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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80화 (1,280/1,404)

#1280화 분열 (12)

타누스 후작가에 다녀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조용했던 게시판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 야. 니들 새로 뜬 퀘스트 봤냐?

- 어. 아까 봤지.

- 참가해야 함?

- 모르겠네.

-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잘 아는 사람 말 좀 해주셈.

- 몰라. 갑자기 타누스 후작가에서 퀘스트 줌.

- 얘네들 같은 진영 아니었음?

- 그러니까. 우째야 하냐?

퀘스트 내용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베르가 공작을 치는데 기여하면 보상을 준다는.

문제는.

이 보상 규모가 유저들이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 와. 이거 반역 아님?

- 전혀 아니라는데?

- 베르가 공작이 빚이 있어서 타누스 후작가에서 수금하러 간단다. 빚 받으러 간다는데 반역이 어딧냐.

- 그렇긴 한데…… 무슨 빚이 얼마나 있으면 이렇게 대놓고 치는 거야?

- 괜히 끼었다가 나중에 불통 튀는 거 아님?

- 근데 보상이 너무 좋다. 참가만 해도 한 달 내내 사냥할 액수 나오겠는데?

- 그리고 기여도 1등 보상이 베르가 공작가의 대영토란다.

- 미쳤네.

베르가 공작가의 대영토.

만약 이걸 유저가 가지게 된다면.

바로 타란 제국 내에서 공작 급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 대우는 물론이거니와.

대영토에서 나오는 풍부한 자원을 모두 차지할 수 있다는 점까지.

이건 유저들을 혹하게 만들 만한 보상이었다.

타누스 후작이 유저들에게 정말 내어 준다면 말이지.

퀘스트에 대한 게시글을 보던 전사 형이 내게 물었다.

“우와. 대영토가 보상이야? 근데 이거 네가 노리던 거 아니었냐?”

“아. 일단은 그렇죠.”

“일단? 그 전혀 상관없다는 표정은 뭘까?”

“정말 상관없으니까요.”

베르가 공작이 소유한 대영토.

이건 우리가 받을 원래의 대영토를 대신하기에는 충분한 보상이었다.

아니, 오히려 차고 넘치는 수준이지.

그런데 이 베르가 공작가의 대영토를 타누스 후작이 보상으로 걸어버렸다.

유저들 입장에서는 퀘스트를 참여 안 하면 바보가 되는 그런 보상이다.

“흐음? 너 또 뭐 숨기는 거 있어?”

“아.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사실 이거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거든요.”

내 말에 전사 형의 눈이 가늘게 바뀌었다.

“처음부터 줄 생각이 없었다?”

“뭐 그런 셈이죠.”

“그럼 누가 1등이라도 해버리면 어떻게 되는 건데?”

의아하다는 전사 형의 물음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답해주었다.

“어차피 보상은 타누스 후작 마음이잖아요.”

내 대답에 전사 형이 그만 박장대소해버렸다.

“하하. 이미 1등은 정해져 있다?”

“타누스 후작에게 계약서를 가져다주는 그 순간부터…….”

“네 기여도가 1등이라는 말이겠지?”

전사 형의 말에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저들은 모르겠지만.

저 빚덩이 계약서가 있어야 지금의 퀘스트가 성립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퀘스트는 시작하기도 전에 기여도 1등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었다.

“혹시라도 타누스 후작이 마음을 바꾸면?”

“아. 그건. 여기 다른 계약서.”

바로 품에서 타누스 후작과 맺은 또 다른 계약서를 보여주었다.

“베르가 공작과 맺은 계약서를 넘겨주는 대가로 받기로 되어 있는 타누스 후작의 계약서죠.”

“와. 이 녀석. 치밀한 것 보소.”

“타누스 후작도 혀를 내두르던데요.”

아무 보상도 없이 베르가 공작과의 계약서를 넘겨줄 만큼 타누스 후작을 믿는 건 또 아니니까.

이건 말 그대로 기브 앤 테이크였다.

주는 만큼 이쪽도 받을 게 있어야 서로를 믿을 수 있다.

그걸 타누스 후작과의 계약서가 증명했고.

“그러니까 결국 보상 1위는 이미 네 거라 이거네?”

“제대로 퀘스트가 진행된다면요. 그리고 아마 그렇게 되겠죠.”

