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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71화 (1,271/1,404)

#1271화 분열 (3)

베르탈륨 광석은 마지막까지 가격을 올려 쓴 장로회의 귀족 대표가 차지하게 되었다.

결정이 나는 순간까지도 계속 가격을 올려 댔으니까 꽤 무리를 했을 것이다.

주변의 다른 귀족들에게 연신 의논을 하면서 가격을 올리는 걸 보면.

아마도 파벌의 자금을 끌어다 썼을 테지.

단일 귀족이 내기에는 꽤나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으니까.

전에 상업 조합장이 내민 가격의 네 배에.

물량은 그보다 열 배나 많은 물량이었다.

이걸 다 소화하려면 어지간한 자금으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다른 말로.

황제파의 귀족들이 낼 수 있는 금액을 넘었다는 뜻이지.

<주호> 장로회가 이렇게 돈이 많을 줄 몰랐어요.

솔직히 황제파가 이길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장로회의 자금력이 황제파의 그것을 상회했다.

물론 방어 시스템의 원료인 베르탈륨 광석을 구매하고자 황제파가 가진 자금을 모두 쏟아 넣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당장 베르탈륨 광석이 급한 건 맞겠지만.

자신들이 정해둔 액수를 넘어가는 순간.

황제파의 귀족들도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화련> 몰랐어? 장로회 쟤들 돈 많아.

<주호> 그래요?

<화련> 타란 제국 황제가 눈에 가시 같은 장로회를 가만히 두는 이유가 뭘 것 같아?

<주호> 돈인가요?

<화련> 맞아. 타란 제국의 주요 돈줄을 장로회가 쥐고 있거든. 타란 제국 황제가 권력이 강한 건 맞지. 하지만 장로회가 가진 것도 절대 무시 못 해.

<주호> 그랬군요.

그녀의 말에 지금의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분명 장로회는 타란 제국 황제에게 귀찮은 존재일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족족 태클을 걸어대니.

거기다 대놓고 카샤스 대공을 밀려고 하는데.

그걸 타란 제국 황제가 모를 리가 없었다.

황제의 성격으로 봐서는.

이미 다 죽이고 남았을 텐데.

아직 장로회는 남아있다.

<화련> 분명히 장로회 귀족들의 용혈이 약한 건 맞아. 하지만 타란 제국 전체로 보면 엘리트니까.

<주호> 상대적인 거군요?

타란 제국 황제나 카샤스 대공의 눈높이로 봤을 때는 분명 용혈이 약한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타란 제국 내에서는 최상위에 위치한 용혈이었다.

그 둘이 워낙 괴물 같을 뿐.

강한 용혈을 중시하는 타란 제국의 기조를 볼 때는 그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화련> 그리고 장로회 대부분이 제국의 주요 직책을 틀어쥐고 있거든.

<주호> 그래서 황제가 함부로 하지 못하는군요.

<화련> 황제도 부담스럽지. 장로회를 한꺼번에 치워버리기는.

장로회의 귀족들을 한 번 쳐다본 화련이 말을 이었다.

<화련> 만약 카샤스 대공이 없었다면. 장로회가 황제에게는 최고의 우군이었을 거야. 저만한 권력과 자금력을 황제를 위해 몰아줬을 테니.

<주호> 지금은 아니죠.

보통은 역사적으로 타란 제국 황제가 제일 강한 용혈이니.

장로회가 황제를 떠받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장로회가.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는다면.

지금 같은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탕탕!

“그럼 베르탈륨 광석 경매를 마치겠습니다.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물건은 곧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량이 물량인 만큼 시간이 좀 소요될 겁니다.”

무려 창고 열 개 분량이었다.

단숨에 옮기는 건 애초에 불가능.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업 조합장은 현재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저 녀석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결과가 없을 테니까.

경매 수수료만 해도 이미 녀석이 쓴 돈을 메우고도 남는다.

그만큼 지금 경매에 걸린 돈이 컸다.

경매가 끝이 나자 황제파의 귀족들로 보이는 녀석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모습이 보였다.

반대로 장로회의 귀족들은 환호했다.

그때 옆에 있던 챠밍이 내게 물었다.

<챠밍> 오빠. 그런데 장로회의 귀족들이 베르탈륨 광석을 가져가서 황제에게 주지 않으면 황제가 저들을 가만둘까요?

