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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73화 (1,273/1,404)

#1273화 분열 (5)

베르가 공작이 대영토를 보상으로 건 이유는.

중간에 우리가 제대로 베르탈륨 광석을 보급하지 못했을 때.

계약을 중도 취소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무리라고 할 정도의 물량을 요구했으니까.

일단 급한 대로.

우리가 주는 물량을 받아먹어 방어 시스템을 돌리고.

중간에 계약을 취소시킨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떻게든 자신들이 가진 베르탈륨 광산들을 정상화시킬 생각일 테지.

그럼 대영토를 우리에게 주지 않아도 되니까.

시간을 벌기 위한 계책인 셈이다.

“아마 베르가 공작은 우리에게 대영토를 줄 생각이 전혀 없을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영토와 베르탈륨 광석의 값어치는 너무 차이가 난다.

베르탈륨 광석의 양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말이지.

최상급의 베르탈륨 광석들이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긴 한데.

이쪽은 마왕의 무구를 만들 정도로 고품질이라.

그만한 값어치를 할 테니까.

하지만 최하급의 베르탈륨 광석들은 그냥 방어 시스템을 돌리기 위한 연료일 뿐이다.

평상시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아무리 많이 모아온다 해도.

대영토만 한 값어치는 절대 아니다.

“뻥카라 이거지?”

“네. 어차피 주지 않을 작정이라면 보상으로 뭘 걸어도 되잖아요.”

“꽤 재밌는 짓을 하네.”

화련이 날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계약을 성사할 생각이야?”

“네. 대영토잖아요. 공짜로 줄 때 먹어놔야죠.”

“베르탈륨 광석을 다시 사 와서 말이지?”

화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베르가 공작은 헐값에 대영토를 내놔야 할 거예요.”

* * * * *

베르가 공작과 밀실 계약을 하고 난 뒤.

정말 거짓말같이 고대 마룡이 사라져버렸다.

정확하게는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 수도에 침략해오는 일이 아예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마치 누군가 고대 마룡을 조정하는 것처럼 전혀 나타나지 않자.

불안해진 건 오히려 장로회의 귀족들이었다.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 베르탈륨 광석을 경매로 사들였는데.

정작 그 베르탈륨 광석을 소모할 일이 없어졌으니까.

뭐 쓰려고 하면 방어포를 마구잡이로 쏴대며 소모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어차피 장로회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수도 방어는 장로회의 소관이 아니니까.

그냥 창고에 처박아놓고 구경할 수밖에.

당연히 그 끝을 모르고 미친 듯이 가격이 올라갔던 베르탈륨 광석의 값어치가 점점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베르탈륨 광석의 필요성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라서.

지금이라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판다고 하면 베르가 공작이 달려가서 쓸어 담겠지.

베르가 공작은 베르탈륨 광석을 보급하는 일이 최우선일 테니까.

그런 베르가 공작이 원하는 건.

자신들이 소유한 베르탈륨 광산들이 원상태로 복구되는 일일 테다.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우리가 두고 볼 리는 없었다.

“전사 형. 베르탈륨 광산들 상태는 어때요?”

“흐음. 교착 상태? 전에 네가 부셔둔 베르탈륨 광산에 투입됐던 병력들이 다른 광산들로 지원 가서 얼추 균형이 맞아지고 있어.”

전사 형 말대로 서로 밀리지 않기 위해 남아도는 왕국의 병력들을 들이미는 중이었다.

굳이 놀리고 있을 이유도 없고.

유저들도 새로 퀘스트를 받아서 기사회생하는 중이라.

우리 덕에 중도 탈락할 뻔했는데 전쟁터가 많아서 그런지 다시 전장에 투입되면서 기회를 얻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유저들끼리 치고받으면서 숱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물론 피해가 너무 심하다 싶으면 빠지는 곳도 종종 생겨났고.

자신들이 후에 얻을 수 있는 보상보다 피해가 커지면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기 힘들어지니까.

