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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77화 (1,277/1,404)

#1277화 분열 (9)

굳이 성마대전의 역사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타누스 후작과 베르가 공작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쪽은 타란 제국 황제의 오른팔이고.

다른 한쪽은 그와 대치되는 장로회의 대표였다.

절대 사이가 좋을 수가 없지.

지금 내가 내민 계약서의 존재는.

타누스 후작의 지대한 관심을 이끌어 냈다.

이건 쓰기에 따라.

정말 엄청난 무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특히 타누스 후작에게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날 빤히 쳐다보다가 결국 무겁게 입을 열었다.

“허. 베르가 공작의 재산을 차압해 달라?”

“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다시 한 번 베르가 공작과의 계약서를 살펴보던 타누스 후작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계약서와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네. 이 계약서의 값어치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나?”

알면서도 시험하듯이 물어보는 타누스 후작에게 미소와 함께 대답해주었다.

“글쎄요. 정확하게는 몰라도. 이 계약서가 베르가 공작을 파산하게 만들 수는 있겠죠.”

이 계약서의 위력을 몰라서 굳이 여기까지 가져온 게 아니었다.

계약서는 있지만.

이걸 베르가 공작에게 집행할만한 세력이 없는 게 문제지.

그리고 그걸 제일 잘 처리해줄 사람은.

바로 우리 앞에 앉아 있는 이 장로회의 수장인 타누스 후작이었다.

그라면 억지로라도 원하는 걸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계약서대로 이행만 되면.

위약금이 대영토 값어치의 수 배에 달하기 때문에.

베르가 공작은 무조건 파산이었다.

아무리 베르가 공작이 돈이 많다고 해도.

그만한 위약금을 낼 재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걸 너무 잘 아는 타누스 후작이 바로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거…… 베르가 공작이 제대로 한 방 먹었군. 이 계약서를 베르가 공작 앞에 가져가면 어떤 얼굴이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군.”

아마 저건 흡족하다는 표정이려나?

“어떻게 마음에 드십니까?”

“허허. 마음에 들다마다. 안 그래도 베르가 공작 놈의 얼굴이 썩어가는 걸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러면서 다시 계약서를 흥겨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너무 좋은 기회다 이거지?

그리고는 우리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래서 내게 이 계약서를 팔고 싶다는 건가?”

타누스 후작은 처음에 물건을 팔러 왔다고 한 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죠.”

그 순간 타누스 후작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계약서는 있지만. 베르가 공작이 위약금을 쉽게 내어줄 리는 없겠지.”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베르가 공작도 터무니없는 보상으로 계약을 했던 셈이었다.

지금은 그 덕분에 제대로 발목을 잡혔고.

설마 내가 이걸 타누스 후작에게 정말 가져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타누스 후작은 절대 멍청하지 않았다.

한 단체의 수장을.

그것도 타란 제국의 장로회를 맡고 있는 그가 굳이 우리가 계약서를 들고 온 이유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건.

계약서의 가격을 흥정하기 위함이다.

애초에 흥미가 없었다면.

대화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옆에 앉아 있던 화련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화련> 타누스 후작이 물었네.

<주호> 네. 타누스 후작도 탐이 날 겁니다.

<화련> 그래. 이 계약서면. 베르가 공작을 잘라낼 수도 있을 테니.

<주호> 뭐 거기까지 가지 못해도 엄청난 타격을 줄 순 있겠죠.

내게는 그저 종이조각이지만.

이게 타누스 후작에게 들어가는 순간.

베르가 공작의 목을 틀어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가격은 잘 쳐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잠시 대답을 미룬 타누스 후작이 곧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제안을 꺼내 들었다.

“자네가 하면 전부를 받아낼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겠지?”

아마 전부가 아닌.

시도 자체가 힘들 것이다.

타누스 후작 정도는 되어야 이 계약서를 이용해 베르가 공작을 칠 수 있었다.

자신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걸.

