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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76화 (1,276/1,404)

#1276화 분열 (8)

타란 제국 황제의 오른팔인 베르가 공작.

그리고 장로회의 수장인 타누스 후작.

이 둘은 타란 제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양 파벌의 수장이자 경쟁 상대였다.

물론 계급만 보면 베르가 공작이 앞서기는 한데.

실질적인 세력만 보면 오히려 타누스 후작이 앞선다는 말이 많았다.

그러니까 타누스 후작은 타란 제국 내에서 베르가 공작을 견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에 하나라는 거다.

호시탐탐 서로를 견제하면서 어느 한쪽이 실수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해야 하나?

이런 와중에 베르탈륨 광석 계약서의 존재는.

베르가 공작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정말 타누스 후작이 끼어든다면 말이지.

뭐 베르가 공작이 제대로 보상을 해주면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없겠지만.

앞으로 내민 계약서를 쳐다보는 베르가 공작의 표정은 꽤 착잡해 보였다.

그러더니 크게 한숨을 쉬더니 정말 하기 싫은 말인 듯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말을 이었다.

“사실 대영토는 내게 없네.”

그 말에 시선이 바로 화련에게로 돌아갔다.

<주호> 없다는데요?

<화련> 하아. 이 녀석. 가지고 있지도 않은 대영토로 뻥카 친 거야?

<주호> 그런가 보네요.

베르가 공작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거짓을 말하기엔.

저 녀석에게도 걸린 게 크니까.

굳이 농담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거지.

“대영토가 없다라…… 그럼 대체 계약서에 대영토를 올린 이유가 뭡니까?”

계약서를 만들 때 베르가 공작에게 대영토가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냥 있다고 하니 계약에 넣은 거지.

베르가 공작 본인이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했을 때는 분명 그 이유가 있었다.

솔직히 이유를 알 것 같긴 한데…….

옆에서 챠밍 역시 눈치챈 듯 내게 물었다.

<챠밍> 오빠가 전에 말한 것 맞죠? 우리에게 대영토를 줄 생각이 없었다는 말요.

챠밍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호> 그래. 처음부터 대영토를 줄 생각이 전혀 없었어. 줄 생각 자체가 없었다면…….

<챠밍> 네. 어떤 물건을 매물로 올려놔도 됐을 거예요. 어차피 안 줄 거니까.

내 생각과 챠밍의 생각은 완전히 일치했다.

그러니까 베르가 공작은 그냥 대영토를 언급만 하고 생색만 낸 셈이었다.

황제가 허락했다는 것조차도 거짓일 확률이 높았고.

“전에 황제가 허락했다는 건 뭡니까?”

“음…… 그건 내 단독 행동이었다. 황제 폐하는 전혀 모르시는 일이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 타란 제국 황제라면 베르탈륨 광석을 뺏어갔으면 뺏어갔지.

제대로 돈 주고 사가진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설마하니 베르가 공작이 아예 없는 물건으로 장난쳤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얼마나 우리가 우습게 보였으면 저런 말도 안 되는 계약을 해놓고 배를 째려고 한 거지.

화련도 어이가 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화련> NPC가 우릴 가지고 놀려고 하네.

<주호> 정말 그렇네요.

<화련>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대영토 자체가 없다는데. 받아낼 게 없잖아.

<주호> 흐음. 생각 중이에요. 솔직히 이럴 줄은 몰랐거든요.

용기사단이 우리를 포위하는 상황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베르가 공작이 대영토를 쉽게 내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분명히 무력을 써서 깽판을 놓을 거라고 예상했기에 장로회라는 카드를 꺼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대영토 자체가 없단다.

이건 협상이고 뭐고…….

그러다가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

굳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대영토를 고집할 이유가 있나?

없는 물건에 대고 백날 말해 봐야 답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물건이라면 이야기가 완전 다르지.

대영토라고 함은.

공작급 이상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가진 거대한 영토였다.

다른 말로.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베르가 공작 역시도.

그런 대영토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슬쩍 챠밍을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

<주호> 꼭 황제만 대영토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

그러자 챠밍도 알겠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챠밍> 베르가 공작의 영지 말이에요?

