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4화 분열 (6)
카샤스 대공의 군대를 이겨내고 베르탈륨 광산 방어에 성공한 왕국 유저들이 타란 제국 수도에 입성하면서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다.
수도의 정문에서부터 위풍당당하게 각 왕국의 국기를 올려 입장하는 모습이란…….
거리에는 타란 제국의 시민들이 몰려나와 그런 그들을 향해 환호를 보내주었다.
“와!! 전쟁 영웅들이 돌아왔다!”
“베르탈륨 광산 전쟁에서 이겼다지?”
“이제 고대 마룡을 막을 수 있어!”
입성하는 유저들이 그들을 향해 환한 미소로 손을 들어서 화답했다.
계속 지고만 있던 싸움에서 저들의 존재는 타란 제국 수도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될 터.
그리고 당연히 이런 업적들은 유저들에게 고스란히 가서 쌓이게 된다.
타란 제국 황실에서 내어주는 기여도와 보상으로 말이지.
관련 퀘스트까지 완료했으니 더없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같이 웃으면서 말했다.
“체스판의 말이려나.”
“그렇죠.”
이렇게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저들이 이길 수 있도록 우리가 카샤스 대공령의 병력을 빼버린 덕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도 서로 전력을 깎아 먹으면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을 것이다.
왜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유저들이 입성하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재중이 형이 물었다.
“베르탈륨 거래는 어떻게 됐어?”
“아. 그건 화련이 알아서 후려쳐서 올 거예요. 지금 장로회 귀족을 만나러 갔거든요.”
“흠. 화련이라면 정말 끔찍하게 털어주겠네.”
현재 유저들 행렬 뒤쪽으로는 수십 개의 마차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아마 저 마차에 들어 있는 건 전부 베르탈륨 광석일 테고.
대략적으로 봐도 상당한 양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켜보던 재중이 형도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흐음. 수도 지하 창고 중 절반은 채울 수 있겠는데?”
“네. 상당히 많죠.”
“생각보다 많이 실어 왔는걸?”
“그럼 더 좋죠.”
지금 이 유저들의 행렬을 지켜보고 있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당연히 장로회의 사람들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터.
그리고 저 많은 베르탈륨 광석들이 수도성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다.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네?”
“베르탈륨 광석 말이야. 바닥 뚫고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
“아하하.”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장로회의 귀족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곧 자신들이 보유한 베르탈륨 광석이 휴지 조각이 된다는 걸.
이 상황에서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은 딱 하나.
더 떨어지기 전에 내다 파는 방법밖에는 없지.
그때 순간적으로 다른 생각이 났다.
“혹시 저 행렬을 공격하는 미친 짓을 하지 않겠죠?”
“설마.”
타란 제국 수도성으로 들어가는 물건에 손을 대는 건.
그야말로 반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이 곳 수도 안에서 벌이는 일은 더 그렇고.
“손으로 쓰려고 했으면 진작 했어야 했어.”
재중이 형의 말은 수도 밖에서.
그러니까 운송하는 도중에 장로회가 수송대를 쳤으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갑자기 전쟁이 한쪽으로 급격하게 기울 것이라고는 저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미 베르탈륨 광석을 실은 마차가 수도에 들어와 버린 이상.
장로회에서 손 쓸 방법은 전무하다.
“화련이 신나 하겠네요.”
수도로 들어가는 대량의 베르탈륨 광석으로 인해.
곧 곤두박질 칠 시세가 뻔히 보인다.
이런 좋은 조건을 화련이 놓칠 리가 없었다.
가격을 후려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물어 뜯어버릴 지도.
그러다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따라갔어야 했나요?”
“흐음. 장로회 애들이 화련을 죽이기라도 할까봐?”
“확 돌아버리면요. 무슨 짓을 못하겠어요.”
내 말을 들은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마라. 우리 말고는 그 물량 다 받아줄 곳도 없어. 그렇다고 황제파에게 가서 팔 게 아니라면.”
“만약 상인들에게 쪼개서 팔면요?”
“그럼 휴지 조각을 나눠서 팔게 되겠지. 조금이라도 비쌀 때 팔아야 저들이 뭐라도 건지니까.”
“확실히 나눠서 팔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네요.”
