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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79화 (1,279/1,404)

#1279화 분열 (11)

아무리 생각해봐도.

타 왕국들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빨랐다.

단순히 유저들이 왕국의 정보를 미리 알고 있다고 해도.

너무 진행이 빠르지.

성마대전 시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불구하고 왕국을 통째로 먹어치울 정도니.

그래서 전사 형에게 따로 부탁을 했었다.

다른 왕국의 상황을 좀 더 알아봐 달라고.

그러자 곧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정보는 왕국에서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오히려 유저들의 커뮤니티 쪽에서 터져 나왔다고 해야 하나.

<방패전사> 이 녀석들. 천사들한테 접촉했더라고.

<주호> 역시 그런가요.

<방패전사> 알고 있었어?

<주호>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전에 베르탈륨 광산 때문에 고대 마룡을 몰고 간 적이 있잖아요. 그때 좀 위화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솔직히 처음에는 잘 몰랐다.

그런데 은신을 한 상태로 녀석들 사이를 누비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주호> 이상한 장비들이 보이더라고요.

별 관심 없이 봤을 때는 그냥 다른 왕국의 장비일 거라 생각했는데.

<방패전사> 그런데 뭐가 이상했어?

<주호> 분명 다른 왕국들인데. 똑같은 걸 쓰더라고요.

만약 한 장소에서 유저들이 왔다면.

장비가 비슷하면 그러려니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지금 내전에 참여한 왕국들은 대륙 각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장비가 일부이긴 해도 똑같다?

무슨 교복 맞춰 입듯이 똑같으면 이상할 수밖에.

그래서 전사 형에게 알아봐 달라고 한 것이다.

누군가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개입되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얼마 뒤 전사 형이 알려주었다.

왕국들 뒤에 천사들이 개입했을 거라고.

정확하게는.

유저들이 먼저 천사군에게 접촉한 것이다.

그들이 천사에게 각각 무엇을 약속했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분명히 유저들이 천사들의 장비를 쓰고 있었다.

특히 내 은신을 알아보고 공격했던.

그 대장이라는 녀석도 마찬가지.

유저들의 급격한 성장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눈앞의 베인 테스를 보면서 말했다.

“난 내 밥상에 숟가락 올리는 거 정말 싫어하거든.”

거의 다 차려놓은 밥상에다가 지금 천사들이 숟가락을 들이밀려 하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이게 곱게 보일 리가 있나.

아예 처음부터 내게 접촉해서 도움을 주었다면 또 모를까.

그간 해놓은 건 하나도 없는데.

타란 제국에 슬쩍 발을 걸치려는 걸 보면.

누가 봐도 욕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마족인 베인 테스는 완전히 오해를 해버렸다.

“마왕님의 길에 천사들이 끼는 건 당연히 싫어하시겠죠. 천사들을 전부 죽이시려는 그 마음. 잘 알겠습니다.”

아.

이 녀석 애초에 마족이었지.

천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나와는 완전히 다른 녀석이었다.

지금은 목적이 같으니 딱히 상관없겠지만.

괜히 오버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네 정체를 들키면 안 돼.”

내 말에 베인 테스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천사들을 상대하는 일인데.

이 녀석이 반대로 천사들에게 정체를 들켜 버리면 골치가 아파진다.

“저희의 위장 능력은 천사들보다 월등합니다.”

“그런가?”

“네. 이쪽 분야에서는 저희가 최고입니다. 거기다 놈들은 자신들의 진영이라 방심하고 있을 테고요.”

타란 제국이 딱히 그들의 진영이 아니긴 하지만.

대륙의 왕국은 앞마당이나 마찬가지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었으니까.

“좋아. 최대한 정보를 모아와. 이번에 숫자를 좀 줄여놓자.”

“알겠습니다.”

천사를 죽인다는데 마족보다 더 좋아할 녀석이 또 있을까.

모르긴 해도 아마 최선을 다해 정보를 긁어올 것이다.

“아. 그리고 천사들 장비를 왕국의 모험가들에게 공급하는 녀석도 좀 알아보고. 분명히 중간에 장난질 치는 놈이 있을 거야.”