<주호> 그래. 베르가 공작 역시 대영토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챠밍> 그럼. 그 대영토를 대신 받으면 되겠네요.

그렇게 좋아하던 챠밍이 뭔가 떠올랐는지 의심스런 눈빛으로 말했다.

<챠밍> 그런데 정말 베르가 공작이 자신의 영토를 내어놓으려고 할까요?

<주호> 확실히 그렇긴 하지.

베르가 공작의 대영토는.

그야말로 베르가 공작의 힘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지에서 나오는 자금은 둘째 치더라도.

타란 제국에서는 영토의 등급에 따라 거느릴 수 있는 용의 등급 역시도 달라지니까.

만약 베르가 공작이 정말 자신의 대영토를 내어놓는다면.

그 순간 베르가 공작의 권력은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게 된다.

저 녀석 입장에서는.

절대 내어놓을 수 없는 게 자신의 대영토인 셈이다.

아마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절할 테지.

곧장 화련을 보면서 말했다.

<주호> 베르가 공작의 대영토를 대신 받을까 하는데 어떨 것 같아요?

내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화련이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화련> 하아. 그게 될 것 같아?

<주호> 아뇨. 아마 안 되겠죠.

<화련> 차라리 다른 값어치 있는 것들을 내어놓으라고 하면 모를까. 절대 안 내놓을 거야. 타란 제국에서는 영지가 곧 힘이라.

<주호> 역시 어렵겠네요.

<주호> 일단 한 번 던져보죠.

<화련> 알아서 해.

화련 역시 회의적이라……

누가 봐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거다.

시선을 돌려 베르가 공작에게 말을 꺼냈다.

“다른 대영토. 있지 않나요?”

그 순간 베르가 공작의 몸 전체에서 붉은 기운이 한꺼번에 흘러넘치듯 튀어나왔다.

강렬한 압력과 함께.

“지금 감히 내 영지를 말하는 것이냐?”

이건 역시 안 되겠네.

계약이고 뭐고 다 파토 낼 분위기라.

그렇다고 베르가 공작에게 끌려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쨌든 계약은 계약이라.

지키지 못했을 경우 패널티는 온전히 베르가 공작의 몫이었다.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그럼……?”

일찍 포기를 하자 베르가 공작 역시 바로 화를 누그러뜨리고는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글쎄요. 베르가 공작께서 뭘 지불하셔야 대영토에 준 하는 보상이 될지…….”

이번엔 선택권을 베르가 공작에게 넘겨주었다.

우리는 베르가 공작이 뭘 보유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 한다.

그러니까 그냥 베르가 공작 스스로가 내어놓을 수 있는 것들을 말하게 할 수밖에.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베르가 공작이 몇 가지를 꺼내놓았다.

“내 영지에서 나는 최상급 용들을 20마리 지급하지.”

“기각. 겨우 용 몇 마리 가지고 대영토에 준하는 보상이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물론 값어치가 높긴 했다.

베르가 공작이 언급하는 최상급 용이라면.

용기사단 단장들이나 탈 법한 용들이니까.

구매하는 건 애초에 말도 안 되고.

대영토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그럼 거기에 더해 용기사단들이 착용하는 최상급 무구들은 어떤가. 50세트 준비해줄 수 있네.”

이건 물론 좋을 순 있다.

용기사단의 장비가 구하기 힘든 건 매한가지라.

뭐 지금 같은 상황만 아니라면야.

하지만 대영토와 비교하기에는 너무 보상이 적다.

용신검 같은 물건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영웅급 무구 수준은 되야…….

베르가 공작이 몇 가지 더 꺼내 들긴 했는데.

답이 보이지 않았다.

나름 신경 쓴다고 하지만.

눈에 안 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더 좋은 걸 너무 많이 봐버려서.

중간에 화련이 나서서 몇 가지 협상을 해봤는데.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화련이 짜증 나서 문을 박차고 나갈 뻔했으니.

얼마나 베르가 공작이 짜게 노는지 잘 알 수 있었다.

