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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83화 (1,283/1,404)

#1283화 제물의 결계 (2)

원래의 성마대전 시대에서 이 시점에는 아직 마왕과 같은 거물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자면.

천사군 족에서도 대천사와 같은 거물들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아직은.

그런 존재들이 나서기에는 중반기의 시대도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 타란 제국 수도에 대천사나 마왕이 떴다면.

내 옆에 있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모를 리가 없을 터.

“어때? 다른 마왕이나 대천사가 있는 것 같아?”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잠시 주변을 살펴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 없어.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기분 나쁘다라…….

이건 아마 대천사를 뜻하는 것을 테다.

“마왕도?”

“응. 그리고 마왕이 왔다면 이렇게 얌전하게 있을 것 같아?”

“그런가?”

“그래. 적어도 이곳 수도가 반쯤 피바다가 됐을 거야.”

아주 적나라하게 마왕을 묘사하는 헤르게니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마왕 안에 본인이 들어간다는 걸 모르는 건가 싶기도 하고.

헤르마늄 광산 안에서 에센시아 기사단을 다 죽이려고 했던 전적을 생각해보면.

분명 얘도 마왕의 피가 흘러넘치는데.

이렇게 얌전히 있는 걸 보면 꽤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다.

“너도 마왕이잖아.”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잔인한 미소로 지으며 답했다.

“어떻게 내가 여길 피바다로 만들어 봐?”

“아니. 그건 좀 참아주라.”

“싱겁기는.”

농담으로 넘어가려고 해도.

마왕 헤르게니아가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정말 가능하게 할 능력이 된다는 게 문제다.

그러면 바로 이곳에서 제 2의 성마대전의 문이 열리겠지.

“그럼 지금 타란 제국에 들어와 있는 천사들은 잔챙이라 이거야?”

“응. 적어도 날 견제할만한 수준의 녀석은 없어.”

“그건 듣던 중 다행이네.”

지금부터 하려는 일을.

방해당하면 곤란하니까.

그런 와중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한 방향을 쳐다봤다.

정확하게는 베르가 공작가가 있는 방향.

살짝 기분 나쁘다는 눈빛으로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했다.

“오고 있어.”

그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대놓고 기운을 뿌리는데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하지.”

지금 내 등 뒤에는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로 시전한 대천사의 가호가 길게 뻗어나 있었다.

대천사를 뜻하는 환한 빛의 날개.

전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천사들은 자신들의 무구를 다른 이들에게 빌려주지 않는다고.

당연하겠지만.

그보다 상위의 존재인 대천사는 그런 성향이 더하면 더 했지.

그 성향이 덜하진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이 대천사의 무기 라페르나는.

대천사가 아니라면.

절대 가질 수가 없는 무기라는 뜻이다.

과연 그들이 이걸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만.

챠밍은 조금 긴장되는지 내 옷깃을 살짝 잡고 같은 방향을 쳐다보았다.

혹시나 여기서 잘못되면.

지금 찾아오는 녀석들과 대판 붙어야 할 테니.

“오빠. 정말 괜찮을까요?”

“응. 생각대로 된다면 문제없어.”

그러자 챠밍이 안심이 되는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아이셔스 스태프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마왕의 스태프는 좀 그렇잖아요.”

“하긴 그렇네.”

그 말에 바로 고개를 돌려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며 말했다.

“전에 그거 할 수 있어?”

“뭐?”

“정체를 바꾸는 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왕 헤르게니아가 스킬들을 시전했다.

【 하이딩 데빌 포스! 】

【 트랜스 엔젤 포스! 】

곧 마왕 헤르게니아에게서 신성력이 마구 뿜어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나와 같이 등 뒤로 하얀색의 빛의 날개가 뻗어져 나왔고.

비록 대천사의 가호처럼 강렬한 기운은 아니었지만.

이건 누가 봐도 천사라고 착각할 법했다.

그러고 보니 전사 형이 말했었지.

천사 바로 뒤에서 칼침 놓기 최적인 스킬이라고.

