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78화 (1,278/1,404)

#1278화 분열 (10)

정확한 이유를 듣진 못 했지만.

타누스 후작이 직접적으로 황제파의 핵심 인물인 베르가 공작을 치는 건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여겨지는 듯 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들고 온 계약서가 타누스 후작의 손에 있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래서 타누스 후작에게 직접 물어봤었다.

빚을 받으러 가는 일은 괜찮냐고.

그러자 타누스 후작이 한 말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고대 마룡이 수도로 쳐들어오는 문제에 대해서.

혹시나 베르가 공작의 공백이 생길 경우.

외부의 공격에 수도의 방어가 취약한 문제점이 드러나게 된다.

<챠밍> 타누스 후작은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나 봐요.

<주호> 내 생각도 그래.

이 계약서가 베르가 공작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도.

정작 타누스 후작이 실행에 옮기는 순간 수도가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게 된다.

고대 마룡 하나 때문에.

하지만 타누스 후작은 절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 고대 마룡을 타란 제국 수도에 불러들이는 이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내 말에 타누스 후작이 의심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떠한 경우라도 수도가 위험해지는 일은 할 수 없네.”

타누스 후작의 명백한 거절.

분명 내 제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위험부담을 가지고 베르가 공작을 치는 일을 행할 만큼은 아닌 듯 했다.

그런 타누스 후작에게 미소를 보이면서 하나의 제안을 꺼내 들었다.

“그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 수도에 오지 않는다…… 는 건 어떻습니까?”

내 말에 순간 타누스 후작의 두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아마 이건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겠지.

고대 마룡이라는 네임드 자체가 누군가 마음대로 불러들이고 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그런데 타란 제국 수도에 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타누스 후작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말 그대로입니다. 고대 마룡. 타란 제국 수도에 오지 못하도록 해드리죠.”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쪽에서 너무 당당히 말을 하자 타누스 후작이 오히려 믿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흐음.

여기서는 좀 믿음을 줘야 하려나.

“좋아요. 아무래도 우린 서로에게 믿음이 좀 필요한 듯 합니다만.”

“믿음이라…….”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고 타누스 후작에게 내 말을 무작정 믿으라고 하는 건.

솔직히 나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미친놈 소리 듣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슬쩍 주변을 바라보면서 타누스 후작에게 물었다.

“혹시 타란 제국 지도 좀 볼 수 있을까요?”

“흠. 그건 어렵지 않지.”

지도라는 말에 무슨 말인가 고민하던 타누스 후작도 궁금했던지 바로 시종을 불러서 타란 제국 전체의 지도를 가지고 왔다.

넓은 테이블에 타란 제국 지도를 활짝 펴놓고는 타누스 후작에게 설명했다.

두 곳의 장소를 손으로 짚으면서.

“자. 이곳들이 다음에 고대 마룡이 나타날 장소들입니다.”

“뭐라?”

설마하니 내가 고대 마룡의 출현 위치를 찍어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던 타누스 후작이 지도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방금 내가 찍어준 장소들은 바로.

“이곳들은 현재 타란 제국군이 점유하고 있는 베르탈륨 광산들이죠.”

“흠. 나도 알고 있네. 이번에 타란 제국군이 방어에 성공한 곳들이지.”

그리고는 못 믿겠다는 듯 다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곳에 고대 마룡이 나타날 거라고?”

“네. 정확하게는 이쪽이 먼저. 그리고 다음에 저쪽 광산 차례로 나타납니다.”

그냥 대충 때려 맞추는 정도가 아니라.

등장하는 순서까지도 정확하게 설명했다.

이건 반드시 이곳에 나타난다는 확신이 없으면 절대 설명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한 번은 가능해도.

두 번 연속 맞춘다는 것 자체가 내 말을 증명할 수 있는 일이지.

“음…… 이걸 정말 믿어야 하는가.”

“뭐 시간이 증명해주겠죠.”