굳이 돌려서 말한 셈이다.

실제로 정답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렇다고 가격을 후려쳐서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바로 손을 뻗어 계약서를 잡고는 그대로 품 안에 넣어버렸다.

“딱히 안 받아내도 그다지 손해는 아니라서요.”

받아낼 수 있으면 그만.

아니라도 별로 상관없다는 듯 계약서를 넣어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곧장 타누스 후작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이 사람 좀 보게. 성미가 그리 급해서 어딜 쓰겠나.”

그리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일단 그 계약서는 꺼내놓고 다시 이야기하지.”

처음 기 싸움에서는 타누스 후작이 져준다는 듯 그대로 손을 들어버렸다.

타누스 후작도 분명 느꼈을 것이다.

제대로 가격을 안 쳐주면.

정말 그대로 일어날 것이라는 걸.

솔직히 가격을 후려쳐서 받을 거라면.

다른 방식으로 쓸 생각이라.

타누스 후작의 만류에 다시 의자에 앉으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한 번 들어보기나 할까요?”

“흠. 자네도 아마 예상했겠지만. 그 계약서를 제대로 이행하려면 다수의 군대를 동원해야 하네.”

“네. 베르가 공작이 그냥 가져가라고 재산을 내어줄 리는 없을 테니까요.”

타누스 후작에게 계약서를 가져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장로회가 지닌 무력으로 차압이 가능하다는 점.

그런데 이렇게 되면.

장로회와 황제파가 정면에서 붙는 그림이 나오게 된다.

물론 계약서가 있기 때문에 제국 황제라 할지라도 베르가 공작을 대놓고 도와주진 못할 것이다.

어쨌거나 타누스 후작은 베르가 공작이 진 빚을 받으러 가는 거니까.

타란 제국 황제가 개입하지 못하는 상태에선.

장로회의 무력이 압도적으로 앞선다.

“명분은 좋아. 황제도 이건 막지 못할 테니까. 그럼 장로회의 군대가 베르가 공작의 저택을 무력으로 점거할 수도 있겠지.”

역시 타누스 후작도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강제로 차압을 해도 될 테고.

베르가 공작의 모든 재산은 타누스 후작에게 들어오게 될 것이다.

공작성부터 시작해 베르가 공작의 대영토까지 모두.

“그럼 문제는 없겠군요.”

당연히 중간에 베르가 공작의 군대와 무력 충돌이 있겠지만.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충분히 할 만한 일이었다.

정적을 빈털터리로 만들 기회가.

그것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을 테니.

어쩌면 앞으로 절대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꽤 많은 장로회의 군사들이 죽거나 다치겠지. 거기다 장로회의 장로들도 설득해야 하고.”

장로회와 황제파가 정면에서 붙는 일이었다.

피해가 안 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장로회에 속한 장로들이 참가해야 피해가 줄어들 텐데.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역시나 돈이다.

충분한 보상.

이게 약속되지 않는다면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걸.

타누스 후작은 돌려서 말하고 있었다.

“그만큼 값에서 제하셔도 됩니다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하는 내게 타누스 후작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의 몫이 상당히 줄 텐데?”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우리 입장에서는 못 받아낼 돈이라면.

그렇게 뿌리는 것도 나쁘진 않다.

이건 미래에 받아야 하는 돈을 당겨서 미리 지급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당연히 우리가 지금 지불해야 하는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전쟁은 타누스 후작이 하되.

보상만 나눠 먹는 거다.

그때 생각에 잠겨 있던 타누스 후작이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어쩌면 황제가 막을 수도 있겠군.”

“계약서가 있다고 해도 말입니까?”

그 말에 타누스 후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은 전시 중이지 않는가.”

“그렇긴 하죠.”

“하루가 멀다 하고 고대 마룡이 수도를 노리는 데다가. 카샤스 대공의 군대를 상대 해야 하네.”

카샤스 대공을 언급하는 타누스 후작의 표정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 건.