그걸 마왕 헤르게니아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바로 그녀에게 인벤에서 꺼낸 헤르마늄 광석들을 넘겨주었다.

“필요할 거야.”

분명 저 스킬의 원동력이 헤르마늄 광석이라 했으니.

“안 그래도 부족했는데 잘 쓸게.”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헤르탈륨 광석들을 모두 자신의 아공간으로 집어넣었다.

천사들이 없는 곳에서야 그냥 적당히 힘만 숨기면 되지만.

이제부터는 항시 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들어가는 헤르마늄 광석 양도 늘어날 테고.

“다 왔어.”

“아. 그래. 나도 봤어.”

정확하게는 내 감각에 저 멀리서부터 뭔가가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다섯…… 인가?

유저나 다른 NPC와는 다른 게.

살짝 허공을 떠서 온다는 느낌이랄까.

만약 유저라면 아무리 스킬을 잘 쓴다 해도 이런 식으로는 이동하지 못한다.

아예 탈것을 타고 날아오면 또 모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들의 어둠 사이로 다섯 명의 인영이 멈춰 섰다.

설마 간을 보는 건가 싶어서 속으로 피식 웃어버렸다.

의외로 꽤 조심성이 많다 싶은 느낌이라.

그런 그들에게 대놓고 말했다.

“다 왔으면 그만 나오지 그래.”

움찔.

곧 다섯 명의 천사들이 골목의 어둠을 피해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곤 저 다섯 명의 시선이 동시에 내가 들고 있는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에 가서 꽂혔다.

그와 함께 내 등 뒤로 뻗어져 나오고 있는 대천사의 가호를 쳐다봤고.

거의 놀람을 넘어 경악하는 듯한 녀석들의 표정이.

지금 상황을 너무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표정에서는 왠지 모를 껄끄러움 같은 것이 보였다.

흐음…….

뭐지 이건?

마치 이곳에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을 때 느끼는…….

그래 저 표정들은.

딱 그거다.

두려움.

그 증거로 다섯 중에 대표로 보이는 녀석이 앞으로 나오는데 살짝 몸을 떠는 것 같았다.

“여기에 대천사님이 왜…….”

우리가 긴장해야 될 판에.

정작 저들 천사들이 더 긴장하고 있는 꼴이라니.

살짝 어이가 없어 그들을 향해 말했다.

“너. 어디 소속이지?”

내 무심한 말투에 대표로 나온 천사 녀석의 몸이 다시 움찔했다.

“대 천사군 5군단 작전대 소속입니다.”

“흐음…….”

솔직히 저 천사 녀석이 소속이 어디라고 해도 난 전혀 모른다.

그냥 분위기상.

내 쪽에서 물어보는 게 맞는 것 같아서 물어봤는데.

오히려 바싹 얼어버린 건 저쪽이라.

거의 말단 계급의 녀석이 군단장을 본 것 같은.

딱 그런 모습이려나.

옆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흘리듯이 내게 말했다.

“직위와 등급을 물어봐.”

마왕 헤르게니아는 천사군의 구조에 대해서 나보다는 잘 알고 있을 테니.

그런 그녀가 물어보라고 한 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직위. 등급.”

순간 천사 녀석이 바싹 긴장한 표정으로 경례를 붙였다.

“결계 관리관! 중급 천사 등급입니다!”

아마도 직위와 등급을 말하라고 한 것이.

저 천사에게는 왜 내게 경례 올리지 않는냐고 타박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동시에 뒤에 있던 나머지 네 녀석도 화들짝 놀라서 경례를 올렸다.

“결계 수리병! 하급 천사입니다!”

“원료 관리병! 하급 천사입니다!”

.

.

줄줄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이 녀석들의 임무는 아마 저 결계를 유지하거나 보수하는 쪽 계열의 천사들인 듯 했다.

그런 천사 녀석들을 바라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뭔가 안다는 눈빛으로.

“쟤들은 그냥 말단이야. 위에 진짜 관리자가 더 있을 거야.”

“그래?”