“나쁘지 않네요.”

우리의 목적은 타란 제국의 베르탈륨 광산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교착 상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수도 상황은 어때?”

전사 형이 물어보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쪽은 평온하죠.”

말 그대로 평온이다.

고대 마룡이 언제 쳐들어왔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하도 공격을 해오지 않자 수도 복구 작업이 한참이기도 했고.

“화련은? 베르탈륨 광석 캐러 갔어?”

“네. 그쪽은 열심히 캐고 있는 중이에요.”

정확히는 화련이 캐는 게 아니라 NPC들이 힘쓰고 있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직접 관리를 하는 중이었다.

거기다 NPC들을 풀로 돌리고 있는 것도 모자라 다른 지역의 NPC까지도 사 와서 캘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고 있었다.

만약 내 쪽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화련이 물량을 맞춰야 한다.

그럴 일이 없길 바라는 중이고.

“거참. 대영토를 이런 데다 거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급하긴 했죠.”

베르가 공작이 멍청이로 폄하되는 순간이지만 우리 둘 다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가능성은 있고?”

“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곧 입질이 올 것 같거든요.”

현재 베르탈륨 광석의 시세가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수요가 아예 없다고 해야 하나?

베르탈륨 광석의 가장 큰 소모처인 타란 제국 황실에서조차도 추가 보급을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급한 불은 우리가 꺼놨기도 하고.

한 번 정도는 막을 베르탈륨 광석 물량을 이미 베르가 공작에게 넘겨주었다.

만약 이대로 고대 마룡이 계속 나타나지 않는다면.

베르탈륨 광석은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우린 여기에 불을 조금 더 지펴줄 생각이었다.

“전사 형. 베르탈륨 광산 세 개쯤 풀어줄 수 있어요?”

“풀어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어쩌려고?”

“아. 베르탈륨 광석을 좀 풀어주려고요.”

아무리 고대 마룡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베르탈륨 광석의 시세가 미친 듯이 곤두박질치거나 하진 않았다.

아직 잠재적인 위험은 분명히 존재하니까.

혹시라도 다시 고대 마룡이 쳐들어올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베르탈륨 광석은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가격이 우리가 원하는 수준까지 떨어지려면…….

중간에 공급이 늘어날 필요가 있었다.

당장 화련이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은 한계가 있으니.

다른 곳에서 풀어버릴 수밖에.

곧 내 말을 이해한 전사 형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 지금 베르탈륨 광석 시세를 더 떨어뜨리겠다는 거잖아.”

“네. 현재 속도도 나쁘지는 않는데 시간이 좀 걸리네요.”

“그래서 얼마나 떨어뜨릴 건데?”

“음. 휴지 조각 정도는 되어야 장로회에서 던지겠죠.”

장로회에 자금이 많다고는 하나.

손실이 어마어마해져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물량을 내놓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우리가 잽싸게 낚아챌 생각이었다.

괜히 다른 곳에 팔아버리면 곤란하니까.

그렇다고 장로회가 황제파에 파는 건 절대 하지 못한다.

그건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주는 꼴이라.

비싸게 사서 싼값에 공급하는 미친 짓을 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당연히 다른 거래처를 찾을 테고.

그때 가서 쓸어오면 된다.

“너 진짜…… 무서운 놈이네.”

“전에 화련도 그 말을 하더라고요.”

“음. 화련은 그럴 자격이 있지. 너한테 좀 당했어야.”

“과거는 잊고 지금은 동맹이죠.”

“그래도 조심해. 걔도 보통 아니니까.”

“네. 그래야죠.”

전사 형과 앞으로 풀어줄 광산들을 몇 개 정하고는 그대로 접속을 종료했다.

생각대로 일이 잘 풀려야 할 텐데…….

* * * * *

게시판은 온통 이번 베르탈륨 광산 쟁탈전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근래 이만큼 전투가 활발하게 일어난 일이 없었으니까.