이건 확신이다.

유저들이 그들의 장비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흠. 알겠습니다. 발견하면 죽입니까?”

“아니. 일단은 보고만. 죽이고 말지는 내가 결정한다.”

장비 공급을 하는 천사 녀석들이 너무 많다면 답이 없겠지만.

소수라면 그들 중 몇 놈만 골라낼 수 있어도 유저들에게 타격을 주기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 찾으라는 건 아니었다.

이쪽 역시 관심이 있으니까.

천사들의 장비에 대해서.

현재 에센시아 제국 최대의 헤르마늄 광산의 지분 상당을 내가 보유하고 있었다.

천사들과 접촉만 가능하면.

언제든지 써먹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베인 테스가 내 그런 생각을 알 리가 없겠지만.

혹시라도 의욕이 넘쳐서 죄다 죽여 버릴까 싶어서 미리 당부해둔 것이다.

“그럼 가 봐.”

“네.”

베인 테스를 돌려보내고 바로 챠밍을 찾아갔다.

“준비됐어?”

“네. 언제든 갈 수 있어요.”

“이번에는 그냥 바로 돌아올 거니까.”

그렇게 챠밍과 함께 미리 약속되어 있던 베르탈륨 광산들에 고대 마룡을 불러들였다.

당연히 고대 마룡으로 인해 두 곳의 베르탈륨 광산이 곧 폐쇄되어 버렸다.

이미 확보했다고 여긴 장소라 이전보다 병력이 훨씬 적었던 것도 한몫했고.

뭐 딱히 병력이 많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테지만.

그리고는 조금 시간이 흐른 뒤.

타란 제국 수도에 소문이 퍼질 때쯤 다시 챠밍과 타누스 후작의 저택을 방문했다.

우릴 보는 타누스 후작의 표정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 베르탈륨 광산이 습격당했다더군.”

“그렇게 될 거라 미리 말씀드렸습니다만?”

“정말 가능한 일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지.”

타누스 후작도 우리를 보내놓고 확신은 하지 못한 듯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떻게 생각이 좀 바뀌셨습니까?”

우리가 원한 장소로 고대 마룡을 보낼 수 있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원치 않는다면 타란 제국 수도로 고대 마룡을 불러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이걸 너무 잘 알기에 타누스 후작이 경악한 것이다.

그리고는 어렵게 입을 연 타누스 후작이 내게 물었다.

“혹시 그동안 고대 마룡이 수도를 공격한 건…….”

타누스 후작은 절대 바보가 아니었다.

장로회의 수장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눈치 못 챈다는 건.

수장 자격도 없지.

뒷말을 흐렸지만 타누스 후작이 물어보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내가 그랬는지 묻고 싶은 거다.

그런 타누스 후작에게 딱히 대답은 하지 않고 미소로 대신했다.

곧 손으로 이마를 짚은 타누스 후작이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두려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자네.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군.”

그런 타누스 후작을 시선을 마주 보면서 추가로 한 가지 사실을 언급했다.

“아…… 그리고 솔직히 말해드리면. 제 뒤에는 이분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 오기 전에 미리 카샤스 대공에게 받아 둔 카샤스 대공 가문의 인장을 보여주었다.

그 인장을 본 타누스 후작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두 손을 불끈 쥔 타누스 후작이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 설마…….”

“그 설마입니다. 타누스 후작.”

내가 카샤스 대공의 인장을 보여준 건.

혹시라도 타누스 후작이 움직이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것이다.

지금은 딱히 그러지 않아도 되겠지만.

확실히 해두는 편이 좋으니까.

상황이 이러자 타누스 후작은 멋대로 오해를 해버렸다.

“벌써 카샤스 대공께서 고대 마룡을 손에 넣으신 건가.”

음.

그건 아닌데…….

딱히 저 오해를 풀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일단 말을 아꼈다.

챠밍을 돌아보며 웃음을 보이자 챠밍 역시 마주 웃었다.

<주호> 하. 왜 다 내 말을 곡해해서 듣는 걸까.