아마 타누스 후작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게 타란 제국 황제의 노여움을 산다고 하더라도.

황제에 대한 장로회의 제약을 피할 수 있는.

합법적인 삥뜯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그리고 이 일은.

카샤스 대공이 황제를 차지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황제의 오른팔을 잘라내는 일이라.

“그런데 황제가 가만히 두고 볼까?”

“글쎄요. 지금 황제가 신경 쓸 여유가 있나 모르겠어요.”

“무슨 말이야?”

“용신검을 완성 시킨다고 황성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내 말에 전사 형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큭. 걔 지금 삽질하고 있는 거 아냐?”

그 용신검이 가짜라는 걸 전사 형 역시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황제가 지금 매달릴 곳이 용신검 밖에 없잖아요.”

“쯧쯧. 황제 녀석도 어쩌다 너를 만나서는…….”

마치 황제가 불쌍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전사 형의 말에 웃음 지었다.

“받은 만큼 주는 거죠.”

아마 타란 제국 황제가 날 건드리지 않았다면.

그냥 지금쯤 적당히 타란 제국을 해 먹다가 카샤스 대공과 함께 성마대전의 전선으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카샤스 대공은 성마대전에 참여해야 했을 테고.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의 대부분은 카샤스 대공에게 있었으니까.

카샤스 대공이 이곳을 떠나면 굳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만약 정말 황제가 나서서 막아버리면?”

“그럼 아쉽지만 원래 약속되어 있던 대영토를 받는 걸로 끝내야겠죠.”

계약서가 있는 이상.

장로회 전체를 황제가 아주 쌩까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대영토를 내어주는 선에서 양보하겠지.

뭐 어느 쪽을 택하든 타란 제국 황제는 큰 손해를 본다.

이왕이면 안 나서주는 쪽이 낫겠지만.

타누스 후작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테고.

“그건 뭔가 좀 아쉽네.”

“어쩔 수 없죠.”

만약 베르가 공작의 계약서대로 이행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타누스 후작이 일을 벌이면.

반역이 되어 버리니.

장로회도 거기까지는 개입하진 못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타란 제국 황제가 절대 나서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건데…….

아쉽게도 황성에 박혀서 나오지 않는 녀석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타누스 후작도 딱히 모르는 듯 하고.

이건 운에 맡겨야 하려나.

* * * * *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어마어마한 유저들이 타누스 후작의 퀘스트에 참여했다.

이쪽은 타누스 후작을 통해 우리만 상황을 알 수 있었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타누스 후작가에 선 유저들을 둘러보는 걸로 충분히 유추 가능했다.

방송 BJ들도 흥분한 듯 퀘스트 방송을 앞다투어 내보냈다.

베르가 공작가 주변은 지금.

지키려는 베르가 공작가의 용기사들과 병사들이 포진해 있었고.

역시 그 공작가를 포위하고 있는 수많은 장로회의 용기사들과 휘하 병력에 유저들까지 대거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베르가 공작가의 외벽 하나를 놓고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누구라도 칼을 뽑아 들면 바로 전선이 불타오를 상황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이 모였네요.”

그리고 우리 팀은 마치 관람을 하듯 모여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곧 나르샤 누나가 반대편의 상황도 알려주었다.

내게 몇 개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베르가 공작 쪽도 유저를 썼나 봐.”

“흐음. 많네요?”

분명 많기는 한데.

규모 면에서 장로회의 그것과는 꽤 격차가 보였다.

베르가 공작가의 외벽을 빽빽하게 채울 정도로 유저가 몰려들었는데 반해.

안쪽의 유저들은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장로회의 보상이 훨씬 크니까 그럴 거야.”

자금력이라면 베르가 공작가도 만만찮을 텐데.

그럼에도 유저들의 마음을 사기에는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베르가 공작에 붙은 유저들은 어떤 녀석들이에요?”

“아마 황제에게 관심이 많은 녀석들이겠지?”

“확실히 이번에 베르가 공작에게 도움을 줘서 이기면…….”

“그만큼 중용하겠지. 정계에 진출하기도 수월할 테고.”

이쪽 역시 노리는 게 있기 때문에 베르가 공작에게 붙은 것이다.

장로회보다는 베르가 공작이 황제에 더 가까우니.

“그렌 공작은요?”