예언 아닌 예언을 하자 잠시 타누스 후작이 혼란스러운 듯 생각에 잠겼다가 곧 내게 말했다.

“정말 이곳들에 고대 마룡이 나타난다면…… 내 생각을 다시 해봄세.”

휴.

일단은 타누스 후작의 생각을 돌리는데 성공한 셈인가.

온전한 중립 상태인 타누스 후작 같은 거물을 움직이려면 이 정도는 보여 주어야 했다.

“그럼 이후에 뵙겠습니다. 준비해놓고 기다리시죠.”

* * * * *

타누스 후작의 저택에서 나온 뒤 모두와 함께 카샤스 대공령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바로 카샤스 대공과 자리를 만들었다.

“꽤 바쁜가 봐?”

집무실에 들어서자 눈이 퀭해 보이는 카샤스 대공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쁘게 업무를 처리 중이었다.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그런 카샤스 대공에게 슬쩍 타란 제국 수도에서 있던 일들은 언급했다.

“곧 타란 제국 수도에 균열이 일어날 거다.”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야. 곧 타누스 후작이 베르가 공작을 칠 예정이거든.”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의 몸이 살짝 움찔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못 믿겠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불가능한 일일 텐데?”

“왜 그렇지?”

“장로회는 중립을 지켜야 하니까.”

“흐음. 그 이상한 제약 말인가?”

제약을 언급하자 카샤스 대공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알고 있었나?”

“주변 돌아가는 상황도 그렇고. 직접 타누스 후작에게 물어보기도 했지.”

“흐음…….”

잠시 말을 멈췄던 카샤스 대공이 아쉽다는 듯 말을 꺼냈다.

“장로회는 황위를 가진 황족의 용혈에 반역할 수 없어. 그럼 용혈 자체가 힘을 빌려주지 않는다.”

“모든 힘을 잃는다는 건가?”

“비슷하지.”

“완전히 용혈이 사라지거나 하진 않는다는 거네.”

뭐 용혈을 쓸 수 없다면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으니 딱히 다를 게 없으려나.

그렇다 해도 용혈을 사라지면 장로회 자체가 붕괴될 위험이 있으니 타누스 후작이 그렇게 소극적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넌 괜찮은 거야? 황제에 반하는 중이잖아.”

궁금한 건 과연 카샤스 대공은 그 제약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 가다.

만약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 황제와 정면에서 붙었을 때 용혈이 힘을 잃는다면 없는 것만 못하니까.

그러자 카샤스 대공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헛웃음 지으며 말했다.

“전에 봤지 않나? 황제와 직접 싸우는걸?”

“아. 그랬지. 넌 딱히 상관없나 보네. 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네 휘하의 부하들은?”

“상관없다. 장로회 소속만 아니라면.”

“그러면 처음부터 장로회를 전부 데리고 왔으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니. 장로회 자체가 황족을 수호한다는 맹세를 매개체로 강한 용혈을 얻은 거라서.”

“으음. 것도 복잡하네.”

요는 장로회는 어떤 경우라도 황제를 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지금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지.

카샤스 대공이 궁금한지 내게 물었다.

“어떻게 베르가 공작을 친다는 거지?”

“아. 그건…….”

그리고 계약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자 카샤스 대공이 곧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 그런 식으로 제약의 허점을 파고 든 건가?”

“나쁘지 않지?”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카샤스 대공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그럼 난 뭘 하면 되는 거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 뭘 물어?”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늦지 않게 준비하겠다.”

“어. 슬슬 이것도 마무리 지어야지.”

“그래. 안 그래도 다른 제국들에서 눈치를 보더군.”

“흐음? 어디서?”

“에센시아과 요하스 성국.”

“베르마는?”

“그쪽은 성마대전 전선 유지에 힘을 쏟는 중이라.”

“좀 더 여유가 있는 쪽에서 간을 본다 이거네?”

“그러니까 너무 시간을 줄 순 없어.”

