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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81화 (1,281/1,404)

#1281화 분열 (13)

저 녀석.

이번엔 베르가 공작 쪽에 붙었던가?

솔직히 대부분의 유저들이 보상이 좋고 이길 확률이 높은 장로회에 붙을 것이라 예상했고.

실제로 유저들 대다수가 장로회에 붙어 베르가 공작가를 압박하는 중이었다.

보통의 유저들은 저 선택이 맞겠지만.

저 녀석은 베르가 공작가에 서서 다른 유저들을 죽이고 있는 중이었다.

정확하게는 학살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재중이 형이 녀석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내게 물었다.

“저게 전에 말한 그 놈이냐?”

“네. 어때 보여요?”

녀석이 직접 싸우는 걸 보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

재중이 형의 의견이 궁금해졌다.

곧 재중이 형이 쭉 살펴보더니 이내 평가를 내렸다.

“생각보다 잘 치네. 전투 센스도 좋고. 좀 움직임이 거친 것 같긴 한데. 잘 보면 어떻게든 딱 필요한 곳만 골라 치잖아.”

잘 친다라…….

재중이 형의 입에서 칭찬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녀석의 실력이 수준급은 넘어섰다는 말이었다.

“필요한 곳만 친다는 건. 낭비가 없다는 건가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또 아니고. 그런 종류의 움직임은 아니야.”

그러면서 날 빤히 쳐다보다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저 녀석. 너랑 붙으면 꽤 재밌긴 하겠네.”

재미라…….

확실히 붙어보고 싶기는 한데.

조만간 기회가 날지도 모르겠네.

재중이 형이 화면을 빤히 쳐다보다가 내게 다시 물었다.

“장비가 다르다라…… 저게 네가 말한 천사 놈들 장비야?”

“아마 그럴 것 같아요.”

확신은 못 하지만.

그동안 봐오던 것과는 다른 데다가.

다른 왕국의 유저들이 같은 것을 쓰는 걸 보면.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녀석을 쳐다보던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저놈을 족치면 입을 열려나…….”

“천사들하고 손을 잡았는지 말이에요?”

“어. 저 녀석이 딱히 말해줄 것 같진 않다만.”

그때 갑자기 내 바로 옆으로 무언가의 기운이 나타났다.

그리고 나타난 마왕 헤르게니아가 우리가 보고 있던 화면을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재미난 거 보고 있네?”

“이게 보여?”

“응. 천리안 같은 거려나……?”

전에 아스티아도 그렇더니.

마왕 헤르게니아도 유저들의 시스템을 일부 사용할 수 있는 듯 했다.

특수 NPC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러더니 우리가 보고 있던 화면을 보다가 한 마디 했다.

“헤에…… 쟤 누구야?”

“왜?”

“천사도 아닌데. 아주 전신을 천사들 무구로 도배를 했잖아.”

“그래?”

우리는 확신이 없이 추측만 했는데.

마왕 헤르게니아는 보자마자 바로 아는 듯 해 보였다.

하긴.

이 녀석.

천사라면 학을 떼었던가.

그리고 누구보다 천사들을 잘 알 테니.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천사 녀석들이 이렇게 막 장비를 빌려주고 하는 애들이 아닌데.”

이상하다는 듯 화면을 쳐다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곧 말을 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손가락을 뻗어 한 곳을 찍었다.

베르가 공작가에 포진한 왕국의 병력들 중 하나를 향해서.

“쟤. 천사다.”

“바로 알 수 있어?”

“응. 딱 봐도 다르잖아. 몰라?”

그 말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그걸 알 수 있을 리가 있나.

옆을 보자 재중이 형도 기특하다는 듯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다 내게 말했다.

<불멸> 얘. 쓸모 있네.

<주호> 뭐. 일단은 마왕이잖아요.

생각해보니 마왕이 천사를 못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하긴 한가.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지?”

“겉으로 천사 특유의 오라가 나오잖아. 기운을 못 숨기는 걸 보면 말단인 것 같은데?”

“천사들 중에 쫄다구라 이거지?”