<주호> 뭐……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분명 익명으로 경매를 하긴 했는데.

저들끼리는 서로 누군지 아는 모양새였다.

아까 서로 째려보던 것만 해도 그렇고.

황제파는 장로회가 가져갔다는 걸 잘 아니.

분명 황제에게도 알릴 텐데.

이걸 장로회가 어떻게 넘어갈지…….

아무리 장로회의 권력과 자금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전시 상황에서 황제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그것도 타란 제국 수도가 위협받는 상황에?

이걸 빌미로 황제가 손을 쓰면.

장로회에 엄청난 피해가 갈 것이다.

흐음.

정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생각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베르탈륨 광석을 가지고 타란 제국 황제와 협상을 하는 건데…….

아무리 황제라고 하더라도 장로회에게 대놓고 강탈하지는 못할 테니.

만약 정말로 장로회가 이번 기회에 타란 제국 황제를 끌어내릴 작정이라면…….

<주호> 일단 두고 보자고. 장로회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이미 패는 장로회가 쥐었다.

저걸 어떤 방식으로 휘두르는지 지켜보는 건 꽤 재미가 있을 것이다.

* * * * *

그렇게 경매가 완전히 끝나고 미리 준비한 상업 조합장의 창고에 베르탈륨 광석들을 풀어놓았다.

완전히 창고가 차자 화련이 상업 조합장에게 말했다.

“전달하는 건 알아서 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같은 백작끼리지만 여전히 화련에게 극존칭을 하는 걸 봐서는.

이 경매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슬쩍 고개를 올린 상업 조합장이 조심스럽게 두 손을 살살 비비며 화련에게 물었다.

“그럼 다음 경매는 언제쯤……?”

이번에 제대로 돈쭐난 상업 조합장은 자신의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벌써 다음 경매를 찾는 걸 보면.

“준비되면 찾지.”

정확히 언제라고 전달해주지 않자 조금 실망한 모습이었지만.

그걸 화련에게 티내지 않으려 애썼다.

화련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게 알아서 숙인다고 해야 하나.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자리를 좀 만들어줘야겠어.”

“네? 어떤?”

그러더니 화련이 아까 내가 말한 것을 상업 조합장에게 전달했다.

“아까 나온 황제파 귀족 대표와 자리를 만들 수 있어?”

“으음. 장로회가 아닌 황제파…… 입니까?”

장로회가 언급되자 화련이 관심 없다는 듯 말했다.

“물건은 네가 알아서 전달하면 되잖아. 그리고 이미 돈 다 쓴 애들은 찾아서 뭐하게?”

베르탈륨 광석을 산다고 파벌의 자금을 털어낸 장로회는 이미 우리의 관심 밖이었다.

여기서 더 쥐어짜려고 해봐야.

제대로 뽑아먹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곧 상업 조합장이 존경스럽다는 듯 화련에게 아부했다.

“음.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탁월하신 식견이십니다.”

“됐고. 그래서 된다는 거야?”

“아마…… 가능할 겁니다. 황제파 분들은 당장 베르탈륨 광석이 급할 테니까요.”

물량의 전부를 장로회에서 쓸어간 상황이었다.

당연히 다른 방법으로라도 구해야 한다.

하지만 타란 제국 내 모든 베르탈륨 광산은 현재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오직 유일하게 제대로 돌아가는 건.

화련이 가진 베르탈륨 광산뿐.

그런 화련이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하는데 만나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

“곧 자리를 마련해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오래는 안 기다려.”

“네. 바로 갑니다.”

자신을 기다리게 하지 말라는 엄포에 상업 조합장이 후다닥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곧 화련이 내게 물었다.

“자리는 만들었는데. 어쩔 작정이야?”

“음…… 글쎄요. 일단은 만나봐야 알 것 같아요. 몇 가지 생각은 해두었는데. 상대가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서 플랜을 바꿔야 하니까.”

“누가 나오는지가 중요하겠네.”

“그런 셈이죠.”

그렇게 집무실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상업 조합장이 가면을 쓴 인물을 데리고 들어왔다.

“이쪽은…….”

소개를 하려고 하는데 황제파의 귀족이 손을 올려 자신의 가면을 바로 벗어 버렸다.

순간 고개를 돌리자 챠밍과 시선이 마주쳤다.

<챠밍> 오빠. 저 사람……!

<주호> 그래. 아는 녀석이네.