카샤스 대공의 이 발언은 가능한 빠르게 이 내전을 마무리 짓겠다는 뜻이었다.

조금 무리를 한다고 해도 말이지.

만약 내전을 길게 끌다가 에센시아 제국이나 요하스 성국 같은 큰 나라에서 끼어들기라도 하면.

상황이 굉장히 복잡하게 변하게 된다.

에센시아 제국 같은 곳은 그나마 우리가 거쳐온 곳이니 어떻게든 대처가 된다고 해도.

요하스 성국은 정보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전에 개입하는 건 최대한 피해야 할 터.

거기다 요하스 성국은.

천사 진영의 주요 거점이나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해서 카샤스 대공에게 물어보았다.

“천사 녀석들이 개입하는 거려나?”

그러자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아마 요하스 성국이 내전에 참전하게 되면 반드시라고 해야겠지.”

“흐음. 그건 곤란한데.”

대륙에서 천사들이 유일하게 진출하지 못한 제국이 바로 이 타란 제국이었다.

천사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한 발을 걸치고 싶겠지.

그런데 마침 내가 좋은 패를 가지고 돌아왔으니.

녀석도 이 시점을 충분히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런 카샤스 대공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참에 타국의 병력들을 전부 굴려 봐. 아마 타 왕국에 천사 녀석들 하나둘은 섞여 있을 거야.”

내 말의 뜻을 잘 아는지 카샤스 대공 역시 미소로 답했다.

“알겠다. 최대한 굴려 보도록 하지.”

내전에 참여한 왕국을 통해 몰래 침투한 천사 녀석들을 중간에 골라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그냥 죄다 싸우다 죽게 만들 수밖에.

녀석들이 정체를 숨기려고 작정하고 숨으면.

당장은 골라낼 방법이 없었다.

바로 카샤스 대공에게 당부했다.

“네 전력은 최대한 아껴. 우리 적은 타란 제국 황제로 끝나지 않을 거야.”

내전을 어떻게 이긴다 해도.

이미 내전으로 피해가 상당히 누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외부의 개입은 결코 달갑지 않다.

“그렇게 하지.”

그래서 최대한 다른 왕국의 병력을 굴리라고 한 것이다.

어찌 됐든 성마대전에서 타란 제국은 건재해야 하니까.

“아. 난 고대 마룡 굴리러 가볼게.”

“흠…… 알겠다.”

고대 마룡을 굴린다는 말에 꽤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카샤스 대공을 보면서 웃어 보였다.

“쓸 수 있는 건 다 써먹어야 하지 않겠어?”

* * * * *

카샤스 대공의 집무실에서 나가는 길에 오랜만에 한 녀석을 찾아갔다.

“오랜만이네.”

“찾으셨습니까? 마왕님.”

내가 찾아온 녀석은 베인 테스.

겉으로 보기에는 에센시아 제국의 기사단장이지만.

마계 1군단 특수 침투조의 조장이었다.

“아. 정보 좀 얻을까 해서.”

“무슨 정보가 필요하십니까?”

“이번에 내전에 참여한 왕국들에 천사 녀석들 섞여 있지?”

내 물음에 베인 테스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타란 제국에 들어올 방법은 그거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너도 같은 방법 쓴 거잖아.”

베인 테스 역시 에센시아 제국에 몰래 침투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날 따라서 타란 제국에 들어왔고.

이 녀석이 한 일을.

천사 녀석들이 하지 않을 리가 있나.

무엇보다 대륙의 왕국들에 있는 천사들은.

그 정체를 숨길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천사군과 동맹을 맺은 상황이니.

그런데도 굳이 정체를 숨기고 들어온다라…….

그건 이번 기회에서 타란 제국을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타란 제국에 뿌리 내리겠다는 거다.

“흠. 그렇긴 하죠. 그래서 어떤 정보가 필요하십니까?”

“어느 왕국에 천사들 몇 놈이 섞여 있는지.”

“혹시……?”

“그래. 이번 기회에 싹 잘라낼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