“응. 상위 천사들은 저렇게 기운을 풀풀 풍기진 않아. 대천사들은 더 그렇고.”

“그쯤 되면 기운을 숨길 수 있다는 거야?”

“할 순 있는데. 아마 안 할 걸?”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뭔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딱히 숨길 필요가 없으니까?”

“맞아. 천사 새끼들은 다 오만하고 건방지거든.”

아주 적나라하게 천사를 까는 걸 보고.

얘도 마왕은 마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거기까지 들으니 하나의 가정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았다.

“형, 원래는 빌려주지도 않는 장비를 저렇게 입고 다닌다는 게 어떤 뜻일까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

“동맹. 혹은 휘하의 세력으로 인정했을 때겠지.”

“지금은 어느 쪽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후자가 맞으려나?”

나 역시 재중이 형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굳이 천사들이 유저들과 동맹을 맺을 이유는 없겠죠.”

누가 봐도 천사들의 세력이 유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하다.

후에 시간이 더 흘러 성마대전에서 유저들의 레벨이 오르고 장비가 더 좋아진다면 또 모르겠지만.

당장은 천사들이 유저들을 발아래 두고 판단할 여지가 높았다.

그런 천사 진영에서 유저들에게 동맹을 제의하고.

자신들의 장비를 빌려 준다?

이건 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반대로.

천사들이 유저들을 이용할 생각이라면?

그것도 자기들 아래에 놓고 말이지.

재중이 형도 같은 말을 했다.

“모험가들이 대륙 곳곳에서 우후죽순 나타나니 부족한 쪽수를 채워보겠다는 생각일 수도 있고.”

부족한 쪽수라…….

왜 당장 천사들에게 병력이 더 필요한 걸까.

그건 딱 하나의 이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저 많은 유저들을 이용해서 대륙을 삼키겠다는 건가요?”

“맞아. 아마 적당히 천사들 장비를 지원해주면. 저들이 알아서 왕국을 하나씩 먹어치울 테니까.”

지금 겉으로 보기에는 제국과 왕국들이 천사들에게 협력하는 듯 하지만 대륙 전체가 온전히 천사들의 세력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각 왕국들의 사정에 따라 천사들을 따르거나 그렇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테니까.

그런데 여기서 유저들을 앞장 세워 왕국들을 흡수한다면?

천사들 입장에서는 보다 손쉽게 대륙을 뒤흔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왕국의 왕족들과 의사소통 과정 따위는 건너뛰고.

바로 명령을 내릴 수 있을 테니.

이보다 편한 방법이 있을까.

그때 우리 말을 듣고 있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게 말했다.

“저 말단 천사는 아마 감시용일 거야.”

“왕국을 먹은 모험자들을 감시한다는 뜻이지?”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따르고 있나 확인은 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은.

말단 천사를 보내놓고 자신들의 뜻대로 유저들이 잘 하고 있는지 확인만 한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한 가지 가정이 더 떠올랐다.

“그러니까. 베르가 공작가에 있는 모험가들은 전부. 천사들과 손잡은 녀석들이라는 거지?”

“맞아. 천사들이 명령했을걸? 자신들이 밀고 있는 세력을 이기게 하라고.”

밀고 있다라…….

그렇다는 말은.

바로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형. 베르가 공작가가 천사들하고 손을 잡았나 보네요.”

그러자 재중이 형은 조금 다른 의견을 냈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을 꺼냈다.

“어쩌면 이미 타란 제국 황제와 손을 잡았을 수도 있겠지.”

“설마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아니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 남겨진 찝찝함이랄까.

원래라면 카샤스 대공이 황위를 가지고 타란 제국을 이끌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타란 제국 황제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멀까?”

재중이 형의 말은 그 찝찝함을 바로 찍어냈다.

“천사군과 손을 잡았으니까?”

“그래.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여겼을지도 모르지.”

“확실히 수족인 베르가 공작이 천사와 손을 잡았는데. 황제가 그걸 모를 리는 없겠죠.”

재중이 형 말대로라면 타란 제국 황제가 나타나지 않는 일도 설명이 된다.

