고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강하실 겁니다.”

“그렇단 말이지.”

거의 무력만으로 치면 대천사 바로 아래라는 건데…….

그런 인재를 고작 보급조에 처박아둔다?

이건 어지간히 미운털 박히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성마대전이 한참인 상황에는 더 그렇고.

뭐 가문이 엄청 좋아서 안전하게 하려고 후방에 박아두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는 그 상황과 전혀 반대였다.

후방의 보급조로 좌천된 건.

오히려 녀석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후방에 박아둔 경우겠지.

혹시나 싶어서 중급 천사에게 물어보았다.

이건 그냥 감이다.

아무리 사고를 크게 쳤다고 해도.

절대로 무력이 필요한 상황에 이 정도까진 하지 않는다.

“마엘리타 녀석에게 경쟁자 같은 게 있나?”

내 물음에 중급 천사의 어깨가 움찔했다.

있나 보네.

“그 경쟁자의 가문이 아마도 굉장히 힘이 있겠네.”

또 다시 움찔.

이건 뭐 안 봐도 답이 나온다.

챠밍도 눈치챘는지 내게 말했다.

<챠밍> 오빠. 마엘리타라는 최상급 천사가 더 크지 못하도록 후방으로 보내버린 셈이네요.

<주호> 그런가 보다.

죽일 수는 없지만.

처박아둘 순 있다 이건가.

그런 와중에.

그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가.

타란 제국 황제와 손을 잡았다라…….

왠지 그 목적이 보이는 것 같았다.

미래에 대천사가 될.

그 녀석의 목적이.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가 곧 챠밍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주호> 아무래도 이 녀석. 우리가 먼저 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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