<화련> 와. 저거 대체 우릴 뭘로 보는 거야?

<주호> 말이 안 통하긴 하네요.

<화련>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하는데?

챠밍에게도 물어봤는데.

<챠밍> 베르가 공작이 지닌 무기를 달라고 하면요? 적어도 영웅 급 무구일 텐데.

<주호> 그것도 아마 어렵겠지.

<챠밍> 역시 그렇죠?

나 역시 아쉽긴 마찬가지였다.

지금이 아니면 받아내기 힘든 물건이라.

타란 제국의 영웅 급 무구라면.

협상 테이블에 올릴 정도는 충분히 된다.

그걸 내놓을 리가 없으니 문제지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뭔가가 떠올라 피식 웃으면서 일어났다.

“베르가 공작께서 결정하기 힘드신 것 같으니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흠. 그래 주겠나.”

“계약은 계약이니 베르탈륨 광석은 전부 드리고 가겠습니다.”

“그럼 알겠네. 최대한 편의를 봐주지.”

일단 이 자리를 모면하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우리가 여길 나가는 순간.

아마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화련> 너 미쳤어? 베르탈륨 광석을 미리 다 주면 어쩌자는 거야? 보상도 안 받고.

<주호> 아. 그거. 여기서 주고 가야지 되거든요.

<화련> 응? 무슨 소리야?

<주호> 계약서요.

계약서를 말하자 화련이 의아한 눈빛을 했다.

<주호> 여기선 보상을 못 받는 게 포인트죠.

<화련> 보상을 못 받는다고……? 야. 너 설마?

<주호> 네. 위약금 조건. 발동시킬 겁니다.

<화련> 그거. 사기잖아?

<주호> 문제 있나요?

<화련> 하긴 그렇네. 사기는 저쪽이 먼저 쳤지.

곧 베르가 공작이 원하는 곳에 베르탈륨 광석들을 전부 다 내어주자 계약서에 불이 들어왔다.

지급 물량을 전부 채웠으니 우리 쪽 조건은 완료.

반대로 베르가 공작이 우리에게 지급해야 할 대영토는 여전히 빨간불이 들어와 있었다.

한 마디로 우리가 계약을 이행한 순간부터.

이 계약서는 발동된 것이다.

곧 산처럼 쌓인 베르탈륨 광석들을 올려다보던 베르가 공작이 감탄했다.

“정말 다 구해왔군.”

베르탈륨 광석을 전부 내어놓자 베르가 공작은 우리에 대한 의심을 다소 걷어 들였다.

“그럼 추후에 뵙도록 하죠.”

어쩌면 다음에 올 때는 문전박대를 당할지도.

원하는 물건을 다 줘버렸으니까.

하지만 이젠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미 이건 우리 손을 떠나버린 일이다.

홀가분하게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베르가 공작가를 나온 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챠밍과 화련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 다른 손님을 만나보러 갈까요?”

* * * * *

얼마 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로 타누스 후작의 저택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타누스 후작의 응접실에 앉아서 직접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흠. 덕분에 우리 애들이 고생을 좀 했더군.”

베르탈륨 광석을 되파는 과정에서 손해를 제법 본 걸 알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딱히 타누스 후작이 화를 낸다던가 하진 않았다.

시세 차이로 인한 거래에 타누스 후작이 할 말이 딱히 없기도 하고.

그런 타누스 후작에게 미소 지으면서 말을 꺼냈다.

“이번엔 사러 온 것이 아니라 물건을 팔러 왔습니다.”

“물건?”

“네. 아마 꽤 만족스러워하실 것 같은데……”

“제시하는 게 어떤 물건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곧 품에서 계약서를 꺼내 타누스 후작에게 보여주었다.

그 순간.

타누스 후작이 눈빛이 더없이 진지하게 변하는 게 보였다.

“이건…… 꽤 흥미롭군.”

“네. 후작님께서 상당히 관심 있어 할 것 같더군요.”

그리고는 잔인한 미소와 함께 계약서를 타누스 후작 쪽으로 살짝 밀어 넣었다.

“베르가 공작의 재산. 전부 차압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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