<챠밍> 그래도 오해해서 나쁠 것 없잖아요.

<주호> 그렇긴 해.

타누스 후작이 내 뒤에 카샤스 대공이 있다는 걸 알았고.

거기다 고대 마룡까지 조종해서 타란 제국 수도를 공격한다는 걸 알았다면.

그가 택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원래도 카샤스 대공을 밀었는데.

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었다.

대놓고 베르가 공작을 칠 수 있다는 건.

카샤스 대공을 간접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는 뜻이라.

타누스 후작 입장에서는 우리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게 되는 거다.

오히려 이젠 더 나서서 도와주겠지.

“흠. 우린 그런 것도 모르고 자네를 오해할 뻔 했네.”

말하는 것만 보면 아마 우리가 돌아가고 난 뒤 장로회의 장로들을 모아놓고 회의라도 한 듯 했다.

우리를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

이미 우리가 그들의 자금을 한 번 털어간 전적도 있고.

믿지 못하는 쪽으로 기울었을 텐데.

지금의 태도는 전혀 아니었다.

그런 타누스 후작에게 한 가지 사실을 더 전해주었다.

“타란 제국 내전을 틈타 천사들이 타란 제국에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그게 사실인가?”

전통적으로 타란 제국은 천사의 개입을 거부했다.

장로회의 수장이라면 더 잘 알고 있을 터.

“내전에 지원한 왕국들을 통해 천사들의 개입 증거가 발견됐습니다.”

“흠. 확실히 그들은 천사군의 지원을 받고 있겠지.”

“아마 이번에 황제가 이기게 되면 천사군에게 꽤 많은 이권을 내어줘야 할 겁니다.”

“왕국의 뒤에 그들이 있으니까?”

“뭐 그런 셈이죠. 아니면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내전에 참여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사실 유저들의 게시판을 통해서 알려진 거지만.

타누스 후작이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그러자 타누스 후작의 두 손이 불끈 쥐어졌다.

두 눈에는 분노가 가득한 모습이었고.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얕은 수작을 벌이다니.”

장로회는 타란 제국의 용혈에 충성하는 최강의 권력 집단 중 하나였다.

천사군이 개입해서 이권을 가져가겠다는데 좋아할 리가 없었다.

안 그래도 왕국들이 내전에 끼어드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을 텐데 말이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 봅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타누스 후작에게 미소 지으면서 제안을 건넸다.

“그럼 이렇게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음? 무슨?”

“이번 베르가 공작의 재산을 거둬들이는 일에. 그들을 쓰십시오.”

한 마디로 타누스 후작이 직접 나서지 말고.

현재 타란 제국에 들어와 있는 왕국 유저들을 들이부으란 소리였다.

소모품으로.

“하지만 그들이 하겠는가?”

“아마도 기꺼이 할 겁니다.”

퀘스트와 업적에 미쳐 있는 유저들에게.

타누스 후작이 직접 내리는 이번 퀘스트는 아주 달콤한 유혹이 될 것이다.

그것도 베르가 공작을 치는 일이라면.

엄청난 보상이 뒤따른다.

당연히 그 보상은…….

“보상은 베르가 공작가에서 걷어 들인 재산으로 처리하시면 됩니다.”

정확히는 모르긴 해도.

규모가 어마어마한 보상이 걸리게 되겠지.

이를 마다하는 유저들은 없을 터.

그리고 타누스 후작에게는 베르가 공작이나 천사가 개입한 왕국의 병력이나 껄끄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그런 둘을 싸움 붙이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전투가 되는 거다.

그럼 우리 힘은 하나도 들이지 않고.

양쪽의 힘을 갉아먹을 수 있다.

설명을 다 들은 타누스 후작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자네…… 전에도 말했지만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

“칭찬 감사합니다.”

이건 하겠다는 뜻이겠지?

곧 자리에서 일어난 타누스 후작이 내게 손을 내밀자 그 손을 그대로 마주 잡았다.

“가서 전하게. 장로회의 타누스 후작은 카샤스 대공님을 수도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잘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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