자신의 오른팔이 공격당하는데 중재하지 않는 것까지도.

“이번 기회에 천사들의 힘을 빌어 장로회를 아예 쳐낼 생각일까요?”

“그럴지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고대 마룡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할 텐데…….

천사들이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장로회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피해가 요구된다.

당연히 고대 마룡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회를 쳐낸 다라…….

다시 타란 제국 수도의 방송 화면을 바라보니.

타누스 후작의 장로회와 베르가 공작가의 세력이 뒤엉켜 끊임없이 양측의 병력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유저들 역시 죽음을 피해가진 못 했고.

아무리 소극적으로 전투에 임한다고 하더라도.

눈먼 칼에 죽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 야. 이거 계속 해야 해?

- 생각보다 너무 잘 버티잖아?

- 무조건 이기는 퀘스트 아니었어?

현재 압도적으로 장로회의 병력들이 밀어붙이고 있긴 한데.

개중에 죽어 나가는 유저들의 생각은 좀 다른 듯 했다.

일단 죽지 않아야 보상이든 뭐든 받으니까.

그나마 장로회가 이기고 있어서 망정이지.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전선이 붕괴되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죄다 빠져나갔을 테니.

“그래도 숫자가 있어서 베르가 공작가 안으로 밀고 들어가네요.”

베르가 공작과 그렌 공작가의 병력들과.

천사들의 지원을 받은 유저들이 있긴 해도.

장로회가 소유한 용기사단이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았다.

유저들 역시 마찬가지.

몇몇 전투에서는 베르가 공작가가 이길 수 있더라도.

이건 누가 봐도 장로회가 이기는 게임이었다.

그렇게 포위망을 구축하고 계속 압박해 들어가자 결국 베르가 공작가의 병력들이 외벽을 포기하고 내성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더 밀리면 끝이라는 걸 알지만.

가만히 버티다가는 중간에 병력이 괴멸해서 전쟁 자체가 끝이 난다.

이미 이 전쟁은 기울어져 있었다.

외부에서 누군가 도움을 주기 전에는.

지금 베르가 공작가를 도와줄 만한 세력은.

우리가 알기에 딱 둘밖에 없었다.

하나는 타란 제국 황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설마 천사들이 직접 나설까요?”

“글쎄? 어떨까나.”

재중이 형도 딱히 확신은 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천사군에 대한 정보가 워낙 없다 보니 이건 어쩔 수 없었다.

“혹시 천사들이 나서면…….”

“개판이 되겠지.”

재중이 형 말대로 대놓고 천사군이 개입하면 그때부터는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타란 제국 황제가 얼마나 천사들에게 손을 벌린 건지 알 수 없기도 하고.

“여차하면 고대 마룡을 수도에 집어넣어야 할 것 같아요.”

혹시라도 천사들이 개입해서 장로회의 병력이 전부 죽어버리는 건 우리로서도 아까운 일이라.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도 준비한 패를 꺼내 들 수밖에.

그때 몇 개의 화면을 신기하다는 듯이 돌아다니면서 쳐다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게 와서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뭔가 준비한 게 있으면 빨리 해야 할 거야.”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흐응. 넌 천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 잘 모르나 보네?”

“어떻게 싸우는데?”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손가락으로 빛을 뿜어내더니 그걸로 바닥에 하나의 그림을 그려주었다.

곧 완성된 그림을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마법진…… 이려나?”

“응. 맞아.”

옆에 챠밍과 막내별을 쳐다보니 둘 다 전혀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마법진이에요.”

“저도 몰라요. 처음 보는데.”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당연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것도 굉장히 짜증 난다는 표정을 하고서.

“이건. 천사들이 쓰는 결계야. 가끔 보면 천사들이 더 악마 같다니까?”

마왕 헤르게니아의 표정이 저런 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다.

찝찝한 마음에 물어보았다.

“대체 무슨 결계지?”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답해주었다.

“저 결계 안에서 죽은 모든 이들의 피를 한 개체에게 모아주는 마법이지.”

“그러니까…… 그 말은 저 안에 들어가면.”

“다 죽어. 누군가의 힘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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