“그동안 가격은 쭉 떨어지고. 그렇게 떨어지는 물건은 상인들이 절대 안 사.”
재중이 형 말대로.
지금 이 순간 베르탈륨 광석들을 전부 팔지 못하면.
정말 휴지 조각이 되어 버린다.
그만한 물량을 한 번에 받아줄 곳은.
지금은 우리뿐이고.
무엇보다 계속 가격이 떨어질 것을 아는 상인들이.
제값 주고 베르탈륨 광석들을 사줄 리가 없었다.
가만히 기다리면 알아서 가격이 내려갈 테니까.
아니.
그보다 이제 사봐야 어차피 타란 제국 황실에서는 비싸게 사주지 않는다.
공급 가능한 베르탈륨 광산 루트가 있는데 굳이 상인들의 물건을 살까.
그러니까 지금 장로회에서 매달릴 구석은.
화련 밖에 없다는 뜻이 된다.
“화련을 건들지 못하겠네요.”
“어. 손끝 하나 건드렸다가는 걔네도 파산이야.”
파산이라.
확실히 그 정도쯤 되면 화련이 수틀리게 한다고 해도 매달려야 할 판이다.
“한 번 기다려보죠.”
문제가 생기면 화련이 알아서 연락을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화련에게 연락이 왔다.
<화련> 협상 끝났어.
<주호> 벌써요?
<화련> 어. 얘들 물량을 어떻게든 빨리 털어내고 싶어 하더라.
<주호> 뭐 가지고 있으면 계속 손해긴 하죠.
<화련> 네 덕분에 일이 쉬워졌어. 베르탈륨 광산을 풀어주지 않았으면 질질 끌다가 안 팔았을 거야.
확실히 베르탈륨 광산들을 풀어버린 일이 가격에 크게 영향을 미친 듯 했다.
장로회 녀석들을 다급하게 만들기도 했고.
<화련> 거래 끝났으니까 와서 가져가.
<주호> 네. 챠밍 데리고 갈게요.
“끝났다네요.”
“호오. 빠른데?”
“저쪽에서 빨리 물량을 털고 싶었나 봐요.”
“악성 재고라 이거군.”
“네. 그런 셈이죠. 그럼 다녀올게요.”
그리곤 챠밍을 불러서 바로 화련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저쪽부터 이쪽 끝까지. 창고에 있는 거 다 쓸어 담아.”
“우리가 줬던 물량 그대로네요.”
“얘들이 어디 쓸데가 있었겠어? 황제파가 못 쓰게 막으려고 산 거지.”
지금에서는 그 쓸모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미 대량의 물량이 수도성으로 들어가는 중이라.
장로회에서는 더 이상 이 물량을 가지고 있어 봐야.
그저 짐밖엔 되지 않는다.
“가격은 어떻게 됐어요?”
“처음에는 반이나 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요?”
“꺼지라고 했지.”
“아하하…….”
화련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긴 했다.
역시 따라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했고.
“그럼 얼마나 깎았어요?”
“우리가 준 가격의 5분의 1.”
그러면서 화련이 분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더 깎을 수 있었는데……! 짜증나.”
“음. 그것만 해도 엄청난데요.”
현금으로 치면 몇십 억 단위는 족히 될 텐데.
말 몇 마디로 그걸 번 것이나 다름없었다.
“난 마음에 안 들어.”
“충분히 잘했어요.”
아마 그 이상 깎으려 들었으면 분명히 장로회에서도 반발했을 것이다.
그럼 아예 안 팔아버린다든가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가지고 있는다고 했다면.
오히려 우리가 피곤해졌을 것이다.
“그럼 쓸어볼까요.”
그렇게 챠밍과 돌아다니며 모든 베르타륨 광석들을 아이셔스 스태프들에 채워 넣었다.
수거가 끝나자 화련이 내게 말했다.
“조건이 하나 있어.”
“무슨 조건요?”
“황제파에 팔지 말라고 하는데 내가 알 게 뭐야. 광석에 번호가 달린 것도 아니고.”
“확실히 그렇네요.”
“그래도 쟤들이 멍청이는 아니더라고.”
“네?”
“여기 계약서.”