“타란 제국 수도에 쓰는 결계인데 저런 잔챙이들만 보냈을 리 없잖아.”

하긴.

생각해보면 새로 진출하려는 타란 제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결계였다.

그런데 저 정도 수준의 녀석들만 보냈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된다.

급이 맞지 않다고 해야 하나.

“뒤에 최소한 최상급 천사 정도는 있을 거야. 그렇다고 대천사를 보내기에는 쟤들 자존심도 있고. 마왕군으로 치면 마왕이 직접 움직이는 거라.”

“최상급 천사 정도가 적당하다 이거지?”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상급이라…….

아마도 마왕군으로 치면 거의 마왕이 되기 직전의 녀석들을 뜻하는 것일 터.

그런데 지금.

녀석들의 눈앞에 있는 난.

대천사였다.

고작 중급밖에 되지 않는 천사가 여기서 대천사를 봤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싶기도 하고.

직위를 몇 단계나 뛰어넘는 만남이니까.

이곳에 온 자신들의 최고 상관보다.

내 쪽의 등급이 더 높다.

아니.

애초에 대천사라는 것 자체가.

마왕군에서는 마왕이니까.

조금만 수틀리면.

자신들의 목 정도는 한순간에 따버릴 수 있는.

그야말로 최강의 존재다.

저 천사들이 내 앞에서 저렇게 긴장하는 건.

괜히 그런 게 아니었다.

그때 옆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나섰다.

“결계 관리관.”

앞에 중급 천사라는 녀석을 지목하자 천사 녀석이 바싹 얼어서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봤다.

대천사 옆에 있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절대 평범한 천사 등급일 리는 없으니.

“네넵?!”

“상황 보고.”

“어…… 그게…….”

순간 중급 천사 녀석의 안색이 굳어졌다.

아마 자신의 상관이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나와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 이 상황이 혼란을 준 모양이었다.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무표정한 말투로 다시 낮게 깔아 말했다.

“방금 상황 보고하라고 했을 텐데? 감히 대천사님을 두 번 기다리게 하고 싶은 건가?”

그리고는 바깥으로 기운을 끌어올리자 마왕 헤르게니아 뒤쪽의 날개들이 더 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란 중급 천사가 사색이 된 채 바닥에 엎드렸다.

“헉! 죄송합니다!”

“마지막 기회다. 그 다음은 네가 아니라 저 뒤에 녀석들에게 물어보겠다.”

방금 마왕 헤르게니아가 뒤에 다른 녀석들에게 물어본다는 건.

자신의 목을 날려버리겠다는 뜻이니까.

이걸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닐 것이다.

그러자 중급 천사가 바로 바닥에 머리를 쿵 하고 박았다.

동시에 뒤쪽에 있는 녀석들도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여기서 잘못하다가는 죄다 목이 날아갈 판이라.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날 쳐다보더니 웃음 지었다.

확실히 마왕이라 그런지 이런 협박에는 아주 능숙했다.

아니.

그냥 당연하게 하는 거려나.

마왕 헤르게니아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자 천사 녀석들의 등이 다시 움찔 거렸다.

그리고는 중급 천사 바로 앞에 가서 녀석들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상황 보고.”

“아! 그러니까 현재 타란 제국 황실의 요청으로 천사군의 결계를 베르가 공작가에 설치해놓은 상황입니다.”

중급 천사의 보고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챠밍도 날 쳐다보면서 말했다.

“예상했던 대로 타란 제국 황실에서 천사군과 손잡은 게 맞나 봐요.”

“응. 그런가 보네.”

이로써 확실해졌다.

타란 제국 황제가 뒤에서 이 내전에 손을 썼다는 게.

그리고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맞아 떨어진다.

이 일이 순간적인 판단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걸.

그러니까…….

“아마 우리가 아니었어도. 타란 제국 황제는 내전을 일으켰을 거야.”

“설마 처음부터 계획했다는 건가요?”

“그래.”

그리고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타란 제국 황제는. 장로회를 전부 제물로 만들어 없앨 생각이니까.”

그것도 천사들의 손을 빌려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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