누군가 했더니 전에 베르탈륨 광산 지하에서 우리를 죽이려 했던 타란 제국 황제의 수족 중에 한 명이었다.

그것도 용마족을 상대로 싸웠던.

두 공작 중에 한 녀석이기도 했고.

우리의 낌새가 이상하자 가면을 벗은 녀석을 쳐다봤다가 화련이 내게 물었다.

<화련> 누군지 아는가 보네?

<주호> 뭐 그렇게 좋은 인연은 아니죠.

우리를 죽이려고 찾아왔던 녀석이 달가울 리는 없었다.

만약 여기가 타란 제국 수도가 아니었다면 당장 목을 쳤을 수도 있고.

<주호> 화련도 알죠? 타란 제국 황제의 두 공작들요.

<화련> 베르가 공작? 그렌 공작?

<주호> 네. 이름은 모르는데 둘 중 하나일 거예요.

지금까지는 딱히 관심이 없었지만.

눈앞에 나타난 이상은 확인해야 했다.

슬쩍 상업 조합장을 쳐다보자 녀석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작을 우리에게 소개했다.

“이쪽은 황제파의 수장이신 베르가 공작님이십니다.”

장로회 대표인 타누스 후작과 더불어.

황제파를 대표하는 타란 제국의 기둥 중 하나인 녀석이었다.

설마 베르가 공작이 직접 여기 왔을 줄은 몰랐는데…….

그러니까 이 녀석이 타란 제국의 영웅 중에는 카샤스 대공 다음가는 실력자였다.

비록 공작 둘이 협공하긴 했지만.

용마족을 상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정 수준은 아득히 넘어가는 능력치를 보유했다는 뜻이었다.

당장 이 녀석이 여기서 칼부림이라도 한다면.

정말 귀찮은 일이 생긴다.

우리 옆에 있는 상업 조합장 정도로는 절대 이 녀석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상업 조합장이 긴장했는지 땀을 줄줄 흘리면서 경직되어 있었다.

설마하니 녀석도 베르가 공작이 직접 왔을 거라는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이런 장소에 오기에는.

베르가 공작은 너무 거물이었다.

보통 상황에서는 유저들이 절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딱 그런 존재다.

우리를 한 번 슥 둘러본 베르가 공작이 눈을 낮게 깔고는 화련에게 말했다.

“화련 백작. 날 보자고 했다고?”

딱히 무례하다든가 하는 투는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를 기대하고 나온 것 같은 딱 그런 뉘앙스라고 해야 하나?

만약 우리를 힘으로 적대할 생각이었다면.

오러든 뭐든 뿜어내서 이 공간을 짓눌렀을 테니.

분명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평소의 할 수 있는 방법을 쓰지 않는 것이다.

화련도 딱히 베르가 공작이 이곳에 직접 온 것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오히려 잘 됐다는 듯 말했다.

“공작께서 직접 오셔서 대화가 빨라지겠어요.”

최종 결정자가 왔으니 이곳에서 하는 이야기가 바로 답이 된다.

베르가 공작도 굳이 말을 돌려가면서 하지 않고 바로 화련에게 물었다.

“날 여기로 불렀다는 건. 그대도 원하는 게 있다는 뜻일 테지.”

이건 값을 치를 테니.

원하는 바를 말하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미 생각해온 것이 있는지 베르가 공작이 말을 이었다.

“베르탈륨 광석. 경매가 아닌. 독점으로 공급받고 싶군.”

경매로 해서는 다시 자금력에서 장로회에게 밀리게 된다고 판단했는지 아예 직통으로 거래를 제안해 왔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미 장로회에 넘어간 물량은 저들도 어찌하지 못한다는 걸.

그렇다면 앞으로 나올 물량을 전부 공급받는 방법 밖에 없다.

제안을 들은 화련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경매로 하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얼핏 보기에는 명백한 거절 같지만.

굳이라는 말을 함으로써 여지를 두었다.

다른 말로…….

조건만 맞는다면.

독점으로 공급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돌려 말한 거니까.

그러니까 화련이 지금 하는 말은.

제시를 하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만족할만한 조건을.

베르가 공작도 충분히 이해했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르가 공작이 말을 꺼냈다.

“타란 제국의 대영토 중 한 곳을 영구히 넘겨주겠다.”

흠.

제법 베팅이 나쁘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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