애초에 카샤스 대공을 차기 황제로 밀고 있던 게 이 타누스 후작이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반역이지만.

딱히 타누스 후작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리고 지금은 황제와 함께 수도를 지키는 중이라…….

그런 그에게 물었다.

“후작께서 신경 쓰이는 게 고대 마룡입니까? 아님 카샤스 대공입니까?”

그러자 짧게 한숨을 쉬고는 타누스 후작이 대답했다.

“수도를 방어해야 하니 일단은 고대 마룡이라고 해야겠군.”

그러자 챠밍이 내게 물어보았다.

<챠밍> 역시 이상하죠?

<주호> 좀 많이.

<챠밍> 물어볼까요?

<주호> 아니. 내가 물어볼게.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원래 장로회는 카샤스 대공을 밀고 있던 게 아닙니까?”

“흠…… 자네가 그걸 어떻게?”

“뭐 수도에 있는 귀족들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장로회에서 보다 강한 용혈을 바란다는 걸.”

내 말에 타누스 후작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후. 카샤스 대공이 황제가 되었으면. 지금 이 사달이 나지도 않았겠지.”

“고대 마룡 말입니까?”

“그렇지. 용신검이 제대로 쓰이기만 하면…….”

타누스 후작은 이미 알고 있었다.

카샤스 대공이 용신검을 쓴다면 어떻게 되는지.

그가 진짜 강력한 용혈을 원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다.

“그런데 지금의 황제는 안 된다?”

그러자 타누스 후작이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어렵겠지. 지금도 칩거한 상태로 용신검을 강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겠지만……”.

순간 챠밍과 화련이 날 쳐다보면서 말했다.

<챠밍> 분명 전에 황제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했어요.

<화련> 황제는 어떻게든 고대 마룡을 테이밍할 생각이었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무력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걸 지금 타란 제국 황제가 준비 중이고.

하지만.

그 용신검이 복제품이라는 걸 알고 있는 난 실소를 흘렸다.

<주호> 황제가 헛짓하고 있네요.

<화련> 뭐?

아무리 공을 들여 봐야.

결국 가짜는 제 힘을 내지 못한다.

챠밍은 내 말을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내 능력을 잘 아니까.

설명이 필요하다는 듯 화련이 쳐다보다 바로 대답해주었다.

<주호> 황제가 가진 용신검. 그거 가짜거든요.

그러자 화련이 눈가를 찡그리면서 물었다.

<화련> 너 또 뭔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웃으면서 대답을 하지 않자 화련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했다가 곧 입을 닫아버렸다.

뭐지?

평소 같으면 더 캐려고 할 텐데.

괜히 찜찜하네.

화련이 말이 없자 다시 타누스 후작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카샤스 대공에게 갔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내 질문에 타누스 후작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답해주었다.

“장로회에겐 제약이 있다네.”

“설마 그게 황제를 치지 못하는 원인인가요?”

타누스 후작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네.”

“그렇군요.”

챠밍은 대략적으로 눈치를 챈 듯 말했다.

<챠밍> 아마 직접적으로 반역에 가담할 수 없는 제약이 있나 봐요.

<주호> 그래. 그런 게 아니라면 장로회가 수도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으니.

제약이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그 제약이라는 거 말이죠. 베르가 공작을 치는 것도 포함됩니까?”

베르가 공작을 치는 일은 분명 황제파를 치는 일에 속하고.

이는 곧 반역에 가담하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제약이 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지.

곧 타누스 후작이 내가 들고 있는 계약서를 쳐다보며 말했다.

“문제가 있다면 아까 말했겠지.”

“흠. 빚을 받으러 가는 건 문제가 없다는 거군요.”

“하지만 고대 마룡이 쳐들어온다면…… 그만큼 수도가 위험해진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는 타누스 후작에게 말했다.

“제약 없이. 황제파를 꺾어버릴 수 있는 기회. 제가 만들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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