다들 각자의 왕국에서 힘을 비축한다고 숨 죽이고 있던 상황이라 딱히 겉으로 전력을 드러내지도 않았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뚜껑을 열고 보니.

밖으로 튀는 왕국이 제법 나왔다.

“오르가 왕국…….”

매서커 연합이라고 했던가?

그 연합에서 차지한 왕국인데.

전사 형이 몇 곳의 베르탈륨 광산에서 병력을 빼버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활개 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세 곳의 베르탈륨 광산을 탈환하면서 그 이름을 알렸다.

“나긴 난 놈이네.”

전사 형이 풀어주었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정리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전신이나 다른 프로 팀의 길드들 역시 두각을 드러내면서 각각 베르탈륨 광산들을 하나씩 차지했다.

어디 왕국이 강하고 약한지 눈에 딱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재중> 좀 풀어주니까 애들이 미쳐 날뛰는데?

<승호> 네. 바로 쓸어 담네요.

재중이 형 역시도 전사 형과 의논한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재중> 곧 베르탈륨 광석을 수도로 공급하겠네.

<승호> 그러려고 풀어준 거니까요.

<재중> 의심받을 수도 있으니 애들 풀어서 공급 루트 좀 치라고 해.

<승호> 아. 그건 전사 형이 알아서 해준데요. 적당히 의심 안 받을 만큼요.

<재중> 전사가 그런 건 또 잘하니까.

재중이 형 말대로 멀쩡히 베르탈륨 광석들을 수도로 수송하게 놔두면 분명 누군가는 의심을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위장이었다.

어차피 공격하는 유저들도 왕국의 유저라.

카샤스 대공이 내어준 퀘스트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재중> 크큭. 아주 유저들을 쥐었다 폈다 하네.

<승호> 써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써먹어야죠.

지금이야 카샤스 대공이 퀘스트를 내려주니까 말을 드는 거지.

그런 것도 없다면 유저들을 통제하기 힘들어진다.

<승호> 들어가서 봐요.

접속을 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화련에게 먼저 연락이 들어왔다.

<화련> 수도에 베르탈륨 광석이 잔뜩 들어왔던데. 그거 네 작품이야?

<주호> 아. 그거 제가 풀어준 거예요.

그러자 화련이 바로 물어보았다.

<화련> 가격을 빠르게 떨어뜨리려고?

역시 화련은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빨랐다.

돈이 걸린 일이라.

<주호> 설명 안 해도 바로 아시네요.

<화련> 날 뭘로 보는 거야? 물건 늘어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잖아. 그래서 얼마큼 푼 건데?

<주호> 음. 지금까진 광산 여섯 곳을 풀었어요. 필요하면 더 풀 수도 있고요.

<화련> 그래? 그럼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지겠는데?

그러더니 화련이 말을 이었다.

<화련> 이러면 장로회에서 절대 못 버티겠네.

<주호> 네. 휴지 조각되는 주식을 들고 있는 기분이겠죠.

<화련> 그것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건을 들고 말이야.

아마 화련도 지금 웃고 있을지 모르겠다.

<주호> 조만간 알아서 뱉어낼 겁니다.

<화련> 알았어. 주시하고 있다가 바로 쓸어 담을게. 어차피 황제파한테는 못 팔 거니까. 팔만한 곳을 수소문하면 몇 곳 없을 거야.

화련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곧장 황제파에게 들어가게 할 순 없으니.

그렇게 베르탈륨 광석이 타란 제국 수도에 들어간 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베르탈륨 광석들의 가격이 끝을 모르고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타란 제국 황실에서 정상적인 루트를 구한 마당에 굳이 비싸게 살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곧 화련에게서 연락이 왔다.

<화련> 장로회에서 물었어.

<주호> 네. 그럼 전부 다 쓸어 담아주세요.

<화련> 기다려. 아주 헐값에 사 올 테니까.

역시 화련.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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