또 다른 황제의 수족.

그렌 공작이 이 상황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있나.

직접 황제가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황제파의 한 측이 무너지는 걸 결코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내 물음에 나르샤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렌 공작도 지원 왔어. 거기다 휘하의 귀족들도 대동했고. 안쪽을 살펴보면 그렌 공작의 용기사들도 대기 중이야.”

“정말 내전이네요.”

황제만 나서지 않았다 뿐이지.

이건 타란 제국의 또 다른 내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던진 계약서 한 장이 만들어낸 내전 말이지.

다른 유저들이 보기에는 단순히 귀족들의 권력 다툼으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이 내전은.

누가 이기든.

또 다른 내전이 기다리고 있다.

옆에 있던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황제는 결국 나서지 않을 건가 보네요.”

상황이 이렇게까지 벌어졌는데도 중재를 하지 않는다는 건.

나설 생각이 없다는 걸로 봐도 무방했다.

만약 황제가 막을 생각이 있었다면 벌써 나서서 정리했을 테니까.

그리고 재중이 형 역시도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해.”

“역시 그렇죠?”

“솔직히 타란 제국 황제가 나서주지 않는 게 베스트이긴 한데. 아예 코빼기도 비치지 않을 줄은 몰랐는데?”

재중이 형 말대로 황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긴 했다.

이건 내전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놔두는 거라.

마음 한구석에 찜찜한 기분을 버릴 수가 없었다.

방송을 지켜보던 전사 형은 상관없다는 듯 말했고.

“오히려 잘 됐잖아?”

“네. 그렇긴 하죠.”

일이 너무 잘 되어도 불안하다는 게 이런 느낌이려나.

그때 전사 형이 우리에게 말했다.

“시작한다.”

이대로 대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는 않았는데.

결국 기다리다 못한 장로회의 용기사들이 정면에서 밀고 들어가며 분위기가 타올랐다.

동시에 유저들도 우르르 그들을 따라 베르가 공작가의 외벽으로 몰려들었다.

어차피 베르가 공작에서는 계약을 이행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만약 이행할 생각이었다면.

병력을 모으는 게 아니라 돈을 준비했겠지.

그러니 이제 장로회에서 할 수 있는 건 무력 진압밖에 없었다.

“전부 밀어붙여!!”

“베르가 공작가는 오늘로 끝이다!”

“우와아~~!!”

“들어가자!!”

누가 봐도 압도적으로 장로회의 병력이 많았다.

장로회 자체가 수많은 가문이 모인 병력들이라.

거기다 유저들 숫자에서도 차이가 났고.

당장 양측의 숫자만 보면 거의 다섯 배가 넘게 차이를 보였다.

반면 베르가 공작 측은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었다.

하지만 용기사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거의 대등해 보였으니.

아마 유저가 없었다면.

서로 비슷한 느낌이었지 않을까.

쭉 지켜본 전사 형이 날 보면서 물었다.

“타누스 후작에게 유저를 쓰라고 한 건 다 이유가 있었네?”

“네. 그게 아니면 서로 싸우다 공멸할 수도 있으니까요.”

“흐음. 그래도 유저들이 죽을 자리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야.”

확실히 전사 형 말대로 전투가 일어나긴 하는데.

유저들이 그렇게까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한 번 죽으면 성마대전에서 아웃이라.

이건 어느 장소에서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렇게 대군이 붙은 전투에서는 괜히 나섰다가 먼저 목이 잘릴 수 있었다.

몸을 사린다고 해야 하나.

“보상이 커도 저건 별 수 없네요.”

“일단 쪽수는 채워줬으니 만족해야 하나?”

전사 형도 딱히 기대를 걸진 않았다.

그런데 우리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장로회 쪽 용기사들 중 하나의 목이 날아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촤아악!!

“어?”

“응?”

“뭐야?”

나와 재중이 형, 전사 형 모두 놀라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우리 팀들 모두 마찬가지였고.

설마 같은 용기사라 해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가 싶어서.

그런데 그 용기사를 상대한 녀석이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달랐다.

방금 용기사를 상대한 녀석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이미 이전에 한 번 봤던 녀석이라.

챠밍도 누군지 알아채고는 나를 쳐다봤다.

“저 사람…….”

“어. 그 대장이라던 놈이네.”

이거 귀찮게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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