화련이 우리에게 하나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위에서부터 쭉 읽어보니 하나의 문제가 보였다.
“황제파에게 팔면 위약금이 있네요. 그것도 열 배나.”
“어. 나보고 절대 팔지 말라더라.”
그때 옆에 있던 챠밍이 이상함 점을 발견했는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빠. 이거…… 다른 사람이 팔면 전혀 문제없는 것 아니에요?”
챠밍이 바로 허점을 집어내자 화련이 맞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이걸 내가 주호 네게 팔면…….”
“네. 챠밍 말대로 전혀 문제가 없네요.”
이 계약은 화련이 황제파에 팔지 말라는 거지.
내가 팔지 말라는 계약은 아니니까.
한 마디로 소유자가 바뀌게 되는 순간.
이 계약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거다.
“헛똑똑이들이라니까.”
“그러게요.”
이미 베르탈륨 광석들이 우리에게 넘어온 이상.
저들이 이걸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 셋 다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리고는 다음 계획을 위해 이동했다.
화련이 내게 물었다.
“바로 베르가 공작한테 갈 거지?”
“네.”
그리고는 품에서 또 다른 계약서를 하나 꺼내 들었다.
“이쪽도 해결해야 하니까요.”
제 일정에 정해진 베르탈륨 광석 물량을 공급하면.
타란 제국의 대영토의 소유자가 바뀌는 계약이었다.
화련이 피식 웃으면서 계약서를 흔들어 보였다.
“정말 구해올 거라 생각 안 했으니 이런 걸 쥐어 줬겠지.”
그런 화련을 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약속된 물건을 받으러 가볼까요.”
곧 베르가 공작의 대저택으로 가자 정문에서부터 경비병들이 우리를 막아섰다.
화련이 앞으로 나섰다.
“베르가 공작님을 만나러 왔는데?”
“약속되어 있습니까?”
“어. 계약을 수행하러 왔다고 하면 알 거야.”
곧 경비병이 안으로 알렸고 집사로 보이는 녀석이 부랴부랴 튀어나왔다.
“안으로 드시지요. 화련 백작님.”
집사는 우리가 왜 왔는지 알고 있는 듯 했다.
저 입가의 미소를 보면 말이야.
아마도 계약 파기를 논하는지 알고 있겠지.
도저히 제 시간에 대기 힘든 물량이니까.
“공작님이 곧 오실 겁니다.”
그렇게 응접실에서 앉아 기다리다 보니 베르가 공작이 등장했다.
이 녀석 역시도 입가에 미소가 보였다.
“하하. 벌써 찾아오셨습니까?”
아마 우리가 물량을 구하지 못했다고 여기는 듯 했다.
그러면 계약서는 바로 파기다.
베르가 공작 입장에서는 그동안 받아먹은 베르탈륨 광석을 요긴하게 썼는 데다가.
오늘은 대규모의 물량이 들어오는 날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더 이상 우리에게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괜히 여유가 가득한 저 웃음을 막아주고 싶은데?
곧장 베르가 공작에게 여기 온 용건을 꺼냈다.
“계약서를 이행하러 왔습니다만.”
“흠. 그럼 계약 파기를…….”
당연히 계약 파기인 줄 알고 웃고 있던 베르가 공작의 표정이 굳어버린 건 그 다음이었다.
“아뇨. 베르탈륨 광석. 전량 구해왔습니다.”
“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계약서대로 정해진 베르탈륨 광석 물량을 채워왔다는데.
오히려 베르가 공작의 눈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아…… 그게…….”
공작의 위치답지 않게 말을 더듬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게 느껴졌다.
흐음.
이것 봐라?
뭔가 켕기는 게 있나 본데?
옆에 화련을 보자 화련 역시 같은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화련> 쟤. 황제한테 대영토 받아먹고 이미 꿀꺽한 거 아냐?
<주호> 그래요?
<화련> 아니면 저렇게 당황할 이유가 없잖아.
<주호> 그렇다는 거군요.
황제가 쥐어 준 물건을 중간에서 해먹었다라…….
꽤 재밌네.
바로 당황하는 베르가 공작을 보면서 말을 꺼냈다.
“계약서대로. 대영토. 내어주시죠?”
어디 어떻게 나오나 한 번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